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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가지 숫자로 읽는 이재용 구속

삼성그룹 79년 역사상 첫 총수 구속…

특검, 박근혜 뇌물죄 수사에 탄력
등록 2017-02-21 15:31 수정 2020-05-03 04:28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월16일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법원으로 가기 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도착해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월16일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법원으로 가기 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도착해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이 2월17일 구속됐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433억원의 뇌물을 제공한 혐의(뇌물공여) 등을 받고 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1월19일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3주간 보강 수사를 벌이며 칼을 벼렸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한정석 영장전담판사는 “새롭게 구성된 범죄 혐의 사실과 추가로 수집된 증거 자료 등을 종합할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17일 새벽 5시36분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대한승마협회 회장으로 최순실과 정유라 지원을 책임진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담당 사장의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박 사장의 지위와 권한 범위, 실질적 역할 등에 비춰볼 때 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 부회장을 ‘몸통’, 박 사장을 ‘꼬리’로 판단한 것이다.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에 대기 중이던 이 부회장은 바로 독방에 수감됐다.

이재용 부회장 구속과 관련한 7가지 숫자를 중심으로 그 의미를 톺아본다.

① 79년 만의 첫 구속

삼성그룹 총수의 구속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건희 회장이 2014년 5월10일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3년 가까이 이재용 부회장은 사실상 총수나 다름없는 역할을 맡아왔다.

1938년 삼성상회가 창립된 뒤 삼성그룹 79년 역사에서 총수 구속은 처음이다. 1966년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이 수사 대상에 올랐으나, 아버지 대신 둘째아들 이창희 한국비료 상무가 구속돼 6개월 수감생활을 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이병철 회장의 셋째아들 이건희 회장 역시 여러 차례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구속은 피해갔다. 이건희 회장은 1995년 11월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에서 250억원의 뇌물을 준 혐의로 불구속기소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이건희 회장은 2008년 삼성 비자금 수사 사건 때도 배임·조세 포탈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됐으나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받아 감옥행은 면했다. 이 회장은 두 사건 모두 대통령 특별사면을 받았다.

이재용 부회장도 2008년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 등으로 경영권 편법 승계 의혹을 받아 조준웅 특별검사팀에 소환됐지만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② 433억원의 뇌물

뇌물을 준 이재용 부회장의 혐의를 법원이 구속 사유로 상당 부분 인정함으로써, 뇌물을 받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망도 좁혀졌다. 삼성은 최순실씨에게 금전을 지원했지만 실제로는 최씨와 ‘공모’ 관계에 있는 박 대통령에게 뇌물을 건넸던 것이라는 사실이 더 명확해지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뇌물 혐의는 탄핵소추 사유 가운데 죄질이 가장 무겁다.

박근혜 대통령 법률대리인단으로 새로 합류한 이동흡 변호사(전 헌법재판관)는 2월16일 공개변론에서 “삼성 관련 소추 사유가 뇌물수수에 해당한다고 입증되지 않는 이상 파면 사유가 되기 어렵다. 이재용 부회장 구속영장이 기각됐다는 사정 등을 보면 뇌물죄 성립은 안 된다”고 말했다. 이재용 부회장 구속으로 이 변론은 박 대통령에게 ‘부메랑’이 됐다.

③ 두 번의 구속영장 청구

두 번의 시도 끝에 성공했다. 특검팀은 1월19일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 이후 삼성이 최순실씨 쪽과 미르·K스포츠재단에 낸 돈의 대가성 규명에 집중했다. 그 과정에서 특검은 1월 말 안종범 전 대통령실 정책조정수석의 수첩 39권을 추가로 확보했다. 안 전 수석의 보좌관은 청와대에 보관돼 확보가 불가능했던 수첩을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은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 혐의 입증에 초석을 다지는 동시에 미르·K스포츠재단에 자금을 출연한 기업들을 상대로 수사를 진행할 기틀을 마련한 셈이다.

특검이 새로 입수한 안 전 수석의 수첩에는 삼성이 경영권 승계라는 ‘대가’를 바라고 청와대와 접촉했으며 수백억원대의 돈을 최씨와 두 재단에 낸 것을 뒷받침해주는 내용이 다수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특검은 논리를 바꿨다. 1차 구속영장 청구 때는 이 부회장의 뇌물 공여 이유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청와대의 지원을 받기 위한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3주간의 추가 수사 끝에 최씨와 두 재단에 430여억원의 자금 지원을 한 이유가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전반을 위한 것이었다는 논리를 새로 세웠다.

혐의도 추가됐다. 1차 때에는 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횡령,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등 총 세 가지 혐의가 적용됐다. 2차 때에는 재산국외도피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추가 적용했다.

7시간30분이라는 이례적 러닝타임을 기록한 영장실질심사에는 윤석열 검사와 한동훈 검사가 투입됐다. 윤 검사는 검찰 내에서도 손꼽히는 특별수사의 대가다. 한 검사는 기업 비리 수사 전문가다. 새로운 증거와 논리, 추가 혐의 포착, 최고 검사 투입이라는 전력투구 끝에 이 부회장의 두 번째 구속영장 청구는 특검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④ 2월28일 특검 수사 종료?

특검은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발부로 수사의 승기를 잡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 혐의 입증에 초석을 다지는 동시에 미르·K스포츠재단에 자금을 출연한 기업들을 상대로 수사를 진행할 기틀을 마련한 셈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특검의 수사 기간은 2월28일까지다. 기간을 30일 연장할 수 있지만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특검 수사 기간 연장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특검이 이 부회장의 구속으로 수사 기간 연장 여론에 불을 지핀 터라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앞서 특검은 수사 기간을 고려하면 다른 대기업 수사는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수사 기간이 연장되면 이러한 입장이 번복될 가능성이 높다.

삼성 이후 수사선상에 오를 가능성이 높은 기업은 SK와 CJ, 롯데다. SK와 CJ는 총수의 사면을 대가로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롯데는 재단 출연 대가로 서울 시내 면세점 재승인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있다.

특검은 삼성이 낸 재단 출연금을 ‘뇌물’로 규정했다. 이 때문에 재단 출연에 대가성이 있었던 것으로 의심되는 다른 대기업으로 수사가 이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황 권한대행의 선택이 주목된다.

⑤ 3세 승계 ‘빨간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월17일 구속됐다. 삼성그룹 창립 이후 총수의 구속은 처음이다. 사진은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모습.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월17일 구속됐다. 삼성그룹 창립 이후 총수의 구속은 처음이다. 사진은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모습. 연합뉴스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삼성 경영권 승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특검팀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뿐만 아니라 공정거래위원회가 순환출자 문제 해소를 위해 삼성SDI가 매각할 삼성물산의 주식 수를 줄여주는 등 이 부회장으로 승계하는 과정 전반에 박근혜 정부 차원의 여러 특혜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1995년 이건희 회장이 당시 27살이던 이재용 부회장을 포함한 자녀들에게 60억원을 증여하면서부터 삼성의 경영권 승계는 여러 차례 지탄의 대상이 됐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와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인수 등으로 이 부회장에게는 ‘편법 상속’이라는 주홍글씨가 깊이 새겨졌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으로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생명→계열사로 이어지는 그룹 지배구조의 주요 연결고리를 확보했지만, 뇌물로 경영권을 승계하려 했다는 멍에를 짊어지게 됐다. 득보다 실이 더 컸다.

최악의 경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무효판결이 나오고 주주들이 이 부회장 등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소송이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이재용 부회장이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에게 뇌물을 주고 얻은 3조원 안팎의 이익이 범죄수익에 해당하므로 전액 몰수 또는 추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⑥ 6.56m² 독방

이재용 부회장은 서울구치소 독방에 갇힌다. 독방은 6.56m² (약 1.9평) 크기로 텔레비전과 접이식 매트리스가 있다. 서울구치소에서 ‘가장 좋은 방’이다. 전국 교도소의 평균 독방 면적보다 2배 넓기 때문이다. 간이벽으로 나눠진 안쪽에는 혼자 쓰는 화장실도 갖췄다. 서울구치소 내 다른 방들은 보통 6명 정도가 함께 생활하는 12.01m²(약 3.6평) 크기의 혼거실이다.

현재 서울구치소에는 최순실, 김기춘 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수감 중이다. 이 부회장도 다른 미결수들처럼 수의 차림으로 생활하지만, 재판이나 특검에 나갈 때는 사복을 착용할 수 있다.

⑦ 5월 1심 선고?

“앞으로 재판에서 진실이 밝혀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삼성그룹이 2월17일 오전 내놓은 짤막한 자료다. 특검은 수사 기간이 연장되지 않는 것을 전제로, 최대한 수사를 보강해 열흘 안에 이 부회장을 뇌물공여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할 방침이다.

구속 피의자는 최장 20일 안에 기소된다. 지난해 11월 제정된 ‘특검법’은 공소제기 후 석 달 안에 1심 선고를 내리도록 했다. 2월 말에 기소된다면, 5월 말 또는 6월 초 법원에서 1심 선고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2심과 3심 선고도 이전 판결 선고일로부터 각각 두 달 내로 이뤄져야 한다. 대법원 최종 판결까지 일곱 달이 걸리는 셈이다.

삼성 쪽에서 구속영장 집행이 적법한지 다시 따져봐달라고 법원에 구속적부심사를 신청할 가능성도 있다. 삼성은 “대통령에게 대가를 바라고 뇌물을 준 적이 없고 순환 출자 과정에서 어떤 특혜도 받은 적이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재판에서 삼성과 특검 사이에 유·무죄 공방이 치열하게 펼쳐질 전망이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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