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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 당국은 폐렴에서 멈췄다

메르스 ‘사실상 종식’ 선언, 186명 확진자 전수 역학조사서 입수·분석… 의료진이 폐렴의 발생·악화를 모니터링하면서도 메르스로의 진화를 눈뜨고 방치하게 만든 보건 당국
등록 2015-08-06 15:53 수정 2020-05-03 04:28
7월28일 정부는 ‘메르스의 사실상 종식’을 선언했다. 일상으로 돌아가 경제를 살리라는 국무총리의 독려가 뒤따랐다. 첫 확진자가 나온 뒤 69일 만이다. 186명이 감염됐고, 36명이 사망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종식 기준(최종 환자 완치 28일 뒤)은 참고만 했다. 아직 12명이 치료 중이다.
은 보건 당국이 작성한 전체 확진자 186명의 역학조사서를 입수해 분석했다. 42번째 확진자(20번째 사망자)가 평택성모병원에서 감염된 뒤 서울의료원에서 사망할 때까지의 의무기록도 확보해 살폈다. 가려내고 밝혀내지 않은 채 선언되는 종식은 끝맺음이 아니라 무마에 가깝다. 그 사실을 되새기는 데 너무 큰 희생을 치렀음을 두 문건은 말해준다. 책임의 당사자가 선언의 주체가 되는 현실은 책임을 묻고자 하는 이들에겐 참극이다. _편집자

사태의 ‘종식’은 선언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선언이 사태의 전말과 책임을 규명하는 것도 아니다. 언어의 그물로 끌려들어가 ‘모든 것은 끝났다’며 망각해선 안 될 이유들이 있다.

국가 지정 격리병원인 서울의료원(중랑구)에서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음압격리병실에서 메르스 확진 환자를 돌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국가 지정 격리병원인 서울의료원(중랑구)에서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음압격리병실에서 메르스 확진 환자를 돌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최소 4명 이상이 ‘병원 폐렴 감염’ 뒤 메르스

최소 4명 이상의 환자가 ‘병원에서 폐렴에 감염’된 뒤 메르스의 먹잇감이 됐다. 폐렴을 메르스 의심 증상에서 배제하는 의료적 무방비 속에서 그중 1명이 사망했다. 보건 당국의 ‘밀접접촉자 기준’(2m 이내 1시간 이상 노출)은 의료진이 폐렴의 발생·악화를 모니터링하면서도 메르스로의 진화를 ‘눈뜨고 방치’하게 만들었다.

은 메르스 확진자 전수 역학조사서를 국회 메르스대책특별위원회의 임수경 의원(새정치민주연합)으로부터 입수했다. 특위 조사 과정에서 질병관리본부가 임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다. 역학조사서엔 결함이 적지 않다. 중요 발병 정보가 빠진 환자도 있고, 일부 사실이 다르게 기재된 환자들도 있다. 의도인지 실수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럼에도 유족으로부터 건네받은 42번째 확진자(20번째 사망자)의 의무기록과 맞춰보면 사태 초기 국가가 키운 메르스로 환자들이 침식돼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확진자들 다수(최소 42명 이상)의 역학조사서에서 폐렴 증상이 관찰된다. 첫 확진자 발생 전부터 폐렴으로 입원해 메르스를 만난 사람도 있고, 메르스 증상 발현 뒤 폐렴을 얻어 병원을 찾은 사람들도 있다. 메르스에 취약한 폐렴 환자가 메르스 전파자가 된다는 사실은 보건 당국도 수차례 밝혔다.

지난 6월23일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는 확진자 98명에 대한 조사(대한감염학회) 결과를 발표했다. 1명 이상 감염시킨 ‘전파자’는 ‘비전파자’와 달리 폐렴이 심했다고 밝혔다. 전파자 그룹의 확진 기간은 8.2일(±1.9)로 비전파자 그룹의 4.6일(±3.4)보다 길었다고도 했다.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 빠른 신고와 급성폐렴 환자에 대한 관리가 중요하다”(정은경 질병관리본부 질병예방센터장)는 해석을 붙였다. 폐렴 환자들과 폐렴 관리를 못한 병원에 책임을 돌리는 듯한 설명이다.

역학조사서엔 책임을 달리 물어야 할 확진자들이 보인다. 최소 4명(1명은 의무기록 통해 확인) 이상의 ‘병원 획득 폐렴’ 환자가 있다. 병원 획득 폐렴은 병원 내 감염관리가 안 돼 발생한다. 모두 평택성모병원에서 입원 혹은 간병 중 폐렴에 감염됐다. 신고가 늦을 일도 폐렴 추적이 안 될 일도 없었다.

29번째, 폐렴 진단 뒤 통보받기까지 열흘

환자 4명의 폐렴 발생 시기와 메르스 검사 시기 사이엔 넓은 간극이 있다. 12번째 확진자(5월15일 입원)는 5월21일 폐의 좌하엽에서 병원 획득 폐렴이 진단됐으나 5월28일에야 1인실 격리와 메르스 검사가 이뤄졌다. 5월26일 우하엽에서 폐렴이 발견된 13번째 확진자(5월15일부터 12번째 확진자 간병)도 같은 날 격리돼 5월29일 감염을 확인했다. 29번째 확진자(4월25일 입원)는 5월19일 폐렴 진단 뒤 메르스 1차 검사 결과를 통보(5월29일)받기까지 열흘이 걸렸다. 5월25일 병원 획득 폐렴이 관찰된 42번째 확진자(5월19일 입원)도 5월28일에야 1인실로 격리(5월29일 확진·외부엔 6월5일 확진자로 발표)됐다.

이들 모두 5월28일까지 메르스와의 역학적 연관성은 무시됐다. 이날 첫 확진자가 머물렀던 평택성모병원(8104호)의 다른 병실(8103호)에서 감염자(6번째)가 나왔다. 보건 당국은 큰 혼란에 빠졌고, 밀접접촉 범위를 재조정했다. 메르스 치료로부터 방치되던 폐렴 환자들은 병원 휴원(5월29일) 전날에야 1인실로 옮겨져 메르스 검사를 받았다.

폐렴은 메르스 바이러스가 초래한 호흡기의 비극이었다. 의료진이 폐렴의 경과를 지켜보는 중에도 메르스로 의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보건 당국의 가이드라인이 의료진의 판단을 옭아매는 동안 메르스는 환자들의 몸을 방해받지 않고 갉아먹었다.

평택성모병원 전체 감염자 36명 가운데 35명(발병 시기 확인되지 않는 1명 제외)의 ‘메르스 증상 발현 뒤 확진 기간’(‘사실상 종식 선언’ 메르스 확진자 186명 현황 인포그래픽 참조)을 분석해봤다. 현상은 선명해진다. 35명이 확진받는 데 걸린 시간은 평균 6.6일이었다. 5월28일 이전에 증상이 나타난 25명의 확진 기간은 평균 7.9일이다. 25명 중 밀접접촉자 범위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19명)만 추리면 확진까지 평균 9일이 흘렀다. 5월28일 이후 증상을 보인 10명이 평균 3.9일 뒤 확진된 것과 비교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메르스 피해자·유족들이 지난 7월9일 국가·지방자치단체·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메르스 피해자·유족들이 지난 7월9일 국가·지방자치단체·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폐렴 확인 뒤 “소용없는 약들” 추가

전파자-비전파자로 나눠 분석한 대책본부의 조사 결과와 겹쳐 읽으면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① 잘못된 기준이 적용되던 시기의 환자일수록 훨씬 오래 메르스 처치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됐다. ② 보건 당국의 실패는 환자의 폐렴과 맞물려 메르스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③ 메르스 관리 대상에서 제외된 뒤 병원 획득 폐렴을 거쳐 메르스에 이르거나, 폐렴을 안고 내원·입원한 뒤 병을 키워 메르스로 확진되는 패턴이 동일하게 반복됐다. ④ 전파자의 폐렴 악화에 정부의 오류가 한몫했다는 사실을 발표 당시 대책본부는 언급하지 않았다. 폐렴인데도 메르스 처치를 받지 못한 채 전파자가 됐다는 점이 사실 너머의 진실이다.

병원 획득 폐렴 환자들을 치료하던 의료진은 메르스와의 관련성 자체를 의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병원에 파견돼 있던 역학조사관들이 ‘밀접접촉 외 감염 가능성 배제’를 고수했기 때문이다. 42번째 확진자의 의무기록에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난다.

그는 5월19일 대상포진으로 평택성모병원 8109호에 입원했다. 8층에 머물렀던 환자가 1번째 확진자로 명명된 5월20일 7212호로 옮겨졌다(8층 폐쇄). 보건 당국과 병원은 그와 11번째, 12번째, 14번째, 27번째 확진자 등을 7층으로 내려보내 37번째, 39번째, 40번째, 43번째, 44번째 확진자 등과 합쳤다. 누가 메르스 바이러스를 가졌는지 모르는 채로 그들은 뒤섞였다(48쪽 참조). 접촉 경로가 “첫 번째 확진자와 같은 층·병동·병원” 등으로 표기된 환자들이 그렇게 감염됐다.

대상포진은 면역기능이 떨어진 사람에게 찾아온다. 42번째 환자는 첫 환자와 동일 병실에 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메르스 바이러스의 공격 가능성에서 제외됐다. 5월25일 발열이 시작되자 담당의는 세균 감염을 의심하고 항생제를 썼다. 폐렴이 확인된 뒤부턴 폐렴약과 기침약을 추가했다. 의무기록을 검토한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은 “바이러스 감염엔 소용없는 약들”이라고 했다. “이날부터 기침을 하고 있었다는 것은 이미 메르스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었다는 의미”라고 그는 봤다. 5월27일까지 평택성모병원이 외부에 의뢰한 검사들도 모두 메르스와는 무관했다. 이날 백혈구는 정상 수치를 보였다. “백혈구가 정상일 때 세균 감염 가능성은 극히 낮다. 그런데도 폐 상태가 계속 악화됐다면 다른 이유를 의심했어야 했다.”(정형준)

병원 휴원 전날(5월28일) 담당의는 서울의료원으로 보내는 ‘진료의뢰서’를 쓴다. 진료 소견엔 “병원 획득 폐렴으로 의심돼 항생제 치료 중”이라고만 적었다. 이때까지도 병원은 42번째 확진자와 메르스를 연결지어 생각하지 않았다. 이날 6번째 확진자가 밀접접촉 기준을 흔든 뒤에야 42번째 확진자도 1인실로 옮겨졌다. 그는 이튿날 밤 서울의료원으로 이송되자마자 확진 판정을 받는다.

5월30일 아침 담당의는 양성 결과를 확인하고 병원장에게 보고했다. 질병관리본부에서 파견 나온 역학조사관들과도 상의하고 본인도 검사를 받았다. 42번째 확진자의 접촉력을 추적하는 작업도 이뤄졌다. 42번째 확진자는 5월26일 오후 3시께 진료실에서 의사와 면담했다. 그가 진료실에 머문 때부터 1시간 전후(오후 2시30분~4시)로 해당 공간을 방문한 외래 환자들을 추렸다. 잘못된 기준이 만든 피해자의 접촉 경로를 파악할 때조차 역학조사관들은 ‘문제적 기준’을 고수했다. 수차례 어머니를 병문안한 딸과 면회객에겐 전화 연락도 가지 않았다. 5월28일 딸은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 밖으로 나가 식사를 했다. 격리 뒤에도 환자의 이동·면회·접촉은 통제받지 않았다. 그는 서울의료원 이송 직후 중태에 빠져 기계호흡에 의존하다 6월17일 새벽 사망했다.

감염병전문병원 예산은 전액 삭감

14번째 확진자도 폐렴을 앓았다. 5월13일 폐렴을 안고 평택성모병원 8110호에 입원했다. 5월20일 일시 퇴원했다가 이튿날 7106호로 재입원해 42번째 확진자 등과 섞였다. 5월25일 평택굿모닝병원으로 전원했다. 5월27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로 내원(5월30일 확진)하기까지 그도 메르스 처치를 받지 못했다. 그렇게 그는 ‘슈퍼병원’의 난맥과 만나 ‘슈퍼전파자’가 됐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7월28일 “이제 안심해도 된다”며 “일상생활을 정상화해달라”고 했다. 대책본부는 후속 조처를 위한 태스크포스로 재편됐다. 뚜렷한 사과나 문책은 없었다. 나흘 전 국회는 메르스 피해보상 추경예산으로 2500억원을 통과시켰다. 감염병전문병원 예산은 전액 삭감됐다. 국회 메르스대책특별위원회도 주목할 성과 없이 활동을 끝냈다.

의료민영화·영리화 저지와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등은 종식 선언 당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초동 대응 실패와 메르스 확산, 삼성서울병원 관리 부실, 허술한 국가방역체계를 진상 규명하라며 국정조사를 요구했다. ‘메르스 진앙지’에서 감염의 공포에 떨었던 평택 시민들도 분노했다. 7월29일 평택 시민 201명은 메르스 사태의 책임을 물어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과 공재광 평택시장을 검찰에 고발(감염병예방관리법·지방자치법 등 위반)했다. ‘국가의 실패’가 부른 억울한 죽음들이 책임지는 사람 없이 ‘종식’될 처지에 놓였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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