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2일 치러진 제48대 일본 중의원 선거의 또 하나의 특징은 ‘세습의원’들의 약진이었다. 일본에서 세습의원이란 부모·양부모·조부모 혹은 3촌 이내 친척이 국회의원이고 당선된 인물이 이들과 같은 선거구에서 입후보해 당선된 정치가를 일컫는다. 일본 은 선거 결과가 나온 직후인 23일 내놓은 분석 기사에서 이 기준을 놓고 볼 때 “이번 중의원 선거의 세습 당선자는 109명으로 전체 당선자의 23.4%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역시 자민당이 대승을 거둔 2014년 중의원 선거 때 세습의원 비율은 20.6%였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세습의원 대부분 자민당</font></font>정당별로 보면, 세습의원 가운데 절대다수인 82.5%(90명)가 집권 자민당에서 배출됐다.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 당선자가 284명이었으니 자민당 내 세습의원 비율은 31.7%에 달한다. 한발 더 나아가 2017년 8월 입각한 일본 각료(장관) 20명을 보면, 세습의원 비율이 전체의 65%(13명)나 됐다. 지금처럼 자민당 ‘1당 독주’가 이어지는 일본 정계에선 세습의원이 아니면 장관이 되기 어려운 구조인 셈이다.
일본에서 세습정치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부모로부터 지반(정치 기반), 간판(지명도), 가방(자금력) 등 이른바 ‘3반’(일본어에서 지반·간판·가방의 끝자는 모두 ‘반’으로 발음된다)을 물려받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우치야마 유 도쿄대학 교수는 지난 4월 과의 인터뷰에서 세습정치의 문제점을 “정치 이외의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 정계에서 활약할 문이 좁아져 (정치) 다양성이 훼손된다”는 점을 꼽으며, 일본에서 세습정치가 만연한 현실에 대해 “외국 학자들이 ‘일본은 (권력이 세습되는) 봉건국가인가’라고 놀라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일본에서 정치 세습화에 가장 명확하게 비판 의견을 쏟아내는 이는 독립언론인 아오키 오사무다. 그는 “현재 일본 국회의원의 4분의 1, 자민당의 경우 3분의 1, 그리고 장관의 경우 60%가 세습의원이다. 부모로부터 ‘3반’을 물려받은 이들은 선거에 강하며, 부모의 후광으로 출세도 빠르다. 이들은 서민 생활을 잘 모르고, 밑바닥에서 유권자와 마주하며 지역 기반을 만든 적이 없다”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일본에서 개헌 등 우파 이슈에 집착하는 이들이 대부분 세습의원이라는 것이다. 대표적 인물이 두말할 것도 없이 현재 일본을 이끄는 아베 신조 총리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쇼와의 요괴’라고 일컫는 미-일 안보조약 개정을 이뤄낸 기시 노부스케, 작은외할아버지는 전후 일본 최장수 총리를 하며 오키나와 반환을 이뤄낸 사토 에이사쿠다. 친가로도 아버지 신타로가 11선을 하며 자민당 간사장과 외무상 등으로 활약했다. 아베 총리는 외할아버지가 추진하려 했지만 실패한 개헌을 자신의 ‘필생의 과업’이라 주장하며 호시탐탐 개헌 기회를 노리고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세상 물정 모르는 매파</font></font>일본 헌법학의 석학인 고바야시 세쓰 게이오대학 명예교수는 2016년 3월 펴낸 대담집 에서 “헌법은 다른 분야와 달리 이권이 개입되지 않아 자민당의 헌법개정추진본부에는 지역 기반이 강해 (별 어려움 없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세습의원이 많아지는 경향이 있다. 그로 인해 추진본부에는 2세는 말할 것도 없고 3세, 4세 등 세습의원에다 공부도 안 된 주제에 헌법 개정에 집착하는 ‘개헌 마니아’만 남게 됐다”고 지적했다. 아오키도 “세습의원 2세, 3세는 정치자금을 모으는 데 고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돈 문제에 비교적 깨끗하며 말로만 용맹한 얘기를 늘어놓는 세상 물정 모르는 매파가 되어간다”고 말했다. 그 결과는? 지금 우리가 목도하듯 일본 정치의 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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