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이상하게도 ‘투사’보다는 ‘유약하지만 솔직한 사람’을 한 시대의 상징적 희생물로 만드는 일이 많다. 윤동주는 바로 그러한 역사의 희생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일제 말 암흑기, 우리 문학의 공백을 밤하늘의 별빛처럼 찬연히 채워주었다.”(마광수, ‘윤동주 생각’)
2008년 12월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가 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렇게 말했을 때, 윤동주라는 이름에 마광수를 대입해 읽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10년이 흐른 오늘, 마광수에 대한 호오를 떠나 그가 한 시대의 상징적 희생물이었다는 것을 부인하긴 어렵다. 이 글은 유약하지만 유독 솔직했던, 똑똑하지만 어리기만 했던 희생자에 대한 ‘제의’(祭儀)다.
속박과 굴레를 못 견딘 천생 반골등을 쓴 외설적 성애작가로만 기억되지만, 엄밀히 말해 그는 개인의 자유를 최고 가치로 믿은 자유주의자였다. 그에게 섹슈얼리티는 주류 질서의 거짓과 위선을 폭로하는 무기였다. 자유를 억압하는 권위적인 세상을 천박한 언어로 기만하고 조롱한 그는 속박과 굴레를 못 견딘 천생 반골이었다.
윤동주 시에 나타난 자학적·자기부정적 이미지를 부끄러움의 정서라는 관점에서 탁월하게 밝혀낸 논문(‘윤동주 연구: 그의 시에 나타난 상징적 표현을 중심으로’)으로 1983년 연세대 국문학과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을 때, 홍익대 국문과 교수 신분이던 젊은 국문학도의 앞날은 창창해 보였다. 이듬해 33살의 나이로 모교 연세대 교수에 임용되면서 그를 괴롭힌 오랜 가난도 눅일 수 있었다.
마광수는 박두진의 추천으로 등단해 1980년 을 펴낸 시인이었다. 1989년 에 장편소설 를 연재하고 에세이집 와 후속작인 시집 를 잇따라 펴내며 본격적으로 ‘야한’ 작품 활동에 나섰다. 그러나 도덕적 엄숙주의에 빠져 있던 당시 한국 사회에서 ‘사랑은 관능적 욕망 자체이며 인간의 행복은 성욕 충족에서 온다’는 발칙하고 자유주의적인 그의 성담론은 받아들여지기 힘들었다. 보수언론은 물론 여성계와 진보 진영에 이르기까지 좌우 양쪽에서 ‘변태 교수’라는 비난을 쏟아냈다. 그를 지지한 이는 거의 없었다. 또 다른 외로움의 시작이었다.
공화국의 번호판만 갈아끼운 유사 파시즘 시대에 ‘문학은 상상력의 모험’이자 ‘금지된 것에 대한 도전’이라고 믿을 만큼 나이브했기 때문일까. 마광수는 자신의 표현대로 ‘수구적 봉건윤리의 척결’을 멈추지 않았다. 1991년 제자와 대학교수의 파격적인 섹스와 동성애 등을 다룬 소설 가 나왔을 때, 그는 이 문제작이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을 것을 예감하지 못했다. 한국 사회의 이중적 성의식에 전복적인 질문을 던진 이 책은 결과적으로 윤리와 도덕으로 치장한 기득권 세력의 반격을 야기했다. 천재의 괴팍함은 용인되지 않았다.
믿었던 동료 교수들에게 받은 폭력1992년 10월29일, 너무나 쉽게 성을 사고파는 성매매의 천국에서 노골적으로 성을 이야기했다는 죄(음란문서 제조·반포 등의 혐의)로 그는 구속됐다. 그를 기소한 건 1만 권의 책을 읽었다는 문청 출신 검사였다. 음란물과 관련해 작가가 구속된 건 처음이었다. 1960년대 작가 염재만과 박승훈이 음란물 제조 혐의로 기소됐지만 모두 불구속인데다 각각 1심에서 벌금형에 그쳤다. 염씨는 2심과 3심에서 무죄를 받았고 박씨는 벌금형으로 교수직을 유지한 데 반해, 마광수는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근엄한 사법부는 그에게 적의를 거두지 않았다. 1995년 6월16일 대법원은 그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지었다. 같은 해 8월8일 연세대는 그를 면직했다.
한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감옥 속 마광수는 1990년대 한국 사회의 치욕이자 복이다. 그것이 치욕인 것은 그를 감옥에 가둘 만큼 한국 문단과 지식인 사회가 허약하고 비겁했다는 점 때문이고, 복인 것은 감옥 속 작가로 인해 당대 한국 사회가 여전히 야만 시대인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필화 사건 이후 그의 문학적 상상력과 표현의 자율성은 늘 자기검열에 시달렸다. 감옥에서 나온 그를 기다리는 건 시간강사라는 신분과 울화병이었다. 복직(1998년)과 재임용 탈락(2000년)을 거치며 우울증은 더 심해졌다. 연세대 국문과 정교수로 복직한 2005년 그는 책 4권을 연이어 펴내며 재기에 나섰다. 마광수는 당시 과의 인터뷰에서 우울증을 앓았냐는 질문에 “감옥 갔다 온 뒤에도 앓았고 2000년 재임용 탈락 파문 때도 앓았다. 우울증 있으면 책 내기도 귀찮아진다. 또 걸릴까봐 공포심도 생긴다. 사실 이번 소설은 하나도 안 야하다. (웃음) 내부 검열이 자꾸 생기는 게 정말 두렵다”고 했다.
솔직함을 전면에 내세운 도발적 글로 세상과 줄곧 불화했지만, 사실 그는 헌걸찬 반골보다 소심한 약골에 가까웠다. 체력장 점수가 형편없어 서울중학교에 낙방하고 대광중학교에 진학한 일, 재임용 과정에서 믿었던 후배 교수들에게 폭언과 욕설을 들으며 쫓겨날 때 대거리조차 못한 일, 사람 만나는 것을 싫어해 문인 단체나 어떤 패거리에도 적을 두지 않은 것, 인사하는 학생에게 90도로 허리 굽혀 답례했다는 일화를 보면, 그는 한국 사회의 전형적인 남근주의적 투사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강퍅한 시대를 살기에는 너무 순진했고 불의한 세상을 견디기에 그는 너무 문약했다. 그를 잘 아는 이들은 국문과에서 내쳐지며 동료와 후배 교수들에게 받은 폭력이 남은 생을 결국 파멸로 이끌었다고 말한다.
사실 마광수 작품의 문학성을 논할 깜냥이 내겐 없다. 다만 문학을 쾌락주의와 경향주의로 나눌 때 마광수 문학은 말 그대로의 쾌락주의를 극단까지 추구한 경우에 해당될 것이다. 논란이 된 그의 작품들을 찬찬히 다시 읽어보면 거기엔 를 보고 수음하던 몽정기 무렵의 소년이 있다. 극한의 고통이 극한의 쾌락이라고 본 사드와 바티에유 등의 하드고어보다 류의 하드코어만 즐비하다. 묘사 수위가 높다는 와 그 어느 대목도 지금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야동에 비해 결코 세지 않다.
물론 마광수 작품이 한낱 성애소설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반박하긴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세상엔 우아한 소설도 필요하고 추잡한 소설도 필요하다. 더럽고 불결한 것이 거세된 사회는 파시즘 세계다.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즐기되 훈육하지 않는 문학이 좋은 문학이라 믿은 그의 생각에 동의한다. 마광수라는 이름이 ‘음란’이란 괄호와 편견의 너울에서 벗어나 헨리 밀러나 장 주네처럼 나름의 합당한 평가를 얻을 날은 올까.
나잇값 거부하고 갑자기 죽기 택한다던여기서 물어야 한다. 누가 더 변태인가. 문학을 배설이라 보고 자신의 상상을 소설로 써 자위한 마광수가 변태인가. 위계를 이용해 제자를 성추행한 교수들이 변태인가. 마광수의 도움으로 연세대 교수가 된 뒤 그를 내쫓고 이에 항의하는 대학원생마저 쫓아낸 동료 교수가 변태인가. 과연 누가 더 변태적인가.
그럼에도 광주가 피로 물든 1980년 이라는 사변적이고 감상적인 시를 분만해냈다는 점은 마광수의 시가 퇴폐적 서정성에만 머물렀다는 한계를 보여준다. 그의 자유주의에는 정치적 변화 없이 성의 자유만 구가됐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거나 왜곡된 여성관을 가졌다는 점도 그를 온전히 지지할 수 없는 이유다. 그의 비극적 죽음 뒤 쏟아지는 추모의 말이 위선적이라는 지적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본디 장례는 망자가 아니라 산 자를 위한 것이다. 그를 나 몰라라 한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
나잇값을 거부하고 갑자기 죽기를 택하겠다던 전복적 로맨티시스트를 보내며 마광수의 시로 진혼가를 대신한다. “자살자를 비웃지 말라/ 그의 용기 없음을 비웃지 말라/ 그는 가장 솔직한 자/ 그는 가장 자비로운 자/ 스스로의 생명을 스스로 책임 맡은 자/ 가장 비겁하지 않은 자/ 가장 양심이 살아 있는 자.”(‘자살자를 위하여’, 1979) 학부 시절 그의 소설을 훔쳐 읽고 수업을 도강했으면서도 먼저 다가가 인사 한번 못 드린 수줍은 성정이 밉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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