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을 주장하는 불법 결사단체.”
2014년 구호가 아니다. 1958년 1월 당시 검찰총장의 발표다. 남북 총선거를 통한 평화적 통일과 근로대중의 단결을 요청하는 진보당 정책은 북한이 주장하는 평화통일 노선과 매우 유사해 남한 정부를 전복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그해 2월8일 조봉암 등 진보당 관계자들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그리고 2월25일, 이승만 정권 공보실은 진보당의 등록을 취소해버린다. 정당이 다른 결사단체와 동일하게 취급되면서, 정부 처분만으로 강제 해산된 것이다.
<font size="3"><font color="#C21A8D">실질적 기본권 보장을 위해</font></font>
뼈아픈 역사는 4·19 혁명 이후 개헌 과정에서 정당보호·정당해산 조항 신설로 이어진다. 1960년 새 헌법 제13조 1항과 2항엔 “정당은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단,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헌법의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가 대통령의 승인을 얻어 소추하고 헌법재판소가 판결로써 그 정당의 해산을 명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정당 자유를 일반 집회·결사의 자유로부터 분리해 고도로 보장하도록 했다. 또 진보당 사건과 같이 정부의 일방적 처분에 의한 해산은 막겠다는 규정이다. 새로운 사회에 대한 기대는 곧 꺾이고 만다. 1961년 박정희, 1980년 전두환 군사정권이 잇따라 쿠데타로 집권했다. 정당은 줄줄이 해산됐고 민주주의는 숨을 죽였다.
그럼에도 세상은 변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민주화 열망을 담은 새 헌법을 만들어냈다. 군사정권 시절 죽어 있던 ‘헌법재판’(법률이나 명령이 헌법에 위반되는지를 심사하는 재판) 제도를 되살렸다. 실질적 기본권 보장과 권력 통제를 위해 1988년 헌법재판소가 문을 열었다. 시민들이 법원을 통하지 않고도 위헌심판을 구할 수 있는 헌법소원 제도가 마련됐다. 정당해산심판도 헌재의 몫이 됐다. 정치적 의사 형성의 중심축인 정당의 자유를 제한하는 건, 민주주의를 앞세워 민주주의를 파괴할 수 있는 위험을 동시에 지닌다. 그렇기에 정당 해산은 최후적으로 휘둘러야 하는 칼이다.
헌재는 12월19일 역사상 첫 정당해산심판을 통해 통합진보당을 해산시켰다. 세계적으로도 유사한 사례를 찾기가 쉽지 않다. 1951년 서독 연방정부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에 독일공산당 해산을 청구한다. 독일공산당의 지지율이 낮았기 때문에 해산 청구를 둘러싸고 격렬한 토론이 벌어진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장장 5년간의 심리 끝에 해산 결정을 내린다. 헌재는 정부의 해산 청구 1년여 만에 결정을 내렸다. 더불어 “통진당이 위헌적 목적을 정책으로 내걸어 곧바로 실현할 수 있고, 민주적 기본 질서를 파괴하려는 위험성을 제거하기 위해선 정당 해산 외 다른 대안이 없다”고 못박았다.
<font size="3"><font color="#C21A8D">“가장 효율적인 방식은 공론의 장과 선거”</font></font>그러나 오늘날 독일에선 정당 해산 제도가 민주적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데 효율적인 방안이 되지 못한다는 의견이 다수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장을 지낸 유타 림바흐는 에서 이렇게 말한다. “독일공산당 금지 이후에도 정당 해산을 하자는 주장이 크게 대두한 적이 있지만, 안정된 민주주의에서 적에 대처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은 공론의 장과 선거에서 제한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관철됐다.” 우리 역사에서 민주적 기본 질서를 유린하고 폭력을 행사한 집권 정당을 무력화한 건 법과 제도가 아닌 시민들이었다. 이러한 시민의 힘을, 민주화의 산물인 헌재가 간과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font color="#C21A8D">■ 참고 문헌</font> (2004·한국공법학회), (2010·송석윤), (2009·이범준), (2008·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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