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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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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기 전에 인간이어야 한다”

개리 데이비스, 클라크 한지안, 임영신, 배상현
국민을 넘어 ‘정의로운 세계시민’ 꿈꾼 사람들
등록 2014-03-29 16:47 수정 2020-05-03 04:27
2003년 4월3일 이라크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고 돌아온 반전·평화 활동가 배상현(왼쪽)·임영신씨는 인천공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적 포기 의사를 밝혔다.한겨레 이종근

2003년 4월3일 이라크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고 돌아온 반전·평화 활동가 배상현(왼쪽)·임영신씨는 인천공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적 포기 의사를 밝혔다.한겨레 이종근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길러야 한다.”(미국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

국가 폭력에 저항해, 차라리 무국적자(stateless)가 되리라. 재일동포 고강호(57)씨의 시도는 극히 이례적인 경우다. 그런데 이 같은 바람은 한낱 허황된 꿈일까. 비록 소수지만 국가의 굴레를 벗어난 삶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반전평화주의자다. 지난해 91살의 나이로 타계한 개리 데이비스가 대표적이다. 1948년 5월25일 프랑스 주재 미국 대사관에 들어간 그는 미국 시민권(국적)을 포기한다. 자발적 무국적자가 돼 스스로를 ‘세계시민’이라고 선언했다.

카뮈·사르트르의 지지를 얻다

미국 헌법에는 국적을 버릴 권리가 존재한다. 국적이탈권이란, 자연적이며 삶·자유·행복 추구의 권리를 누리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정의된다. 시민 간 동의를 통해 국가라는 조직이 형성됐으므로, 개인이 앞선 동의를 철회할 경우 국가를 이탈할 수 있다는 철학이 녹아 있다. 미국 이민국적법을 보면, 외국에서 미국 외교관이나 영사관 앞에서 시민권을 포기하겠다는 선서를 한 경우 국적이 상실된다. 전쟁 중에는 영토 내에서도 국적 포기가 가능한데, 국가 방위를 위협하지 않는다는 정부 확인이 필요하다. 범죄 처벌을 피하기 위한 국적 포기는 허용되지 않는다. 미국은 국적 포기 조건으로 ‘다른 나라의 국적 취득’을 내걸지 않았다. 또 다른 국적을 반드시 갖고 있어야 국적 포기가 허용되는 한국과는 다른 지점이다. 미국 국무부가 발간한 영사 업무 매뉴얼에는 국적 포기로 인해 무국적이 될 수 있음을 안내한다. “이미 외국 국적을 가지고 있거나, 시민권 포기 뒤 다른 나라의 국적을 취득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 사람은 무국적자가 돼 심각한 고난이 발생할 수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시민권 포기자가 외국에서 영주권자 지위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국적 없이 그 나라에 계속 거주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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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없이 65년을 살았던 데이비스는 어떤 인물일까. 미국 (2013년 7월23일치), (2013년 8월1일치) 인터넷판 보도를 종합해보면, 전투기 조종사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첫 임무는 독일 브란덴부르크 폭격이었다. 민간인이 살고 있는 도시를 폭격한 데 대해 극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과 아이들을 살해한 것인가. 또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인가.” 생각을 거듭하던 그는 국가가 없다면 전쟁도 없을 것이란 결론에 도달했다. 국적을 포기하고 6개월 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엔총회 회의장으로 들어가 소리친다. “우리 인민(People)은 세계 정부만이 줄 수 있는 평화를 원한다. 당신들이 대표하는 주권국가는 우리를 갈라놓고 전쟁의 늪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그의 주장을 지지했다.

세계시민 정부를 설립하다

데이비스는 1953년 ‘세계시민 정부’(www.worldservice.org)를 설립했다. ‘세계여권’을 비롯해 신분증, 출산·결혼 증명서를 자체적으로 발급했다. 폴란드 안과의사 자멘호프 박사가 창안한 국제어인 에스페란토어를 포함해 7개 언어가 쓰인 세계여권은 부르키나파소·에콰도르·모리타니·토고 등 일부 국가에서 사용이 가능하다고 단체는 밝혔다. 무국적자나 난민처럼 체류 자격이 불안정한 이들은 세계여권을 발급받아 심리적 위안을 얻었다. 50만여 명이 세계여권을 발급받았다. 발급을 받으려면 유효기간에 따라 45~400달러의 비용이 든다. 전세계에서 거의 인정되지 않는 증명서를, 희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판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국적 거부’ 신념을 널리 알리기 위해 세계여권을 들고 프랑스·이란·일본 등 수많은 국경을 넘나들었다. 이 과정에서 30여 차례 구금됐다. 몰래 국경을 넘거나 밀항하는 것도 다반사다. 1957년 프랑스 정부는 그를 추방하려 했다. 당시 데이비스는 파리 백화점에서 47달러어치 물건을 훔쳐 체포된다. 재판을 받기 위해 대기해야 하므로, 당장 프랑스를 떠날야 할 위기는 넘긴 셈이다. 그 뒤, 한밤중 작은 뗏목을 타고 이탈리아로 건너간다.


데이비스는 국가가 없다면 전쟁도 없을 것이란 결론에 도달했다. 국적을 포기하고 6개월 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엔총회 회의장으로 들어가 소리친다. “우리 인민은 세계 정부만이 줄 수 있는 평화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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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태어난 클라크 한지안이라는 사람은 2008년 무국적자가 될 권리를 고찰한 책 (The Soverien)을 펴냈다. 책 서문을 통해 20대 시절인 1985년 미국 시민권을 포기한 뒤 무국적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국가는 종종 비폭력·합의에 근거한 결정·공정함 등 내가 지키고자 애쓰는 가치관과 부합하지 않는 요구를 한다. 좀더 자유롭고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나 스스로가 그렇게 되도록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국적자가 된 까닭이다.

비슷한 시도를 했던 한국인들이 있다. 2003년 3월19일, 미국은 이라크를 침략한다. 어린아이들을 포함해 아무 죄 없는 민간인이 무참히 살해당하는 지옥이 이어졌다. 이라크 현장에서 전쟁의 참상을 목격한 반전·평화활동가 임영신·배상현씨는 ‘정부가 한국군을 파병하면 국적을 포기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한 국가든, 개인이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인과 파괴를 돕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가진 모든 권리를 내려놓겠다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국적 포기 선언은 여론의 역풍을 맞는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평화활동가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억했다. “긴급구호 등 이라크인들을 돕는 일에 우호적이던 사람들이 등을 돌렸다. 먼 곳에서 벌어진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운동은 가능하지만, 우리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 파병반대 운동은 허락되지 않았다. 나라를 빼앗겼던 트라우마가 약자에 대한 연대로 계승된 것이 아니라, 또다시 빼앗기지 않기 위해 타인의 고통을 전제로 한 이기적인 선택마저 정당화하는 우리 사회를 마주했다.”

여론 역풍 맞았던 한국 평화운동가들

2003년 4월2일 한국군 파병이 확정된다. 무국적을 허용하지 않는 국적법, 가족 문제 등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로 국적포기 선언은 현실화되지 않았다. 파병 결정 1년 뒤, 고 김선일(당시 33살)씨가 이라크 무장단체에 납치됐다. 납치 세력은 이라크에서 한국군 철수를 요구했다. 국가는 움직이지 않았다. “제발, 나는 죽고 싶지 않다.” 목놓아 애원하던 대한민국 국민은 죽임을 당했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같은 사건이 발생한다면, 우리 사회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 참고 문헌 ‘분단과 이동의 자유-재일교포를 중심으로’(이재승·2013), ‘분단체제 아래서 재일코리언의 이동권’(이재승·2013). (신진욱·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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