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평균 퇴직 연령이 53살이다. 자녀들은 20대 초반이어서 대학을 졸업하지 않거나 졸업해도 취업률이 60%가 되지 않는다. 만약 부모가 명예퇴직을 하고 더 이상 소득이 없는 상황에서, 자녀가 취직을 못해 미래가 불안정한 상황이 되면 그 가정에는 심각한 경제적 문제가 발생한다. 중산층에 속하는 사람들은 이런 사례를 주위에서 숱하게 보고 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미래를 보장해줄 수 없는 불안한 상황. 우리나라 중산층의 키워드는 불안이다.”
‘중간계급’이란 과연 무엇인가
2015년 7월. 찌는 듯한 여름 날씨 속에 연구실에서 만난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의 말을 듣다가 한숨이 배어나왔다. “키워드는 불안이다.” ‘모래시계 중산층’ 기획(제1080호 표지이야기)은 이렇게 시작됐다. 즐거워야 할 한가위 연휴 기간이지만 기사를 읽은 독자들도 불안에 공감했다. 기사 댓글을 통해 자신이 직장을 계속 다닐 수 있을지,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하면 망하는 게 아닌지 걱정이 넘쳐났다. 불안의 한편에는 ‘내가 중산층에 속하는 건지, 중산층의 기준은 뭔지’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다. 신광영 교수와 진행했던 3차례 인터뷰와 서면 인터뷰 등을 통해 독자들이 궁금해한 ‘중간계급’에 대해 다시 정리해봤다.
중산층 대신 중간계급으로 ‘한국 사회의 허리’ 문제를 분석한 이유는 무엇인가.“중산층이라는 말은 학문적 용어가 아니다. 서구에서 사용하는 중간계급(The Middle Class)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없는 정치적 상황 속에서 중산층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사회학에서는 직업을 중심으로 중간계급을 논한다. 보통 좋은 직장을 구해 안정된 직업을 갖고, 그것을 바탕으로 저축도 하고 집을 마련해 자녀를 교육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노후까지 준비하는 게 중간계급의 표준적인 생애다. 여기서 중요한 게 직업이다. 직업과 소득은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 소득의 원천이 되는 경제활동을 중심으로 중간계급을 정의한다. 여기에서 ‘중간’의 의미는 고용된 피고용자이긴 하지만, 전문적 지식이나 기술을 바탕으로 상대적으로 안정된 고용과 높은 소득수준을 누리는 이들을 말한다. 자영업자는 소득이 높더라도 중간계급이라 부르지 않는다. 고용관계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보통 중산층의 기준으로 삼는 중위소득의 50~150% 구간을 가지고 분석하면 안 되나.
“경제학자들은 소득을 중심으로 중간소득자를 중간계급으로 정의하지만, 이는 중간계급이 지닌 안정성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소득이 중간소득에 해당할지라도 집이 없거나 재산이 없는 경우 실직을 하면 곧바로 빈곤층이 된다는 점에서 중간계급의 전형적 형태라고 보기 힘들다. 또 소득이 일시적으로 많은 어부나 개인택시 운전자가 중위소득 50~150%에 속할 수 있지만 이들은 경제적으로 안정성이 없다. 아프거나 다치면 소득이 사라진다. 더구나 중위소득 50%는 빈곤층 구분 기준이다. 중위소득의 50% 수준보다 소득이 높다고 할지라도 차상위 빈곤층에 속할 수 있으며, 차상위 빈곤층을 중산층이라고 분류하는 것은 중산층을 과도하게 크게 추정하는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소득 기준 대신 직업 기준인 중간계급으로 중산층 문제를 봐야 한다.”
연봉이 2억원에 가까운 대기업 임원들도 중간계급일까.“중간관리자와 임원이 소득이 많은 경우도 있고 적은 경우도 있다. 중산층 내 소득불평등이 커지고 있다. 예를 들어 변호사 가운데 국제변호사의 소득과 고용된 변호사의 소득이 차이를 보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일단 편의상 중산층으로 계속 부르겠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정책도 부족한데, 한국 사회는 왜 중산층에 주목해야 할까.“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정책도 부족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중산층이 될 수 있고 또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중산층이 될 수 없는 상황에서 빈곤층을 위한 정책을 하는 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궁극적으로 빈곤층이 사라지는 경우는 일차적으로 중산층이 되는 경우다. 혹은 중산층과 빈곤층이나 상층 간의 격차가 줄어드는 경우다.”
현재 한국은 복합 위기 상황신광영 교수는 여러 차례 중산층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중산층의 약화 원인을 제대로 논의하지 않으면 중산층을 위해서만 기사를 쓰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 교수는 “지금 중산층의 몰락 원인은 조기퇴직·명예퇴직 등 대기업의 고용 관행 때문이다. 대기업이 소모적으로 사람을 부리고 내팽개치면서 사회적으로 안전망이 없는 한국의 현실을 다뤄야 한다. 중산층뿐만 아니라 노동자, 한국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되는 분석과 대안 제시가 필요하다”고 했다.
중산층의 위기가 한국 사회의 위기와 어떻게 연결되나.“한국 사회의 위기는 중산층의 위기만이 아니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 위기가 더 근본적 위기가 될 것이다. 이와 맞물려 근로빈곤층·노인빈곤층 같은 빈곤층의 위기도 한국 사회의 위기 중 하나다. 현재 한국은 복합 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저임금·저소득으로 인한 내수 부족에서 기인한 디플레이션도 당면한 위기다.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 효과는 2020년대 초에 이르러 노동력 부족으로 가시화될 것이다. 현재 일본의 대졸자 취업률은 95%를 넘고 있다. 저출산으로 인해 노동력 부족이 시작됐기 때문에 취업률이 한국보다 훨씬 높다. 한국도 그러한 상황을 피할 수 없다. (그 시기가 오기 전인) 현재의 청년 세대는 그런 점에서 불행한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중산층의 위기를 벗어날 방법은 있을까.“중산층만 중산층 지위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다 같이 중산층이 되는, 다 같이 중산층이 누리는 안전한 삶, 높은 삶의 질을 만들어내는 개혁이 필요하다. 빈곤층을 중산층으로 올리고,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내려가는 걸 막는 것은 교육과 노동 정책으로만 가능하다. 예를 들어 빈곤 아동에 대한 교육·훈련을 통해 자녀에게 빈곤이 대물림되지 않게 하고 이들이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사회적 투자, 복지제도가 필요하다.”
정책을 만들 정치세력이 없다 대안을 찾을 때 북유럽 모델을 많이 인용한다. 도 현지 취재를 해 기사를 쓸 텐데 한국이 하기 힘든 복지 시스템 이야기만 반복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한국이 하기 힘들 것이라는 이야기는 정책 자체가 아니라 정책을 만들어낼 정치세력이 없다는 게 문제다. 북유럽의 정책들은 프랑스나 영국 같은 곳에서도 다 가져다 쓴다. 똑같은 세금을 어떻게 나눌지 우선순위를 결정하면 되는 문제다.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이를 달성할 수 있는 세력이 없다는 이야기다. 물론 반대세력은 강하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게 아니라 정치 현실이다. 보수 쪽은 얼마나 상상력이 뛰어나고 과감한가. MB 정부의 4대강 사업을 보라. 몇십조원이 들어가는데 반대를 해도 막 한다. 그런 독재가 아니라, (복지정책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얻고 설득해내고 논쟁해서 나아갈 수 있는 정치세력과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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