tbs교통방송(이하 tbs)에 비정규직 중심의 노조가 생겼다. 회사로부터 크고 작은 차별을 받고, 노조에서도 소외돼 있던 비정규직 방송노동자들이 직종을 막론하고 뭉쳤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방송계갑질119’를 중심으로 추진 중인 방송업종 스태프의 노조화 작업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목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비정규직의 백화점’ tbs</font></font>서울시 산하 방송사인 tbs에서 일하는 파견·계약직·프리랜서 노동자 100여 명이 1월19일 전국언론노조에 가입하면서 tbs지부가 출범했다. 파견·계약직뿐 아니라 프리랜서까지 포함해 사업장 단위로 조직된 방송사 비정규직 노조가 탄생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은 노조 출범을 하루 앞둔 18일 저녁 서울 마포구 tbs 본사에서 노조 지부장인 이강훈 기자, 부지부장인 이윤정 작가, 사무국장인 문숙희 기자를 만났다. 메인작가인 이윤정 작가를 비롯한 셋은 현재 모두 프리랜서 신분이다.
이날 만난 노조 집행부는 표정이 밝았다. 전날까지 노조 가입 희망자가 45명에 불과했는데, 하루 만에 두 배 넘게 뛰었기 때문이다. 이강훈 지부장은 “최대 50명은 더 합류할 가능성이 있다”고 희망 어린 얼굴로 말했다. 그는 “tbs 방송을 만드는 ‘모든 노동자’들이 조직됐다는 점이 우리의 특징”이라는 말을 수차례 강조했다.
이 지부장의 말처럼 tbs지부는 매우 이례적인 형태의 노조다. 앞서 말한 고용형태의 다양성뿐 아니라 직종의 다양성도 가지고 있다. 기자, PD, 리포터, 작가, 아나운서, 카메라, 기술, 편집, VJ, 행정 등 방송 제작 전 분야의 노동자가 가입했다. 정규직 기자·PD 중심의 기존 방송사 노조와는 사뭇 다른 형태다.
tbs는 ‘모두가 비정규직’인 회사였다. 지난해 tbs와 서울시가 함께 한 ‘tbs 프리랜서 노동현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tbs는 2017년 7월31일 현재 전체 인원 469명 가운데 450명(95.9%)이 비정규직으로 구성된 회사였다. 정규직 19명은 모두 1~2년 근무를 마치면 다시 서울시로 복귀하는 시 공무원들이어서, 사실상 tbs는 자체 정규직이 한 명도 없었다.
비정규직 안에서도 파견·계약·프리랜서의 처우는 임기제 공무원(5년마다 계약을 갱신)보다 나빴다. 프리랜서 179명은 다른 노동자와 똑같은 제작 업무를 하면서도 프로그램 개편에 따라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어 고용불안에 시달렸다. 이들은 임기제 공무원들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많게는 한 달에 217만원까지 급여 차이가 났다.
2017년 10월쯤 언론에 공개된 이 결과는 tbs 노동자 자신들에게도 충격을 주었다. 보고서에는 ‘프리랜서 일부를 정규직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는데, 권고 인원이 38명에 불과했다. 노조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퍼져가기 시작했다.
마침 tbs 내부를 뒤흔든 사건이 또 있었다. 10년간 일하다 갑자기 계약 종료 통보를 받은 계약직 PD가 중앙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판정 덕분에 복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윤정 부지부장은 “비정규직들이 이 일로 희망을 보게 됐다”고 한다. 따로 노조를 만들려던 일부 작가가 방향을 틀어 tbs 전체 직종이 참여하는 노조를 만들자고 나서며 본격적으로 판이 커졌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박원순 시장 나서서 정규직화 박차 </font></font>노조를 만드는 과정은 간단치 않았다. 4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프리랜서와 파견직이 많아서다. 이윤정 부지부장은 “누가 우리 회사 사람인지 몰라 알음알음 다단계 조직처럼 사람들 연락처를 구하고 다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조를 만들어 가장 좋은 건 회사 사람들과 인사할 수 있게 된 것”이라며 웃었다.
문숙희 사무국장은 “각자 점으로 떨어져 있던 사람들을 만나 고민을 이야기하면, ‘나도 그렇다’고 공감했다. 선으로 연결되길 기다렸다는 듯 노조 참여 의사를 밝혔다”며 특별했던 경험을 말했다. 여기에 상급단체인 전국언론노조가 결합했고, 지난해 말 10여 차례 준비모임을 한 끝에 노조가 탄생했다.
막 출범한 언론노조 tbs지부 앞에 놓인 상황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사주라 할 수 있는 서울시가 2019년까지 tbs를 재단법인화하고 노동자 상당수를 정규직화한다는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현재는 서울시 공무원 정원 규정에 묶여 재단법인으로 독립시켜야 정규직화의 길이 열린다. 조만간 박원순 서울시장이 나서서 구체적인 로드맵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tbs의 현 사장이 전국언론노조 출신 정찬형 전 MBC PD라는 점도 기회다. 이윤정 부지부장은 “과거 손석희 JTBC 사장과 함께 MBC에서 파업투쟁을 이끈 노동운동 선배라 기대가 크다”고 했다. 이강훈 지부장은 ‘미담 사례’를 소개했다. “프리랜서·파견 노동자들은 tbs 안에서 공간을 빌리기 어렵다. 노조 출범식을 어디서 열지 고민하다 회사 쪽에 공간 대여를 요청했는데, 바로 마련됐다. 그것도 회사에서 가장 큰 공개홀로.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정찬형 사장이 ‘어떻게든 장소를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한다.”
하지만 서울시와 회사 쪽의 선처를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이윤정 부지부장은 “프리랜서들은 재단화·정규직화 관련 정보에 상당히 소외돼 있다. 정보를 얻는 통로를 만들고 우리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은데, 그게 바로 노조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현실적 고려도 있다. 이강훈 지부장은 “서울시장 또는 시의회 구성이 바뀌는 등 정치적 변수가 생기더라도 계획을 공고하게 밀어붙일 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조는 tbs의 현재 고용 구조가 기형적이라고 판단한다. 예를 들어 같은 취재기자라도 라디오국은 임기제 공무원, TV국은 프리랜서로 이뤄져 있다. 이 지부장은 “기존의 비합리적 고용·인사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선 전체 노동자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현재 임기제 공무원은 신분상 tbs지부에 가입하지 못한다. 노조는 tbs가 재단법인으로 바뀐 뒤 이들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을 계획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비정규직 많아서 공영방송 망가진 것” </font></font>노조 집행부는 tbs 재단화와 정규직화가 궁극적으로 콘텐츠의 질을 향상시킬 것으로 내다봤다. 이윤정 부지부장은 tbs의 성과를 바탕으로 다른 방송사에도 정규직화가 퍼져가길 기대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MBC와 KBS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망가진 건 비정규직이 많아서였다고 본다.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은 파업을 하기 훨씬 어렵고 결국 방송을 멈추지 못했다. 내가 목소리를 내는 게 생계와 직업을 걸어야 하는 일이면 누구도 하기 어렵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는 게 방송 적폐를 없애는 길이다.”
<font color="#008ABD">글 </font>변지민 기자 dr@hani.co.kr<font color="#008ABD">사진</font>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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