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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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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 버스’ 타는 한국의 피커들

5천 평 물류센터에서 밤새 14km 걸어 제품 찾아 포장하면 일당 7만4470원…

불법파견·차명노동 판치는 소셜커머스 업체 ‘피킹 노동’ 현장에 뛰어들다
등록 2017-03-02 17:48 수정 2020-05-03 04:28
이렇게 취재했습니다
경기도 소도시에 있는 두 곳의 소셜커머스 업체 물류센터에서 모두 6차례에 걸쳐 이른바 ‘피킹 아르바이트’를 체험하고 관찰했다. A사에선 2월4일·13일·16일·19일 야간조(저녁 7시~새벽 3시)로, B사에선 1월30일·2월2일 오후조(오후 2시~밤 11시)로 일했다. 6차례 모두 연장 근무를 했기 때문에 실제 퇴근 시간은 1시간이 더 늦었다.
물류센터 내부에서 이뤄진 노동에 대한 묘사는 알바를 직접 하면서 목격한 사실과 알바 과정에서 알게 된 동료들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서술했다. 알바 과정에서 만난 2명의 20대 청년은 추가 취재를 위해 물류센터 밖에서 따로 만나 인터뷰했다.
노동하면서 목격한 일을 검증하기 위해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사이트에 오른 ‘하루알바’ 구인광고 300건을 분석했다. 공인노무사와 고용노동부 공무원에게 자문을 구했다. 기사에 등장하는 사람과 회사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2월19일 오후 6시30분께 경기도 ㄱ시에 있는 A사 물류센터 주차장에 도착했다.

2월19일 오후 6시30분께 경기도 ㄱ시에 있는 A사 물류센터 주차장에 도착했다.

오후 5시10분 “이곳이 버스 타는 곳 맞나요?”

매일 오후 5시10분. 지하철 5호선과 7호선이 만나는 서울 광진구 군자역 6번 출구, 버스 정류장도 없는 도로에 45인승 관광버스가 사람들을 기다린다. 비슷한 시각 수원역 4번 출구, 신갈역 3번 출구, 남한산성역 4번 출구에서도 버스 정류장 표시가 없는 도로에 관광버스가 서고, 사람들이 탄다.

이 4곳을 포함해 서울·인천·경기 등 모두 33곳에서 매일 오후 5시10~40분, 관광버스가 출발한다. 출발지는 달라도 행선지는 딱 2곳이다. 소셜커머스 업체 A사가 운영하는 경기도 ㄱ시와 ㄴ시의 물류센터다.

이 버스들은 대중교통으로 접근할 수 없는 외딴곳의 물류센터에 일용직 인력을 공급하는 ‘알바 버스’다. 아르바이트(알바) 구인·구직 사이트의 ‘물류센터 알바’ 구인광고를 보고 모인 이들을 실어나른다. 물류센터 알바 구인광고에는 언제 어디서 알바 버스를 타야 하는지 소개돼 있다.

2월13일 오후 5시께, 구인광고에 알바 버스 출발지로 나온 군자역 6번 출구 근처를 찾아갔다. 버스 행선지를 알리는 표지판도, 버스를 기다리는 이들을 위한 벤치도 없었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이곳이 (알바) 버스 타는 곳 맞느냐”고 묻자 “맞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오후 5시10분께, 45인승 관광버스 1대가 도로에 섰다. 주변에 드문드문 서 있던 10여 명이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A사의 물류센터로 향했다. 버스에 올라탄 이들 가운데 A사 직원은 한 명도 없었다. 이들 모두 하루 일하고 다음날 일당을 지급받는 일용직이었다. 알바 버스는 새벽 인력시장에 모인 일용직 노동자를 건설 현장으로 실어나르는 인력사무소의 ‘봉고차’와 같은 것이었다.

아르바이트 채용 사이트 알바몬의 ‘하루알바’ 카테고리에 등록된 알바 모집공고 300건(2월18~21일 등록 기준)을 보면, 통근버스를 타야만 알바를 할 수 있는 장거리 알바가 100여 건에 달했다. 알바 버스가 일용직 노동의 대표적 형태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의 사연을 나중에 만난 대학생 광균(가명)씨를 통해 들었다. 광균씨는 지난 1월부터 알바 버스를 탔다. 학기 중에는 주말 알바로 식당에서 ‘홀 서빙’을 했다는 그는 겨울방학을 맞아 평일 알바를 구하는 과정에서 알바 버스를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집 근처에서는 알바가 잘 구해지지 않아 버스를 탔는데, (버스를 타고) 경기도 멀리까지 가는 게 좀 무서웠다”고 말했다.

오후 5시10분~6시30분 소셜커머스 업체 A사 피커만 하루 최대 3천 명

군자역에서 출발한 알바 버스는 경기도 ㄱ시의 A사 물류센터로 가는 길에 천호역, 명일역, 고덕역 등 서울 강동구 일대 6곳에 멈춰 알바들을 태웠다. 이날 버스에 탄 야간조(저녁 7시~새벽 3시) 알바는 20여 명이었다.

이들은 대개 ‘피킹(picking) 알바’ 지원자였다. 배송 직전 단계에서 물건을 집품·포장하는 ‘피킹 노동’은 택배 기사들의 ‘배송 노동’과 함께 온라인 쇼핑을 떠받치는 노동의 두 축이다. ‘총알배송’ ‘로켓배송’ 등을 내걸고 주문 이후 24시간 안에 배송해주는 서비스를 운영 중인 소셜커머스(공동구매 형태로 가격을 낮춰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 업체가 운영하는 물류센터가 피킹 노동이 이뤄지는 곳이다.

일찍부터 온라인 쇼핑이 발달한 영국과 미국 등의 언론은 물류센터 내 피킹 노동자를 ‘피커’로 일컬으며, 이들의 노동·고용 형태를 관심 있게 보도해왔다. 2013년 영국 는 영국 버밍엄시 류젤리 지역의 아마존 물류창고(6만5천m2)에서 일하는 피커들의 노동환경을 다룬 바 있다. 이에 비해 한국 언론은 택배 기사들의 배송 노동에 주목하기 시작했을 뿐, 피킹 노동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통계청의 ‘2016년 연간 온라인 쇼핑 동향’을 보면, 지난해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64조9134억원으로 2014년(45조원), 2015년(53조원)에 이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온라인 쇼핑 규모가 급속도로 확대되면서 알바 버스를 타고 일하러 가는 한국의 피커들도 점점 늘고 있다.

A사는 주간조(33대)와 야간조(32대)를 더해 모두 65대의 알바 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45인승 버스가 만석을 이룬다면, 하루 최대 3천여 명 규모다. 실제로 A사는 택배 기사 3600여 명과 피커 3천여 명을 자사 직원으로 분류해 언론에 발표한다. 서울 외곽에 있는 A사 물류센터 2곳의 규모는 각각 축구장 14배 크기(9만9천m2)에 달한다.

물류센터 집품·포장 관련 구인광고에는 ‘쉬운 알바’ ‘단순작업’ ‘꿀알바’ 등의 표현이 따라붙는다. 반면 물류센터 피킹 알바 후기를 찾아보면 “꿀알바라는 말 믿고 가면 훅 간다”는 글이 심심찮게 발견된다. 실제로는 어떨까.

오후 6시30분~7시 근로계약한 업체와 급여 준 업체가 다르다
A사 물류센터 3층에서 피커들이 집품한 박스를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리고 있다. 박스는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2층, 1층, 지하 1층까지 내려가는데, 지하 1층에선 이 박스들을 화물차 컨테이너로 옮겨 싣는 상차조가 일한다.

A사 물류센터 3층에서 피커들이 집품한 박스를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리고 있다. 박스는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2층, 1층, 지하 1층까지 내려가는데, 지하 1층에선 이 박스들을 화물차 컨테이너로 옮겨 싣는 상차조가 일한다.

군자역에서 출발한 지 1시간여가 지난 오후 6시30분께, 알바 버스는 경기도 ㄱ시의 A사 물류센터에 도착했다. 어둑어둑한 가운데서도 물류센터는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만큼 거대했다. 각 층의 높이가 일반 건물에 견줄 수 없이 높았으므로, 4층 건물의 실제 크기는 6층 이상으로 보였다.

물류센터 출입구 옆에는 천막이 있었다. 천막에는 ‘○○○ A팀’ ‘○○○ B’팀이라고 쓴 A4 용지가 붙어 있었다. 천막 안에서는 ‘○○○’라 적힌 파란색 조끼를 입은 이가 목걸이 형태의 ID카드를 나눠줬다. 천막 바깥에선 ‘××개발’ 직원이 또 다른 조끼를 나눠주고 있었다. 똑같은 알바 버스에서 내렸지만, 알바마다 ID카드를 받는 회사가 달랐다. A사 물류센터에 피커 알바를 공급하는 하청업체가 1곳이 아니란 얘기였다.

알바 버스를 같이 타고 온 사람들이 “어느 업체로 왔냐”고 서로 확인하던 일이 그제야 납득됐다. 이날 버스를 함께 탄 3명의 알바가 휴대전화를 꺼내 문자를 비교해봤는데, 3명 모두 문자를 받은 전화번호와 업체가 달랐다.

지하철 개찰구처럼 생긴 물류센터 출입문에 ID카드를 대자 차단대가 열렸다. 곧바로 3층 휴게실로 올라갔다. ‘○○○ A팀’이라 적힌 휴게실 문을 열고 20여 명의 알바가 모이자, ‘○○○’라 적힌 파란색 조끼를 입은 이가 다시 등장했다. 기존에 알바 경험이 있는 이들은 그를 ‘현장 반장’이라고 불렀다.

현장 반장은 이날 처음 온 신입 2명을 호명해 근로계약서를 줬다. 필자가 경험한 다른 알바와 달리 A사 물류센터에서는 근로계약서 말고도 근무수칙 서약서·소지품 검사 동의서·도난 분실 서약서·개인정보 보호 서약서 등 4종의 서류를 작성해야 했다. 지난해 5월 물류센터 피커들의 동의를 받지 않고 소지품 검사를 한 것을 두고 인권침해, 갑질 논란이 제기된 뒤 소지품 검사 동의서가 생겼다.

작성해야 하는 서류가 많은 데다, 각 서류에 나온 회사 이름이 서로 달라 혼란스러웠다. 근로계약서에는 ◇◇◇, 근무수칙 서약서·소지품 검사 동의서·도난 분실 서약서 등에는 ○○○, 개인정보 보호 서약서에는 A사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필자가 구인광고에서 보고 출근 연락을 주고받은 업체 △△△는 서류상에서 찾을 수 없었다. 내 소속이 어딘지 헷갈렸다.

이 복잡한 과정을 정돈하면 이렇다. A사는 물류센터 운영과 관련한 특정 업무를 ○○○에 하청 맡겼다. ○○○는 그 가운데 일부 업무를 ◇◇◇에게 다시 하청을 준다. ◇◇◇는 그 일을 맡을 알바 모집을 여러 인력공급 업체에 넘기는데, 그 가운데 하나인 △△△의 구인광고를 보고 내가 지원하게 된 것이다.

파견법은 근로계약서상 ◇◇◇ 소속 노동자인 내가 ○○○나 A사의 관리자에게 작업 지시를 받는 것을 ‘불법파견’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이날 나를 포함한 20여 명의 알바에게 근로계약서 작성, 출퇴근부 작성 등 주의사항을 일러준 것은 ○○○ 소속의 현장 반장이었다. 그는 우리가 일하는 동안 입어야 할 초록색 조끼를 나눠줬다. 조끼에는 현장 반장 조끼에 적힌 ‘○○○’라는 글자가 똑같이 적혀 있었다. 나중에 급여를 입금한 예금주 역시 ○○○였다.


“차명 근로는 고용보험이나 산재 책임을 안 지겠다는 것으로 형사처벌도 가능하다. 유령 근로자를 고용한 것으로 해서 나중에 실업급여를 받거나 돈을 빼돌리는 목적으로 쓰일 수도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

실제로 지난 1월19일 고용노동부가 6개 대형 택배업체의 물류센터 운영 실태에 대한 근로감독에 나선 결과(물류·택배업종 근로감독 보도자료), 다수의 택배업체가 물류 상·하차 업무를 1차 하청업체에 위탁하고 있었으며 1차 하청업체는 2차 하청업체에 재위탁을 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불법파견(위장 도급)이 적발된 물류센터는 전체 63곳 가운데 8곳이었다.

더 이상한 일도 있었다. 알바들이 받은 ID카드에는 다른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남자인 나는 처음 보는 여자 이름이 적힌 ID카드를 받았다. 출근부에도 내 이름 대신 ID카드에 적힌 이름을 적으라고 ○○○ 소속의 현장 반장이 지시했다. ID카드는 물류센터 출입뿐 아니라 근무시 작업량을 할당받을 때도 사용된다. 결국 내가 아니라 ID카드에 적힌 여성이 일을 한 셈이 된다.

이 기묘한 일에 대해 정송도 공인노무사(정의당 이정미 의원실 노동정책 보좌관)가 나중에 설명했다. 우선 여러 업체가 등장한 것과 관련해 “○○○가 A사의 1차 하청업체, ◇◇◇는 ○○○가 또다시 하청을 준 2차 하청업체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가 직접 알바의 노동을 지시하고 관리해야 ‘정당한 도급’이 되는데, 실제로는 ○○○가 급여를 주면서 도급으로 위장했으니 불법파견의 소지가 있다는 분석도 덧붙였다.

가짜 이름은 왜 쓰는 걸까. “일용직이나 단기 알바라 해도 일주일 동안 일하면 주휴수당을 줘야 하고 1개월을 일하면 연차수당 지급, 월 60시간 이상 일하면 4대 보험에 가입해야 하는데, 차명을 써서 이러한 부담을 피해 가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정송도 공인노무사는 말했다. “차명으로 인력을 고용하는 것은 근로기준법을 무력화하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법규를 잘 모르는 알바들이 이리저리 시키는 대로 서명하고 따르는 동안 버젓이 불법이 이뤄지고 있었던 것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차명 근로는 고용보험이나 산재 책임을 안 지겠다는 것으로 형사처벌도 가능하다. 유령 근로자를 고용한 것으로 해서 나중에 실업급여를 받거나 돈을 빼돌리는 목적으로 쓰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저녁 7시~밤 11시 축구장 트랙 35바퀴 거리 걸으며 쌀 나르고 카트에 발 찧고
A사 물류센터 3층 동쪽 창고의 모습. 철제 선반마다 전국의 생산자가 보낸 상품이 팔레트(가로 세로 1.1m 크기의 플라스틱 받침대)에 올려져 있다. 지게차가 팔레트를 통째로 들어서 피커들이 있는 서쪽 창고로 공급한다.

A사 물류센터 3층 동쪽 창고의 모습. 철제 선반마다 전국의 생산자가 보낸 상품이 팔레트(가로 세로 1.1m 크기의 플라스틱 받침대)에 올려져 있다. 지게차가 팔레트를 통째로 들어서 피커들이 있는 서쪽 창고로 공급한다.

물류센터에서 피커가 하는 일은 주문자의 주문 내역이 적힌 송장을 보고 창고에 가서 제품을 가져오고(picking), 이를 포장(packing)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N13-23-2’라는 번호를 가진 송장을 처리할 때, N칸 13번 캐비닛, 23번째 라인 2번째 물건을 집어서 상자에 넣는 것이다.

앉아서 포장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많이 움직여야 했다. 경기도 ㄱ시의 A사 물류센터는 4층짜리 물류센터 한 층의 높이가 사람 키의 3~4배나 됐고, 1개 층의 너비는 1만6528m²(약 5천 평)로 축구장 1곳(6611m², 약 2천 평)보다 2배 이상 넓었다. 피커들은 이곳에 빼곡히 들어찬 철제 선반에서 고객 주문서에 적힌 상품을 찾아내야 했다.

필자가 만보기를 들고 일한 2월19일의 경우, 저녁 7시부터 새벽 4시까지 9시간 일하는 동안 14.1km를 걸은 것으로 계산됐다. 축구장을 둘러싼 400m 트랙을 35바퀴 돈 셈이다.

최근 소셜커머스 업체를 통해 생수나 휴지, 음료수 등을 대량 구매하는 이들이 늘면서 피커들이 무거운 물건을 나르는 경우도 많았다. ‘칫솔 1자루’ ‘유아용 손수건 3장’ 등의 주문을 처리할 땐 집품이 수월하지만, ‘생수 1묶음’ ‘쌀 20kg’이 적힌 주문서를 받으면 여성 피커들은 “또 쌀이다”라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2013년 영국 는 아마존 물류센터 피커들의 노동환경을 다루면서, “물류센터 근무자는 하루 11~24km를 걸을 수 있어 체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아마존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이들 회사가 피커들에게 안전화와 작업복을 지급하지만 “안전화가 너무 싸구려이거나 잘 안 맞아서 물집이 생긴다”는 피커들의 불평도 기사에 등장한다.

한국의 피커들에게는 작업복이나 안전화가 지급되지 않는다. 제품을 포장한 박스를 나르거나 박스를 가득 담은 카트를 끄는 과정에서 발을 찧거나 부딪히는 일이 많지만, 안전화를 지급하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 물류센터에서 지급받은 것은 조끼와 면장갑뿐이었다. 면장갑은 박스를 옮길 때 자주 미끄러졌다. 건설 현장에서 신는 안전화를 신고 오거나 미끄럼 방지에 손을 보호할 수 있는 나일론 장갑을 낀 베테랑 피커들이 눈에 띄었지만, 그것은 ‘자급자족’한 경우였다.

밤 11시~11시30분 빠듯하고 아까운 야식시간 30분

A사 물류센터 야간조는 오후 7시에 일을 시작해 밤 11시가 되면 30분 동안 야식시간을 갖는다. 2층 중앙에서 4층 식당까지 종종걸음으로 가면 4~5분이 걸린다. 시간을 더 절약하려면 물류센터 건물 바깥쪽으로 설치된 야외 계단을 이용해야 하는데, 지름길을 모르는 신입은 물류센터 안쪽 이동통로를 따라 돌아가야 한다.

시간 안배에 성공한 것은 2월13일 두 번째 알바 때였다. 한 선임이 같이 가자고 했기 때문이다. 2월4일 첫 번째 알바 때는 밥을 먹고 나니 휴식시간이 끝났는데 지름길로 간 13일에는 밥을 다 먹고도 10분이 남아 아래층 휴게실 자판기에서 캔 음료를 뽑아 마셨다. 식혜, 사이다, 캔커피 모두 300원이었다.

야식은 밥과 국, 반찬 1종류 등 3종으로 구성됐다. 시간이 빠듯한 피커들은 대체로 식판을 받으면 밥을 국에 말아 후루룩 먹었다. 야식만 먹기에는 아까운 시간이었다. 야식시간이 끝나는 11시30분부터 새벽 3~4시까지 쉬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담배를 피우거나 화장실에 들르고, 전화를 하는 등 개인 용무를 보는 일이 많았다.

밤 11시30분~새벽 3시 밤샘노동 야간조 택하는 청년 피커들
2월21일 오전 7시20분 군자역 6번 출구 앞에서 피커들을 기다리는 알바 버스. 경기도 ㄱ시에 있는 A사 물류센터의 피커들은 주간조(오전 9시~오후 6시)·야간조(오후 7~새벽 3시)로 맞교대한다.

2월21일 오전 7시20분 군자역 6번 출구 앞에서 피커들을 기다리는 알바 버스. 경기도 ㄱ시에 있는 A사 물류센터의 피커들은 주간조(오전 9시~오후 6시)·야간조(오후 7~새벽 3시)로 맞교대한다.

야간조 알바 버스를 타고 물류센터에서 밤샘노동을 하는 피커는 주로 청년들이었다. 지난 1월30일 경기도 ㄷ시의 B사 물류센터로 가는 알바 버스에 탄 30여 명 가운데 25명가량은 옷차림 등으로 미루어 볼 때 20대 청년들이었다.

취업준비생 종남(가명·29)씨는 ‘한 달 월급’보다 ‘하루 일급’이 필요해서 알바 버스에 탔다고 했다. 전문대 호텔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생명보험 회사에서 잠시 영업직으로 일했다는 그는 “2월13일까지 알바를 해서 친구들과 스키장에 다녀올 계획”이라고 말했다.

소셜커머스 업체 B사 2부(오후 2시~밤 11시, 연장 근로 1시간 포함)는 일급 8만9천원을 받는다. 이에 비해 1부(오전 9시~오후 6시)는 6만5천원 정도 받는다. 일급이 높은 B사의 2부 알바 버스를 타는 이들의 30%는 40대 이상 장년층이었다. 2부와 달리 아침 7시에 버스가 출발해 저녁에 돌아오는 1부는 30%가 40~50대 여성이었다. 알바 버스에는 동남아 또는 조선족으로 보이는 여성 외국인 노동자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새벽 3~4시 연장 근로 할 수밖에 없는데 대중교통은 끊기고

연장 근로는 피하기 힘들었다. 8시간 노동하고 정시 퇴근을 하면, 물류센터 앞에 알바 버스가 없었다. B사의 2부 근무가 끝나는 것은 밤 11시였는데, 알바 버스는 연장 근로 1시간을 하고 난 다음인 자정에야 출발했다. 연장 근로를 하지 않으면 퇴근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설 연휴 마지막 날, B사의 물류센터에서 일하던 40대 남자가 휴식시간을 이용해 딸에게 전화하는 것을 봤다. “아빠가 또 늦을 것 같다”고 말했다.

버스 시간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연장 근로를 하면, 집으로 돌아가는 대중교통이 끊겨 더욱 애를 먹기도 한다. B사 물류센터 2부 알바 버스를 탄 종남(가명)씨는 연장 근무 1시간을 마치고 자정에 물류센터를 출발해 새벽 1시에야 천호역에 도착했다. 시내버스 막차는 끊긴 뒤였고, 그는 귀가를 포기했다. 경기도 하남시에 사는 그는 24시간 패스트푸드점에서 시내버스 첫차가 다닐 때까지 기다렸다. “일급 8만~9만원 중 택시비로 1만~2만원을 쓰는 게 아깝다”고 그는 말했다.

A사의 야간조로 출근했던 나는 2월19일 오후 5시20분 알바 버스에 탑승해 20일 새벽 4시40분 버스에서 내렸다. 시급으로 계산되는 정규 근무시간 8시간을 위해, 집에서 버스 탑승지까지 이동하는 1시간, 통근버스에 머무는 1시간 등 출퇴근에만 4시간이 걸렸다.

물류센터에서 피킹 알바를 한 8시간 30분, 알바 버스와 전철에서 보낸 출퇴근 시간 2시간 50분 등을 더한 11시간 20분이 ‘체감 노동시간’이었지만, 20일 오후 4시 계좌에는 8시간 30분 노동에 해당하는 7만4470원이 입금됐다. 최저임금인 시급 6470원을 기준으로 야간수당 1시간 반, 연장수당 30분이 가산된 것이었다.

새벽 4~5시 ‘베테랑’ 피커도 하루살이

알바 버스 이용자가 돌아올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일 ‘출근 신청’ 문자를 보내는 것이다. 처음 알바를 한 신입 피커도, 8개월 동안 알바를 지속해온 베테랑 피커도 예외 없이 출근 신청 문자를 보내야 다음날 출근을 할 수 있다. 채용 여부, 근무지, 급여 지급 등 모든 과정은 휴대전화 문자를 통해 결정됐다. 구인광고에는 회사 정보 대신 담당자의 휴대전화 번호가 나와 있었다.

하루 일하고 다음날 임금을 받는 일용직이지만, 하루만 일하고 그만두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알바 버스를 타고 간 이들 가운데 신입은 10% 남짓이었고, 나머지는 짧으면 한 달 길게는 8개월 이상 ‘근속’한 이들도 있었다.

오후 5시~5시30분에 알바 버스를 타야 하는 A사 야간조가 출근 통보 문자를 받는 시각은 오후 2시께인데, 그전까지는 아무도 출근 여부를 모른다. 나는 알바 버스 탑승 1시간 전인 4시30분에 출근 통보 문자를 받기도 했다.

나오기로 한 사람이 갑자기 못 나오는 경우엔 ‘땜빵’을 한다. 2월16일 A사 알바 버스에 탄 30대 선임은 “출근 문자가 4시40분에 와서, 택시 타고 바로 버스 타는 데까지 쐈다”고 했다. 매일 주문·배송 물량이 달라지는 소설커머스 업계의 특성 탓인지 알바 버스에 타는 인원은 날마다 조금씩 달랐다.

지난 2월19일 소셜커머스 업체 A사의 물류센터에서 야간조로 피킹 알바를 한 40대 초반의 수호(가명)씨는 다음날 출근을 못할까봐 불안해하는 눈치였다. 몇 달째 같은 곳에서 일하고 있다는 그는 “아무래도 업체에서 나한테 ‘블랙’을 걸어놓은 것 같다”고 했다. 출근 신청을 해도 매일매일 출근하지 못하는 불안정한 상황을 그는 근태가 좋지 않은 이들을 배제하는 ‘블랙리스트’에 오른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주문 물량이 안정적이지 않은 소셜커머스 업계의 생리를 설명하면 그를 안심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다, 그냥 입을 다물었다.

이승진 교육연수생 boru2017@hanmail.net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사진 이승진 교육연수생 boru201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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