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후의 권력기관’.
규제개혁위원회(규개위)의 또 다른 이름이다. 누구나 아는 기관은 아니지만, 누구나 그 영향력 아래 있다는 뜻이다. 이 이름에 걸맞은 역할을 규개위는 하고 있을까. 규개위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로 1998년 설립된 뒤, 매년 수천 건에 이르는 규제의 운명을 결정해왔다. 2012년 한 해에만 신설·강화되는 규제 1598건(비중요 규제 포함)을 심사했고, 기존에 있던 규제 1413건을 구조조정했다. 행정기본규제법에 따라 규개위는 모든 정부 부처가 새로 만들거나 강화하려는 규제의 타당성을 심사한 뒤 철회 또는 개선 여부를 권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IMF 권고로 탄생한 막후 권력기관
그러나 규제의 옥석을 공정하게 가려내야 하는 규개위는 늘 편파성 논란에 휘말려왔다. 기업의 자유로운 영업과 국민의 편리한 생활이라는 규제 완화의 양대 핵심 목표가 상충될 경우, 기업의 편을 들어주는 사례가 잦았던 까닭이다. 지난 2월, 규개위는 편의점 심야영업 강제를 금지하는 내용의 가맹사업법 시행령 개정안을 공정거래위원회의 당초 입법예고안보다 후퇴시켰다. 본사 의견을 들어, 가맹점주가 자율적으로 영업할 수 있는 시간대를 오전 1~7시에서 오전 1~6시로 단축시킨 것이다. 2012년 증권·보험·신용카드 등 제2금융권의 대주주 요건 심사 강화 규제가 ‘금융회사지배구조법’ 제정안에서, 2011년 최고 연 39%의 고금리를 부르는 대부업체와 저축은행 등의 다단계 대출 중개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이 대부업법 개정안에서 사라진 원인도 규개위의 ‘삭제 권고’였다.
친기업적인 결정은 친기업적인 위원회 구성에서 나온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재 22명의 규개위원(최대 25명) 가운데 정홍원 국무총리(사진 왼쪽) 등 7명은 정부 인사, 나머지는 민간위원으로 구성된다. 다수결로 의사결정이 이뤄지니, 민간위원 5명만 확보하면 정부의 입맛대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게다가 민간위원은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 중에서 대통령이 위촉한다. 대부분 친기업적이던 과거 정부에서 친기업적인 규개위 권고가 줄줄이 나온 배경이다.
현재 민간위원장인 김태준 동덕여대 교수(사진 오른쪽)의 이력만 봐도 단번에 알 수 있다. 대표적 규제완화론자로 꼽히는 그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이명박 전 대통령 캠프에 몸담았고, 2008년 총선에는 한나라당에 공천을 신청했다. 지금은 산업은행 리스크관리위원장 겸 사외이사(4월26일 임기 종료)를 맡고 있다. 폴리페서이자 반(半)기업인인 그가 규개위의 중책을 맡고 있는 것이다.
시민단체와 노동자는 위원회 구성에서 아예 배제돼 있다. 현재 민간위원 15명 가운데 13명이 교수, 1명은 연구원이다. 각계각층의 이해관계를 따져 규제의 존폐를 논해야 할 규개위가 ‘함량 미달’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의 경험담이다. “과거에 전문가로 규개위 회의에 잠깐 참석한 적이 있다. 매우 중요한 규제를 다루는 위원들은 전문성도 없고 진정성도 떨어져 보였다. 규제를 통해 발생하는 비용과 보호하려는 공적 가치를 따져보는 노력을 찾아볼 수 없었다.”
민간위원인 한 교수는 이에 대해 “(연구 분야가 달라) 각계의 대표성을 지닌 위원들은 다양한 이해를 대변하며, 논리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려고 노력한다. 규제영향평가 등 각종 자료에 근거해, 찬반 토론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정반합을 찾아가려 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규개위의 노력을 확인할 방법은 없다. 해당 규제에 관한 규개위의 심사 과정과 결과의 요약본만 공개되기 때문이다. 회의에서 어떤 논의가 얼마나 심도 있게 이뤄졌는지는 투명하게 알려지지 않는다.
“교수들만 모아놔선 안 된다”
규제개혁위원장을 지낸 강철규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의 조언이다. “규개위는 교수만 가지고는 안 된다. 다양한 집단을 대표하는 시민단체나 노동자 등이 포함돼야 하고 모두에게 그 결과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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