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법을 만든다. 이를 입법권이라고 한다. 행정부는 국회가 만든 법의 내용을 실천하는 집행기관이다. 법을 만드는 권한은 국회에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국회가 법을 만들면서 구체적인 내용을 모두 법에 적기 어려울 수 있다. 이럴 때 국회는 해당 법의 취지·목적 등 큰 골격을 정하고, 이 법의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행정부가 정하도록 맡긴다. 국회가 위임한 범위 내에서 실행 계획을 정한 것을 이른바 ‘행정입법’이라고 한다. 국회가 어떤 내용을 구체적으로 정하라고 범위를 정해줬기 때문에 ‘종속입법’의 성격을 지닌다. 대통령이 만든 대통령령, 총리가 만든 총리령, 장관이 만든 부령 등이 이에 속한다. 대통령령을 보통 시행령이라고 부른다.
새누리 정의화 국회의장도 의견 낸 적 있어
그런데 국회가 법을 만들면서 ‘이런 범위’ 내에서만 세부 규정을 만들라고 정했는데, 행정부가 그 법이 정해준 범위를 넘어선 ‘행정입법’을 만들면 어떻게 될까?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의 입법권을 무시하는 행정부의 월권행위가 될 수 있다.
지난 5월29일 국회에서 통과된 뒤 대통령이 거부권을 시사해 논란이 된 국회법 개정안은 바로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통제권을 더 강화한 법안이다. 기존 국회법 제98조의 2는 행정입법이 상위법인 해당 법률의 목적에 어긋나면 국회가 행정부에 이를 ‘통보’하고, 행정부는 처리 계획과 결과를 해당 국회 상임위원회에 보고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국회는 통보권을 넘어 ‘수정을 요구’하고,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수정·요구 사항을 처리한 뒤 그 결과를 해당 국회 상임위에 보고하도록 제98조의 2를 개정했다. 국회 법제실은 “이번에 개정된 내용은 국회의 적극적 시정 요구권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법 위에 군림하는 시행령(대통령령)’을 막기 위한 국회의 통제권 강화는 국회에서 꾸준히 제기된 문제였다. 새누리당 소속 정의화 국회의장도 행정입법이 법률의 위임 범위를 넘어설 경우, 국회가 정부에 ‘개정 요구’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낸 적이 있다. 이는 의장 직속 국회개혁자문위원회가 연구해 지난해 말 국회의장에게 보고한 국회운영제도개선안에 포함된 내용이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한나라당 대표이던 2005년에 국회의 입법권을 무력화하는 행정입법의 문제점을 지적한 일이 있다. 당시 그는 정부가 ‘정기간행물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신문법)에서 빠진 내용을 시행령을 통해 추진하려 하자, “입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박 대통령은 의원 시절이던 1998년엔 “국회가 행정입법을 통제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국회법 제98조의 2를 수정하는 개정안을 공동 발의(2000년 5월 자동 폐기)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런 과거에 비춰보면 통제권을 강화한 국회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최근의 모습이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이번에 국회법 개정안이 통과되자마자 청와대는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통제권 강화를 행정부의 권한을 침해하는 “삼권분립의 훼손”이라고 반박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청와대의 뜻에 맞춰 잘 움직이지 않는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대한 견제라는 해석과 함께,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에 대한 ‘청와대의 알레르기 반응’이 반복된 것이란 시각이 존재한다. 새누리당 소속의 영남권 중진 의원은 기자와 만나 “박 대통령이 과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왜일까? 이번 국회법 개정안이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을 고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고 짐작했다.
특히 ‘조사1과장’의 신분이 문제 돼실제 이번 국회법 개정은 입법권을 침해하는 행정부의 월권을 차단하려는 목적 외에 세월호 특별법의 취지를 훼손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을 바로잡으려는 야당의 요구가 관철된 측면이 크다. 여야는 지난해 말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를 구성해 진상 규명 조사, 안전사회 건설을 목표로 활동한다는 내용의 세월호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정부가 조사의 독립성을 보장한 특별법의 취지에서 벗어나, 조사 인원을 축소하고 공무원 개입 권한을 늘리는 시행령을 입법 예고하면서 유가족과 시민들의 반발을 불렀다. 정부는 여론을 고려해 시행령을 일부 손질해 5월11일 공포했다. 그러나 정부 파견 공무원이 특조위 운영에 관여하는 행정지원실장을 맡는 등 조사를 받아야 할 대상인 공무원이 특조위 활동에 크게 개입한다는 논란이 해소되지 않았다.
특히 특조위에서 진상 규명을 담당하는 핵심 부서인 ‘조사1과장’의 신분이 문제가 됐다. 정부가 공포한 시행령에서 조사1과장을 민간인(변호사 등)이 아닌 검찰 서기관(4급)이 맡도록 정했기 때문이다. 특조위 산하 진상규명국에는 조사1~3과가 있는데, 조사1과장은 진상 조사, 책임 규명을 위한 특검 요청과 청문회 진행 업무를 맡는다. 특조위의 핵심 실무 보직에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은 공무원을 앉히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이런 내용의 세월호 시행령을 이미 공포한 만큼, 새정치민주연합은 공포된 시행령을 ‘사후 수정’하기 위해 여당과 협상 끝에 국회법 제98조의 2를 개정하는 방법을 택했다. 새정치연합은 청와대와 여당이 강력히 추진하는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협조하면서, 국회법 개정안을 함께 통과시켰다. 법률의 입법 목적에서 이탈한 행정입법에 대해 수정을 요구하고, 그 처리 결과를 해당 국회 상임위에 보고하도록 바꾼 이번 국회법 개정안을 토대로, ‘조사1과장’을 민간인으로 교체하는 등 세월호 시행령을 수정해보겠다는 것이다.
메르스 확진 환자가 늘어나는 와중에도이번 국회법 개정은 세월호 특별법을 하위법인 시행령으로 훼손하려는 정부의 시도를 제도적으로 견제하는 조처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청와대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감염’ 확진 확자가 증가하던 상황에서 오히려 국회법 개정안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란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실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을 수정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세월호 특별법 소관 상임위인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가운데 개정할 사항을 먼저 의결해야 하는데 여당이 얼마나 협조할지, 야당이 얼마나 의지를 보일지가 관건이다. 또 국회가 수정·요구한 사항을 행정부가 ‘처리’하도록 국회법을 개정했지만, 여당 쪽에선 ‘처리’가 반드시 수정해야 한다는 강제성을 띠는 게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어 정부가 수정 노력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여당의 한 인사는 “정부 쪽에선 조사1과장의 경우 공무원이 해야 한다는 입장이 강하다. 진보 성향 (민간인) 인사가 맡으면 정부가 피곤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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