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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보다 산업 재편

불황기 일본 전철 밟을 우려에도 불구하고 조선산업 미래 전략에 대한 정부 차원 밑그림은 부재
등록 2016-05-31 16:28 수정 2020-05-02 04:28
세계 1위였던 한국 조선산업이 위기다. 조선산업은 어쩌다 벼랑 끝에 내몰린 걸까.
5월18일과 24~25일 사흘간 경남 거제도를 찾아 ‘위기의 조선업’ 현장을 살펴봤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본사가 위치한 거제 지역경제의 70% 이상은 조선산업에 기대고 있다. 조선소에서 일하는 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와 전·현직 협력업체 대표, 회사 관계자 등을 스무 명 넘게 만나 벼랑 끝 목소리를 직접 들었다. 5월 조선소에서 일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두 사람의 유족도 만났다. 에 ‘연장傳’을 연재하는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은 5월24~26일 2박3일간 주요 조선소가 자리잡은 6개 지역을 돌며 노동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정부와 금융권, 기업, 노동자 등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조선업 구조조정의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도 짚어본다. _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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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산업은 사양산업인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조선업 구조조정을 둘러싼 논란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조선업 전문가인 박종식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은 단순한 질문에서부터 출발하자고 제안한다. “사양산업론은 한국 조선업이 세계 최고였던 10여 년 전부터 나왔던 강력한 담론이다. 타당하다면 철수하면 된다. 하지만 아니라면?”

해고자 대책 시급

조선업 전문가들은 한국이 일본의 전철을 밟을 것을 우려한다. 1980년대 불황기에 일본은 정부 주도로 조선산업을 구조조정했고 전문기술 인력을 많이 잃었다. 이는 한국에 조선업 세계 1위를 빼앗기는 결과로 이어졌다. 한국 역시 2010년 이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조선업체들한테 선박건조량을 추월당했다.

“선박은 대체 불가능한 운송 수단이다. 그런데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으로 통폐합 및 인력 감축이 이뤄지면, 가장 큰 수혜는 중국 조선업이 가져가게 된다. 현재 세계 조선업 공급과잉의 원인은 한국이 아닌 중국 탓이다. 일본의 실패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 한국 조선업에 필요한 건 구조조정이 아닌 산업 재편이다.”(박무현 하나금융투자 연구위원)

이 대목에서 조선업 ‘빅3’ 업체의 노사 양쪽은 같은 목소리를 낸다. 부채비율이 높은 대우조선해양의 위기를 빌미로 정부와 금융권이 조선산업 전반을 주무르려 한다고 우려한다. 이들은 “이르면 2017년, 적어도 2018년에는 선박 발주가 다시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한다. 버티고 보자는 전략이다.

반면 정부와 금융권은 2009년부터 쌓여온 조선업종의 부실이 중소형 업체에서 빅3로까지 확산되고 있어 더 이상 구조조정 시기를 놓칠 수 없다는 태도다. 국민 혈세가 들어간 국책은행 자금 수조원을 밑 빠진 독(대우조선해양과 STX조선해양 등)에 쏟아넣었다는 눈총도 따갑다.

문제는 이처럼 극명하게 나뉘는 조선산업의 발전 전략에 대한 정부 차원의 밑그림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10년 뒤 한국 조선산업의 미래가 어떠해야 하는지가 빠져 있다는 말이다. 박종식 연구원은 “산업적 측면에서 친환경 선박 등 고부가가치 선박 생산 위주로 방향을 바꾸는 동시에, 기형적으로 사내하청이 늘어난 인력 구조도 ‘고숙련’ 정규직 인력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쏟아져나올 해고자들에 대한 대책도 시급하다. 경기도 평택시(쌍용차), 경남 통영시(조선업)의 경우처럼 거제를 ‘특별고용지원지역’으로 지정하거나 조선업종 자체를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고용유지 지원금 등으로 노사를 지원하고 전직 훈련을 제대로 시키자는 것이다. 심상완 창원대 교수는 “통영시처럼 고용 사정이 파탄나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고용보험 미가입자인 ‘물량팀’ 하청노동자 등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조조정 원칙 없이 헤매는 정치권

이런 대책 마련 과정에서 조선업체 경영진과 채권단, 노동자 등의 이해관계가 크게 엇갈리는데도 컨트롤타워가 보이지 않는 점도 큰 문제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5월25일 열린 ‘위기의 한국 경제와 노동: 구조조정과 대응 전략’ 심포지엄에서 “현재처럼 청와대 서별관 회의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게 아니라 여·야·정 협의체에서 구조조정의 목표와 대상 등 원칙적인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속노조 소속 ‘조선업종 노동조합 연대’(9개 조선소 노조 참여)는 정부와의 협의체 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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