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11일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 건물에서 벌어진 항공기 자살테러 모습. AFP 연합뉴스
2001년 9·11 테러 이후 최근 국제사회가 다시 ‘테러와의 전쟁’에 나섰다. 프랑스, 미국, 영국, 러시아 등 강대국들이 연일 시리아 내 ‘이슬람국가’(IS)의 거점을 공습하고 있다. 지난 11월13일 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한 무차별적 연쇄 테러공격에 대한 응징이다. 특히 89명이 사망한 바타클랑 공연장 공격은 충격적이었다. 테러범들은 일부 인질의 국적과 종교를 묻고 한 명씩 대면 살해했다. 자폭조끼를 입은 한 테러범은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관람하던 축구장에 진입하려 했다. 더 큰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이제는 테러범들이 일국의 대통령까지 노리고 있다. 비행기를 납치해 초고층 빌딩을 공격한 이슬람주의 테러 세력은 이제 ‘이슬람국가’라는 괴물로 진화했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대서방 테러·갈등의 전환점은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었다. 이슬람권에 대한 소련의 점령에 저항해 대대적인 ‘성전’이 8년 동안 지속됐다. 주로 사우디아라비아가 자금을 지원하고 미국이 무기와 군사훈련을 맡았다. 전세계 이슬람권에서 자원한 무자헤딘(Mujahidin·성전 참여자)에게 소련의 군시설을 공격하기 위한 다양한 테러 기술도 전수했다. 1989년 소련이 물러갔다. 이슬람 전사들은 승리감에 도취됐다. 전투와 테러 경험을 가진 이들이 속속 귀국하면서 중동에선 자국 내 반정부 테러가 이어졌다.
이들 과격 세력이 서방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은 1991년 이후다.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사막의 방패’ 작전을 위해 미군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주둔하기 시작한 해다. 이슬람 성지에 기독교 미군이 주둔하면서 반서방 테러가 본격화했다. 그 정점이 2001년 9·11 테러다. 이어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점령하면서 테러는 더욱 극에 달한다.
9·11 테러는 알카에다의 이념적 목표를 극단적으로 달성한 예다. 1998년 2월 오사마 빈라덴과 이집트 출신 2인자 아이만 알자와히리는 ‘유대인과 십자군에 대항하는 성전을 위한 세계 이슬람 전선’(World Islamic Front for Jihad Against Jews and Crusaders)의 결성을 선포하고, 미국과 동맹국을 공격하고 예루살렘의 알아크사 모스크를 해방시키는 것이 모든 무슬림의 개인적 의무임을 공포했다.
갈등과 충돌의 노정에서 이슬람 과격 세력은 서방에 대한 반감을 자신들의 이념과 테러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이용해왔다. 특히 미국 주도의 아프간 및 이라크 전쟁과 점령을 바라보는 무슬림들은 거의 반사적으로 십자군 전쟁을 떠올린다. 빈라덴 등 과격 단체의 지도자들이 성명서마다 언급하는 것이 ‘십자군 세력’이다. 현재 이슬람 지역을 공격하거나 주둔하고 있는 서양의 군대를 십자군과 동일시하고 있다. 중동 학계와 언론조차 미국의 경제 및 외교 정책을 좌우하는 3대 로비 세력, 즉 에너지와 군수 그리고 이스라엘 로비 세력이 아프간과 이라크 전쟁과 점령의 배후라고 주장한다. 십자군 원정의 경제적 배경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9·11 테러 이후에도 알카에다의 공격은 이어졌다. 2002년 10월 인도네시아 발리 나이트클럽 폭탄테러(200여 명 사망), 2003년 5월 모로코 카사블랑카 테러(45명 사망), 2003년 터키 이스탄불 연쇄 폭탄테러(57명 사망), 2004년 사우디 코바르 총기 난사(22명 사망), 2005년 7월 영국 런던 지하철 테러(56명 사망), 2008년 8월 파키스탄 메리어트호텔 폭탄테러(54명 사망) 등이 대표적 사건이다.
테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미국은 빈라덴을 체포 혹은 사살하기 위한 작전을 10년 동안 지속했다. 결국 2011년 5월1일 빈라덴은 파키스탄 아보타바드 인근 지역에서 사살됐다. 추종 세력들이 그의 묘지를 성지로 정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의 주검은 아라비아해에 수장됐다.
2인자인 알자와히리가 빈라덴의 지도자 자리를 이어받았다. 카리스마와 자금력을 가진 빈라덴의 사망 이후 알카에다와 그 연계 조직이 와해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핵심 대원이나 조직원은 크게 줄었다. 1990년 말 3천여 명에 달했지만, 서방의 분석기관들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 2011년 기준으로 약 300명 미만의 알카에다 조직원이 남아 있다고 분석했다.
수적으로는 약화됐지만 알카에다는 조직을 재정비하고 여러 연계 조직에 다양하고 느슨한 이념적 기반을 제공하는 적응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 조직은 현재도 대부분 알카에다로 불리고 있다. 빈라덴에 비해 약한 카리스마를 가진 알자와히리는 중앙집권적이라기보다는 전세계 네트워크 구축에 더 중점을 두었다.
이 과정에서 알카에다는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아프가니스탄에 거점을 둔 ‘중앙’(Central) 알카에다와 아프간에서 훈련받거나 성전에 참전했던 지하디스트들이 이슬람권에 설립한 ‘가맹’(Franchised) 형태의 소수 조직들이다. 대표적 조직이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AQAP)와 ‘알카에다 북아프리카’(AQIM)이다. 실질적인 테러의 거점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아라비아반도와 북아프리카(Maghreb)로 이동한 것이다. 두 조직과 더불어 알카에다의 큰 이념 아래 이를 따르는 자생적 소규모 단체가 우후죽순 이슬람권에 등장해, 자국의 친미 정권을 공격하거나 서방 시설과 국민에 대한 테러를 감행하고 있다.
‘이슬람국가’는 이라크 제2의 도시 모술을 장악하고 ‘칼리파 국가’를 선포한 2014년 6월 갑자기 등장한 조직이 아니다. 모술이 점령되기 전까지 대부분의 분석가들은 ‘이슬람국가’가 많은 글로벌 지하디스트 조직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치부했다. 그러나 이 조직은 이라크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이슬람국가’의 전신들이 세력을 급속히 키우게 된 배경은 2003년 이라크전쟁과 사담 후세인 정권의 몰락이었다.
이슬람국가는 또 우리에게 생소한 테러 세력이 아니다. 이 조직의 전신인 ‘유일신과 성전’은 2004년 6월 이라크에서 한국인 김선일씨를 살해했다. 요르단 출신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가 1999년 설립한 ‘유일신과 성전’은 2003년 전쟁 이후 각종 테러를 통해 급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김선일씨가 희생됐다.
알자르카위는 여러 세력을 규합해 2004년 10월 조직의 이름을 ‘이라크 알카에다’로 바꾸었다. 알자르카위는 2006년 1월 더 많은 무장세력들을 통합해 ‘무자헤딘협의회’(MSM)를 구성했다. 이라크 내 다른 지하디스트 조직, 사담 후세인 추종 세력, 수니파 부족 세력 등과 연계한 것이다.
하지만 알자르카위는 2006년 6월7일 미군의 정밀타격으로 사망했다. 후계자 아부 오마르 알바그다디는 조직을 ‘이라크이슬람국가’(ISI)로 개명했다. 알바그다디는 사담 후세인의 최고 정예부대 공화국 수비대의 장교 출신이다.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뒤 알자르카위 조직과 함께 투쟁을 진행하면서 무자헤딘협의회의 공동 설립을 주도한 인물이다. 이슬람국가가 단순한 테러 세력이 아니라 반군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이라크이슬람국가’의 출범은 이라크 정부에 심각한 도전이었다. 이라크 정부는 미군의 강력한 지원을 요청했다. 이라크 상황이 악화하고 있는 것을 파악한 조지 부시 대통령도 결단을 내렸다. 미군 병력을 증파했다. 수도 바그다드를 사수하기 위해 2만 명의 대규모 병력을 2007년 이라크 중부와 서부로 집중 파견했다. 대규모 군사작전은 2010년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했다. 미군과 이라크군의 지속적인 군사작전에 ‘이라크이슬람국가’의 대열은 와해되기 시작했다. 2010년 4월18일엔 ‘이라크이슬람국가’ 지도자 아부 오마르 알바그다디가 사망했다.
2010년 5월 아부 오마르 알바그다디의 사망 이후 조직을 이끌고 있는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에게 2011년 ‘아랍의 봄’과 이어진 시리아 내전은 좋은 기회였다.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2011년 8월부터 아부 무함마드 알자울라니가 지휘하는 부대를 시리아로 파견했다. 게릴라 전투 경험을 가진 이라크와 시리아 출신 ‘이라크이슬람국가’ 전사들로 구성된 파견대였다. 그는 시리아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이라크 및 시리아 이슬람국가’(ISIS 혹은 ISIL)를 출범시켰다. 이라크 서부와 시리아 동부 지역을 장악하면서 그리고 이라크 제2도시 모술까지 점령한 직후인 2014년 6월29일 ‘이슬람국가’를 선포했다.
‘이슬람국가’는 알카에다 등 기존 테러조직보다 더 잔혹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자신들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과 전세계에 심리적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이 그 목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슬람국가’가 전략적 측면에서 알카에다와 차별성을 갖는다는 점이다.
지하드(성전)에 대한 인식에서 ‘이슬람국가’는 알카에다와 다르다. 서방의 침략에 대해 지하드를 수행함으로써 이슬람공동체(Ummah)를 보호한다는 방어적 개념의 지하디즘이 빈라덴의 인식이었다. 그러나 ‘이슬람국가’는 타크피르(Takfir·다른 무슬림을 불신자로 규정하는 시각 혹은 행위) 개념을 적극 활용해 다른 무슬림에 대한 공격도 주저하지 않고 있다.
‘이슬람국가’도 글로벌 지하디즘의 목표를 가지고 서방과 대치하고 있지만, 자신들이 장악한 지역에서 내부 지하드에 더 많은 관심과 활동을 보여주었다. 빈라덴이 서방을 공격하면서 “사악한 뱀의 머리(미국과 이스라엘)를 우선 잘라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과는 달리, ‘이슬람국가’의 설립자인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는 “사악한 뱀의 몸통(중동의 정권 및 비이슬람 사회)”을 타격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간주했다. 빈라덴의 지도 아래 알카에다가 내부의 적보다 서방을 자극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었다면, ‘이슬람국가’의 최고 관심사는 내부적 정화(Purification)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테러조직과 달리 ‘이슬람국가’는 시리아 동부와 이라크 서부를 아우르는 ‘영토’에 대한 통치권을 주장하고 그 경계가 모호한 지역에 ‘칼리파 제도’를 수립했다. 어떤 국가도 이를 승인하지 않고 있지만, 테러조직이 수립한 최초의 칼리파 국가다.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 혹은 알카에다 북아프리카처럼 거점이라고 불릴 정도의 소규모 지역을 장악하고 은밀하게 활동하던 기존 다른 테러조직들과 달리, ‘이슬람국가’는 방대한 지역을 장악해 국가를 선포하고 공개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방대한 ‘영토’를 장악하고 있다는 것도 큰 의미를 갖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슬람국가’가 실제로 국가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 행위와 통치도 지하 활동이 아닌 공개적인 방식이다. 장악 지역에서 나름의 대중적 지지도 확보하고 있다. 시리아 내전과 이라크의 종파 갈등과 같은,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역내 불안정으로 인해 ‘이슬람국가’가 이같은 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 기존 국가의 통제권이 상실된 지역에서 ‘이슬람국가’는 영향력의 범위를 확대하고, 통치 자금을 마련하고, 전사를 훈련하고, 대중의 지지를 강화하고 있다. 다른 어떤 테러조직들이 과거에 달성한 적이 없었던 수준의 영향력이다.
2014년 6월29일 ‘이슬람국가’가 칼리파 국가를 선포한 것은 이슬람주의 운동의 획기적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이슬람국가’는 이슬람주의 운동의 선봉 조직이자, 유일한 ‘합법적’ 지하드 운동임을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칼리파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하는 알카에다 조직의 정통성에 정면 도전하는 세력으로 부상한 것이다.
이는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가 아이만 알자와히리에 앞서 글로벌 지하드의 주도권을 쥔 것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최근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에게 충성 맹세를 하는 테러조직이 크게 늘고 있다. 결국 ‘이슬람국가’는 테러조직에서 이슬람 이상국가를 추구하는 정치 세력으로 변신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이슬람주의에 동조하는 전세계 극단주의자들에게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가 상당히 매력적이고 설득력을 갖춘 인물로 떠오르는 상황을 조성한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슬람국가’의 선전·홍보 전략이다. 알카에다 등 20세기 테러 세력과는 다르다. ‘이슬람국가’는 21세기 테러의 전형이다. 홍보와 선전에서 통신기술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사용한다.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Instagram), 킥(Kik), 애스크닷에프엠(Ask.fm), 브이케이(VK) 등 인터넷 및 SNS의 네트워크를 통해 수백만의 청소년들에게 자신들의 주장을 전파하고 있다. 아랍어로 제작된 조악한 동영상·성명서 등이 아니라, 고화질의 동영상과 다양한 색채로 편집된 영어 게시글들을 올리고 있다. 여기에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그 결과, ‘이슬람국가’가 작성한 수백 개의 홍보물이 사이버 공간에 존재한다. 누구라도 접근할 수 있다. 이런 선전 방식은 전세계에서 지원자를 모집하기 위한 것이다. 극소수이지만 이슬람 과격주의에 심취한 청소년들을 모집하려는 것이다. “집과 생필품을 제공한다” “월급도 준다” “결혼도 시켜준다” 등 그럴듯한 정보를 올려 자국 사회 내에서 불만을 가진 청소년들을 유인하고 있다.
인터넷게임 이용해 전투 장면 홍보
‘이슬람국가’가 알카에다보다 더 심각한 위협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영토를 장악하고 ‘국가’를 선언한 ‘이슬람국가’는 정보통신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조직이다. 참수 동영상만 간헐적으로 올리던 20세기 테러조직 알카에다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슬람국가’에 가담한 청년들은 어렸을 적부터 인터넷게임을 즐기던 세대다. 칼라슈니코프 자동소총을 메고도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세력이다.
이들이 쉬는 시간마다 들여다보는 스마트폰이 이제 소총보다 더 무서운 무기가 되고 있다. 이를 통해 3만 명에 달하는 전세계 다국적 대원을 시리아로 불러들였다. 여기서 훈련받고 실전에 참가했던 ‘전사’들이 여러 국가로 파견되고 있다. 이번 파리 테러에 참여한 테러범 중 하나는 시리아 난민으로 가장해 프랑스로 입국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그도 스마트폰으로 암호화한 지령을 받고 본부 및 동료들과 연락을 취했다.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중동아프리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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