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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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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혜 매입 요구 의혹 불거진 강빛마을

은퇴자 마을 구상하며 109채를 지었지만 찾는 이 없어

펜션·주택 71%를 곡성 출신이 소유, 애초 취지 무색
등록 2017-12-12 16:38 수정 2020-05-03 04:28
전남 곡성 죽곡면 태평리 강빛마을 전경. 똑같은 모습의 갈색 2층 건물 109동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정용일 기자

전남 곡성 죽곡면 태평리 강빛마을 전경. 똑같은 모습의 갈색 2층 건물 109동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정용일 기자

11월29일 이 둘러본 전남 곡성 죽곡면 태평리 강빛마을의 모습은 날씨 때문인지 을씨년스러웠다.

취재를 위해 예약한 숙소인 달빛촌 14호에 짐을 내리고 밖으로 나섰다. 별빛촌, 달빛촌, 햇빛촌 등 예쁜 이름이 붙은 마을을 거닐었다. 똑같은 모양의 갈색 이층집 109채가 죽 늘어선 모습이 이색적이었지만, 우리 일행을 제외하고 사람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날 총 50동의 펜션에 묵은 손님은 취재팀을 제외하고 한두 팀 정도였다. 펜션이 아닌 나머지 59개동에 입주자들이 산다고 들었지만 대부분 비어 있는지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텅 빈 강빛마을

한쪽에 마련된 운동시설을 이용하고 있던 60대 부부를 만났다. 그들은 “서울이나 광주에서 지내며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해 20여 가구가 산다”고 말했다. 이날 거리에서 마주친 마을 주민은 이 부부와 관리자로 보이는 한두 명 정도였다. 집 앞에 주차된 차들도 전부 합쳐 6~7대였다. 거주자 구역인 솔빛촌과 풀빛촌까지 가봤지만 불이 켜진 집은 몇 채 되지 않았다. 정원이 잘 가꿔진 집도 있었지만 ‘매매합니다’는 표지가 붙은 집들도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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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바퀴 돌아 마을 입구 왼쪽에 있는 무지개광장으로 갔다. 이곳에 참여정부 때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김화중 전 장관이 소유한 숙식형 독일어 교육시설이 10채 정도 있었다. 빨강, 노랑, 초록 등 색색으로 칠해진 2층 건물들은 학생들의 숙소와 독서실, 강의실 등으로 쓰였다. 20대 청년들이 한두 명씩 오갔다. 강의실에선 원어민 독일어 강사의 수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이곳에 독일 대학교 입학 허가를 받을 수 있는 B2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 31명이 산다고 했다. 앞뒤가 산으로 꽉 막힌 곳에서 먹고 자며 공부하는 이들은 강의실 앞에 작은 집을 지어놓고 ‘차우’라는 고양이를 기르고 있었다. 고양이는 사람을 잘 따랐다.

교육시설 옆에 있는 편의점은 텅 빈 채 문을 닫은 상태였다. 그 옆 건물의 커피숍에 들어가니 주인이 반갑게 맞았다. 그는 이곳에 정착한 지 두 달 정도 됐다고 했다. 그는 “단체가 아닌 개인이 비수기에 펜션을 방문하는 일은 드물다. 펜션이 최종 목적지냐”고 물었다. 카페 사장의 앞치마엔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쓰여 있었다. 카페를 제외하고 강빛마을의 편의시설은 대부분 영업을 중단하고 있었다. 구내식당은 인원이 적다는 이유로 예약이 힘들다고 했다.

김화중 전 장관과 그의 남편인 고현석 전 곡성군수가 만든 곡성 강빛마을촌은 참여정부 말기인 2007년 마을 조성 사업이 본격 시작됐다. 김 전 장관은 자신이 대표를 맡고 있는 회사 리버밸리를 설립해 강빛마을 토지 약 13만3천m²(4만여 평)를 인수했다. 토지 대금은 입주민 모집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면 내기로 했다. 2008년에는 총 21명으로 구성된 태평지구 전원마을 조성사업 추진위원회가 발족됐고, 이듬해 입주 예정자를 80% 확보했다. 2010년 곡성군이 지원하는 기반시설(도로, 상·하수도 등) 공사가 시작됐다. 2012년 주택을 건축해, 2013년 4월 은퇴자 주거지인 강빛마을과 숙박 업체인 강빛마을 펜션이 개장했다.

애초 김 전 장관 부부가 이 사업을 시작한 취지는 사람들이 도시로 빠져나가는 농촌 지역인 전남 곡성에 도시 출신 은퇴자가 살 수 있는 대규모 마을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대규모 은퇴자 마을이 형성되면 실버산업이 활성화되고, 그 덕에 지역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도 생겨난다. 성공했다면 모두가 ‘윈윈’하는 사업모델이었다. 하지만 도시 출신 입주민을 모으는 일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고현석 전 군수는 “30명이 넘어가면서부터는 도저히 회원이 모아지지 않았다. 딸들과 형제, 친·인척, 마지막에는 곡성 군민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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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말기 조성 시작

이 강빛마을 109채의 등기부등본을 전수조사한 결과 원주소지를 파악할 수 없는 19명을 제외하고 곡성 출신만 모두 78명에 이르렀다. 서울, 경기도 등 타지에서 온 이는 12명에 불과했다. 곡성 출신 가운데 곡성군 소속 공무원도 6명이나 됐다. 애초부터 도시 은퇴자를 모으겠다는 사업 취지가 어그러진 것이다. 더구나 일부 회원들은 강빛마을 개장 뒤 이곳에 살기 어렵다며 집을 팔아달라고 부탁했다. 김 전 장관 부부는 본인들 명의의 집 외에 현재 8채를 더 떠안고 있다.

펜션 사업도 원래 취지와는 다르게 진행됐다. 처음 개장 때는 1층에 은퇴자 가구가 거주하고 2층을 펜션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2층에 손님을 맞아 수익사업도 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부대끼며 은퇴생활의 활력을 찾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입주 포기자가 많아지면서 50동 전체를 펜션 시설로 바꿨다. 펜션 건물 소유자들은 펜션 수익금을 배당받지만 현재까지 사업은 적자 상태다.

우선 개인 관광객이 펜션을 이용하기에는 불편함이 컸다. 호텔식을 지향한다는 사업 취지에 따라 숙소에는 수저를 포함한 식기구 일체가 구비돼 있지 않았다. 식당도 차를 타고 10분 이상 나가야 찾을 수 있었다. 주로 회사 워크숍이나 대학교 MT 등 단체 관광객이 찾는다고 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듯 보였다.

2016년부터 코레일관광개발이 강빛마을의 펜션 운영을 맡았다. 위탁 형식으로 수익금은 소유주와 50%씩 나눠 갖는 구조다. 코레일관광개발이 펜션 운영을 시작한 것은 펜션 인근 ‘섬진강 기차마을 테마파크 사업’과 체류형 관광을 연계하기 위해서다. 기차마을 사업은 코레일관광개발이 2008년부터 곡성군에서 위탁받아 운영하던 사업으로 꽤 큰 수익금을 남기고 있다. 이를 펜션 사업과 연계해 하루 이상 곡성에 머물다 가는 관광상품을 만들어 곡성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목적이었다. 코레일관광개발이 운영을 떠안았는데도 2016년 펜션 수익은 2900만원 적자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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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일을 크게 저질렀다”

강빛마을 사업이 사실상 실패하며 김화중 전 장관 부부는 적잖은 곤경을 겪은 듯 보였다. 부부가 살던 서울 아파트를 포함해 개인 재산이 많이 투입됐지만, 이들이 꿈꾸던 은퇴자 마을과 독일어 교육시설 모두 유지가 어려운 형편으로 내몰렸다. 이곳 상황을 잘 아는 한 인사는 “김 전 장관 부부에겐 농촌 공동화를 극복하는 좋은 사업을 시도한다는 자부심이 있었을 것이다. 사업 여건이 무르익기 전에 너무 일찍 일을 크게 저질렀다”고 말했다.

곡성=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변지민 기자 dr@hani.co.kr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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