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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투표율엔 이유가 있다

“왜 투표하지 않는가” 20대들 목소리 직접 들어보니… 청년실업·주거·교육 해결 절박, 그러나 공약 못 믿어
등록 2016-03-24 16:17 수정 2020-05-03 04:28

어떤 일을 ‘왜 했는지’가 아니라 ‘왜 안 했는지’를 묻는 건 난감한 일이다. 세상에 태어나 ‘안 한 일’이 얼마나 많은가. 더군다나 같은 집단 대다수가 하지 않는 일을 ‘왜 안 했냐’고? 이쯤 되면 질문이 아니라 훈계나 시비걸기가 될 수 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당신은 하지 않은 것이라는 전제로는 대화가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난감한 질문은 길어졌다.
“20대 투표율이 50%도 안 되고, 투표를 꼭 해야 한다고 할 순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표를 안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질문이 길면 대답은 짧다. “투표를 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선거 때마다 정치권과 언론에서 등장하는 단골 메뉴, ‘20대 투표율’에 대해 ‘투표하지 않은’ 20대들의 생각을 직접 들어봤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선거(총선) 투표를 하지 않은 20대 3명을 만났고 2명은 전화·전자우편으로 대화를 나눴다. 모두 특정 정당·단체 활동에 참여한 경험이 없는 이들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경선 후보들 문자메시지는 ‘스팸’</font></font>

왼쪽부터 배영걸·민들레·이일석씨. 배영걸씨는 얼굴 사진이 나오는 것을 원치 않아 어둡게 편집했다. 왼쪽부터 김진수 기자, 박승화 기자, 김진수 기자

왼쪽부터 배영걸·민들레·이일석씨. 배영걸씨는 얼굴 사진이 나오는 것을 원치 않아 어둡게 편집했다. 왼쪽부터 김진수 기자, 박승화 기자, 김진수 기자

각자의 사정은 달랐지만, 투표하지 않은 이유는 별다를 게 없었다. 배영걸(26)씨는 4년 전 지방 국립대를 자퇴했다. 전공이 적성과 잘 안 맞는다고 느꼈다. 대학은 다시 가기 싫고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오스트레일리아 워킹홀리데이 계획을 짰다. 2012년 4월 총선은 떠들썩했지만 배씨는 한창 회화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3월16일 서울 성북구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배씨는 “너무 바빴기 때문이라기보단 크게 관심이 생기거나 와닿는 바가 없어서 투표를 안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회사원인 배씨는 다음달 총선에서도 투표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는 전화투표를 촉구하는 각 정당 경선 후보자들의 문자메시지를 모두 스팸 문자로 차단했다. “그런 문자를 보면 ‘왜 자꾸 이런 문자가 오지?’라는 생각이 들 뿐 딱히 투표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든다. 후보가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르는데 투표하는 거 자체가 웃긴 일인 것 같다”고 그가 말했다.

민들레(29)씨는 4년 전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다. 총선 투표를 하는 대신 그날 친구들 넷과 하루 휴가를 붙여서 경기도 근교로 여행을 다녀왔다. 3월16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민씨는 “정말 (투표를 안 한) 이유 같은 건 없다. 그땐 어렸고 휴일이란 생각밖에 없었고 내가 안 해도 국회의원은 뽑힐 테고 나와는 무관한 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현재 회사원인 민씨는 총선과 대통령선거, 지방선거 모두 투표를 한 적이 없다. 다만 이번 총선엔 투표할 생각이다. “지난해 연말정산을 하면서 추가 납부한 세금이 너무 많았다. 특별히 관심 있는 후보는 없지만 생활에서 이런 일들을 겪다보니 투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일석(25)씨는 4년 전 전남 목포에서 군복무 중이었다. 군대에선 ‘무조건 투표하는 분위기’였지만 그는 총선 투표를 하지 않았다. 3월17일 서울 광진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씨는 “경북 안동 지역구 후보들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인데다 공약이 있다 한들 지켜지지도 않을 것 같아서 누구든 찍어주기 싫었다”고 말했다.

그는 군 제대를 앞두고 2012년 대선 땐 난생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투표에 참여했다. 단지 특정 후보의 이미지가 너무 안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현재 취업준비생인 이씨는 이번 총선 투표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경선 전화투표를 촉구하는 문자메시지를 보고 홧김에 “싫다”고 답장을 보냈다. 그는 “믿음 가는 사람이 있으면 투표할 텐데 지금은 그런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투표 강조하는 게 ‘소음’일 수도</font></font>

대학 학업과 회사일을 병행하는 윤아무개(28)씨는 “4년 전 독립하려고 전세 대출을 알아보고 집을 찾느라 많이 바빠서 투표에 참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회사원 이아무개(29)씨는 “4년 전 투표날은 일하는 날이었고 내가 직접 투표할 필요를 굳이 못 느꼈고 귀찮았다”고 말했다.

이들이 보기에 투표일은 ‘휴일’ 또는 ‘빨간 날’이다. 투표와 정치가 나의 문제로 와닿지 않는 이상 투표 의무를 강조하는 것은 공허한 소음일 뿐이다.

배영걸씨는 “국경일에 국기를 게양하는 일처럼 투표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의무로 접근하기보다는 투표를 잘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왜 투표를 해야 하는지 교육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 역시 투표의 종류가 어떤 것들이 있고, 법은 어떤 절차를 거쳐 정해지거나 바뀌며, 내가 어느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것이 어떤 영향을 불러오게 될지와 같은 정치의 구조에 대해 잘 모른다. 대통령은 임기 중 업적을 세우거나 잘못하면 눈으로 보이니까 잘 뽑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국회의원은 그런 게 잘 보이지도 않아서 더더욱 투표할 이유를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50%" align="right"><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ffffff"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ffffff"><tr><td class="news_text02" style="padding:10px">
<font size="4"><i><font color="#991900">“투표가 의무라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왜 투표를 하냐고 오히려 되묻고 싶다.”</font></i></font>
</td></tr></table></td></tr><tr><td height="23px"></td></tr></table>

민들레씨는 “국민이라면 투표하라고 윽박지르는 건 별로 효과가 없다고 생각한다. 20대 투표율이 높아져도 마냥 좋다고 할 수는 없다고 본다. 투표율이 낮더라도 진정 관심을 갖고 올바른 자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투표를 해야지, 관심도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1번, 2번 아무 번호나 찍는 건 의미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좋은 정치인이 나오고 사회가 바뀌는 걸 직접 봐야 20대 투표율에도 변화가 생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일석씨는 “당장 취업도 안 돼서 죽을 판인데 누구를 찍고 말고 생각할 여유가 없는 게 주변 내 또래들 상황이다. 교과서엔 국회의원, 대통령이 하는 일까지만 간단히 나올 뿐이고 정치의 절차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제대로 가르쳐주는 곳이 없어서 투표나 정치에 특별히 관심 갖기가 힘든 상황이고 그런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윤아무개씨는 “정치나 선거 투표의 중요성에 대해 제대로 학습할 기회가 적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정치에 대한 재교육이 필요할 것 같고, 청년정당이나 청년이 주류가 된 어떤 정치적 집단이 생기면 자연스레 청년 투표율도 높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정준영 청년유니언 총선기획단장은 “20대 투표율을 강조하는 주장에는 청년들이 왜 투표하지 않을까라는 진지한 고민보다는, 투표는 마땅히 참여해야 한다는 선언적인 주장과, 참여하는 시민만 권리를 향유할 수 있다는 비민주적 사고방식이 담겨 있는 것 같다. 투표를 안 하는 건 나쁘다는 식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차라리 ‘투표 안 해도 괜찮다, 하든 안 하든 그 이유는 같이 고민해보자’는 말하기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투표하든 안 하든, 이유 고민해보자”</font></font>

그는 “20대 투표율 저조의 원인은 정치 시민교육이 없기 때문인 것보다는 국회가 청년들의 이해관계를 적극적으로 다루고 그로부터 청년들은 정치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인식하는 계기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이 내놓은 청년 정책에 대해 이들은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각 정당들은 청년 구직자에게 매달 50만~60만원 지원금을 주거나 청년 대상 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하는 것과 같은 공약을 내놓았다.

배영걸씨는 “방금 그 공약들을 처음 들었다. 어이가 없다. 청년 실업 문제가 구직자한테 돈을 그렇게 지원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지 않나. 지켜지지도 않을 것 같고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공약이다”라고 말했다.

민들레씨는 “어차피 실현되지 않을 공약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세금 배분 문제인데 그런 청년 상대 공약들이 제대로 지켜진 적이 있었나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일석씨는 “그런 공약을 내놓고 국회의원 자리 확보하면 나 몰라라 할 가능성이 큰 것 아닌가?”라고 했다. 윤아무개씨는 “너무 비현실적인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이아무개씨는 “아예 처음부터 믿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청년들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내세운 ‘청년비례대표’ 등 청년 후보들에 대해서도 그 실효성을 의심했다. 이일석씨는 “최근 청년 실업률이 12.5%로 사상 최악이라는 뉴스를 봤다. 청년들을 대표하면 뭐하나, 최악이라는데. 나아진 게 별로 없는 것이 아니라 최악으로 가버렸다”고 말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지원금보다 근본적 제도 개선을</font></font>

그렇다면 이들이 제안하고 싶은 청년 정책은 뭘까?

민들레씨는 “일정 기간 일하면 비정규직을 의무적으로 정규직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나도 예전에 ‘열정 페이’를 겪어봤지만 너무 보답 없이 일만 했다. 30대엔 사회에서 입지를 굳건히 다져야 할 때인데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태에선 자기만의 정치적 사고방식이나 생활관을 가질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일석씨는 “기존 기업이든 새로운 영역이든 젊은 사람들을 위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줬으면 한다. 입사시험 때 스펙 보는 관행을 아예 없애야 한다. 학벌, 토익 같은 스펙 때문에 대기업은 ‘넘사벽’인 이가 많다”고 말했다.

윤아무개씨는 “청년 주거난 해소 정책, 청년정치 재교육 정책, 청년취업 준비생 지원 및 보호법, 청년 창업센터 및 교육정책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배영걸씨는 “청년 실업 문제에 대해서 단순히 돈을 지원하거나 구직을 도와주는 걸 넘어서 근본적으로 문제가 왜 해결되지 않는지부터 찾으려는 작업이 우선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청년 실업, 주거, 교육 등에서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그들이 비판한 각 정당의 공약과 큰 틀에서 모두 겹치는 주제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정당·후보의 약속과 국회의 문제 해결 능력을 믿지 않았다. 이제 20대 투표율을 주제로 한 질문자와 응답자가 맞바뀌어야 한다.

이아무개씨는 “투표가 의무라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왜 투표를 하냐고 오히려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 질문은 그대로 각 정당과 후보자를 향한다. ‘왜 굳이 내가 당신에게 투표를 해야 하는가.’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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