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3월21일 드디어 검찰 조사를 받는다. 지난해 10월27일 ‘최순실 국정 농단’ 의혹을 수사할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꾸려진 날로부터 무려 146일 만이다. 대통령에서 파면된 지 11일째 되는 날이다. 박근혜는 그해 11월 대국민담화에서 “진상 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했으나 검찰은 물론이고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대면조사 요구와 청와대 압수수색 등에 계속 불응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는 “박근혜 전 대통령 변호인에게 (3월)21일 오전 9시30분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도록 통보했다”고 3월15일 밝혔다. 박 전 대통령 변호인 쪽도 “검찰이 요구한 일시에 출석해 성실하게 조사받을 것”이라고 답했다.
146일 만에 검찰 포토라인에
박 전 대통령은 피의자 신분이다. 지금까지 검찰과 특검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뇌물, 직권남용, 공무상 비밀누설 등 모두 13개 혐의(하단 박스 참조)를 받고 있다. 그는 그동안 대통령으로서 형사불소추 특권을 누려왔으나, 헌법재판소에서 파면 결정을 내려 민간인이 되면서 특권도 사라졌다. 검찰은 누가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조사할지 고심 중이다. 전직 대통령 조사는 네 번째지만,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받은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검찰청의 옛 중앙수사부 특별조사실에서 조사를 받았다. 특별조사실은 대기업 총수 등이 주로 조사받는 곳으로, 화장실과 샤워시설 등이 갖춰져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된 뒤 안양교도소에서 조사를 받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 조사는 당시 문영호 중수2과장이 17시간가량 맡아서 진행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우병우 중수1과장에게 10시간 동안 조사를 받은 뒤 귀가했다.
서울중앙지검에는 VIP 조사실이 따로 없다. 이 때문에 검찰 안팎에선 조사 장소로 최순실이 지난해 조사받았던 7층이나 10층 영상녹화조사실이 거론되고 있다. 영상녹화조사실은 옆방에서 유리를 통해 들여다볼 수 있고, 조사 상황을 폐회로텔레비전(CCTV)으로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 조사는 한웅재 형사8부장 또는 이원석 특수1부장이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조사에는 변호인이 입회할 수 있다.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은 유영하, 정장형, 채명성, 서성건, 손범규 변호사 등 총 7명으로 구성돼 있다.
혐의 내용이 최소 13가지에 이르기 때문에 조사는 다음날 새벽이 되어서야 끝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청와대에서 대면조사가 이뤄질 것에 대비해 6시간 조사 시간에 맞춰 50여 쪽에 달하는 질문지를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과정에서는 검찰과 변호인단 사이에 상당한 신경전이 예상된다. 박 전 대통령은 그동안 대국민담화,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변론서,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혐의를 전면 부인해왔다. 최순실, 안종범 전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이미 구속된 주요 피의자들의 공소장에 어느 정도 본인의 혐의가 적시돼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답변을 철저하게 준비해와서 방어 논리를 펼 수 있다.
반면 검찰도 박근혜 쪽의 허점을 파고드는 추가 증거 등을 준비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순실이나 안종범, 정호성 전 비서관 등과 대질할 가능성도 있지만, 당사자가 대질 조사를 거부할 경우 강제할 수는 없다.
■ 뇌물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
1. 삼성으로부터 433억원 뇌물 수수
■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강요
검찰 특별수사본부 수사
2. 대기업서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 774억원 강제 모금
3. 현대자동차에 최순실 지인과 11억원대 납품계약 압력
4. 롯데에 K스포츠재단 70억원 추가 출연 요구
5. KT에 최순실 지인 인사 청탁, 광고 수주 압력
6. 포스코에 펜싱팀 창단 강요
7. 그랜드코리아레저에 장애인 펜싱팀 창단 강요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
8.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실행 지시
9. 정유라 승마대회 관련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국장 사직 강요
10. 문화체육관광부 1급 공무원 3명 사표 제출 압력
11. KEB하나은행 최순실 특혜 인사 개입
■ 강요 미수
12. CJ그룹 이미경 부회장 퇴진 압력
■ 공무상 비밀누설
검찰 특별수사본부 수사
13. 정호성 전 비서관에게 최순실한테 청와대 문건 유출 지시
검찰은 박 전 대통령 조사를 앞두고 수사에 박차를 가하는 분위기다. 특히 뇌물수수 혐의를 정조준하는 모양새다. 박영수 특검팀은 준비기간을 포함해 총 90일로 제한된 수사 기간 탓에 뇌물수수 혐의 가운데 삼성 쪽만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멈춰야 했다. 다른 대기업들을 제대로 수사할 시간도, 여력도 없었다. 특검에서 관련 수사기록을 넘겨받은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3월16일 SK 쪽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했다.
SK는 미르·K스포츠 재단에 총 111억원의 출연금을 내는 대가로 최태원 회장의 사면 등을 박 전 대통령 쪽에 부정 청탁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김창근 전 SK그룹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구속된 최태원 회장을 대신해 2015년 7월 박 전 대통령을 독대했고, 그로부터 20여 일 뒤 최 회장이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이 되자 안종범 전 경제수석에게 “(최태원 회장을 사면해준) 하늘 같은 은혜를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지난 1기 검찰 특수본 수사 때 드러난 바 있다.
SK 쪽은 최태원 회장이 2년7개월이나 복역했고, 감사 문자메시지는 사면 이후에 보낸 것이므로 대가성 청탁은 없었다고 해명한다.
검찰은 앞서 3월13일에는 면세점 인허가를 담당하는 관세청 직원들을 불러 조사했다. 지난해 말 면세점 사업자가 추가 선정되는 과정에서 SK는 탈락했으나 롯데와 현대, 신세계는 구제됐다. 검찰 관계자는 “SK는 지난 조사 때와 불일치하는 부분이 있어 불렀고, 필요하면 롯데와 (이미경 부회장 사퇴 압박 의혹이 있는) CJ도 소환해서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뇌물 수사 2막이 열린 셈이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박영수 특검팀이 이재용 부회장을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하기 전까지는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에게 직권남용 혐의 등만 적용했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을 조사한 뒤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검토할 방침이다. 어떤 혐의가 적용될지는 영장 청구 때 결정된다.
검찰 관계자는 “(직권남용 또는 뇌물죄) 법률적용은 사실관계가 확정된 뒤에 한다”고 말했다. 논리적으로만 보면, 뇌물을 준 당사자인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된 만큼 뇌물을 받은 당사자인 박근혜 구속도 시간문제다. 직권남용이나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도 박근혜와 공모자로 지목된 최순실, 안종범 전 경제수석, 정호성 전 비서관 등 대부분이 구속돼 있다. 검찰은 안 전 경제수석의 업무수첩, 정 전 비서관과 박근혜의 휴대전화 통화 내용 녹음파일 등도 확보하고 있어, 핵심 증거자료로 쓰일 수 있다.
뇌물 혐의로 구속 기소되면 박근혜는 최소 10년 이상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뇌물수수는 13가지 혐의 가운데 가장 법정 형량이 높은 범죄행위다. 박 전 대통령 쪽이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도록 지시한 적 없다” “최순실과 재산상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경제공동체가 아니다” 등 강력 반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근혜는 1월1일 청와대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뇌물죄는 특검이) 완전히 엮은 것”이라고 말했다.
“뇌물죄는 헌재 아니라 법원이 판단”이와 관련해 헌재의 탄핵결정문을 두고 일부에선 아전인수 격 해석이 나온다. “헌재가 결정문에서 ‘대통령이 최씨에게 도움을 주는 과정에서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기업 경영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밝힌 대목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두 재단에 기금을 출연한 대기업들을 뇌물죄로 사법 처리하려는 특검과 달리 강요의 피해자로 본 것이기 때문이다.”(2017년 3월11일치 사설)
몇몇 경제지와 인터넷언론도 비슷한 논리를 폈다. 박근혜·최순실의 강요에 의한 ‘피해자’일 뿐이지 대가를 바라고 뇌물을 건넨 ‘뇌물 공여자’가 아니라는 대기업들의 주장이 헌재 결정문을 통해 받아들여졌다는 주장이다.
국회가 헌재에 제출한 탄핵소추 의결서에는 뇌물죄가 탄핵 사유로 포함돼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뇌물죄 관련 부분은 아예 판단하지 않았다. 대신 박근혜가 현대자동차그룹에 최순실의 지인이 운영하는 회사인 KD코퍼레이션이 납품할 수 있도록 도왔다거나, KT에 최순실 지인이 취업하도록 개입했다는 의혹 등을 “대통령으로서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피청구인(박근혜)의 요구를 받은 기업은 현실적으로 이에 따를 수밖에 없는 부담과 압박을 느꼈을 것으로 보이고 사실상 피청구인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대통령의 권한을 이용하여 기업의 사적 자치 영역에 간섭한 피청구인의 행위는 해당 기업의 재산권 및 기업 경영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다.” 헌재는 기업의 자유(헌법 제15조)와 재산권(헌법 제23조 1항) 침해라고 봤다.
헌재의 탄핵심판과 유무죄를 따지는 형사재판은 명백하게 다르다.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을 포함한 재판부는 내내 “재판 진행에서 형사소송법을 준용하긴 하지만 탄핵심판과 형사재판은 다르다”고 강조해왔다.
“뇌물죄는 헌재가 일부러 여백을 놔둔 거다. 뇌물죄만이 아니라 직권남용에 의한 권리행사 방해나 강요죄 등이 위법하냐 아니냐 하는 판단도 빠져 있다. 이같은 혐의는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나중에 형사재판에서 판단하면 될 일이다. 탄핵심판이라는 본질에 맞춰 헌법 위반 행위만 보면 충분하지, 헌법재판소가 형사재판에서처럼 뇌물죄냐 강요죄냐, 또는 유죄냐 무죄냐를 다투지는 않는다.”
헌법재판소 연구관 출신인 노희범 변호사는 “앞으로 형사재판에서 유무죄 인정이나 뇌물죄·강요죄 적용 등에서 다른 결론이 나올 수도 있으니, 재판관들이 탄핵 결정 자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도록 논란의 소지 자체를 없애버린 셈”이라고 해석했다.
최순실·이재용 재판에도 변동이처럼 앞으로 뇌물죄를 둘러싼 법정 공방이 첨예할 것으로 예상되자 최순실은 3월17일 “뇌물죄와 관련해 (증언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면 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순실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재판장 김세윤) 심리로 열린 장시호씨 등의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하지만 검찰은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등에 대한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의 혐의만 증인신문하고, 이날 삼성 등의 뇌물 혐의는 묻지 않았다. 최순실은 대기업을 압박해 금품을 받아낸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강요)로 구속 기소됐으나, 박영수 특검팀은 삼성그룹이 최순실에게 부정한 청탁을 했다는 혐의(뇌물)를 추가했다.
서울중앙지법은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건을 3월17일 재배당했다. 재판을 맡고 있는 형사합의33부 재판장인 이영훈 부장판사의 장인이 정수장학회 이사였고, 최순실이 독일에 갈 때 지인에게 그를 소개해줬다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재판은 형사합의27부(재판장 김진동)가 새로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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