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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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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는 시작이다

파업 승리로 이끈 김연국 MBC 노조위원장 인터뷰…

“폐허 위에 새로 지어야 하나 곧 무서운 존재로 복귀할 것”
등록 2017-12-19 18:18 수정 2020-05-03 04:28
최승호 사장의 극적인 취임으로 MBC는 방송 정상화를 위한 첫 단추를 끼울 수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철저히 파괴된 KBS, YTN 등은 여전히 힘겨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은 MBC·KBS·YTN의 노동조합 위원장을 연속 인터뷰해 각 방송사 앞에 놓인 고민을 살펴보고 이를 풀기 위한 해법을 모색해봤다. _편집자

해직기자에서 사장으로. MBC에서 ‘이유도 없이’ 쫓겨났던 최승호 PD가 사장이 되어 MBC로 돌아왔다. 드라마 각본을 이렇게 썼다면 개연성이 없다고 면박당했을 텐데, ‘실화’다.

살아 숨쉬는 대하드라마

지난 10년간 MBC는 그야말로 인생의 모든 희로애락이 살아 숨쉬는 대하드라마의 현장이었다. 시작은 희극이었다.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 ‘명박산성’이란 기괴한 조형물이 등장했던 2008년 여름, ‘마봉춘’은 열광의 이름이었다.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지적한 《PD수첩》 보도의 위력에 놀란 보수 정권은 그 해결책으로 ‘방송 장악’의 길을 택했다. 그 직격탄을 맞고 MBC는 표류했다. 저널리즘의 상식은 붕괴됐고, 상징적 언론인들은 쫓겨났다. 언제까지고 MBC를 지켜줄 것 같던 시민들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함께 방송을 기억에서 지워갔다. 10년 사이 완전히 체질이 바뀐 MBC는 2016년 겨울과 이듬해 봄으로 이어지는 시간 동안 ‘태극기집회’의 친구가 됐다.

최승호 신임 사장의 등장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표류의 시대를 지나 MBC가 항로를 잡았음을 뜻한다. 최승호가 이끄는 MBC가 목적지에 도착할지, 변화된 기류 속에 더 고전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만나면 좋은 친구’는 이미 죽었다. 다시 만날 만큼 좋아야 MBC는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올겨울 가장 추웠던 12월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에서 김연국 노조위원장을 만났다. 바람이 매서웠지만, 햇살이 강렬해 어디론가 출발하기 딱 좋은 날이었다.

오랜 실패와 좌절의 시간이 끝났다. 감회가 어떤가.

맞다. 승리했다. (웃음) 하지만 파업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기쁨은 정말 딱 하루에 끝났다. MBC를 다시 신뢰받는 방송으로 세우는 것은 이제 온전히 우리 책임이 됐다. 정영하 전 노조위원장이 “파업에는 담보가 없다. 협상이 있는 게임이 아니다. 정말 모든 걸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결국 이겼는데, 이제야말로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복잡한 상황이 됐다. (웃음)

결정적으로 ‘이제 이길 수 있겠다’고 생각한 때는 언제였나.

파업을 시작하고 그 주 목요일(9월8일)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MBC 관리감독기구) 이사회를 앞두고 유의선 이사(야권 쪽 이사·이화여대 교수)가 사퇴했을 때다. 유 이사가 사퇴한 것은 이화여대를 나온 조합원들의 활동 때문이었다. 유 이사가 사퇴하며 “MBC 파업에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동안 계속 지는 파업을 해왔기 때문에 두려움이 컸는데 그때 조합원들이 처음 ‘우리가 파업으로, 우리 힘으로 승리를 얻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회복한 것 같다.

파업 시작 뒤 문제가 해결되기까지 시간이 의외로 오래 걸렸다.

파업 초반에는 한동안 별 진전이 없었다. 지상파 방송의 위상이 5년 전인 2012년 ‘170일 파업’을 할 때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땐 시민들 사이에 MBC에 대한 기대와 실망이 동시에 있었다. 그사이 시청자의 마음이 많이 떠났음을 절감했다. 12월12일 방송된 《PD수첩》 ‘MBC 몰락, 7년의 기록’에 등장한 (1인 미디어) 《쥐픽쳐스》 국범근씨의 말처럼 지금 20대에겐 “MBC가 망가졌다”는 말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 워낙 오랜 시간 MBC가 망가져 있었기에 시민들이 MBC가 좋았던 시절을 기억 못한다. 그러나 파업이 지속되면서 달라지는 온도를 느꼈다. 5년 전에는 처음에만 떠들썩하다 잊히는 듯했는데, 이번에는 우리가 뭔가를 만들어간다는 것을 느꼈다.

좀더 시간을 거슬러 촛불의 힘으로 박근혜 정권이 무너졌고, 5월에 정권이 교체됐다. 사회의 각 분야에서 헝클어졌던 것들이 빠른 속도로 정리될 때 MBC는 왜 바로 나서지 못했나.

트라우마였다. 2010년 39일 파업, 2012년 170일 파업을 하고 진짜 철저하게 무너졌다. MBC의 바닥이 언제였느냐를 생각해보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28일 김장겸 사장이 선출될 때까지였다. 우리 사회가 바뀔 수 있겠다는 희망을 싹 틔우던 시기에 MBC는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지는 선택을 했다. 그때 노조위원장으로 ‘김장겸이 사장이 되는 걸 그냥 지켜볼 순 없으니 딱 하루만이라도 파업을 하자’고 제안했다. 결국 안 됐다. 조직의 밑바닥에서 ‘저항한다고 얻어낼 게 뭐가 있느냐, 오히려 더 망가지는데’란 정서가 있었다.

‘파업하면 더 망가진다’는 트라우마파업 기간에 사회 일각에선 ‘MBC 내부에선 여태 뭘 했기에 이제 와 기회를 달라고 하느냐’는 냉소적인 시각도 있었다.

보수 정권 내내 MBC는 역행하던 조직이었다. (앞선 파업의 실패는) MBC 내부에 ‘파업이 끝나면 더 철저히 망가진다’는 상처를 남겼다. 조합원들에 대한 부당 전보와 온갖 징계가 횡행할 때, 노조가 나서서 뭘 하기조차 부담스러웠다. 그 위축감이 상당했다. 문제를 제기하면 뭔가 나아져야 하는데 더 큰 화살이 날아와 꽂혔다. 워낙 많은 사람이 쫓겨나다보니 ‘최소 핵심 역량’이라도 보존하고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할 정도로 위축된 시간을 보냈다. 파업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어쩌면 우린 다시 파업 같은 건 못하겠다 싶었다.

MBC 간부들은 왜 이렇게 일사불란하게 나쁜 짓만 골라서 했을까. 어떤 이해관계 때문인가.

그들은 간부로 인정받고, 출세하고 싶어 했다. 자기를 발탁한 권력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니까. 구체적으로 말해보겠다. 윤길용, 김철진, 김장겸, 박상후 등 (보수 정권에서 MBC 파괴에 앞장선) 주요 간부들은 조직 내부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여준 적 없는 사람들이다. 권력이 방송을 장악한 경로를 보면 먼저 그런 사람들을 고른다. 후배들에게 인정 못 받는 심리를 교묘히 활용하는 전략이다. 그런 간부들은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후배들은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럼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방식으로 움직인다. 한결같다. 날 인정해준 사람과 조직에 충성하고, 날 인정하지 않는 후배들에게 뭔가 보여주기 위해 인사권을 휘두르고 징계권을 남발했다. 잘난 척하는 너를 꼼짝 못하게 해주겠다고. 그게 정말 강력하게 조직을 파괴한다.

그런 풍토를 개선할 수 있을까.

근본적으로는 MBC의 지배 구조를 바꿔야 한다. MBC 사장을 뽑는 방문진(정원 9명)의 다수를 구성하는 것은 결국 청와대와 여당이 임명한 이사 6명이다. 이들이 뽑는 사장이 다시 간부들을 줄 세운다. 이 구조에서 ‘방송 독립’은 정치권력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다. MBC 방송 강령을 보면, ‘전문인’이란 표현이 나온다. 방송은 직업적 전문성을 요구한다. 그 전문성을 지키려면 때로 깐깐함이 필요하다. 보도나 프로그램을 지켜야 하니까. 하지만 층층이 누가 누구를 뽑아주는 구조에선 ‘좋은 게 좋은 거지, 왜 그렇게 깐깐하게 굴어’라는 온정주의가 자란다. 지난 7년 동안 MBC에서 벌어진 일은 전문성을 꼬장꼬장하게 지켜내려 했던 이들, 자기 프로그램과 기사에 대해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누가 간섭하거나 부당하게 건드리는 것에 반발했던 이들을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가며 짓밟아 무너뜨린 것이었다. 거창해 보이는 헌법과 언론의 자유는 결국 조직 내부의 깐깐함을 지켜가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사장이 바뀌고, 인사와 조직 개편이 진행 중이다. 이른바 ‘부역자’들을 어떻게 생각하나.

세간에서 제일 관심 있어 하는데 대답하긴 곤란한 질문이다. (웃음) 노조는 이 부분에 대해 단호한 원칙이 있다. 지난 7년간 불공정·편파·왜곡 보도를 하는 데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가담한 사람들은 철저한 반성을 하지 않는 이상 다시는 펜과 마이크를 쥐게 하면 안 된다. 시용, 경력, 공채 이런 기준이 아니라 언론인으로 일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적격성 판단이 필요하다. 이들이 수행한 보도가 방송 강령을 위반했는지, 편성 규약, 방송법을 위반했는지, MBC 보도 가이드라인을 위반했는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 (이후 필요하면) 사규에 따라 엄중하게 징계해야 한다.

부역자는 ‘저널리스트 적격성’으로 판단하겠다오래 돌아와 출발선 앞에 섰다. 그사이 미디어 환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특히 종합편성채널 JTBC는 약진을 거듭했다. 현재 지상파 방송의 신뢰도를 다 합쳐도 JTBC와 비교가 안 된다.

손석희 사장도 MBC 사람이었다. (웃음) 여러 얘기가 가능하겠지만 조직 안에 실험을 할 자유, 실패를 할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 결국 구성원을 신나게 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리더의 존재감은 ‘니들 맘대로 해봐. 니들이 하고 싶은 거 다 가져와봐. 잘 정리하고 다듬어서 자유롭게 내보내줄게’면 충분하다. 어느 조직이든 정말 신나서 일하는 사람을 막을 방법은 없다. MBC는 어떻게 하면 구성원들의 기를 죽일까, 아무것도 보도하지 못하게 만들까를 연구하던 조직이었다. (최순실이 쓴) 태블릿PC 같은 특종만 봐도 MBC에 오지도 않았겠지만, 왔더라도 보도를 막았을 거다. 해봐야 안 나올 것 같은데, 징계를 받을 것 같은데 누가 신나서 일하겠나. 지금 MBC는 폐허다. 유일하게 희망이 있다면 그것이다. 옛날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폐허 위에서) 새로 지어야 한다는 것. 다행히도 그동안 일을 못해서 그렇지, 아직 경험 많고 유능한 인재가 많이 남아 있다. 제작의 자율성이 충분히 보장되고 어떤 성역도 없이 보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하면, 더디더라도 곧 무서운 존재로 복귀할 거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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