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에 3만2천엔(약 34만원)짜리 최첨단 전기청소기가 있다. 전기 소비량은 시간당 1kW(킬로와트)다. 조심스럽게 쓰면 5년 정도 쓸 수 있다. 다른 쪽에 장인이 만든 명품 빗자루가 있다. 8천엔짜리다. 빗자루치고 꽤 비싸지만, 명품답게 8년쯤 쓸 수 있다. 전기 소비량은 0kWh다.
주부 36명을 대상으로 두 제품의 만족도를 조사했다. 어느 쪽이 더 잘 쓸어낼까? 주부 모두가 장인의 빗자루로 쓸어내는 게 더 깨끗했다고 답했다. 시원하게 쓸려나가는 재미도 빗자루 쪽이 낫다고 답했다. 가격은 빗자루가 전기청소기의 4분의 1 수준이고, 추가로 내는 전기세도 없다.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데, 주부들은 모두 집에서 전기청소기를 쓰고 있다. ‘평소에 왜 청소기를 쓰냐?’고 물었다. 주부들은 뭐라고 답했을까? “내일부터 빗자루 쓸게요!” 일본의 발명가이자 탈원전운동가인 후지무라 야스유키 니혼대 교수는 재생 가능 에너지로 대체할 여지가 이 대목에 있다고 설명한다.
전기청소기 대신 ‘명품 빗자루’
“한 해 일본 전체에서 쓰는 에너지를 모두 원자력에너지로 대체하면 원자력발전소 850기 분량이에요. 일본 국토의 13.5%를 태양광 패널로 덮을 때 만들 수 있는 에너지 규모입니다. 실제로는 이만한 땅을 태양광 패널로 덮을 수 없죠. 현실적으로 일본에서 태양열, 지열, 수력 같은 재생 가능 에너지를 100% 활용해도 원전 200기 정도의 에너지밖에 만들지 못합니다. 막연하게 탈핵, 탈원전만 하자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합니다. 시민들이 총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면서, 그에 걸맞은 대체에너지를 확대해야 합니다.”
전기에너지 의존도가 커지면 결국 ‘핵발전소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사람들이 한 해 원전 200기 분량의 에너지만 쓴다면 재생 가능 에너지로 살아갈 수 있다. 전력 의존도를 낮추는 게 우선이다. 생각의 순서를 바꿔야 한다.
후지무라 교수는 “발상을 전환해보자. 일본 기업들이 전기청소기 광고로 한 해 120억엔을 쓴다. 이걸 명인의 빗자루 판매 광고로 쓴다면, 전기청소기 못지않게 빗자루를 쓰는 사람이 많아질 수 있다. 탈핵의 길은 뜻밖에 멀리 있는 게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2000년대 이후 원전에너지 의존도가 지속적으로 높아졌다. 후지무라 교수는 “2000년 이후 10년간 일본의 에너지 소비량은 6% 줄었지만, 같은 기간 전력 소비량만 따지면 6%가 증가했다. 원전을 믿고 뭐든지 전기에 의존했다는 뜻이다”라고 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전 주택업계에서 유행했던 ‘올전화(all-電化) 주택’이 대표적이다. 난방·급탕·요리를 할때, 기존에 가스나 석유로 공급해왔던 에너지를 신축 주택 중심으로 모조리 전기 시스템으로 바꾼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 1년 전인 2010년 신축 주택 93%가 ‘올전화 주택’이었다.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개발하는 전기자동차도 넘쳐나는 원자력 전기의 배출구가 되고 있다.
후지무라 교수는 “자동차도 2030년에는 대부분 전기자동차로 바뀔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15년쯤 지나면, 100만kWh 핵발전소 850개가 필요하게 된다”며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2년 정도 전기에너지 씀씀이에 대한 경각심이 있었지만, 2013년 전기 사용량은 후쿠시마 사고 이전인 2010년과 같은 수준으로 돌아갔다”고 우려했다.
‘비전력공방’ 노하우 100% 공개후지무라 교수가 전기에너지 사용량 줄이기 운동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도치기현 나스정(町)에 3만m² 정도의 땅에 ‘비전력공방’을 만들어 지난 10여 년간 전기를 쓰지 않는 각종 발명품을 만들었다.
물리학에서 열을 낮추는 방사냉각 원리를 이용해 ‘전기 없는 냉장고’를 만들어 몽골 유목민에게 값싸게 공급했다. 식수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나이지리아 어린이들을 위해 태양열 식수 살균기, 한나절이면 식품을 건조할 수 있는 태양열 건조기, 무전기 활성탄 정수기 등도 만들었다. 이곳에서 손으로 집을 짓고 쌀과 채소, 커피를 직접 재배하며 자급자족하는 삶도 실험하고 있다.
그는 “방사냉각 냉장고의 경우, 전기를 쓰지 않기 때문에 100년은 갈 수 있을 것이다. 비전력공방에서 만든 제품의 노하우를 100% 무료로 제공한다. 구체적인 방법은 나 같은 발명가가 제안할 수 있지만, 원전 에너지를 줄이는 일은 모두 함께 해야 한다. 대안이 있고, 변화는 가능하다”고 했다.
후지무라 교수는 현재 박원순 서울시장의 요청으로 서울에 ‘비전력공방’을 만드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한국도 새로운 원전 개발에 열을 올리는 나라다. 일본처럼 한국도 ‘에너지를 너무 쓰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전기에너지 사용량을 늘리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 후쿠시마의 쓰라린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비전력공방’ 역시 무분별한 전기에너지 사용에 대한 반성과 고민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3·11 사고 이후 일본에서는 원전에너지를 대체할 여러 대안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후쿠시마현 이다테무라에 세워진 ‘이타미자와 태양광발전소’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피난민 30여 명이 투자해 만든 재생에너지 사업이다.
3·11 사고 당시 방사능 비의 영향으로 가장 큰 피폭 피해 지역에서 진행되는 재생에너지 사업이 지니는 상징성도 특별하다. 이 지역 전체 1700가구 가운데 3분의 1가량이 여기서 나오는 재생 가능 전력만으로 생활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처럼 기업 차원에서 대규모 ‘탈핵 전략’을 내놓는 경우도 있다. 손 회장은 3·11 사고 7개월 만에 재생 가능 에너지 발전회사 ‘에스비(SB) 에너지’를 설립했다. 지금은 일본 전역에서 태양광발전소 25개를 운영한다. 3월9일 현재 ‘에스비에너지’가 누리집(sbenergy.co.jp)에 공개한 태양광발전량은 3억1725만3563kWh에 이른다. 8만 가구 이상이 쓸 수 있는 전력량으로 평가받는다.
원전 개발 한국, 잘못된 방향여론도 괜찮다. 최근 일본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재생 가능 에너지를 늘려야 한다’는 응답이 89%에 이르렀다. ‘재생 가능 에너지 보급을 위해 매달 474엔(약 5200원)을 더 낼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도 68%가 ‘괜찮다’는 의견을 냈다.
도치기(일본)=글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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