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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감사원도 KBS 상품권 관행 지적

2017년 감사원 감사 결과, KBS 제작비 10% 정도 상품권으로 결제…

언론단체들 공적 개입 촉구에 노동부는 팔짱만
등록 2018-01-16 14:39 수정 2020-05-03 04:28
‘상품권 페이’는 오랜 관행이라는 말로 정당화될 수 없다. KBS가 지난해 쓴 상품권은 88억원에 이른다. 류우종 기자

‘상품권 페이’는 오랜 관행이라는 말로 정당화될 수 없다. KBS가 지난해 쓴 상품권은 88억원에 이른다. 류우종 기자

감사원이 지난해 KBS가 협찬품(주로 상품권)을 사용한 프로그램 107개의 총제작비를 감사한 결과, 전체 예산 대비 상품권의 사용 비중이 10%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상품권 페이’ 관행이 일부 방송사와 프로그램 담당자가 저지른 특수한 일탈이 아닌 방송계에 만연한 고질적 문제임을 보여주는 객관적인 수치라 주목된다.

12억원 사용한 프로그램도

이 가운데 가장 많은 상품권을 사용한 프로그램에선 방송 제작 책임자가 컴퓨터그래픽 비용 등 방송 제작비로 17억원가량의 예산을 확보한 뒤 외부 업체에 컴퓨터그래픽 제작비 1억19만원을 상품권으로 지급하는 등 전체 제작비의 73.7%(12억5천여만원)를 협찬품으로 지급했다. 이런 식으로 107개 KBS 프로그램에서 협찬품으로 제작비를 충당한 비율은 전체 승인 예산의 10.7%인 88억100만원에 이르렀다.

감사원은 ‘상품권 페이’ 관행에 대해 “KBS 프로덕션 담당은 제작 투자 담당으로부터 승인받은 방송 제작비로는 실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제작비를 충당하기 곤란하다는 이유로 협찬품을 제작 투자 담당의 승인 없이 임의로 경품이나 출연료 또는 외부 편집 전문인 수수료 등 방송 제작비로 사용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KBS는 방송법 제74조와 같은 법 시행령 제60조, ‘협찬 고지 등에 관한 규칙’(방송통신위원회 규칙)과 ‘협찬 고지 및 협찬품 운영 지침’(KBS 지침) 등의 규정에 따라 협찬주(협찬 회사)로부터 백화점 상품권 등 협찬품을 받아 방송 제작비의 일부를 충당해왔다.

문제는 상품권의 용처다. 방송사가 공개방송에 참석한 방청객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협찬받은 상품권을 지급하는 것은 일반인의 상식을 넘어서지 않는다. 그러나 외주제작 스태프나 고정 출연자의 임금을 상품권으로 지급하는 것은 ‘임금을 통화로 지급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 위반 논란이 발생할 수 있는 중대 사안이다. 이런 인식이 없었기에 감사원은 KBS를 향해 “(상품권으로 지급되는) 방송 제작비가 방만하게 집행될 우려가 있다. 프로덕션 담당은 승인받은 방송 제작비 범위 내에서 협찬품을 사용하도록 하는 등 협찬품에 대한 적정한 관리 방안을 마련하기 바란다”고 지적하는 데 그쳤다. KBS도 관계 기관의 의견을 통해 “KBS는 감사 결과를 수용하면서 효율적이고 엄격하게 협찬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별 협찬품 운영 계획을 수립해 승인받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언론단체들 정부 공적 개입 촉구

그러나 상품권 페이 관행은 하루빨리 시정돼야 할 ‘방송 적폐’일 뿐이다. 제1195호 표지이야기를 통해 외주제작 스태프에게 체불 임금을 상품권으로 지급했다는 지적을 받은 SBS의 발빠른 대응을 보면 알 수 있다. SBS는 1월10일 누리집에서 “SBS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한 외부 인력에게 용역 대금의 일부가 상품권으로 지급된 것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잘못된 일”이라며 “현재 용역 대금을 상품권으로 지급한 사례와 규모에 대해 조사 중이며 불합리한 점은 즉각 시정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어 “이 일로 인해 SBS의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애쓴 분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준 것에 대해 심심한 사과를 드리며 차후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다른 방송사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1월12일 내놓은 자료를 보면, 1월8일 상품권 페이에 대한 의 첫 보도가 나온 뒤 12일 밤 현재까지 KBS, MBC, JTBC, TV조선, 채널A, MBN 등 6개 방송사는 이와 관련한 보도나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공영방송을 되살리겠다’고 선언한 MBC는 1월11일 ‘직장 갑질 행동으로 맞선다’는 보도를 하며 정작 방송사 내 프리랜서 방송노동자들이 당해온 ‘갑질’ 사례는 소개하지 않았다.

언론단체들은 정부의 공적 개입을 촉구하는 중이다. 언론연대는 ‘상품권 지급 논란에 대한 SBS 입장’과 관련해 “(상품권 페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방송통신위원회를 비롯한 정부는 ‘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시장 불공정관행 개선 종합대책’ 취지에 맞게 이번 사건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품권 페이의 공론화를 주도한 모임인 ‘직장갑질119업종모임’ ‘방송계갑질119’도 입장을 내 “사과는 기자들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에게 하는 것”이라며 “이미 담당 PD가 제보자를 찾아내 협박했던 사실도 ( 보도로) 알려졌다. 제보자가 불이익을 받지 않는지 계속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또 “(SBS 자체 조사보다는) 방송통신위원회, 고용노동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련 기관에서 명확하게 조사하고 개선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도 성명을 내어 “방송사 내에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는 작가 등 비정규직 노동자나, 또 중층적 하도급 구조하에서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일하고 있는 또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 인권 등 권리 실태와 관련한 실태 조사를 진행해야 하고, 이를 토대로 방송 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 보장을 위한 종합적 제도 개선을 추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조사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언론 부문 비정규직단체 등 당사자 조직과 언론, 시민단체, 언론노조 등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부 “근무형태 확인해야”

정부는 아직 팔짱을 끼고 있다. 고용노동부 담당자는 1월11일 과 한 통화에서 “지난해 말 방송노동자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 상품권 페이 관행은 확인하지 못했다. 상품권 페이가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인지는 사업장별 근무형태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방송사와 상품권을 받은 스태프 사이에 사용-종속 관계가 확인되면 방송사는 상품권으로 임금을 지급한 것이 돼 형사처벌을 면할 수 없다. 고삼석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현장의 실태, 어려움을 세심하게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김완 기자 wani@hani.co.kr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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