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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강혜정(37·가명)씨는 요즘 마음이 심란하다. 두 아이가 다니는 당산초등학교 바로 옆에 관광호텔이 들어설 예정이기 때문이다. 호텔을 세우려는 사업자는 단란주점 등 유흥시설이 없는 ‘가족호텔’이라고 설명하지만 마음은 불안하기만 하다. “영등포구에 있는 다른 관광호텔도 결국 ‘러브호텔’이 되는 걸 봐왔어요. 이 관광호텔은 그러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한창 호기심 많은 아이들은 학교 앞을 지나다니며 ‘저 건물 뭐야?’ ‘저 사람 누구야?’라고 물을 게 뻔했다. 그는 “대답해줄 말을 아직 못 찾았다”고 했다. 그는 6년 동안 살아온 아파트를 떠날 생각도 하고 있다. “학부모들이 아무리 아이의 교육이 중요하다고 해도 정부는 듣지 않잖아요. 한마디로 ‘싫으면 떠나라’는 건데, 정말 누구의 정부인가요.”
학습·주거권보다 앞서는 호텔영업권?학부모와 주민이 반대하면 호텔 건립 계획이 무산될 것이란 그의 실낱같은 믿음은 지난 3월20일 깨졌다. 그날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점검회의)에 관광호텔 사업자인 (주)한승투자개발 한 임원이 참석해 “학교보건법에 따르면 나는 학생들에게 유해한 시설을 개발하려는 파렴치한 사회악이 된다”고 토로했다. 그의 발언은 방송 전파를 타고 생중계됐다. 사연은 이랬다. 당산초등학교와 170m 거리에 있는 사업 예정 부지는 학교보건법 시행령이 규정한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 중 ‘상대정화구역’(학교 경계선 200m 이내)에 속해 호텔을 지으려면 교육청 산하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회(학교정화위)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주)한승은 심사가 부결되자, 이런 결정이 부당하다며 서울시교육청 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냈다. 행정심판위원회는 호텔 안에 유해시설을 두지 않는다는 단서를 달아 조건부 재결을 해준다. 그러나 최종 사업 승인 권한이 있는 영등포구청이 학부모와 주민의 반대 등을 이유로 승인을 연기하자, 직접 박 대통령에게 ‘조속한 승인’을 호소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현실에도 안 맞는 편견으로 인해서 청년들이 많이 취직할 수 있는 일자리를 다 막는 것은 거의 죄악이라고 생각한다”며 힘을 실어줬다. ‘당산초등학교 옆 관광호텔’은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는 규제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모든 정부 부처가 일사천리로 움직였다. 닷새 뒤인 3월25일 안전행정부는 영등포구청에 “호텔 건립 사업 계획을 조속히 승인하라”고 권고했다. 3월27일엔 문화체육관광부가 유해시설이 없는 관광호텔을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에 지을 수 있도록 관광진흥법 개정을 추진하고, 교육부는 학교정화위의 심사 기준을 통일하는 훈령을 4월 중 제정한다고 발표했다.
자녀의 학습권과 동네 주거환경을 지켜달라는 학부모와 주민의 바람은 외면당했다. (주)한승은 확실하게 ‘민원’을 해결했다. 대한항공도 ‘반사이익’을 누리게 생겼다. 대한항공은 2008년부터 서울 종로구 경복궁 인근에 있는 옛 주한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 터에 7성급 호텔을 지으려고 추진해왔다. 그런데 근처에 풍문여고와 덕성여중·고가 있는 터라 학교정화위의 승인을 얻지 못했다. 대한항공은 행정소송을 냈지만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특급관광호텔의 건립 규제 완화가 절실하다”고 읍소하기도 했다. 이에 화답하듯 박 대통령은 “(유해시설이 없는 관광호텔을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에도 설치할 수 있는 내용 등을 담은) 관광진흥법이 통과되면 약 2조원의 투자와 4만7천여 개의 고용이 창출된다”(2013년 11월 국회 시정연설)고 강조했다. 그러더니 이번엔 (주)한승 덕에 숙원을 이룰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지난 3월26일 논평을 내어 “대한항공 호텔 부지는 학교 주변일 뿐만 아니라 경복궁, 북촌마을, 창덕궁과 이어지는 역사·문화의 중심지다. 학습권과 부지의 공공가치를 볼 때 규제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 재벌기업들은 마치 규제인 양 한목소리로 규제 철폐를 외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원수” “암덩어리”… 작동 않는 공론장‘학교 옆 호텔’만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규제 개혁’이라는 깃발을 치켜든 지 일주일 만에 본색을 드러냈다. 3월20일 점검회의에서 기업인들을 불러다놓고 현장에서 건의를 들은 과제 52건 중 79%인 41건이 받아들여졌다. 3월27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후속 추진계획에 따르면, 대부분 올해 안에 법 개정 등 ‘빗장 풀어주기’를 끝낼 계획이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 어떤 규제가 필요한지 아닌지, 좋은 규제와 나쁜 규제를 구분짓는 기준은 무엇인지 등 사회적 논의는 원천 봉쇄됐다. 놀이공원에서 음식을 파는 푸드트럭 허용, 승인 없이 튜닝할 수 있는 자동차 범위 확대 등 생활밀착형 일부 규제도 풀렸다. 하지만 이와 함께 4~10월 의사·환자 간에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분양가상한제를 원칙적으로 폐지하기로 하는 등 그동안 논란이 돼온 규제 완화도 이뤄졌다.
규제는 원수이자 암덩어리. 규제 개혁을 가로막는 공무원은 국민 소망을 짓밟는 죄악을 저지르는 존재. 박근혜 대통령 특유의 현란한 말잔치가 펼쳐지는 가운데, 정작 중요한 규제 개혁의 방향과 민주적 의사결정 절차는 실종돼버렸다.
공인인증서를 둘러싼 논란은 이번 규제 개혁 논의가 얼마나 준비되지 않았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최근 방영된 우리나라 드라마가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어 중국 소비자들이 주인공이 입고 나온 의상 등을 사기 위해 한국 인터넷 쇼핑몰에 접속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만 요구하는 공인인증서 때문에 구매에 실패했다고 한다.” 3월20일 점검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한 발언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큰 화제가 됐다. 박 대통령이 언급한 의 ‘천송이 코트’가 대체 어떤 제품이냐는 반응부터, “공인인증서를 없애겠다고 약속한 것도 아닌데 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한 50%쯤 올라간 것 같다. 적어도 온라인에선. 다들 거품 물고 반기는 분위기”(트위터리안 @phil***)라며 ‘의외’의 지적에 환호하는 반응도 많았다. 공인인증서는 2000년부터 인터넷뱅킹과 전자상거래 등에서 개인 신분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사용돼왔다. 웹 브라우저에서 공인인증서를 사용하려면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만든 액티브X라는 부가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하는데, 보안에 취약한데다 컴퓨터 시스템에 부담을 준다는 측면에서 ‘공인인증서 의무화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는 수년간 시민사회단체와 인터넷 업계의 비판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점검회의 이후 벌어진 상황은 한 편의 촌극을 보는 듯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일선 정부 부처는 허둥거렸다. 공인인증서는 온라인상의 인감증명서와 비슷하다. 한국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외국인들로서는 공인인증서를 내려받을 길이 없다. 현재 온라인에서 30만원 이상을 결제하려면 공인인증서가 반드시 필요하다. 반면 대부분의 외국 쇼핑몰에선 신용카드 번호만 있으면 간편한 결제가 가능하다. 여기에 주목한 한 정부 관계자는 “외국인은 공인인증서 없이도 온라인 결제를 허용키로 했다”고 밝혔다가 거센 후폭풍을 맞았다. 공인인증서 폐지 운동에 앞장서온 김기창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트위터에서 “저는 공인인증서 없이 국내 쇼핑몰에서 결제하기 위해 지금 해외에 나와 있습니다 :)”라며 정부의 빗나간 대책을 비꼬았다. 부처 간에 엇박자도 나왔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액티브X 기반의 공인인증서를 대신할 결제 수단을 만들겠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공인인증서가 필요 없는 해외 소비자 전용 쇼핑몰을 만들겠다”고 긴급 처방전을 쏟아냈다. 결국 3월27일 정부는 내·외국인 모두 공인인증서를 사용하지 않아도 전자상거래가 가능하도록 전자금융감독규정 시행세칙을 개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리했다.
‘규제 만능주의’ 잘못이지만…정부가 중국인 소비자의 ‘역(逆)해외 직구’를 확대하기 위해 공인인증서 등의 규제는 풀어주려 하면서, 정작 국내 소비자들의 해외 직구는 막으려 한다는 볼멘소리도 확대됐다. 한 트위터리안(@mi******)은 “박 대통령이 액티브X 때문에 중국에서 한국 쇼핑몰 직구를 못한다고 언급한 것은 그럴듯하지만, 앞뒤가 맞으려면 국내 소비자들을 영원히 ‘호갱님’(어수룩한 손님을 뜻하는 인터넷 은어)으로 만드는 해외 직구 규제 추진부터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해외 직구 규모는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섰다. 다양한 제품을 알뜰하게 구매하려는 소비자가 늘어나서다. 경제단체들이 최근의 해외 직구 증가세를 내수위협 요인으로 꼽을 정도다(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 제품의 판로확대 방안 연구’).
아직 해외 직구를 규제하는 본격적인 시도는 없지만, 해외 직구족들은 정부가 조만간 규제 방안을 내놓을 것을 우려한다. 실제 관세청 관계자는 “현재 난립하고 있는 구매대행업체들은 100원, 200원 경쟁을 하면서 소비자들을 사로잡으려고 탈세를 할 가능성이 크다. 공정한 시장 질서를 위해 이런 구매대행업체들을 규제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월부터는 여신금융협회가 관세청에 넘겨주는 해외 신용카드 ‘요주의’ 명단 규모도 늘어났다. 관세법 개정으로 통보 기준이 1년에 1만달러에서 1분기 5천달러로 바뀌면서 대상자가 많아진 탓이다. 7년 전부터 아이 옷과 육아용품 등을 해외 직구로 구입해온 손은지(37)씨는 “엄마들은 싸고 질 좋은 제품을 사는 게 중요하다. 정부가 규제를 하기 전에 국내 가격 거품을 빼려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IMAGE3%%]시대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없어지거나 조정돼야 할 규제가 있는 건 맞다. 지난 15년 동안 규제 등록 건수는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를 보여왔다(37쪽 표 참조). 각종 규제를 신설해 손쉽게 문제를 해결하려던 ‘규제 만능주의’ 탓이다. 특히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정보기술(IT) 같은 분야에서는 규제 개혁이 필수적이다. 국내에서 사실상 ‘먹통’이 된 구글 지도 문제만 해도 그렇다. 국내법은 지도 데이터의 해외 반출을 금지하고 있다. 법규상 국토교통부 장관의 허가를 받으면 되지만, 지도 데이터를 담은 서버가 해외에 있는 구글과 애플 등에는 ‘국가 안보상 이유’로 해외 반출이 금지됐다. 네이버와 다음은 똑같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외에서 지도 서비스를 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 구글 지도는 기본적인 ‘보기’ 서비스만 제공될 뿐, 실시간 교통정보나 3D 지도 등의 서비스가 제구실을 하지 못한다. 정김경숙 구글코리아 상무는 “국내 모바일에서도 구글 지도를 제대로 볼 수 있게 해달라는 건 공인인증서·액티브X와 마찬가지로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달라는 차원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을 여행할 때 구글 지도를 다국어 버전으로 사용하면 한국 관광산업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는 올해 안에 규제 총량을 10% 감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1만5269건인 등록 규제 건수를 1만4천 건대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임기가 끝날 때까지 적어도 20% 이상 감축하는 게 최종 목표다. 그러기 위해 규제비용총량제라는 개념도 도입했다. 규제를 신설할 때 국민과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에 상응하는 다른 규제를 없애는 방식이다. 그러나 문제는 규제의 ‘양’이 아니라 ‘질’이다. 즉, 어떤 규제를 없앨 것이냐다. 필연적으로 규제는 여러 관계자가 얽혀 있을수록 서로의 이해가 부딪칠 수밖에 없다. 이른바 ‘덩어리 규제’는 해법을 찾기 쉽지 않다. 16살 미만 청소년들의 심야 시간 게임 이용을 금지한 ‘셧다운제’를 놓고 여성가족부와 문화체육관광부의 찬반 논리가 팽팽하게 맞서는 게 대표적이다.
문제는 규제의 ‘양’이 아닌 ‘질’“시장 자율 경쟁 질서를 위해서는 두 가지 규제가 필요하다. 정부 규제는 풀되, 독과점 규제는 철저히 해야 한다. 중소기업, 서민, 자영업자가 자율 경쟁이라고 느끼고 갑을 논쟁이 없어질 정도까지 되려면 공정거래법이 지금보다 강화돼야 한다. 역대 정권들은 독과점 규제를 다 풀었다. 그 결과 시장 불균형이 악화됐다. 이번 규제 개혁 논의도 마찬가지다. 정부 규제만 이야기한다. 균형이 안 맞는다. 독과점 규제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규제개혁위원장과 공정거래위원장을 역임한 강철규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의 우려다.
실제 박근혜 정부의 규제 개혁이 한쪽 방향으로만 흐를 가능성은 농후하다. 이미 규제 개혁의 첫 단추가 원격의료 허용, 분양가상한제 폐지, 학교 옆 호텔 허용 등으로 꿰어졌다. 3월27일 발표한 규제 개혁 후속 조치 과제에 포함된 택배 증차 문제도 ‘일방향’으로 쏠릴 것이란 점에서 논란의 불씨가 여전히 남아 있다.
온라인과 TV 홈쇼핑이 많아지면서 택배 물량은 2008년 10억 개에서 2013년 15억 개로 껑충 늘었다. 그러나 영업용인 노란 번호판을 단 택배 차량은 한정돼 있다. 물류업계 쪽은 1만3천여 명의 택배 기사가 무허가 자가용 차량으로 물품을 배달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택배 차량은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의 적용을 받는다. 차량 공급 과잉인 화물차와 같은 취급을 받기 때문에, 택배 차량 증차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토해양부는 일단 4월에 택배 차량 증차 방침을 우선 고시한 뒤, 차량 공급 필요 대수 산정과 구체적인 공급 조건 등은 연말까지 정하기로 했다. 별도의 택배법을 만드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하지만 14년째 한 대형 택배업체에서 일을 하고 있는 손경민(46)씨는 증차 소식이 반갑지만은 않다. 신규 영업용 허가 번호판을 택배 기사 개인이 아닌 택배업체한테 할당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영업용 번호판을 받고 싶다는 손씨는 “그럴 바엔 차라리 증차를 안 하는 게 낫다. 지금도 지입제로 인해 월 18만원을 화물 알선업체와 택배업체 쪽에 납부한다. 배송물 파손 등을 이유로 택배 기사들한테 돈을 수시로 깎기도 한다. 영업번호판은 회사가 아니라 개인에게 줘야 한다”고 말했다. 손씨는 하루에 200~250개의 물량을 처리한다. 새벽 6시부터 꼬박 12시간을 일하지만,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경계에 서 있는 특수고용직 신분인 손씨가 평균 택배 요금 2400원 가운데 가져가는 몫은 700원 안팎에 불과하다.
경제민주화와 수도권 관련 규제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워낙 양쪽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터라, 규제 완화 움직임이 가시화되면 반발이 들불처럼 번질 수 있다. 당장 비수도권 지역에서 집단 반발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이시종 충북지사 등 비수도권 14개 시·도지사와 지역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지역균형발전협의체’는 지난 3월25일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박근혜 정부의 수도권 규제 완화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수도권에는 사업체의 47.4%, 근로자의 51%가 집중돼 있다. 정부는 지난 1월 수도권 규제를 백지 상태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지난 3월12일에는 수도권 개발제한구역 내 공장 증축 제한을 풀어주고, 팔당호 등 인근에 도시형 공장을 지을 수 있도록 입지 규제를 완화하는 투자 활성화 대책을 내놨다. “박근혜 정부의 투자 활성화 대책은 수도권 규제 완화를 보기 좋게 포장한 것일 뿐이다. 이렇게 되면 수도권에 대기업만 입지하고, 지방에 있던 기업까지도 수도권으로 유턴하는 역류 효과만 발생할 수 있다.” 원광희 충북발전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의 지적이다.
요즘 경기도 평택시 소사벌택지개발지구에는 긴장감이 흐른다. 이마트가 평택에 2호점을 개설하려고 해서 주변 통복시장, 팽성읍 안정리 전통시장을 비롯한 소상공인들의 반발을 사고 있기 때문이다. 이마트는 지난해 평택시 비전동에 지상 5층 규모의 대형마트를 짓겠다며 평택시에 건축허가를 신청했다. 그러나 지난 1월 평택시는 “전통시장 보존, 지역 상권에 미치는 영향 분석, 소상공인과의 상생 계획 등이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를 들어 신청서를 반려했다. 이마트 쪽은 재신청서를 내거나 이에 불복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이마트 입점에 반대하는 주변 상인들의 논리는 이렇다. “평택시는 인구 44만 명의 중소도시다. 이미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등이 있는데 또 대형마트가 들어오는 건 주변 상인들은 다 죽으란 얘기다. 이마트 2호점이 들어서려는 자리는 통복시장, 팽성읍 안정리 전통시장 등과도 가깝다.” 이마트 2호점 입점을 저지하기 위해 모인 범시민대책위원회 윤현수 운영위원장의 설명이다. 이들은 나아가 ‘규제 강화’도 주장한다.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에는 대형마트와 전통상업보존구역과의 거리 제한이 1km로 정해져 있다. 그런데 인구밀도가 낮은 평택시 같은 중소도시에서는 상권을 보호할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시민대책위는 지역 인구 총량제를 도입해 인구 15만 명당 대형마트 1곳으로 점포 수를 제한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유통산업발전법은 대형마트 입장에선 ‘눈엣가시’인 대표적 규제다. 대형마트 개설시 지역협력계획서 제출을 의무화해 진입을 규제하고 있는데다, 소상공인들과의 상생을 위한 영업시간 제한 등으로 사후 규제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 개혁’이라는 칼을 뽑아들자마자, “전문가가 꼽은 최악 규제는 마트 영업시간 제한”( 3월26일치), “대형마트 규제, 이득은 800억 손실은 8천억”( 3월19일치) 등 유통산업발전법을 ‘나쁜 규제’로 몰아가는 보도가 잇따랐다. 반면 소상공인을 대표하는 전국유통상인연합회의 이동주 정책실장은 “앞으로 추가 입점할 대형마트가 21곳이 더 있다. 이미 적정 수준을 넘어섰는데도 또 대형마트가 생긴다는 건 유통법이 제대로 된 규제 효과를 못 거두고 있다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깨지는 균형… 대통령은 다시 답하라박근혜 대통령은 “규제 강화와 규제 완화의 균형”을 강조했다. 그렇다. 규제는 절대악도, 절대선도 아니다. 하지만 이미 ‘균형’은 곳곳에서 깨지고 있다. 누군가에게 편익을 주는 ‘좋은 규제’가, 반대로 누군가에게는 비용이 들게 하는 ‘나쁜 규제’일 수 있다. 그러하기에 박근혜 대통령은 다시 답해야 한다. 누구를 위한 규제 개혁인가.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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