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계획은 이렇게 하는 건 아니었다. “휴가특집을 해야 하지 않겠어?” 길윤형 편집장의 말에 “지난해 제주도에 갔으니 올해는 일본 오키나와 정도는 가야 한다”고 맞섰지만 금세 제압됐다. 아베 신조 총리 인터뷰까지 막 던져봤지만 일본을 좀 아는 기자, 길 편집장은 ‘일본은 없다’는 건지 ‘니들이 일본을 아냐는 건지’ 침묵했다. 아베 총리, 아니 길 편집장은 그런 분이 아니었다.
뜬금없이 ‘4대강 종주’를 거쳐 ‘7번국도 완주’로 튀었다. “여름 하면 7번국도, 7번국도 하면 종주”라는 우주적 연상이 1분단 아재 라인(성연철, 김현대, 하어영, 오승훈, 김완-중간에 낀 서보미 미안하다 -편집장)을 강타했다. 하여튼 아재들이란. 우리도 열심히 생각해봤지만 거기서 거기였단다.
호모 파베르가 개발한 모빌리티각종 무동력을 활용해 7번국도를 ‘쎄리’(!) 내려가버리자고 했다. 이름하여 무동력(킥보드, 달리기, 자전거, 인라인스케이트) 4종 완주. ‘박카스 국토 대장정’ 세대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 시절 통일선봉대에 로망이 있었나. 길 편집장은 뭐라도 좋으니 하라고 했다. 40년 전 대학 산악부 얘기를 아직도 하는 김현대 선임기자는 “그렇게 계속 달릴 순 없을 것”이라며 생전 들어보지도 본 적도 없는 ‘길에서 타는 스키’ 동영상 시청을 강권했다. 주 2회 간헐적 주민체육센터 수영으로 중급 기술을 섭렵한 하어영 기자는 물만 나오면 뛰어들겠다는 무리한 각오를 뱉었다. 제 몸무게가 10kg 불어난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김완 기자는 거꾸로 매달아도 아침저녁 10km는 거뜬히 뛸 수 있다고 했다. 그나마 오승훈 기자가 엘리트시즘을 벗고 독자적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며 몽땅 킥보드를 타는 B급적 접근만이 독자에게 감동을 줄 것이라고 제안했다. 긴 아무말 대잔치가 끝나고 올해 휴가특집은 그렇게 시작됐다.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인간은 달린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올림픽 5천m, 1만m 그리고 마라톤을 동시에 제패해본 인간이나 해봄직한 비범한 생각이다. 평범한 우리는 달리면 힘들어지고 뛰면 결코 걷는 것보다 멀리 갈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이 가축을 부리고, 도구를 개발한 거다. 응? 호모 파베르(Homo Faber), 도구를 쓰는 인간이 등장해 유구한 인류의 역사가 개척된 건 온전히 안 달리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무동력 도구들도 마찬가지다. 인류가 개발한 최고의 도구라는 찬사를 비롯해 거의 모든 면에서 각종 찬양을 받는 자전거를 보자. 페달을 힘껏 밟아 바퀴를 굴려야 나아간다. 간단해 보이지만 벅차다. 엉덩이부터 허벅지 무릎까지 온갖 근육을 짜릿해질 때까지 다 짜내야 겨우 ‘좀 탄다’는 소리를 듣는다. 김훈 같은 이는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속으로 흘러들어온다’지만, 문학은 문학일 뿐 체력은 길이 몸속으로 흘러 들어오는 걸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퍼스널 모빌리티 업계 1위 ‘이브이샵’‘오토 퍼스널 모빌리티’(Auto Personal Mobility·전동장치를 이용한 개인용 이동수단, 이하 퍼스널 모빌리티), 흔히 전동킥보드로 연상되는 물건은 정확히 그 지점을 공략한다. 안 힘들고, 간편하고, 쉽고, 빠르다. 무동력과 동력은 한 글자 차이가 아니라 초월적 진화다. 최고속도가 60~70km에 이르는 퍼스널 모빌리티도 있지만 시중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전동킥보드의 최고속도는 대략 30~40km다. 괴수급을 제외하면 자전거보다 평균속도가 빠르다. 인간의 엉덩이, 허벅지, 무릎이 해야 할 일은 220V 가정용 전기에서 3~4시간이면 완충이 가능한 ‘리튬배터리’가 대신한다.
7번국도 접고, 종주 접은 XYZ 기자는 양양을 10배 즐겨보자며 세 종류의 퍼스널 모빌리티를 대여했다. X기자는 등판력(언덕 오르는 힘)이 유별나다는 ‘아이맥스 S1’(120만원대)을, Y기자는 앉아서 탈 수 있고 깜찍한 외양이 지중해 바닷가 골목길을 누벼야 할 것 같은 ‘원마일 할로시티’(120만원대)를, 인생 가성비 말고 별거 없다고 믿는 변두리 출신 Z기자는 보급형 ‘이노킴 라이트’(80만원대)를 골랐다. 국내 최대 퍼스널 모빌리티 업체인 ‘이브이샵’(www.evshop.co.kr) 양해룡 대표는 XYZ기자가 고른 기종들을 보곤 “누구라도, 무난히 그리고 안전하게 탈 수 있는 제품들”이라며 대견해했다.
보기엔 어른을 위한 놀이기구 같지만, 퍼스널 모빌리티를 타는 건 생각만큼 간단한 일은 아니다. 종류에 따라 일주일 이상 안전한 장소에서 연습해야 주행이 가능한 것도 있다. 법규의 문제도 있다. 현행 도로교통법상 퍼스널 모빌리티는 차량으로 분류된다. 원동기 면허(만 16살 이상 응시 자격) 이상의 운전면허를 소지해야 하고 인도나 자전거도로, 공원 등에서 타면 안 된다. 도로에서만 탈 수 있으니 무면허운전이나 음주운전은 당연히 안 된다. 그런데 도로에서 타면 엄청 무섭다. 웬만한 도로의 규정 속도는 60km다. 이런 도로에서 30km 안팎의 퍼스널 모빌리티에 올라 맨몸으로 차와 경합하는 일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는 경험이다. 작은 요철에도 균형을 잃기 쉬운 기기의 특성상 시내 도로에선 준법 주행이 불가능한데 현실을 못 따라가는 법규의 개선이 시급하다.
생각만큼 무섭지 않아서 좋은다행히 XYZ 기자가 달린 양양 법수치길(418번 지방국도)은 통행 차량이 많지 않았고 워낙 한가해 오가는 차들마저 관대(!)해서 최적이었다. 오르막과 내리막도 적당해 달리는 맛과 균형을 잡는 스릴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 속도와 위치가 세상 보는 좌표를 만든다고 하면, 전동킥보드 위에 올라 보는 세상은 차로 너무 빨리 달릴 때나 자전거를 타고 너무 힘들게 달릴 때와 또 다른 높이와 시간을 제공했다. 생각만큼 무섭지 않다. 시속 25km 안팎은 무엇을 생각해도 다음에 대비할 수 있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참 적당한 속도였다. 전동킥보드와 함께한 양양 3일, 태초의 계획은 이런 게 아니었지만 이렇게 계속 타고만 싶었다. 쭈욱~.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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