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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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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마시며 노래 부르리라

11월13일 파리 테러로 회사 동료를 잃은 ‘파리지앵’이 보낸 편지… 죽음을 찬양하는 테러에 삶으로 저항하다
등록 2015-11-24 22:27 수정 2020-05-03 04:28
프랑스인들은 테러 이전의 삶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만이 테러리스트들에게 돌려줄 수 있는 최선의 복수라고 믿는다. 한 추모객이 11월14일 테러 사고 현장에 “함께라면 우리는 강하다”라고 쓰고 있다. REUTERS

프랑스인들은 테러 이전의 삶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만이 테러리스트들에게 돌려줄 수 있는 최선의 복수라고 믿는다. 한 추모객이 11월14일 테러 사고 현장에 “함께라면 우리는 강하다”라고 쓰고 있다. REUTERS

‘삶은 계속된다’(La vie continue).

사망자 129명과 부상자 352명을 내고 프랑스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11월13일의 파리 테러. 그 다음날부터 파리 시민들은 버릇처럼 한 문장을 입에 달고 있다. ‘La vie continue.’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테러 이전의 삶을 계속 이어나가야 할 것이며 그렇게 하는 것만이 희생자의 이름으로 테러리스트들에게 돌려줄 수 있는 최선의 복수라는 프랑스인들의 신념이 이 문장 안에 들어 있다.

11월 중순임에도 쌀쌀하지 않았던, 평균기온을 훨씬 웃돌던 금요일 저녁이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한 주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먹고 마시며 털어놓기 시작했다. 140개가 넘는 극장 및 콘서트홀에는 갖가지 공연이 한창이었고, 90여 개의 영화관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틀림없었다. 주거 지역이기도 하지만 그야말로 ‘핫’한 동네이기도 해서 젊은이가 많이 찾는 10구·11구의 카페와 비스트로, 레스토랑은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볐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파리의 그 일상 풍경에 총구가 들이닥쳤다. 총성이 울렸고 비명이 들렸고 사람들은 가을비에 낙엽 떨어지듯 그렇게 쓰러졌다.

‘바로 나였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

지난 1월, 풍자지 테러 사건이 있었을 때 프랑스 시민들은 분노했다. 그 분노는 표현의 자유를 지키자는 목소리로 한데 모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반인을 상대로 한 테러리스트의 학살이 파리 도심 한복판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한 사람은 드물었던 것 같다. 당연했다. 테러 사태는, 한 매체에 대한 구체적인 보복이었다. 그때 사람들은 분노했지만, 테러로부터 위협당한 가치를 우리가 보호하고 되살릴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파리 동시다발 테러는 다르다. 프랑스인들은 테러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구체적으로 내면화하기 시작했다. 이곳 사람들이 느끼는 서늘함은 평범한 삶의 방식 전체에 총부리가 겨냥됨으로써, 파리와 생드니의 여섯 군데 테러 지점에서 희생된 그들이 바로 나였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이다. 파리의 그 누구도 이번 테러에서 자유롭지 않다.

충격과 공포의 금요일 저녁이 지나고 토요일 오후에 사상자 규모가 발표됐다. 실종자가 점차 사망자로 확인되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부터 큰 애도의 물결이 시작됐다. 간신히 생명을 건진 사람들의 증언이 봇물 터지듯이 나오면서 테러의 참상이 낱낱이 밝혀졌다.

그나마 증언들 중에는 부상자를 도와준 시민, 위험한 상태에서 출구 안내를 해준 건물 안전 요원, 현장을 지휘한 경찰관 및 의료 관계자의 적절한 상황 대처 등에 대한 것이 많았다. 다급했지만 미숙한 현장 수습으로 추가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최소한의 안도감은 가질 수 있었다. 추가 테러에 대한 루머가 돌았고 허위 사실이 인터넷상으로 유통되기도 했다. 하지만 언론의 정확한 보도와 파리 경시청의 상세한 안내로 유언비어는 이내 잦아들었다. 프랑스는 국가 차원에서 3일 동안의 애도 기간을 갖고 지난 11월12일 비상시국 상태를 선언했다.

테러 현장에 꽃과 초가 놓였다
추모객들이 11월16일 프랑스 파리 트로카데로광장에서 에펠탑을 바라보며 묵념하고 있다. REUTERS

추모객들이 11월16일 프랑스 파리 트로카데로광장에서 에펠탑을 바라보며 묵념하고 있다. REUTERS

그날 테러리스트의 집중 공격으로 82명이 사망한 콘서트홀 바타클랑에서 공연을 즐기던 관객은 1500여 명이었다. 그중에는 밴드 ‘이글스 오브 데스 메탈’의 팬 말고도 공연 문화계 종사자와 프로듀서, 언론사 기자, 방송인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 문화예술 관련 사상자가 속출하면서 프랑스 문화계는 그야말로 충격에 휩싸였다. 동료를 잃은 슬픔과 더불어 프랑스 사회가 수호하려는 문화적 가치, 예술적 자유가 공격당했다는 분노가 동시에 일었다. 그리고 이내 굴복하지 않겠다는 신념이 전면화됐다. 대부분의 극장과 미술관이 화요일인 11월17일부터 정상 운영되고 있고, 일부 기관은 그보다 먼저인 일요일부터 예정된 프로그램을 강행했다.

프랑스 문화부 장관 플뢰르 펠르랭은 “우리나라에서 음악이 계속 존재할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공연장 보안 강화에 필요한 비용과 관객 감소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정부가 특별 자금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음을 알렸다. 테러가 발생한 지 48시간 만에 야만과 폭력으로부터 정면 공격당한 부분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놀라운 재생력이었다.

그리고 많은 시민들은 그 재생력만이 테러리스트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저항 방식이라는 것에 뜻을 모았다. 파리 시립극장 극장장은 한 인터뷰에서 “영화관, 극장, 카페, 레스토랑, 클럽 등은 이른 시일 안에 다시 문을 열어야 한다”고 제안했고, 프랑스의 유명 가수 그랑 코르 말라드는 “원래 상처 입은 짐승은 위험할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오늘 나는 상처 입은 국가가 이렇게 현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았다”며 프랑스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일찍이 을 쓴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이렇게 물었다. “어둠의 시대에, 우리는 계속 노래할 수 있을까?” 그리고 대답했다. “그렇다! 우리는 어둠의 노래를 계속 부를 것이다.”

테러의 현장에서는 이튿날부터 자발적인 애도 물결이 일었다. 테러 현장과 레퓌블리크 광장에 꽃과 초가 놓였다. 언론은 평화와 화합을 이야기하는 시민과 어린이들을 집중 조명했다. 특히 ‘다니엘 할머니’의 인터뷰 내용이 언론과 SNS에 널리 퍼지며 공감을 자아냈다.

다니엘 할머니는 올해 77살로, 전직 변호사이자 여성운동 활동가다. 그녀는 파리 시민들을 향해 파리의 매력에 관한 책인 을 읽으며 헤밍웨이가 발견한 파리의 멋스러움을 함께 나누자고 제안했다. “정당하며 자유롭게 종교 생활을 하는 500만 무슬림과 평화롭게 지내며, 알라의 이름을 내세워 범죄를 저지르는 1만 명의 야만적인 살인자들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그녀의 호소는 큰 울림을 던졌다.

테러가 무슬림 일반에 대한 증오와 낙인찍기가 되는 것을 경계하는 메시지는 테러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소수이기는 하지만 무슬림에 대한 보복성 폭언과 폭행도 프랑스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정부가 무고한 무슬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종교 갈등을 방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이같은 범죄에 대해 철저한 처벌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500만 무슬림과 평화를, 1만 살인자와 싸움을”
에펠탑 부근에서 경계근무를 하는 프랑스 군인들. REUTERS

에펠탑 부근에서 경계근무를 하는 프랑스 군인들. REUTERS

프랑스는 선거를 앞두고 있다. 12월에 치러질 예정이던 프랑스 지역의회 선거의 운동은 테러가 일어난 뒤 일시적으로 중단된 상태다. 곧 재개될 예정인데, 일각에서는 테러로 인해 극우파 정당 국민전선이 승승장구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국민전선 대표 마린 르펜은 이미 무슬림과 테러리스트 조직을 연계시키며, 시리아 난민의 유입을 막고 국경을 통제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끔찍한 주말을 보내고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출근해서 동료 중에 혹시 주말 동안 없어진 사람은 없는지 마음을 졸이며 하나하나 확인하는 것이 과연 사람이 할 일인가”라는 분노가 무거웠다. 그 분노가 사라진 자리에는 테러에 대한 두려움이 남을 것이다. 끝내 우리는 그 두려움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습득해야 할 것이다.

크고 작은 추모 행사에서 사람들은 모이면 으레 프랑스 국가 를 부른다. 경기장에서, 오페라극장에서, 길거리에서, 시청에서, 학교에서, 심지어 지하철에서도 가 들린다. 이번 테러에서 큰 상처를 입은 20~30대 젊은 층이 이 물결에 합세했고, 나아가 주도하고 있다. 알제리 전쟁 이후 그들의 부모 세대가 국가주의적인 것을 배척해 와 프랑스 삼색기를 의식적으로 멀리했던 것과는 굉장히 다른 모습이다.

군대에 지원하는 젊은이 수는 테러 이후 3배나 증가했다. 매일 500명가량의 입대 요청을 받던 국방부는 테러 이후 일일 지원자 수가 1500명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국방부는 지원자들의 지원 동기에 대해, 이슬람국가(IS)가 프랑스에 가한 폭력을 복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위협받은 공화국의 가치인 ‘자유·평등·박애’를 회복하고 테러로부터 무방비 상태인 프랑스인을 보호하는 데 이바지하기 위함이 많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번 테러를 통해 새로운 세대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2015년을 사는 프랑스의 젊은 세대는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국가관을 확립하기 시작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11월20일), 이번 테러에 가담한 총 8명의 테러리스트 중 1명의 행방이 여전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비상시국 상태를 2016년 2월 말까지 연장하는 안은 국회에서 거의 만장일치로 결정됐다.

삶을 누리는 데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파리지앵들은 이제 테러의 공포와 싸우며 이 멋진 도시를 최대한 즐기는 방법을 익혀야 할 것이다. 테러 이후에도 삶은 계속돼야 하니까. 하지만 이후의 삶은 분명 이전의 삶과 같지 않을 것이다. 먹고 마시고 노래 부르고 공연보러 가는 일상적 행동조차 테러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갖는 시대. 죽음을 찬양하는 테러리스트에 맞서 삶을 즐기고 가꾸는 사람들의 싸움. 이제 파리 시민들은 완전히 다른 파리에서 살게 됐다.

그녀를 기억하고 그 열정을 이어가리라

나는 이번 테러로 가까운 회사 동료를 잃어야 했다. 남자친구와 함께 좋아하는 밴드의 콘서트에 가게 되었다고 들떠 있던 그녀는 나와 퇴근길에서 헤어진 뒤 3시간 만에 죽음의 노예들에게 희생당했다. 주변의 많은 이들이 직간접적으로 이번 테러에 연루돼 있다. 워낙 집단적인 상처이다보니, 문화계 종사자들을 위한 심리치료 프로그램도 논의 중이다. 업무에 복귀해 일상의 시간이 흐르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동료의 빈자리는 점점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녀를 기억하고 그녀가 열정을 가지고 했던 일을 이제 우리가 대신 해주는 것이리라. 동료들과 그녀를 추모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서로 손잡고 폴 엘뤼아르의 시를 읽었다.

그리고 미소를

밤은 결코 완전한 것이 아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주장하기 때문에

슬픔의 끝에는 언제나

열려 있는 창이 있고

불 켜진 창이 있다

언제나 꿈은 깨어나듯이

충족시켜야 할 욕망과 채워야 할 배고픔이 있고

관대한 마음과

내미는 손 열려 있는 손이 있고

주의 깊은 눈이 있고

함께 나누어야 할 삶

삶이 있다

홍성희 프랑스 쉬렌 극장 홍보 및 마케팅 팀장·파리제3대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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