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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없다 흐름을 읽어라

여론조사 갑론을박 “조사방법·표집틀·조사기관이 신뢰도 좌우”
등록 2017-04-11 18:16 수정 2020-05-03 04:28
전화면접으로 여론조사를 진행하는 모습. 유·무선 복합 RDD 기법이 주로 사용된다. 이때 유선과 무선의 비율은 어느 정도인지, 믿을 만한 회사인지 따져보는 것이 신뢰도를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물론 정답은 없다. 한겨레

전화면접으로 여론조사를 진행하는 모습. 유·무선 복합 RDD 기법이 주로 사용된다. 이때 유선과 무선의 비율은 어느 정도인지, 믿을 만한 회사인지 따져보는 것이 신뢰도를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물론 정답은 없다. 한겨레

제19대 대선이 한 달여 남았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쏟아진다.

“여론조사는 숫자에 집착하지 말고 흐름을 봐야 한다.” 대선 여론조사 결과에 관심 갖는 사람이라면 흔히 듣게 되는 이 바닥의 ‘금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어디까지가 ‘숫자’이고 어디까지가 ‘흐름’인지 경계선은 명확지 않다. 실제 여론조사의 ‘숫자’는 대한민국의 미래에 큰 영향을 끼쳐왔다. 2002년 노무현 민주당 후보는 여론조사 결과를 통해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에 성공했다.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의 지방선거 무공천 당론을 뒤집은 것도 여론조사 결과였다.

물론 여론조사의 신빙성을 둘러싼 회의론도 늘 존재해왔다. 대표적 예가 새누리당 몰락의 서막이던 지난해 4·13 총선이었다. 다수 여론조사기관은 새누리당의 압승을 예측했지만 무참하게 빗나갔다. 2010년 지방선거 때 한나라당이 압승할 것이란 예상이 틀렸을 때도 “여론조사는 흐름만 보자”는 말이 돌았다.

출렁이는 여의도 정가

하지만 정치판의 현실은 다르다. 유력한 여론조사기관이 언론사와 손잡고 결과를 공개하는 월요일, 주 중반, 주 후반마다 여의도 정가는 출렁인다. 모두가 “일희일비하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누군가의 눈에는 피눈물이 흐르고 누군가는 주체할 수 없는 파안대소로 힘겹다.

4월 초 이번 대선에 나서는 주요 당 후보가 확정된 뒤 다시 여론조사 결과가 도마 위에 올랐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당일인 4월3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양자 대결에서 문 후보를 앞선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면서다. 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디오피니언’에 의뢰해 만 19살 이상 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4월2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안 후보가 양자 대결에서 43.6%를 기록해 36.7%에 그친 문 후보를 오차범위(±3.1%) 밖으로 앞섰다. 문 후보 처지에서 보면, 지난해 11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전면화된 뒤 ‘정권 교체’라는 시대적 화두를 디딤돌 삼아 단 한 번도 흔들림 없이 지켜온 1위 자리였다.

이 결과가 공개된 직후 이례적으로 박광온 문재인 캠프 수석대변인이 직접 나섰다. 박 대변인은 “여론조사의 기본인 무선전화 조사가 없었다. 유선전화(40%)와 인터넷(모바일 활용 웹조사 60%)을 통해 단 하루 동안 진행된 조사다. 성별·연령별·지역별 조사 대상의 대표성도 취약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의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며 선관위에 조사를 의뢰했다. 은 이튿날인 4일 디오피니언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무선전화 조사가 없었다는 지적이 있지만) 여론조사 방식에는 유선전화, 무선전화(모바일), 설문, 면접, 패널 조사 등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무엇이 더 객관적인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하루 동안 이뤄진 게 문제라고 하는데 여론조사는 최대한 단기간에 하는 게 이상적이다”라고 반박했다. 누구 말이 더 진실에 가까운지 선관위의 입장을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다.

여론조사 결과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시작됐지만, 분명히 확인되는 흐름은 안 후보의 상승세가 매섭다는 것이다. YTN이 과 공동으로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에 의뢰해 4월4~5일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안 후보는 양자 대결(안철수 47%, 문재인 40.8%)뿐 아니라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를 중심으로 단일화를 한다는 가정에 기초한 4자 구도(안철수 41%, 문재인 39%, 유승민 4%, 심상정 3.1%)에서도 문 후보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마 대선이 끝날 때까지 여론조사의 신뢰성을 둘러싼 갑론을박은 계속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여론조사에 족집게란 없다. 그러나 현명하게 읽는 방법은 있다. 여론조사 분석을 기반으로 한 책 의 저자 박시영 윈지코리아컨설팅 부대표는 “언론이 공표하는 여론조사를 보고 조사방법, 표집틀(표본집단을 추출해내는 방식), 조사기관을 따져봐야 한다. (이는 일반 독자 처지에선)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이지만 여론조사의 신뢰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이다”라고 말했다.

박 부대표가 말하는 조사방법이란 여론조사기관이 표본집단에 의사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전화면접, ARS(자동응답전화), 웹조사 등의 방법이 있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여론조사의 경우 웹조사 기법을 사용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조사 안내, 참여 요청, 질문’ 등이 녹음으로 진행되는 ARS나 질문 항목을 웹으로 보내고 답을 받는 웹조사보다는 상담원이 직접 표본에게 구두로 설명하고 답을 듣는 전화면접을 우위에 둔다. 그러나 이 또한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규명된 것은 아니다.

그다음으로 따져봐야 하는 항목이 표집틀이다. 표집틀은 △집전화 RDD(Random Digit Dialing·무작위로 선정된 전화번호에 전화를 걸어 질문하는 여론조사 기법) △휴대전화 RDD △여론조사 안심번호 △유·무선 복합 RDD △집전화 RDD·휴대전화 패널 복합 등으로 나뉜다. 한동안 여론조사기관들은 집전화 RDD를 조사의 주요 표집틀로 활용해왔다. 이 방식의 장점은 전화번호 무작위 추출을 통해 읍·면·동 같은 세부 지역까지 샘플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회의원선거처럼 표본 수가 적은 곳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집전화가 없는 가구와 부재 중인 가구원의 조사가 불가능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기성세대가 과대표된다는 것이 치명적 약점이다.

손전화도 지역 샘플링 한계

휴대전화 RDD는 집전화 RDD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최근 각광받고 있다. 특히 대선 같은 전국 단위의 조사나 서울·경기 같은 대규모 광역단체 조사에서 대표적으로 사용된다. 물론 이 기법도 집전화 RDD와 달리 세부 지역 샘플링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지난해 4·13 총선 결과를 근사치에 가깝게 맞힌 것으로 알려진 기법은 여론조사 안심번호다. 공직선거법 규정에 따라 정당이 요청하면 이동통신 사업자는 일정 기간만 활용할 수 있는 유효기간이 있는 휴대전화 안심번호를 생성해 제공한다. 이 방법을 통해 휴대전화 RDD의 치명적 약점인 지역 단위 샘플링이 가능해진다.

여론조사 표집틀과 관련한 대표적 통설은 집전화는 보수 후보에게 유리하고, 휴대전화는 상대적으로 젊은 층의 사용률이 높아 진보 후보에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치 구도나 이슈에 따라 이 통설이 꼭 맞다고 할 순 없다고 입을 모은다. 박시영 부대표는 “20대 총선에서 휴대전화 조사 결과가 더 정확했다고 해서 19대 대선에서도 휴대전화 조사 신뢰도가 더 높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보수 후보가 판세에서 불리하거나 공격받는 선거에서는 집전화 조사 결과가 실제와 더 비슷한 결과를 낼 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에는 휴대전화 조사가 더 정확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따져볼 것은 조사기관이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83개이던 여론조사 업체는 20대 총선에서 186개로 103곳이나 늘어났다. 박 부대표는 “조사기관은 실제 조사 과정에서의 오류를 줄이고 품질을 높이는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니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한국조사협회 회원사인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서 선거 여론조사 기준을 위반한 이력이 있는지 따져보는 것도 해당 조사의 신뢰를 확인하는 한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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