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역사가 문제다. 이번에도 역사를 봐야 한다.
새누리당 정갑윤 의원(국회부의장)은 11월25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뼈대는 둘이다. 하나는, 집회·시위 현장에서 총포·쇠파이프 등 폭력 시위에 쓰이는 물품 따위를 휴대하는 것을 넘어 제조·보관·운반하는 행위까지 처벌하자는 것이다. 또 하나는, 신원 확인을 어렵게 할 목적으로 복면 등을 착용하는 것을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개정안은 처벌 조항의 벌금액을 50만~200만원씩 올리도록 했다.
집시법에 ‘복면 금지’ 조항을 넣어 집회·시위의 자유를 옥죄려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러나 법률 개정 시도는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헌법재판소와 국가인권위원회는 물론 국제 규범조차 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1. 집시법의 뿌리는 ‘1907년’</font></font>현행 집시법의 뿌리는 1907년 제정된 보안법이다. 1907년은 일제가 을사늑약(1905) 뒤 통감부를 설치하고 대한제국을 사실상 통치하던 시기다. 보안법을 만든 이유는 일제의 국권 침탈에 맞선 한국인들의 저항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보안법 규정은 이렇다.
1조: 내부대신은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결사의 해산을 명할 수 있다.
2조: 경찰관은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집회 또는 다중의 운동이나 군집의 제한·금지 또는 해산을 명할 수 있다.
3조: 경찰관은 전 2조의 경우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무기 및 폭발물, 기타 위험한 물건의 휴대를 금지시킬 수 있다.
4조: 경찰관은 가도(큰 거리), 기타 공개 석상에서 문서·도서의 제시 및 반포, 낭독 또는 언어, 형용 기타의 행위를 하여 안녕질서를 교란시킬 우려가 있다고 인정될 때에는 이를 금지하도록 명할 수 있다.
‘필요한 경우에는’ 또는 ‘우려가 있다고 인정될 때에는’ 식의 자의적 판단으로 집회·시위를 통째로 가로막을 수 있는 법률이었던 셈이다. 보안법은 이후 일제강점기 치안유지법을 거쳐 해방 뒤 1960년 집시법 제정으로 이어진다.
1960년 만들어진 ‘집회에 관한 법률’은 앞선 보안법의 궤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때 처음 규정된 게 집회의 사전신고제다. 5·16 군사 쿠데타 뒤 1963년 박정희 정권은 기존 법률을 통합해 지금과 같은 이름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새로 제정했다.
이후 전두환 정권까지 집시법은 3차례 개정됐다. 하지만 그 내용은 옥외집회·시위의 금지 요건을 강화하거나, 집회 금지 통고에 대한 이의신청 제도를 폐지하고 경찰관이 질서 유지를 명분으로 출입·지시를 명령할 수 있는 장소를 확대하는 등 집회·시위를 규제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의 결과로 헌법이 개정된 뒤에야 집시법도 이전과 달리 자유를 확대하는 쪽으로 개정되기 시작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2. 자유를 위한 2개의 ‘21조’</font></font>집회·시위와 관련한 국내외 규범은 공교롭게도 제21조로 수렴된다.
먼저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1항과 2항이다. “①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②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1992년 헌법재판소는 당시 집시법에서 “현저히 사회적 불안을 야기시킬 우려가 있는 집회 또는 시위”(제3조 1항 4호)를 금지하고 처벌하도록 한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했다.
그러나 결정문에서 헌재는 집회·시위의 중요성을 명확히 드러냈다. “대의민주주의 체제에 있어서 집회의 자유는 불만과 비판 등을 공개적으로 표출케 함으로써 오히려 정치적 안정에 기여하는 긍정적 기능을 수행하며, 이와 같은 자유의 향유는 민주정치의 바탕이 되는 건전한 여론 표현과 여론 형성의 수단인 동시에 대의 기능이 약화되었을 때에 소수의견의 국정 반영의 창구로서의 의미를 지님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2003년에는 ‘복면 금지’와 관련한 헌법 해석도 내놨다. “(집회) 주최자는 집회의 대상, 목적, 장소 및 시간에 관하여, 참가자는 참가의 형태와 정도, 복장을 자유로이 결정할 수 있다.” 여기서 가리키는 ‘복장’에 정갑윤 의원 발의안에 포함된 ‘복면’도 해당한다는 것은 이견이 거의 없다.
유엔의 국제인권규약 가운데 하나인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B규약) 제21조 또한 집회의 자유를 명시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한국은 1990년 3월 국회 비준을 거쳐 같은 해 7월 조약에 가입했다. “평화적인 집회의 권리가 보장된다. 이 권리의 행사에 대하여는 법률에 따라 부과되고, 또한 국가안보 또는 공공의 안전, 공공질서, 공중보건 또는 도덕의 보호 또는 타인의 권리 및 자유의 보호를 위하여 민주사회에서 필요한 것 이외의 어떠한 제한도 가해져서는 아니된다.”
2008년 1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들 헌법과 B규약을 근거로 집시법 개정을 권고했지만 국회·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행 집시법은 인권위 권고 이전인 2007년 12월 개정을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개정되지 않고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3. 끊임없는 ‘복면 금지’ 시도</font></font>2008~2009년 집시법 개정안이 한꺼번에 6개나 발의됐다. 대표발의자는 각각 안상수(2개)·성윤환·정갑윤·이종혁·신지호 의원이다. 이들 법안에서 문제가 된 것은 2가지다. 11월25일 발의된 정갑윤 의원 안은 이때 법안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 하루 만에 집시법 개정안이 발의될 수 있었던 데는 이처럼 ‘준비된 법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거나 신체에 해를 끼칠 수 있는 기구(가령 쇠파이프)의 제조·보관·운반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을 둔 것. 둘째, 복면 등을 착용하고 집회에 참여할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새로 규정을 둔 것.
인권위는 2009년 6월 이들 법안에 대해 ‘상임위원회 결정’으로 의견 표명을 했다. 먼저 쇠파이프 등의 휴대는 물론 제조·보관·운반 행위까지 처벌하는 것은 집회·시위를 보장한 헌법 정신에 어긋나고 ‘과잉 범죄화’에 해당한다고 인권위는 지적했다. 쇠파이프와 같은 시위 용품을 휴대한 것도 아니고 제조·보관·운반하는 행위까지 처벌하겠다는 것은 범죄행위가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예비·음모’ 단계까지 처벌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비·음모는 살인·내란·외환죄 등 일부 범죄에서만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것인데 이를 집시법에까지 적용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비판이다.
복면 등의 착용을 금지한 것 또한 ‘복면 착용=불법 폭력 집회·시위’라는 잘못된 전제를 깔고 있다는 점에서 인권위는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동성애자·성매매여성 등 사회적 소수자·약자의 시위에서는 익명성이 필수인데다, 침묵시위의 경우 ‘×’자가 그려진 마스크를 쓰는 게 일반적이다. 이 밖에 반전 시위에서 해골 마스크를 쓰거나 겨울철에 스키용 마스크나 목도리를 얼굴에 쓰는 것까지 모두 불법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인권위는 해당 조항이 집회·시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지적했다.
정갑윤 의원이 법안을 내면서 외국 사례를 언급한 것과 관련해서도 2009년 인권위는 이미 반박 근거를 제시했다. 독일·오스트리아에서 복면 착용을 금지한 것은 “극좌파에 의한 무장납치나 테러와 극우 나치주의자들에 의한 테러 경험”이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미국 또한 인종차별적 범죄를 집단적으로 벌인 ‘KKK’(Ku Klux Klan)의 집단행동을 규제·처벌하기 위한 입법이었다는 것이다. 인권위는 이들 법안에 대해 “전형적인 형벌 만능주의”라고 평가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경찰청인권위원)는 ‘복면 금지 법안’을 악법이라고 잘라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집회·시위의 경우, 두 가지 이유로 복면을 착용한다. 첫째, 무분별한 채증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채증 뒤 무분별하게 소환해서 시민을 골탕 먹이는 경찰 행정이 문제다. 둘째, 최루탄을 막으려는 것이다. 두 가지 모두 경찰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다. 경찰이 시위 매뉴얼을 조금만 바꾸면 얼마든지 해소할 수 있다. 쇠파이프 등을 제조·보관·운반만 해도 처벌한다는 것은 과잉을 넘어 무책임한 입법이다. 기술적으로도 의미가 없고, 현장에서 올바른 법 집행이 이뤄질 가능성도 없다. 경찰이 국가보안법처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처럼 마음대로 집행할 수 있게 돼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4. 경찰은 왜 신분·계급 감추나</font></font>반면 대한민국 경찰은 집회·시위 현장에서 ‘무명씨’로 둔갑한다. 시민들은 그들의 신분·계급을 대부분 알 길이 없다.
2010년 5월 프랑크 라 뤼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집회·시위 진압을 담당한 경찰관들이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명찰이나 고유번호 등 어떤 정보도 제복에 표시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이 때문에 경찰의 과잉 폭력에 대한 조사·기소가 어렵다고 보고 “어떠한 형태로든” 표기할 것을 요구했다.
이후 경찰청은 모든 경찰복에 명찰을 달겠다고 유엔에 보고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 앞서 2008년 국제앰네스티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때 경찰 신분이 제대로 확인되지 않는 문제를 지적했다.
‘경찰 복제에 관한 규칙’에는 오른쪽 가슴에 이름표를 부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집회·시위 현장에서 경찰은 진압복이나 형광조끼 따위로 이름표를 가리고 있는 실정이다. 2014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노웅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이름표 패용’을 주문하자, 강신명 경찰청장은 “경찰 개개인의 인권도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사실상 거부했다.
박주민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는 경찰의 신분 비공개 행위를 비판했다. “공무원이 공무를 집행할 때는 신분을 드러내야 한다. 경찰관직무집행법 제3조에도 불심검문이나 통행 제지를 할 경우 신분을 공개하도록 돼 있다. 집회 현장에서 경찰이 불심검문이나 통행을 제지하는 경우 등이 모두 포함된다. 유엔에서도 제복에 이름을 부착해야 한다고 한국 경찰에 권고했다. 인권을 침해한 경찰은 나중에 사법 처리가 가능한 정도로 신분을 공개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법이나 경찰 규정에서 정한 책임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다.”
11월27일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12월5일 대규모 집회를 겨냥한 담화문을 발표했다. “집회 현장에서 복면 등으로 얼굴을 가리고 폭력을 행사한 자에 대해서는 법안이 통과되기 전이라도 이 시각 이후부터 양형 기준을 대폭 상향할 것입니다.”
집시법은 1907년 일제가 한국인을 탄압하려고 만든 보안법의 굴레를 안은 채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의 ‘겨울공화국’을 지나 1987년 민주화 뒤 점진적으로 자유의 영역을 확장해왔다. 근본 원칙은 있다. ‘의심스러울 때는 자유를 위하여’(in dubio pro libertate), 그리고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을 위하여’(in dubio pro reo). 형사법의 금과옥조, 자유 보장과 무죄 추정의 원칙이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font color="#991900">*참고 문헌 (한국형사정책연구원·2002), (한국형사정책연구원·2009)</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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