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선생님(이하 선생). 1941~2016. 향년 75. 숫자는 단순하지만, 착잡한 한국현대사에 남긴 울림은 그렇지 않다. 27살의 청년 장교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세계 곳곳에서 ‘68혁명’의 열기가 뜨겁던 때였다. 20년 뒤인 1988년 광복절 특사로 출소. 1987년 시민항쟁과 민주화를 향한 염원이 온전한 민주화의 실현으로 이뤄지지 못한 환멸감이 짙던 때였다. 대학(원)생이던 나는 그 환멸감의 한복판에 있었다.
신랑과 주례로 인연
그리고 1990년. 이 출간되었다. 1989년부터 1991년에 이르는 현실 사회주의권 붕괴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온 책이다. 이 책은 나를 비롯한 수많은 독자를 감화시킨 시대의 책이 되었다. 직접 선생에게서 배운 적은 없지만, 선생의 책과 삶에서 많은 걸 깨우쳤으니 선생은 나의 스승이셨다. 존경의 마음을 품고 있다가 감사하게도 사적 인연을 맺게 되었다. 1993년 내 결혼식의 주례로 선생님을 모시고 싶어 몇 번 연락을 드렸고, 선생은 어려운 부탁을 들어주셨다. 선생이 결혼 선물로 써주신 글귀.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낮추는 것이다.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 대학선생 노릇을 하는 내게는 언제나 죽비 같은 말씀으로 남아 있다.
글재주를 부려 쓰는 글과 삶의 깊은 경험이 스며 있는 글은 구분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좋은 글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글(美文)이 아니다. 정확한 글이다. 그런 글을 쓰려면 경험과 통찰과 내공이 요구된다. 삶의 고통을 갈무리하는 인내와 단련이 필요하다. 글재주로 ‘제작’한 글은 잠깐의 재미와 흥미는 주겠지만, 큰 감응을 주지 못한다. 좋은 글은 글재주나 기발한 관념놀이에서가 아니라 그 글을 관통하는 삶의 자세에서 우러나온다. 이런 깨달음을 선생의 글을 읽으면서 얻었다.
선생의 사상과 글에 대한 총체적 점검과 평가는 앞으로의 과제이다. 탁월한 에세이스트로서 선생의 글이 지닌 가치에 대해서만 몇 자 적겠다. 한국문학에서 에세이는 합당한 대우를 못 받는 ‘서자’이다. 가벼운 수필(미셀러니)은 많지만, 삶과 현실에 대한 통찰을 그만의 문체로 표현하는 에세이는 적다. 고독하지만 독립적인 정신의 표현을 가능케 하는 건강한 개인주의의 뿌리가 깊지 못한 한국 문화의 척박한 토양도 한 이유이리라.
에세이는 사회현상에 대한 비판 의식을 그만의 고유한 형식과 문체로 표현한 산문이다. 좋은 에세이는 한 개인의 내면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그 내면에 스며 있는 역사와 사회의 풍경을 포착한다. 그렇게 한 개인의 초상을 통해 시대의 목소리가 들린다. 에서 에 이르는 선생의 글쓰기는 그 형식은 서신, 강의록, 기행문으로 다양했지만 모두 에세이다. “회화에서는 원근법이, 소설에서는 3인칭 소설이 리얼리즘을 완성한다고 하지만 나는 반대로 1인칭 서술의 리얼리티를 극대화하려고 합니다. 적어도 인간 이해에 있어서 감옥은 대학이었습니다. 20년 세월은 사회학 교실, 역사학 교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인간학의 교실이었습니다.”( 205쪽) 에세이는 “1인칭 서술의 리얼리티”를 표현한다. 핵심은 그 서술의 리얼리티가 보여주는 인식의 깊이, 혹은 감각의 깊이다.
선생이 영면하신 뒤 누구는 선생의 글에서 배운 것이 없다고 밝혀서 논란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배우고 안 배우고는 그만의 자유다. 쟁점은 ‘배움’의 의미이다. 문학이론과 미학 등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나는 요즘 ‘이론’의 한계, 이론적 글쓰기의 한계를 느낀다. 이 한계는 선생이 보여준 에세이적 글쓰기의 의미와도 관련된다. 범박하게 말해 한국 사회가 ‘헬조선’이 된 것이 이론이 부족해서인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지식과 이론이라기보다는 그렇게 배운 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서 각자의 삶을 바꾸고, 조금이라도 세상을 바꾸는 그 무엇이 아닐까.
삶의 고통 갈무리하는 인내사람들은 말과 이론이 옳기 때문에 따르는 게 아니다. 그 반대다. 스스로 믿는 것을 옳다고 간주한다. 인간은 이성적, 논리적, 이론적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감성적, 충동적 존재에 가깝다. 이런 진단에 나름의 설득력이 있다면, 글쓰기의 내용만이 아니라 형식에 관한 성찰을 요구한다. 에세이는 이런 질곡을 돌파하는 글쓰기의 형식이 될 수 있다. 선생의 글쓰기는 하나의 전범이다. “학문은 우리에게 실증적 사실과 그것의 상관관계를 제시하지만, 예술은 영혼과 운명을 제시한다.”(루카치) 에세이는 예술적 글쓰기의 독자적 형식이다.
좋은 에세이는 몇 가지 요건을 필요로 한다. 첫째, 경직된 형식이나 체계로는 표현되기 어려우면서도 표현되기를 갈망하는 독특한 체험. 둘째, 그 체험을 갈무리하는 지성과 사유의 깊이. 그런 깊이는 곧 우리의 삶과 문명에 관한 깊은 물음과 관련된다. 루카치가 에세이를 영혼, 운명과 관련시킨 이유다. 셋째, 이런 물음을 그만의 고유한 형식과 스타일로 표현하는 능력. 정리하면 체험과 사유와 표현의 완미한 결합이 좋은 에세이의 요건이다.
선생의 글은 좋은 에세이의 힘을 보여준다. 예컨대 많이 언급되는 이런 대목.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 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징역살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감옥은 인식의 외부에 있다. 거기에도 삶이 있다는 사실을 느끼기 어렵다. 그러나 갇힌 좁은 공간이라는 극한적 조건에서 인간이 지닌 수많은 양상들이 더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그 모습 속에서 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존재와 ‘체온’을 필요로 하는지를 선생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나무는 다른 나무와 더불어 숲이 되어야 한다. “나는 나의 내부에 한 그루 나무를 키우려 합니다. 숲이 아님은 물론이고 청정한 상록수가 못 됨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단 하나, 이 나무는 나의 내부에 심은 나무이지만 언젠가는 나의 가슴을 헤치고 외부를 향하여 가지 뻗어야 할 나무입니다.”()
몸에서 나온 세계인식의 힘선생이 자주 쓰는 경어체는 짐짓 겸손한 척하는 포즈가 아니라, 이런 인간관계의 내밀함을 깨달은 결과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재단하거나 훈계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담요를 덮을 수밖에 없는 수감 동료로서의 인식을 체현했기에 가능한 문체다. 문체는 사유의 표현이다. “우선 그 사람의 인생사를 알고 있는 경우에는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 사람의 생각은 그가 살아온 삶의 역사적 결론이기 때문입니다.”( 229쪽)
문학예술은 다양한 방식으로 각 “사람의 인생사”를 다룬다. 그러나 소설이나 시에서는 작가가 자신의 견해를 직접 표현하지 않는다. 작가는 작중 화자나 등장인물을 통해 우회적으로만 그 인생사를 형상화한다. 에세이는 그런 간접성의 서사를 채택할 수 없기에 자칫 글쓴이의 주관에 매몰되기 쉽다. 혹은, 그 주관성의 한계를 덮기 위해 뻔한 추상적 교훈이나 훈계에 빠진다.
선생 글의 매력은 이런 뻣뻣함이나 뻔한 훈계가 없다는 점이다. 깊은 겸허함의 글이다. 겸허함은 각 “사람의 인생사”를 우선 그의 입장에서 이해하게 만드는 여름 감옥의 체험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머리에서 나온 관념적 체험이 아니라 몸과 발에서 나오는 감각적 체험이다. 선생의 글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청구회 추억’이 좋은 예이다. 글의 말미에 선생이 “언젠가 먼 훗날 나는 서오릉으로 봄철의 외로운 산책을 하고 싶다. 맑은 진달래 한 송이 가슴에 붙이고 천천히 걸어갔다가 천천히 걸어오고 싶다”고 적을 때, 독자는 아련한 통증과 슬픔을 느낀다. 그런 감응은 청구회 아이들 하나하나에 보여준 한 올곧고 심성 깊은 젊은 장교의 마음, 그런 마음조차 살벌한 이념재판의 증거로 만들어버리는 뒤틀린 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을 독자가 구체적으로 실감했기에 가능하다.
선생이 작은 것이 주는 기쁨을 언급한 연유도 여기 있다.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그런 기쁨이다. “제가 무기징역 받고 추운 독방에 앉아 있을 때, 나는 왜 자살하지 않나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자살하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였어요. 저는 햇빛 때문에 죽지 않았어요. 그때 있었던 방이 북서향인데, 하루 두 시간쯤 햇빛이 들어와요. 가장 햇빛이 클 때가 신문지 펼친 크기 정도고요. 햇빛을 무릎에 올려놓고 앉아 있을 때 정말 행복했어요. 그다음에는 내가 자살하면 굉장히 슬퍼할 사람들이 있었어요. 부모, 형제, 친구. 존재라는 것이 나만의 것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짐작건대, 선생의 병(희귀 피부암)은 선생에게 행복을 준 햇빛을 오랜 감옥생활로 충분히 누리지 못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작은 기쁨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아름답다. “아름다움이란 뜻은 알다, 깨닫다입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세계와 자기를 대면하게 함으로써 자기와 세계를 함께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아름다움은 우리가 줄곧 이야기하고 있는 성찰, 세계인식과 직결됩니다.”( 253쪽) 그렇게 감각적 미와 이성적 인식은 하나가 된다. 정확한 인식과 깊은 깨달음을 보여주는 지식인은 아름답다.
선생의 독자는 끊임없이 탄생할 것선생은 아름다운 에세이스트셨다. 선생은 “필자는 죽고 독자는 끊임없이 탄생하는 것”이라고 쓰셨다. 그렇다면 선생은 앞으로도 우리 곁에 머무실 것이다. 육체의 죽음을 겪은 신영복은 우리 곁에 없지만, 선생의 글은 우리의 기억 속에 앞으로도 생생하게 살아 있을 것이다. 탁월한 에세이스트로서 선생의 독자는 “끊임없이 탄생”할 것이다.
신영복 선생님, 부디 그곳에서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같이 아픈 글은 더 이상 쓰실 일 없이, 따뜻한 햇빛 흠뻑 받으시면서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선생님이 우리 곁에 계셔서 감사했습니다. RIP(Rest in Peace).
오길영 충남대 영문과 교수·문학평론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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