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트나와티 수테드조(40)의 말을 전하던 통역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예전엔 내가 이런 일을 하게 될 줄 정말 몰랐어요. 다른 이의 삶을 변화시키고 살아갈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게 보람 있어요”라고 말한 라트나와티의 눈도 촉촉해졌다. 그 옆에선 한 청각장애인이 묵묵히 종이로 신랑·신부 인형을 만들고 있었다. 통역은 갑자기 가슴에서 뜨거운 게 복받쳐올랐다고 했다.
장애인이 만든 제품이라며 납품 거부한 곳도5월23일, 뜨겁고 습한 적도의 나라,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 남부 주택가에서 라트나와티와 청각장애인 노동자들을 만났다. 라트나와티는 인도네시아 청각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기업인 ‘프레셔스 원’(Precious One)을 만들었다. 인도네시아에서 생소한 개념인 사회적 기업을 2010년 설립해, 현재 2곳의 작은 공장에서 청각장애인 34명을 고용해 인형, 가방, 화장지 상자 등을 만든다.
“2010년 건강이 좋지 않아 두 달을 쉬어야 했어요. 몸이 안 좋으니 많은 생각이 들었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까. 일자리도 없고 먹고살기도 힘들 텐데.’ 몸이 회복되면 장애인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라트나와티는 비서 일을 그만두고 봉제사업을 시작했다. “우연히 어떤 가게에 들어갔는데 조각천으로 만든 쿠션이 있었어요. 그때 이거다 하는 생각이 번뜩 났어요.”
재봉틀 한 대로 시작했다. 자신의 집에 재봉틀을 두고 청각장애인 1명을 고용해 기술을 배우게 했다. “정말 가슴이 조마조마했죠. 사업의 전 재산인 재봉틀이 고장날까 무서웠고, 만약 장애인 노동자가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사업을 할 수가 없었어요.” 청각장애인 노동자를 교육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다리나 손 등의 신체적 장애는 몸이 불편해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어 괜찮지만, 청각장애는 듣고 말하는 게 어려워 가르치기가 수월하지 않다. 종이공예는 한국인에게 배웠다고 했다.
제품을 파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장애인이 만들었다는 이유로 백화점 납품을 거부당하기도 했어요. 위축되지 않았죠. 오히려 장애인에 대한 이미지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라트나와티는 부지런히 슈퍼마켓과 기업의 문을 두드렸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5200달러(미국 중앙정보국(CIA) 팩트북) 수준에 불과한 가난한 나라지만 ‘프레셔스 원’의 호소에 고급 슈퍼마켓이 납품을 받았고, 기업은 사회공헌 차원에서 대규모로 제품을 구매했다.
그 덕분에 여성 청각장애인 시티는 이곳에서 일하며 경제적 안정을 찾았다. 시티는 “전에는 청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일자리를 거절당하거나 쫓겨나기도 했어요. 이젠 기술도 배우고 일도 하면서 안정적인 수입이 생겨 정말 좋아요”라고 띄엄띄엄 말했다. 실업률(6.6%)이 높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낮은 이곳에서 청각장애인이 일을 갖기는 어렵다. 시티는 이곳에서 같이 일하는 남편과 함께 10개월 된 아이와 ‘희망’을 키우고 있었다.
‘부끄럽다’던 엄마가 ‘자랑스럽다’고라트나와티는 “부모님이 사업을 하는 데 동의하지 않았어요. 어머니는 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것을 보고 ‘나를 부끄럽게 하는 행동이다’라고 말할 정도였어요. 그러다가 2012년 인도네시아의 가장 큰 신문에 내 이야기가 소개되자, 다른 지방에 사시는 엄마가 이 기사를 보고 우셨어요. 그땐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씀하셨죠”라고 말했다.
“우리 이야기를 듣고 길거리에서 구걸만 하던 사람들도 찾아와요.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주고 사회의 인식을 바꾸는 일을 계속해야죠.” 촉촉했던 라트나와티의 눈이 다시 웃었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이완 기자 wani@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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