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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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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갈이냐 공멸이냐… 野 ‘운명의 100일’

‘정권심판론’ 안 뜨고 민주당-신당 경쟁 구도만 부각
견고한 박 대통령 지지도에 “이대로 가면 필패” 위기감
등록 2014-02-20 17:09 수정 2020-05-03 04:27
19대 국회의원 선거가 시작된 11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경로당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19대 국회의원 선거가 시작된 11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경로당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다섯 차례의 지방선거에서 집권 여당이 이긴 건 딱 한 번이다. 1998년 2회 지방선거다. 외형상으론 3당 구도였지만, DJP 연합 정부(김대중 대통령-김종필 국무총리)가 출범한 지 3개월 만에 치러진 선거였다. 사실상 ‘여 2당, 야 1당’의 대결이었던 것이다. 이후 지방선거는 ‘여당의 무덤’이 됐다. 본질적으론 지역 일꾼을 뽑는 선거이지만, 전국 단위 선거로서 임기 중·후반기에 들어선 대통령에 대한 평가의 장으로 규정됐기 때문이다. 정치적 위상을 높이려는 ‘거물’들의 출마가 이어지면서 지방선거는 한층 더 공학적 성격을 갖게 됐다. 이번 지방선거는 다를까? 6·4 지방선거는 박근혜 대통령 취임(2013년 2월25일) 1년3개월 만에 실시된다.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신당’(가칭)이 출현하면서 3당 경쟁 구도가 됐다. 새정치신당을 놓고 한편에서는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영호남을 기반으로 독점해온 기득권 체제를 깨려는 독립 부대”라고 하고, 또 한편에서는 “보수·수구 세력인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를 줄 수 있는 고춧가루 부대”라고 한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민심은 어떻게 표출될지, 안철수의 도전은 어떤 성과를 거둘지 짚어봤다. 서울·부산·광주 시장 선거의 관전 포인트도 소개한다. 지난 대선 때 선거방송과 선거운동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종합편성채널의 ‘선거 특수’가 재현될지도 살펴봤다. _편집자
심판론? 인물론?

민주당은 정권심판론을 만지작거리다 주춤한 상태다. 대통령 집권 2년차 초반이라는 시기적 요인 말고도, 심판론을 제약하는 요인이 적지 않은 탓이다.

“우리는 차악의 선택이 아니라 최선을 선택해달라는 거다. 심판론 등 종래의 패러다임이 아니라, 새정치와 생활정치를 통해 주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 안철수 의원 쪽 창당 준비기구인 새정치추진위원회(이하 새정추) 김성식 공동위원장의 말이다.

권력을 심판하려면 힘을 모아야 한다. 심판론이 선거 연대와 결합되는 이유다. 그러나 안 의원은 심판론으로 전선을 치기보다는 ‘기성 정치와 새정치’ 구도를 바란다. 이런 구도에서 민주당과의 연대는 모순이다. 윤희웅 ‘민’ 정치컨설팅 여론분석센터장은 “안철수 신당으로 인해 야권이 분화했고, 신당이 새정치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심판론 자체가 제약된다. 더구나 민주당은 지방정권 다수를 점하고 있다. 평가를 받는 입장에서 심판론을 얘기하긴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사건에 분노한 민심이 존재하지만, 이를 심판론과 연결시키는 데도 한계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은 50% 중반대를 유지하고 있다. 투표율도 고려해야 한다. ‘반MB 정서’가 극에 달했던 2010년 지방선거 투표율이 54.5%였다. 지방선거에서는 대체로 반여당 성향 중도층이나 젊은 층의 투표율이 더 낮아진다. 반면 지난 대선에서 ‘규모의 위력’을 과시한 고연령층 유권자들의 박 대통령 지지는 여전히 견고한 것으로 평가된다. 김종배 시사평론가는 “대통령 지지율을 볼 때 중도층은 대선 개입을 심판론의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이 전선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대선 개입 사건은 오히려 박 대통령 지지층을 결집시켰다. 박근혜 지지층이 ‘설마 새누리당이 지겠느냐’며 이완돼 투표율이 떨어질 여지도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물론 수면 아래 잠복해 있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민심이 선거를 계기로 뿜어져나올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의 복지 공약 위반 등 정책적 이슈를 제기하면 현 정권에 대한 평가와 견제 분위기가 커질 수 있다. 그러나 2010년 선거 때 보편적 복지 논쟁을 불러일으킨 ‘무상급식’ 같은 파괴력 있는 정책의 발굴이 쉽지 않다는 게 야당의 고민이다.

그래서 민주당은 ‘인물론’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다. 민주당 소속 현직 단체장들이 여론조사에서 앞서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전략 담당 당직자는 “안철수 신당은 민주당을 깨려고 한다. 후보 단일화를 안 할 것 같다. 우리는 현역들의 경쟁력을 믿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제18대 대통령선거일인 19일 서울 곳곳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제18대 대통령선거일인 19일 서울 곳곳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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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인물론의 함정’을 지적한다. ‘높은 정당 지지율을 가진 새누리당의 인지도 낮은 후보군’ 대 ‘낮은 정당 지지율을 가진 민주당의 인지도 높은 후보’의 여론조사에서 후자의 우위는 거품이라는 얘기다. 김갑수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은 “선거가 가까울수록 정당 지지율과 후보 득표율은 연동된다. 새누리당과 야당의 정당 지지율이 2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나는데, 이를 인물론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기대감은 지나친 낙관”이라고 말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나경원 새누리당 후보의 득표율은 46.2%였다. 반MB 정서, 오세훈 시장의 셀프 탄핵으로 인한 새누리당 분란, 그리고 안철수 바람이라는 ‘악조건’에서 거둔 성적이다. 유창선 평론가는 “전통적으로 지방선거에서는 새누리당이 기본으로 먹고 들어가는 지역이 많다”고 말했다.

정치혁명군? 고춧가루 부대?

새누리당은 야권 연대를 하지 말라고 압박한다. 황우여 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연설(2월4일)에서 “새로운 정당이라면 자신만의 영역이 분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합당이니 연대니 하는 말이 나오게 된다”고 말했다. 이 정도면 점잖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야권 야합” “구태 중의 구태”라고 했다. 야권 연대, 후보 단일화 등에 대한 야권 성향 유권자들의 상처와 피로감을 자극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안철수만 믿는다”고 말한다.

민주당은 야권 연대를 해야 한다고 압박한다. “분열은 필패다” “야권은 하나다”라고 외친다. 공개적으로 말할 때다. 사석에서 당 관계자들은 “고춧가루당”이란 불만을 서슴지 않는다.


“신당이 새정치를 강조하고 있어 심판론 자체가 제약된다. 더구나 민주당은 지방정권 다수를 점하고 있다. 평가를 받는 입장에서 심판론을 얘기하긴 어려운 측면이 있다.” -윤희웅(여론조사전문가)


안철수 의원은 줄곧 “연대는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러면서 새정치신당(가칭) 창당 과정을 단계별로 밟고 있다. 지난 2월11일에는 정의로운 사회, 사회적 통합, 한반도 평화를 기본 가치로 한 ‘새정치 플랜’을 발표했다. 2월17일 창당 발기인 대회를 열고, 3월 말 창당대회를 할 예정이다. 새정추의 한 관계자는 “안 의원이 창당 작업에 집중하느라 지방선거에 정신을 못 쓰고 있다고 말하더라. 2월17일 이후에는 선거 행보를 서두를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선거 목표(광역단체장 기준)에 대해서는 “한 곳이라도 되면 기적”(안 의원), “두 곳은 이겨야”(윤여준 새정추 의장)라고 말한다. 이계안 새정추 공동위원장은 “지금까지 영호남에서 일당 독점 체제인데, 우리는 (유권자의) 선택권을 넓히기 위해 당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연대한다는 건 선택의 폭을 줄이는 것이어서 자기모순에 빠지는 점이 있다”며 “기호 5번이니 5군데 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신당 안에서는 지방선거 성적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새정치의 장래성’을 인정받으면 된다는 얘기다. 한 관계자는 “정당득표율이 얼마나 나올지 관심이다. 신당에 대한 국민의 기대 정도가 실제 반영되는 지표로 본다”고 말했다.

신당이 공을 들이는 곳은 호남과 부산, 경기 지역이다. 무주공산이던 호남에서 혈투를 치르게 된 민주당은 위기감을 넘어 부글부글 끓는 심정을 토해낸다. 수도권 지역의 한 재선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안철수가 계속 연대를 거부하고 민주당을 깨뜨리겠다는 식으로 나서면 호남이 좋아할 것 같은가? 호남의 정서는 ‘민주당은 우리가 알아서 할 거고, 너(안철수)는 다른 데 돌아다니면서 새누리당을 깨보라는 거다. 지금 민주당이 밉다고 안철수가 예쁘다고 하지는 않는다.” 신당 쪽은 이렇게 반박한다. “부산은 신당에 핵심적인 지역이다. 전국 정당의 뿌리를 내리는 대안세력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느냐가 부산에서 결정된다. 호남에서의 기대도 부산에서 승리해보라는 것이다.”(정기남 공보팀장) 새정추의 다른 관계자는 “다만 부산·영남과 호남, 수도권의 성향이 달라 고민이다. 호남은 박근혜 정부와 투쟁하라 하고, 수도권은 새정치를 요구하고, 부산·영남은 또 다르다”고 말했다.

두 당의 연대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김종배 평론가는 “안철수 신당은 기성 정치를 구태로 몰면서 스스로를 보완재가 아니라 대체재로 설정했다. 길게 보면 이번 지방선거의 승패를 떠나 야권 재편이라는 대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자기 후보를 내서 국민적 평가를 받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창선 평론가는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이 공식적으로 연대하는 그림은 없을 것”이라며 “다만 지역 상황에 따라 자체적으로 연대하는 사례는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100일 뒤 달라진다

연대를 하지 않는 전략은 통할까? 한국갤럽의 2월 1주차 여론조사에서는 새누리당 37%, 민주당 14%, 새정치신당 21%, 무당파 25%였다. 민주당과 새정치신당 지지율을 합쳐도 새누리당에 약간 못 미친다. 새정치신당을 빼고 물었을 때에 견줘, 새누리당은 5%포인트, 민주당은 8%포인트, 무당파는 6%포인트 줄었다. 민주당 출신, 새누리당 출신, 안 의원 측근 등 3개 그룹이 섞여 있는 신당 구성과 지지층 구성이 비슷하다.

지지율 추세도 주춤하거나 하락세라는 분석이 많다. 신당이 성공하려면 정책, 후보, 정치력을 갖춰야 한다. 걸음마 단계이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 세 가지 요소에 의구심을 품는 시각이 적지 않다. ‘새 정치 플랜’에 대해 안철수 대선 캠프에 참여했던 한상진 서울대 교수는 “팥 없는 찐빵”이라 했고, 문재인 민주당 의원은 “새정치의 내용을 아직 잘 모르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송호창 새정추 공동위원장은 “기본적 가치와 방향을 제시한 것이기 때문에 추상적이고 원리적일 수밖에 없다. 합리적 보수와 성찰적 진보를 짜깁기했다는 비판은 사실 그 둘을 모두 아울러 담고 있다는 말”이라고 반박했다.

민주당이 인물론에 매달린다면 신당은 인물난을 겪고 있다. ‘안철수 1인 정당’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는 “최근 광주시장 여론조사를 하다가 중단한 적이 있다. 강운태·이용섭 민주당 후보 대 윤장현 새정치신당 후보로 물었더니 민주당 후보들이 더블스코어 이상 앞서갔다. 안철수라는 이름이 없을 때 나타나는 일이다. 광주가 이러면 다른 데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거다. 인재 영입 성과가 없으면 신당이 상당한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새정추의 한 고위 관계자는 “당을 하려면 용기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이리저리 재는 사람만 있어 답답하다”고 토로한 것으로 전해진다. 안 의원을 두고 “지도자의 결사항전 자세가 부족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내가 도와줄 테니 한번 나가보라는 식으로 되겠느냐’는 것이다. 정치권 안팎에서 안 의원의 부산시장 또는 서울시장 출마설이 나왔지만, 신당은 펄쩍 뛴다. 송호창 위원장은 “현역 국회의원으로 역할하고 있는 분이 출마한다는 것이 어떤 발상인지 그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3당 구도로 치르는 지방선거의 성적에 따라 야권은 거세게 요동치게 된다. 야권 재편의 주도권 경쟁을 하다 어느 한쪽이 승리할 수도 있고, 둘 다 망할 수도 있다. ‘새누리당 어부지리론’이 현실화할 경우 책임을 둘러싼 논쟁이 예상된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해 안희정 충남도지사, 송영길 인천시장 등 대선주자급 광역단체장의 운명도 야권의 미래를 달라지게 만들 요소다. 지방선거 D-100(2월24일).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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