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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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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냉전’ 시대의 종말

우크라이나와 중동 사태 계기로 미국과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 시험대에
등록 2014-07-22 15:37 수정 2020-05-03 04:27

2014년 7월17일은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인 이른바 ‘포스트 냉전’ 시대의 국제분쟁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되는 날로 기록될지 모른다.
내전이 벌어지는 우크라이나 동부 상공에서 승객 295명을 태운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가 이날 미사일을 맞고 격추됐다. 서방과 러시아가 뒤에서 으르렁거리는 우크라이나 내전은 이 사건을 기점으로 양쪽의 전면 개입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우크라이나를 놓고 미국 등 서방과 러시아가 벌이는 대결은 이제 그 우열을 가릴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같은 날 이스라엘은 열흘간 공습을 가하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지상군 투입을 감행했다. 가자지구로의 지상군 투입은 이 지역의 분쟁을 인근으로 확산할 우려를 안고 있다. 가자지구에서의 전면적 지상전은 주변 지역으로 분쟁의 불똥을 튀길 것이 우려된다. 과거 팔레스타인 분쟁이 항상 레바논으로 번졌던 전철이 어른거린다. 더욱이 시리아 내전과 이라크 내전이 악화되는 상황은 이 모든 분쟁을 하나로 연동시킬 수 있다. 이미 하나의 전쟁터로 연동된 시리아와 이라크 내전이 레바논-팔레스타인까지 포함된 하나의 전쟁터로 확대되면서 중동에 광역전쟁의 먹구름이 끼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중동의 사태는 ‘포스트 냉전’의 종말을 확인하는 분쟁이 될 수 있다.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세계에서 미국이 전일적인 파워를 행사하는 포스트 냉전, 즉 ‘냉전 이후 시대’는 이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우크라이나 내전은 강대국들이 격돌하는 전통적인 지정학적 전쟁의 연장선상에 있다. 반면 현재 중동전쟁의 확산은 국가나 정부가 아닌 각종 종파들의 부상이 배경이다. 국가와 정부의 몰락과 약화가 남긴 공간에 종교적 분파, 부족, 기존 국가 내의 다수파와 소수파 민족, 국제 이슬람주의 세력들이 각개약진 혹은 합종연횡 하면서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을 벌이고 있다.
두 전쟁은 기존 강대국과 국가의 힘을 시험하고 있다. 새로운 질서를 만들 새로운 형태의 세력들을 시험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내전은 미국과 러시아, 특히 미국의 힘을 시험대에 올렸다. 지난해 말부터 악화된 우크라이나 내전을 미국은 말로써만 위협하며 무력하게 지켜보기만 했다. 그사이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우크라이나 동부도 반군세력을 앞세워 사실상 분리독립시키고 있다. 이제 미국은 말레이시아 여객기의 미사일 피격을 계기로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처지로 몰렸다.
확산되는 중동 분쟁은 이미 국가와 정부의 공백을 메우는 새로운 형태의 세력들의 백화제방이 되고 있다. 시리아와 이라크 북부를 점령하고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로 진공하는 이슬람주의 무장세력 ‘이라크레반트이슬람국가’(ISIL)는 이를 상징한다. 종교·민족·부족·이념 등에 바탕한 ‘비국가 인자’(non-state actor)들의 부상은 국가에 바탕한 근대 이후의 국제질서를 흔들고 있다.
전통적 강대국들의 힘의 우열을 시험하는 우크라이나 내전, 국가가 아닌 세력들의 부상을 시험하는 중동 분쟁은 결국 미국과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를 시험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힘의 약화가 배경이다. 두 곳의 분쟁은 사회주의권 이후 미국이 세계를 전일적으로 주도하던 ‘포스트 냉전’ 시대의 종말을 재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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