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Because_Its_2017

한국 최초 여성주의 정당 창당 꿈꾸는 20대 페미니스트 그룹 ‘페미당당’ 인터뷰
등록 2017-02-01 20:01 수정 2020-05-03 04:28
2016년 10월 ‘페미당당’은 낙태 규제를 강화하는 보건복지부 의료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진행했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이 비싸고 위험한 불법 낙태를 해야 하는 상황이 여성의 생명권과 자기결정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페미당당 제공

2016년 10월 ‘페미당당’은 낙태 규제를 강화하는 보건복지부 의료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진행했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이 비싸고 위험한 불법 낙태를 해야 하는 상황이 여성의 생명권과 자기결정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페미당당 제공

“2020 총선 1석 확보를 향해 나아가는/ 페미당당// 진보-보수 가릴 것 없는 기존 정당의 젠더 이슈 삽질!/ 더 이상 봐줄 수 없는 페미니스트 여러분/ 페미당당에 가입하십시오/ #BecauseIts2020”

2016년 5월 페이스북 그룹 ‘페미당당’이 등장했다. 4월 국회의원선거가 끝난 직후였다. 2015년부터 온라인은 ‘몰카’ ‘리벤지 포르노’ 등 상대의 동의 없이 신체를 촬영·배포하는 디지털 성범죄와 여성혐오 이슈로 들끓었지만, 해당 의제를 주요하게 다룬 정당은 없었다. 진보정당 당원들의 실망감도 상당했다.

“저와 친구들은 진보 군소정당에 속해 있었는데요. 그 누구도 자신이 당비를 내는 정당에 고민 없이 투표하겠다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여성주의자로서 마음 놓고 투표할 수 있는 정당은 없다’는 것이 저와 친구들이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페미니스트로서 우리는 ‘차악’을 뽑기 위해 우울한 마음으로 투표소에 들어설 수밖에 없었습니다.”(심미섭·25, 페미당당 멤버)

시작은 어느 봄날 밤 캠퍼스 잔디밭에서 친구들과 누워 장난스럽게 나눈 수다에서 비롯했다. “(찍을 정당이) 없으면 우리가 만들지, 뭐. 이름은 ‘페미당당’, 페미가 당당해야 나라가 산다!”

“페미가 당당해야 나라가 산다!”

당명이 나왔으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도 뚝딱 만들었다. 마지막 해시태그 ‘#BecauseIts2020’은 캐나다 총리 쥐스탱 트뤼도의 말을 오마주했다. 트뤼도 총리는 2015년 11월 캐나다 역사상 첫 남녀 동수(각 15명) 내각을 구성했으며, 새 내각 출범 기자회견에서 ‘성비를 중시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지금은 2015년이잖아요.”(Because it’s 2015.)

트뤼도 총리의 말처럼 성평등 정치는 시대적, 세계적 흐름이다. 국제의원연맹(IPU) 통계에 따르면 세계 여성 국회의원의 비율은 1995년 평균 11.3%에서 2015년 22.1%로 두 배가량 증가했다. 같은 기간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30%를 넘는 국가는 5개국에서 42개국으로 늘었다. 하지만 한국은 ‘역대 최대 여성 의원 당선’을 달성한 2016년 총선 결과에도 불구하고, 세계 평균 22.1%는 물론 아시아 평균 19%에도 못 미치는 17%를 기록했다. 회원국 193개국 가운데 112위다.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40%를 넘는 스웨덴·핀란드에서는 아예 여성주의를 기치로 내건 정당이 출범한 가운데(관련 기사 '차별의 정치여 안녕' 참조), 한국에서는 아직 성비 균형을 맞추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다. 인터넷으로 전세계 정치·페미니즘 콘텐츠를 접하는 대한민국 20대 페미니스트 입장에서는, SNS에서라도 ‘Because it’s 2020!’이라고 외쳐보고 싶었던 것.

“그렇게 처음에는 SNS에서 ‘하하호호’ 놀고 있는데, 5월17일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났어요. ‘여성 이슈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였는데 가시적 활동을 아무것도 안하고 넘어가면 되겠느냐’는 제안이 나와서 오프라인 기획회의를 처음 하게 됐어요.”(정소영·22, 페미당당 멤버)

까만 리본이 붙은 영정 크기의 거울을 들고 서울 강남역을 행진하는 ‘거울 행동’을 기획했다. SNS에서 시위 방법·시간·장소를 알리자 100여 명이 참여했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가을에는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검은 시위’를 진행했다. 보건복지부가 인공임신중절(낙태) 수술 처벌 강화를 입법 예고한 데 대한 합의였다.

한국 역사 최초의 여성주의 정당 탄생?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뒤에는 대통령 퇴진 촉구 촛불시위에 참여했다. 현장에서 혐오발언, 폭언, 불쾌한 신체접촉을 막는 ‘페미니스트 존-우리는 여기서 세상을 바꾼다’를 꾸려 성평등 시위 문화를 만들려 했다. 외부에서 ‘터지는’ 일에 대응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쏜살같이 흘렀다. “난세에 페미 난다고, 한국 여성주의의 부흥과 정치사의 격동기는 1년도 안 되는 시간에 평범한 학생을 페미 전사로 거듭나게 만들었습니다.”(심미섭)

물밑에서는 창당 방안도 공부했다. ‘시니어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주의당 창당에 반색했다. “정당을 만든다는 얘기를 무척 반기는 시니어 페미니스트들이 있었어요. 그분들 말이, 이전까지는 기성 정당에 여성운동 경력이 있는 인물을 한두 명 보내는 식으로 (정치세력화를) 해왔는데, 막상 그렇게 국회의원이 되어도 당내에 받쳐주는 세력이 없고, 당사자도 기성 정치에 맞춰야 해서 페미니스트 아이덴티티가 사라지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하시더라고요.”(신화용·24, 페미당당 멤버)

기성 정당에서 “우리 당은 여성주의 정당”이라고 ‘선언’하는 경우는 있지만, 아예 여성주의를 기치로 내건 정당을 만든다는 도전은 대한민국 정당 역사상 시도된 바 없었다.

문제는 실무진 10여 명이 프로젝트별로 뭉치고 흩어지는 조직 상황에서 향후 실제 창당까지 자원과 동력을 모으고 잇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 “창당 플랜을 공유하는 연대 회의를 주최했는데, 그 자리에서 (다른 시니어 페미니스트들에게) 엄청 깨졌죠. ‘이런 정당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유권자 입장에서 준비했던 건데, 정당정치로 공동체를 이끌어가려면 더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김민아·25, 페미당당 멤버)

일단 “지금 할 수 있는 일부터” 해나가기로 했다. 여성주의 스터디 및 액션 프로젝트를 꾸준히 기획하고 관심 있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공유할 계획이다.

대신 소리 지르는 사람들

‘페미당당’ 멤버들에게 여성주의 정당의 의미와 향후 계획을 물었다. 각자 답했지만 의미는 이어졌다. “정당으로서 우리가 가지는 가치는 ‘대변’이라고 생각해요. 지금껏 목소리 내지 못한 의제에 대해 소리 지를 수 있는 사람들인 거죠.”(정소영) “시니어 페미니스트들이 호주제를 폐지했다면, 우리는 낙태죄를 폐지했으면 한다고 얘기해요. 낙태권은 대한민국 여성의 생존 문제이기도 하고, 임신-출산-육아에서 여성이 도구가 아니라 주체로 설 수 있는 인식 전환과도 연결돼 있다고 봐요. 여성의 삶과 밀착돼 있지만 기성 정당에서 이야기하지 않는 것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정치적 움직임을 보여주는 거죠.”(신화용)

“단순히 여성의 문제로만 이야기하기 힘든 여성들의 계급 등 ‘차이’도 잘 포착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어요. 이런 부분을 간과하면 정당이 되어도 부족할 것 같아서요. 우리끼리 ‘페미당당은 언제든 해체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얘기하곤 해요. 기성 정당에서 ‘조직보위론’을 명분으로 누군가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고 젠더 이슈를 소홀히 한다는 얘길 많이 들었거든요. 페미당당은 여성주의 정당인데, 그런 일이 생기면 존재 이유가 사라지는 것 같아요.”(김민아)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