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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방어권까지 뺏으려 하나

진술 거부 권유 등 변호인 조력권 행사했다고 변호사 징계 나선 검찰…지난한 투쟁으로
얻은 헌법상 권리는 제한당하고, 전문가들 “무기 평등 원칙에 반한다” 비판
등록 2014-11-26 14:47 수정 2020-05-03 04:27
전문: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수사기관이 작성하는 ‘피의자 신문조서’의 첫머리에 등장한다. ‘변호인을 참여하게 하는 등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다.’ 헌법상 보장된 시민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헌법 제12조 4항은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공정한 법적 절차를 위해선 피의자가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 수사기관과 실질적으로 대등한 지위를 지녀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현실은 오랫동안 암흑이었다. 수사기관은 변호인 조력권을 자의적으로 제한해왔다. 법률도 아닌 ‘규칙’이나 ‘운영지침’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왔다. 헌법상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변호사들은 싸워야만 했다. 1990년대부터 변호인 접견교통권, 수사기록 열람·등사권, 피의자 신문 참여권 등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 하나둘 인정됐다.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형성됐을 때 형사소송법이 바뀌었다. 2007년의 일이다.
2014년 11월 한국 사회의 시곗바늘은 거꾸로 돌아간다. 검찰은 변호사 7명을 징계해달라고 대한변호사협회에 신청했다. 권영국 변호사 등 5명은 지난해 서울 대한문 앞에서 불법집회를 한 혐의(특수공무집행방해 등)로 재판에 넘겨졌다. 나머지 2명은 위법행위가 없지만 변호인 조력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했다고 했다. 김인숙 변호사는 경찰을 폭행한 피의자에게 진술거부권을 권유하고, 장경욱 변호사는 간첩사건 피고인에게 거짓 진술을 종용했다고 검찰은 주장했다. 검찰 관계자는 “변론권을 무제한 허용할 경우 변호사가 진실 의무를 망각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변호인 조력권을 둘러싼 지난한 투쟁이 다시 반복되는 셈이다. _편집자


검찰이 변호인 조력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한 변호사 2명을 징계해달라고 대한변호사협회에 신청했다. 변호인 조력권을 놓고 수사기관과 변호사들이 수십 년간 줄다리기를 해왔지만 징계 신청은 이례적이다. 예비 법조인들이 사법연수원 수료식에서 사회정의 실현과 인권 수호 등에 힘쓰겠다는 내용의 ‘연수생 서약’을 하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검찰이 변호인 조력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한 변호사 2명을 징계해달라고 대한변호사협회에 신청했다. 변호인 조력권을 놓고 수사기관과 변호사들이 수십 년간 줄다리기를 해왔지만 징계 신청은 이례적이다. 예비 법조인들이 사법연수원 수료식에서 사회정의 실현과 인권 수호 등에 힘쓰겠다는 내용의 ‘연수생 서약’을 하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2000년 4월 제16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시민단체들이 ‘총선시민연대’를 꾸렸다. 공동대표는 박원순·최열씨였다. 이들은 공천에 반대하는 후보자 명단을 공개했고, 검찰은 선거법을 위반하거나 명예훼손이라며 소환했다. 변호인은 피의자 신문에 참여해 조력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검찰에 요청했다. 검찰은 거부했다. 이유도 밝히지 않았다. 변호인 없이 피의자 신문조서가 작성됐다.

2003년 9월 재독학자 송두율 교수가 37년 만에 귀국했다.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이미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였다. 불구속 상태에서 송 교수가 9차례 피의자 신문을 받을 때 변호인은 참여했다. 하지만 10월24일 송 교수가 구속된 뒤에는 검사가 변호인 참여를 거부했다. 변호인 없이 피의자 신문조사가 작성됐다.

밤샘조사 등 가혹행위 사라지지 않았던 이유

헌법상 기본권리인데도 수사기관은 피의자 신문에 변호인이 참여하는 것을 이렇게 막아왔다. 왜 그럴까. 피의자 신문이 그만큼 중요해서다. 피의자 신문은 수사기관에선 자백이나 증거를 획득할 수 있고 피의자의 입장에선 범죄 혐의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회다. 신문 내용은 기소를 결정하거나, 재판에서 유무죄를 결정하는 핵심 증거도 된다.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폭언, 구타, 밤샘조사 등 가혹행위가 사라지지 않았던 이유다. 그렇게 해서라도 수사기관은 확실한 유죄 증거 ‘자백’을 바란다.


변호인 조력권이 미국에서 꾸준히 확대된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역풍이 불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입지가 좁아진 수사기관의 일격이었다. 변호인의 피의자 신문 참여를 형사소송법에 집어넣으면서 ‘참여권 제한’을 폭넓게 인정하도록 규정했다.


2002년 10월 서울지검에서 피의자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이후 다양한 대책이 쏟아졌는데, 그중 하나가 변호인 참여권 보장이었다. 법무부는 ‘변호인의 피의자 신문 참여 운영지침’과 ‘인권보호수사준칙’을 제정했다. 하지만 허울뿐이었다. 변호인 참여 권은 여전히 수사기관의 손바닥 위의 문제였다. “변호인의 요청이 있을 때 피의자 신문 참여를 허용한다. 다만 수사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허용하지 아니한다.”(피의자 신문 참여 운영지침) 수사에 현저한 지장이 있다고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 뒤 변호사가 반격에 나섰다. 총선시민연대 사건과 송두율 교수 사건에서 헌법이 보장한 변호인의 조력권을 검찰이 침해한다며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에 심판을 요청했다. 2003년 11월 대법원이 먼저 답했다. “형사소송법에 명문 규정은 없지만 헌법에 비춰볼 때 구속 피의자가 신문을 받을 때 변호인이 참여를 요구할 수 있고 그때 수사기관은 이를 거절할 수 없다.”(송두율 교수 사건) 2004년 9월엔 헌법재판소가 맞장구쳤다. “수사 절차 개시부터 재판 절차 종료 때까지 언제나 피의자가 변호인을 옆에 두고 조언과 상담을 구하는 것은 가능하다. 따라서 불구속 피의자가 피의자 신문 때 변호인의 조언과 상담을 원한다면 수사기관은 피의자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다.”(총선시민연대 사건) 이로써 구속·불구속 상관없이 피의자 신문에 변호인이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변호인 참여권을 제한할 수 있는 기준으로 ①신문방해 ②수사기밀 누설 ③위법한 조력 등 세 가지를 제시했다. 검찰이 이를 객관적이고 명백하게 입증해야 변호인 참여권을 제한할 수 있다고 못박았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한국판 미란다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변호인 조력권 확대시킨 미란다 판결

미국에서는 1964년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변호인 조력을 인정하는 에스코베도 판결이 등장한다. 살인죄로 체포된 피의자가 경찰에서 몇 시간 동안 신문을 받으면서 변호사를 만나야겠다고 수차례 요청했다. 경찰이 그 요구를 거절하고 신문해 자백을 받아냈다. 법원은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자백을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1966년 미란다 판결은 변호인 조력권을 더욱 확대시켰다. 경찰이 피의자 신문을 할 때 변호인 참여를 희망하는지 묻고 피의자가 변호인 참여를 원할 때는 즉시 신문을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이른바 ‘미란다 원칙’이다. 1990년에는 새로운 원칙이 또 추가됐다. 피의자가 변호인 의뢰 의사를 밝힌 뒤에는 변호인이 입회하지 않고는 조사를 진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울산 지역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 사건 관련 서류가 쌓여 있다. 박승화 기자

울산 지역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 사건 관련 서류가 쌓여 있다. 박승화 기자

이처럼 변호인 조력권이 미국에서 꾸준히 확대된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오히려 역풍이 불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입지가 좁아진 수사기관의 일격이었다. 2007년 변호인의 피의자 신문 참여를 형사소송법에 집어넣으면서 ‘참여권 제한’ 역시 폭넓게 인정하도록 규정했다. 형사소송법 제243조의 2 제1항을 보면, “수사관이 변호인을 피의자와 접견하게 하거나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피의자에 대한 신문에 참여하게 해야 한다”고 돼 있다. 핵심은 제한 기준인 ‘정당한 사유’다. 수사기관이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판단하면 변호인에게 언제라도 나가라고 명령할 수 있다는 얘기다. ‘수사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경우’와 다를 바 없다. 대법원이 앞서 제시한 제한 기준(①신문방해 ②수사기밀 누설 ③위법한 조력)보다 훨씬 추상적이고 불명확한 개념이다. 다시 칼자루는 수사기관이 쥐었다.

한 사례가 있다. 2008년 6월18일 오전 10시. 변호인은 사기 혐의로 고소된 의뢰인 김아무개씨와 함께 검찰 조사실에 들어갔다. 두 번째 검찰 조사였다. 변호인은 이날 조사 과정에서 녹취를 요구했다. 수사관의 유도성 질문을 문제 삼기 위해서였다. 수사관은 ‘녹취 신청’을 철회하라고 했다. 변호인이 이를 거부하자 이번에는 피의자 쪽이 ‘알아서’ 녹음하라고 했다. 변호인은 마침 갖고 있던 휴대용 MP3를 책상 위에 꺼내놓았다. “변호인! 이쪽으로 떨어져 앉으세요.” 피의자와 나란히 앉아 있던 그에게 3m가량 물러나라는 것이다. “그렇게 명령할 권리는 없습니다.” 변호인이 따졌다. “그러면 이 방에서 나가세요.” 변호인은 검찰청을 나왔다. 2008년 9월 대법원은 “수사관의 퇴실 명령은 정당한 이유 없이 변호인의 피의자 신문 참여권을 침해한 처분”이라고 판단했다.

사법부의 판결에도 수사기관은 꿈쩍하지 않는다. 내부 규칙에 여전히 ‘수사에 현저히 지장을 줄 우려가 있는 경우’를 넣어 변호인 참여권을 제한한다. 예를 들면 수시로 피의자와 변호인이 상의할 수 없도록 한다. 변호인이 피의자를 대신해 답변하거나 특정한 답변 또는 진술 번복을 유도하지도 못하게 한다. 신문 중에는 수사관의 허락이 있어야만 변호인이 의견을 진술할 수 있다. 변호인 선임계가 없으면 피의자 신문에 아예 들어갈 수도 없다. 긴급체포 됐을 때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이제 헌법이 보장한 진술거부권까지 걸고넘어질 태세다. 경찰의 피의자 신문 조사 때 진술거부권을 권유한 김인숙 변호사에게 징계를 청구한 것이 그 신호탄이다(24~25쪽 참조). 하지만 법률가들은 고개를 내젓는다. 김대웅 변호사는 2008년 논문 ‘불구속 피의자의 변호인의 보조력을 받을 권리’에서 이렇게 밝혔다. “피의자에게 부분적 또는 전체적으로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라고 변호인이 권유하는 것은 피의자에게 보장된 권리를 권하는 것에 불과하다.” 김용수 변호사도 동의했다. “진술거부권 권고는 피의자 방어권의 본질적 요소다. 검사의 수사에 지장이 있다 하더라도 변호인 참여권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권리는 수사기관의 편의가 아니라 적법절차와 피의자의 인권보장을 위한 것이다.”(‘변호인의 피의자 신문 참여권에 관한 연구’·2012)

변호인은 피의자의 ‘창’과 ‘방패’다

최석윤 한국해양대 교수도 “피의자에게 변호인은 수사기관의 신문에 대비하기 위해 고용된 ‘무기’인데 그 무기를 자신이 가장 불리한 시기에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무기 평등 원칙에 반한다”고 했다.(‘변호인의 피의자 신문 참여권에 대한 비교법적 연구’·2012) 변호인은 수사기관의 ‘병풍’이 아니라 피의자의 ‘창’과 ‘방패’라는 얘기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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