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고대영 사장님, 집에 갑시다

단식하며 최장기 파업 이끄는 성재호 KBS 새노조위원장 인터뷰…

“KBS는 여전히 박근혜 체제”
등록 2017-12-20 02:00 수정 2020-05-03 04:28

단식농성은 끝냈지만, 파업의 끝은 알 수 없다. MBC와 함께 파업의 깃발을 들었던 KBS는 여전히 싸우고 있다. 물론 돌파구는 열렸다. 방송통신위원회가 12월11일, 애견카페 등에서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쓰는 등 몰염치한 비위를 저지른 강규형 KBS 이사의 해임을 건의하기로 결정하면서 KBS 이사회 내 여야 구도의 변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KBS 이사회의 구도를 보면, 옛 여야 추천 비율이 현재 6 대 5를 유지하고 있다. 강 이사가 현 여권이 추천하는 새 이사로 교체되면 이 비율은 단숨에 역전된다. KBS 구성원들 역시 부문별·직능별 간담회를 열어 어떻게 KBS를 ‘리셋’할 것인지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다. 엿새간의 단식을 12월12일 중단한 성재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KBS 새노조) 위원장을 13일 만났다.

100일은 안 넘기려 했는데…파업이 100일을 넘어섰다. KBS 역사상 최장기 파업이 됐는데.

100일은 넘기지 않으려 했는데, 악조건이 이어졌고 꼬인 측면도 있다. 파업을 시작할 때부터 어차피 고대영 사장은 사퇴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KBS를 망친 ‘부역 세력’들의 문제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현재 이사진이나 부역 간부들은 ‘KBS를 내 생각대로 움직여야 한다. 남에게 넘어가거나 생각이 다른 사람이 운영하면 큰일 난다’는 자기중심주의에 빠져 있다. 이는 방송을 철저히 사유화하고 공영방송을 자신의 이념 관철 도구로 생각하는 태도다.

‘부역자’ ‘사유화’라는 표현을 썼는데, KBS에서 가장 많이 망가진 부분은 어디인가.

너무 많다. (웃음) 특정하기 어려울 만큼 너무 많은 부분이 망가졌다. 다만 MBC와 다른 측면이 있다. MBC가 (정권에 호락호락하지 않은 유능한 핵심 인력을) 내쫓는 방식으로 아예 보도나 제작을 못하게 했다면, 우린 그것보다는 나았다. 핵심적 자리에서만 내쫓고 보도·제작 부서에는 뒀다. 핵심 부서나 정치권력이 부담을 느낄 만한 부서에는 하수인으로 부릴 수 있는 사람들을 뒀다.

그 판단은 정치적 처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MBC는 국가정보원이 개입해 방송 장악을 총지휘했다는 명확한 증거(국정원이 2010년 3월 생산한 문건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 방안‘)가 나왔지만 KBS의 사정은 다르다.

KBS에서도 당연히 같은 일이 벌어졌다. 아직 종합적인 문건이 나오지 않았을 뿐, 없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정권의 방송 장악 실체가) 토막토막 알려졌을 뿐이다. 2009년 김인규 사장이 입성하기 전 정연주 사장을 찍어낼 때, 청와대, 국정원, 방송통신위원회가 참여한 ‘KBS대책회의’가 있었다. 2010년께 조직이 개편됐는데, 이때 (사용된 자료에) ‘좌편향 간부 퇴출’ 등 이명박 정부가 KBS 인사에 불법 개입한 내용이 적시돼 있었다.

MBC가 부럽다KBS 장악에 대해서는 아직 제대로 수사나 진상 규명 작업이 이뤄지지 않는 느낌이다.

드러난 문건 등 명확한 물증이 부족하다보니 검찰 수사가 제대로 되지 못해 아쉽다. 그 부분과 관련해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에 불만이 많다. 정말 국정원을 개혁하려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KBS 등 언론 부분에 대한 공작과 개입·간섭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이 많다. 방송 장악과 관련해 더 많은 국정원 문건이 공개돼야 권력과 언론의 내부 협력자들이 어떻게 엮였는지 알 수 있고 그것을 청산할 수 있다.

MBC는 최승호 사장이 임명되며 사태가 좀 풀려가고 있다. 같이 파업을 시작했는데 어떤 느낌이 드나.

매우 부럽다. (웃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최승호 PD 아닌가. 그가 걸어온 길을 잘 안다. 이를 갈고 독하게 개혁할 사람이다. 이에 견줘 KBS를 생각하면 답답하다. 단순히 파업이 길어져서가 아니라 우리 출발이 너무 늦어지고 있다. MBC는 최승호 체제에서 개혁 작업에 매진할 것이고, SBS도 사장 임명 동의제를 비롯해 정비해가고 있다. 흔히 ‘지상파 3사’라고 하는데 맏형 격인 KBS만 여전히 박근혜 체제에 머물러 있다. 잠시나마 KBS가 신뢰도·영향력 1위를 차지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부 내내 공영방송이 망가져 2류, 3류가 됐다. KBS를 이렇게 만들어버린 핵심 문제들이 여전하다.

KBS는 공영방송이고 정권이 교체된 지 벌써 7개월인데, 정치적으로 방치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정치공학적 판단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게 문재인 정부의 책임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정부가 가진 법적 권한에 맞게 공영방송의 책임을 다해달라고 압박하고 있다. 다만 방치 상황인 것은 맞다. 자유한국당이 아전인수 격으로 밑도 끝도 없이 물어뜯으니까 위축된 것 같다. 이사 해임 등 당연히 해야 할 일도 못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단식투쟁을 해야 하고, 파업 신기록을 세우는 것에 대한 답답함이 솔직히 있다.

미디어 환경이 변함에 따라 공중파의 영향력도 변해, 예전처럼 정권이 지상파 방송 문제에 개입할 필요성이 없어졌기 때문 아닐까.

현 정부의 미디어 정책을 방송 장악 프레임으로 본다면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자체가 방송 장악 논리라는 점에서 어불성설이다. 지상파 방송의 영향력이 감소했다는 것은 따로 말할 필요도 없다. 왜 그렇게 됐을까를 따져보면 지상파 방송들이 스스로 신뢰를 잃어버린 것이다. 또 정권이 그것을 조장했다. 왜 지상파 방송들이 JTBC를 이기지 못하는가. 지상파 뉴스가 쓸모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 쓸모와 신뢰를 찾아온 뒤 지상파 방송의 근본 위기를 다시 말해도 늦지 않다.

늦어도 1월강규형 이사를 해임하면 돌파구가 열리는 것 아닌가.

방통위가 12월11일 강 이사를 해임 공고하면서 돌파구가 열린 것은 맞다. 강규형 이사, 차기환 이사, 이인호 이사장 이런 사람들은 고대영 체제를 만들어 KBS가 박근혜 체제에 부역하게 한 당사자다. 이른 시간 안에 보궐이사가 선임돼 고대영 사장을 해임하는 국면에 들어가야 한다. MBC도 마찬가지지만 현재 공영방송의 사장 선임 구조나 이사회 선출 방식에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 현재 KBS와 MBC의 지배 구조는 권력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사회 선출에 국회나 정치권이 개입할 근거가 없음에도 지난 12년간 관행적으로 정당들이 관여해왔다. 정당과 방통위로 이어지는 편법적인 선출 방식이다.

새로운 KBS가 출범하는 시기를 언제로 보나.

늦어도 2018년 1월 안에는 고대영 사장을 해임해야 한다. KBS 사장은 국회 인사청문회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새 사장 선출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보다 시간을 더 단축할 방법은 고대영 사장, 이인호 이사장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다. 어차피 박근혜 체제가 끝나면서 유효기간이 다 된 이들이다.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