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2017년 5월 출범 직후부터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문재인 케어’라 불리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국가정보원·검찰 등 권력기관 개혁 등 다양한 부분에서 사회 변화를 이끌어 ‘촛불 혁명을 완성하고, ‘더불어 성장으로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나라’(문재인 대통령 공약집)를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그러나 급한 대로 법 개정 없이 정부의 의지만으로 추진할 수 있는 과제만 우선 추진하다보니, 개혁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입법’ 실적이 더불어민주당 스스로도 “심각하다”고 평가할 정도로 저조한 게 사실이다.
현재 국회에는 여러 개혁·민생 법안이 처리를 기다리고 있지만 12월 임시국회는 공회전을 거듭했고, 1월 임시국회는 구성 여부조차 불투명하다. 이제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내야 하는 민주당 앞에 놓인 핵심 개혁 과제는 무엇인지, ‘입법 병목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인지 살펴봤다. _편집자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12일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방문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정부·여당이 추린 우선 처리 법안 242건 가운데 지금까지 처리된 법안은 39건(16.1%). 이 가운데 여당 정책위원회가 다시 뽑은 핵심 법안 101개 가운데 처리된 법안은 18건(17.8%).
지난해 12월20일 국회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 2017년 국정운영 성과와 과제’ 토론회에서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수석부의장이 밝힌 이른바 ‘개혁 법안’의 처리 실적이다. 홍 의원은 “법안 (처리가) 매우 지지부진한 상태”라고 평가하며 그 이유로 “(현재 의석 구도가) 여소야대 형국”이라는 점을 꼽았다. 현행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여당인 민주당이 야당들을 설득해 180석의 동의를 얻어내지 못하면 문재인 정부의 ‘개혁 법안’ 국회 통과는 불가능하다. 그나마 여러 법안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국민의당과 협의해가고 있지만, 현 정국에 대한 각 정당의 견해가 달라 법안 처리가 계속 지연되고 있다. 대부분의 개혁 법안에 몽니를 놓는 자유한국당의 존재도 법안이 통과되지 못한 주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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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지금까지 처리된 개혁 법안은 2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는 근거법인 ‘사회적 참사법’과 내년도 예산이 처리되면서 함께 통과된 예산 부수 법안들이 있다. 특히 민주당은 소득세 최고세율을 과표구간 3억~5억원은 40%, 5억원 초과는 42%로 각각 2%포인트 상향 조정하는 소득세법 개정안과 과표 3천억원 초과 구간을 신설하고 세율을 기존(22%)보다 3%포인트 높은 25%로 적용하는 법인세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아직 처리되지 못한 수백 개의 주요 개혁·민생 법안이 남아 있다. 정부·여당 쪽에서 여소야대인 국회 의석 구도를 탓하고 있지만 야당을 설득해 이들 법안을 통과시켜야 하는 것은 결국 정부와 여당의 책임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가 앞으로 제·개정해야 할 핵심 개혁 법안은 뭐가 있을까.
민주당은 당에서 추린 핵심 법안 101개를 공개해달라는 의 요청에 일단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핵심 법안이 외부로 공개되면 자유한국당의 반대가 더욱 심해진다는 게 주요 이유다. 이미 처리된 18개 법안도 일부를 제외하고 공개를 꺼렸다. 그에 따라 은 지난 대선 때 민주당이 내놓은 공약집과 지난해 7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에서 제시한 법안 가운데 핵심적 개혁 정책이지만 아직 통과되지 못한 법안 10개를 추렸다. 이 가운데 5개 법안은 주요 내용과 현재 국회 논의 상황을 짚어보고, 나머지는 표(아래 표 참조)로 내용을 간단히 정리했다. 지난해 6월 참여연대가 발행한 ‘문재인 정부와 국회가 추진해야 할 입법·정책 개혁과제’, 11월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이 발행한 ‘2017년 정기국회 법률안 민변 의견서’도 참고했다.
여야 대립에 논의 막힌 공수처※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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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와 여당이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개혁 법안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권력기관의 개혁은 사회적 신뢰 회복을 위한 선결 과제”라며 “법무부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방안을 마련한 것은 이러한 국민들의 여망을 반영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이 민정수석으로 참여했던 초기 참여정부에서 끝내 실행하지 못한 검찰 개혁안 가운데 하나인 공수처 설치에 대한 의지가 매우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대통령 친·인척, 국회의원, 검사, 판사 등 고위 공직자의 범죄를 수사하는 독립기구다. 반복되는 권력형 비리를 공정하게 수사하자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하지만 공수처는 그동안 정권의 입맛에 맞게 편파·축소, 과도한 표적수사 등을 벌이며 사실상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둘러온 검찰을 견제하는 기구라는 점에서 검찰 개혁의 핵심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는 공수처를 설치하기 위한 법안 4건이 상정돼 있다. 박범계 민주당 의원과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이 공동 발의한 법안과 양승조(민주당), 오신환(바른정당), 노회찬(정의당) 의원이 각각 발의한 법안이다. 법무부는 지난해 10월 이 법안들과 별도로 공수처 설치를 위한 정부안을 내놨다. 법무부 안은 공수처장을 사실상 대통령이 아닌 국회가 선출하도록 하고 수사검사 수를 최대 25명으로 제한했다. 민주당은 정부안을 다른 법안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반영해 제3의 수정안을 만들 계획이다.
그러나 공수처 설치법은 자유한국당의 강한 반대로 논의가 막혀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11월29일 법안심사소위에서 공수처 설치에 대해 논의했지만, 여야의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 끝났다. 시민사회에선 한국당의 반대에 과도한 ‘발목 잡기’라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참여연대는 12월18일 보도자료에서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2012년 당시 이재오 당시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수처 설치 법안에 함께 이름을 올렸다. 김 원내대표는 즉시 공수처 도입에 즉각 나서라”고 촉구했다. 당시 이재오 전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독립된 고위공직자범죄 수사기관을 두고 기소권을 준다는 점에서 현재 민주당·법무부 안과 취지가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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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된 김성태 의원(오른쪽)이 2017년 12월13일 국회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오른쪽 두 번째),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 두번째),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왼쪽)와 인사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국가정보원은 국가 안보를 위해 국외·대북 정보 수집은 물론 국내 정보 수집과 국가보안법 등 공안 사건의 수사권까지 보유한 거대한 권력기관이다. 특히 정부기관의 정보·보안 업무에 대한 기획·조정 권한이 있어 다른 정부부처의 상급기관 구실을 해왔다. 하지만 국정원은 막강한 권한을 무기로 정보를 조작·왜곡하고 시민들의 인권을 유린·탄압해왔다. 2013년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제19대 대선 공약으로 국정원의 국내 정보 수집 업무와 대공수사권을 전면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방향으로 국정원을 개혁하고 국정원 조직을 ‘해외안보정보원’으로 변경하겠다는 안은 지난해 7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에도 포함됐다. 국정원 역시 11월29일 대공수사권을 다른 기관으로 옮기고 국정원의 정치 관여 행위를 엄벌하는 내용을 뼈대로 자체 개혁안을 내놨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국정원법 개정안은 진선미 민주당 의원과 천정배 국민의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비롯해 모두 8건이다. 여당과 국정원은 12월11일 당정 협의를 통해 기존에 발의된 법안과 국정원이 내놓은 개혁안에 더해, 외부 인사가 국정원 직원의 비위를 감시하는 ‘정보감찰관’을 신설하는 내용을 포함한 새로운 국정원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로 했다.
문제는 한국당과 바른정당 등 야당의 반대다. 정우택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1일 “국정원 개혁안은 안보를 포기시키겠다는 말”이라 했고,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도 11월30일 “간첩과 테러범을 잡는 수사권을 포기한다면 국정원은 존재의 이유가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여야는 곧 국회 정보위원회에 국정원 개혁소위원회를 구성해 국정원법 개정과 특수활동비 등 국정원 예산 통제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지만 법안 통과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검찰이 발목 잡은 검경 수사권 조정검찰과 경찰 간의 수사권 조정은 문재인 정부가 검토 중인 또 다른 검찰 개혁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역시 참여정부에서 시도했지만 검찰의 강한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현재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지고 있다. 여기에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 영장청구권까지 있어 검사와 경찰 간의 견제와 균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비대한 검찰의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는 데는 여야 사이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다만 어느 기관에 얼마큼의 권한을 줄지에는 여러 의견이 나온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검경 수사권 조정을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민주당의 금태섭 의원 안과 표창원 의원 안 등이 있다. 검찰 출신인 금 의원 안은 범죄의 직접적 수사권은 경찰에 부여하되 경찰의 권한 남용을 막기 위해 경찰에 대한 검찰의 수사지휘권은 유지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 출신인 표 의원 안은 사법경찰관리(경찰)가 수사의 주체임을 명확히 하고 수사의 개시부터 종결까지 전 과정을 사법경찰관이 수행하도록 했다. 이러한 의원 발의안 외에 경찰이 직접 만든 개혁안도 공개돼 있다. 경찰 개혁위원회는 12월7일 수사권 독립을 핵심으로 하는 ‘수사구조개혁 권고안’을 발표했다. 검찰의 역할을 ‘경찰이 송치한 사건에 대해 기소권과 보완수사요청권을 갖는 것’으로 제한하는 방안이다. 검찰과 경찰의 역할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서로의 의견이 천양지차임을 알 수 있다. 국회는 11월29일 법사위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이에 대해 논의했다. 여야 의원들은 수사권을 조정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대체로 공감했으나 깊이 있는 논의가 이뤄지진 못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의 가장 큰 걸림돌은 검찰이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지난해 7월 인사청문회에서 “경찰 수사기록만 보고 기소 여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며 경찰에 수사권을 부여하는 방안에 부정적 의견을 밝혔다. 그는 10월 국정감사에서도 거듭 “검찰이 수사 지휘를 일절 안 하기는 쉽지 않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기간에 쌓인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검찰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 때문에 검찰의 핵심 권한을 분산시키는 방향의 개혁안을 적극 추진하긴 쉽지 않을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선거연령 하향이 고교 정치화?문재인 정부 100대 과제 가운데 ‘국민참여 정치개혁’ 분야의 핵심은 선거연령 18살 하향과 국회의원선거에서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안이다. 선거연령이 낮아지면 국민의 참정권이 확대되고,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롤 도입하면 현재 소선거구제에 비해 국민의 의사가 선거 결과에 더 정확히 반영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만 18살 이상 국민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나라는 33개국이다. 유일하게 한국만 선거연령을 19살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선거연령을 낮추기 위한 법안으로 민주당 이재정·송옥주·정춘숙 의원이 발의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있다. 민변 역시 ‘2017년 정기국회 법률안 의견서’에서 선거연령을 낮추기 위한 ‘입법 적극 촉구’를 요구하며 “선거연령 하향이 곧 고등학교의 정치화로 귀결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제한의 관점이 아니라 폭넓은 보장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총선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기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박주민·소병훈·김상희 민주당 의원과 박주현 국민의당 의원이 발의한 안이 있다. 전국 단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는 박주현 의원 안을 제외하고 나머지 3개 안은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누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는 안이다. 현재 한국은 지역구에서 1등만 당선되는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를 실시하고 있다. 소선거구제는 사표를 양산해 정당득표율과 실제 국회 의석 배분의 불일치를 키운다. 전국 혹은 권역별로 얻은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면 이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국회는 12월12일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를 열어 두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두 개혁 방안에 긍정적 견해를 보였지만, 한국당은 부정적 견해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12월21일에도 정개특위 공직선거법심사소위가 열렸으나 여야의 엇갈린 입장만 재확인한 채 회의 자체가 무산됐다.
다른 이슈에 가린 임대차 보호한 상권이 번성하면 임대료가 치솟고 기존 임차인들은 애써 일군 영업적 가치를 제대로 회수하지 못한 채 밀려나고 만다. 몇 년 전부터 이런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서울은 물론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서울의 경우 홍익대 주변, 대학로, 이태원 등에서 시작한 젠트리피케이션이 이를 피해 주변으로 떠밀린 임차인들이 다시 일군 상권인 연남동과 망원동 등으로 번지고 있다.
이 현상을 막기 위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대표적인 민생 법안으로 분류된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대선에서 임대차보호법상의 권리금 보호 대상을 확대하고 계약 갱신 청구권을 현행 5년에서 10년으로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법무부는 그에 따라 지난해 12월21일 국회 통과가 필요 없는 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여기에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의 적용 범위를 정하는 환산보증금 상한액을 지역별로 50% 이상 대폭 올리고(서울 지역 4억원→6억1천만원), 임대료 인상률 상한을 내리는(9%→5%) 내용이 담겼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모두 18건이다. 임차인이 보호받을 수 있는 기간을 대폭 늘리는 것이 핵심이다. 독일·프랑스·일본 등 많은 OECD 회원국들이 임차인에게 9~15년의 장기임대차를 보장하고 있으나, 한국은 보호 기간이 5년에 불과하다. 그로 인해 시설 투자금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한 채 쫓겨나는 일이 많다. 임차인의 계약 갱신 요구권 기간을 10년으로 늘리는 방안은 윤호중·홍익표 민주당 의원, 노회찬 정의당 의원, 이언주 국민의당 의원 등이 발의했다. 아예 계약 갱신 요구권 기간을 없애 임차인이 동의 없이 건물에서 쫓겨나지 않도록 한 안(박주민 의원)도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해 임대인, 임차인, 사업자 등 지역공동체 당사자 사이 공존과 상생의 협력적 이해관계를 조성하는 지역상권 상생발전법 제정안(홍익표 의원)도 나왔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해당 상임위를 통과해 현재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이 법안은 여야 이견이 첨예한 핵심 쟁점 법안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공수처 설치 등 다른 이슈에 막혀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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