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문화적 리버럴들’의 방송?

프로그램 잇단 흥행으로 지상파보다 영향력 커져가는 CJ E&M
문화적으로는 자유롭고 정치적으로는 개혁적,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적인 방송
등록 2013-11-28 12:42 수정 2020-05-03 04:27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슈퍼스타K 5, 댄싱9, 응답하라 1994, 꽃보다 할배.Mnet 제공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슈퍼스타K 5, 댄싱9, 응답하라 1994, 꽃보다 할배.Mnet 제공

직장인 ㅅ(40)씨는 자정을 훌쩍 넘은 시간 TV를 켜곤 한다. 지상파 채널에서는 벌써 애국가가 울려퍼졌을 시각,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케이블 채널밖에 없다. 대부분의 채널이 재방송을 반복하는 그때, 멍하게 아무 프로그램이나 보는 것 같았는데 어느 날 가만 보니 결코 팬이 아니라 생각했던 (올리브TV)를 들여다보고 있더란다. 그 순간 그는 “CJ 채널의 감수성 혹은 작당에 중독돼 있음을 절절히 느꼈다”. 리모컨을 들면 ㅅ씨의 첫 선택은 SBS ESPN, 그다음으로 자신이 가입한 위성방송에서 제공하는 채널에 따라, 254번 tvN, 줄줄이 건너뛰고 272번 온스타일, 274번 Mnet 등이다. 가족의 전화번호는 외우지 못해도 CJ 채널 번호는 줄줄 외우는 그는 “나날이 기억이 감퇴해 언젠가 내 전화번호도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시달리는 아저씨의 마지막 손가락 기억은 254가 되지 않을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기도 한다”.

‘음악적인 것’을 지향하는 인상

방송을 필두로 대중문화 전반에서 시장을 이끌어가는 집단을 꼽으라면, 2013년 현재 CJ E&M을 빼놓을 수 없게 됐다. 흔들리는 6mm 카메라로 찍었던 요상한 직장 드라마 가 얼굴마담이었던 2007년 이후 CJ E&M 채널은 해를 거듭하면서 화제성 있는 프로그램을 양산했다. 어쩌면 그때부터였는지 모른다. 2010년 가 최종회 평균 시청률 18.1%(최고 시청률은 21.1%)를 기록했을 때. 이해를 기점으로 시청률 1%만 넘어도 성공이라는 케이블 프로그램의 시청률 기준이 두 자릿수를 훌쩍 넘어가기 시작했다(표 참조). 누구는 “요즘 를 보지 않으면 대화에 끼어들 수 없다”고 토로하고, 누구는 “올해의 드라마로 을 꼽는다”. 의 부침은 뉴스가 될 정도였고, 는 침체 일로를 걷던 오디션 프로그램 시장에 새 공기를 불어넣었다. 그러는 사이 과거 시청률 20%를 넘나들기도 했던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들이 최근에는 한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거나 종영했다. 그래서 TV 앞에 앉은 이들에게 물었다. “왜 tvN, Mnet, 올리브TV 보세요?”

음악평론가 김학선·차우진, TV평론가 김선영, 이동연 문화연대 소장이 각기 내놓은 답변은 이렇다. 김학선씨는 을 즐겨 보거나 봤던 프로그램으로 꼽았다. 주로 Mnet의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특히 는 “누구도 홍대 앞 밴드들에게 그 정도 규모의 무대를 제공하지 않았는데, 최소한 음악을 가지고 무언가를 만들어보려는 시도를 했다는 점을 높이 산다”고 평가했다. 그가 생각하는 Mnet과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의 가장 큰 차이는 무대에 서는 음악가들이다. 지상파에 나오는 아이돌은 Mnet에도 나오지만 Mnet에 나오는 록·힙합 음악가들은 지상파에 나오지 않는다. 차우진씨는 20~40대 남성을 타깃으로 한 XTM 채널을 주로 본다. 등 한국형 자동차 예능의 시작점을 열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한편 음악평론가로서 Mnet을 바라보는 시선은 김학선씨와 비슷하다. “사람들의 오해처럼 음악을 ‘부수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음악을 중심에 두고 늘 ‘음악적인 것’을 지향하는 인상”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미디어 그룹들 성장 과정 흡사

김선영씨는 OCN에서 방영한 미국 드라마 <csi> 시리즈, 영국 드라마 , 자체 제작 드라마 (TEN) 등 수사물을 즐겨 본다. 요즘은 와 시트콤 을 좋아한다. 지상파에서는 보기 힘든 장르인데다, 톱스타 위주가 아닌 신선한 캐스팅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기존 드라마들과 차별점으로는, 수사 드라마라는 특화된 장르 안에서 판타지·의학과 결합하는 등 다른 소재들을 보여주는 방식을 꼽는다. tvN 방영 드라마의 경우 이나 시리즈처럼 예능과 드라마의 경계를 오가거나 다큐 드라마 처럼 아예 새로운 장르로 창조하는 등 실험성이 강한 점을 꼽았다. 이동연 소장은 <snl> 등을 즐겨 봤다. 요즘은 를 챙겨 보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1990년대 대중문화 연구에 관심이 많았고 당시 일상을 담백하게 디자인한 점을 즐겨 보는 이유로 꼽았다. 이렇게 각자 비슷하거나 다른 이유로 적어도 몇 개의 단골 프로그램을 내놓고 평가했다.


KDB대우증권 리서치센터에서 나온 기업분석 보고서는 CJ의 성장세에 대해 CNN·HBO 등의 채널을 보유한 타임워너나 MTV를 보유한 비아콤 등 미국 미디어 그룹들의 성장 과정을 따라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방송업계에서도 CJ E&M의 미래는 성장세로 점쳐진다.


1

1

CJ E&M 제작 프로그램들은 드라마와 예능에서 강세를 보인다. 경성 시대를 배경으로 택한 대규모 스케일의 드라마 과 요리 서바이벌 쇼를 표방한 .tvN 제공, 올리브TV 제공

CJ E&M 제작 프로그램들은 드라마와 예능에서 강세를 보인다. 경성 시대를 배경으로 택한 대규모 스케일의 드라마 과 요리 서바이벌 쇼를 표방한 .tvN 제공, 올리브TV 제공

1월, KDB대우증권 리서치센터에서 나온 기업분석 보고서는 CJ의 성장세에 대해 CNN·HBO 등의 채널을 보유한 타임워너나 MTV를 보유한 비아콤 등 미국 미디어 그룹들의 성장 과정을 따라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방송업계에서도 CJ E&M의 미래는 성장세로 점쳐진다. 김선영씨는 “콘텐츠 시청 수단이 다양화하며 킬러 콘텐츠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가운데 일찌감치 콘텐츠 제작에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해온 CJ E&M의 성장 가능성은 앞으로가 더 높다”고 평가했다. 그에 따르면 지난해 방송통신위원회의 조사 결과 KBS가 방송 사업 수익의 23%를 콘텐츠 제작에 투자한 데 비해 CJ E&M은 75.2%를 투자했다. 차우진씨는 “콘텐츠는 단기간에 성과가 나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 가치를) 잘 알고 있는 회사라는 생각이 든다. 수익보다는 사명감이라든가 엘리트주의라든가 하는 것들이 지배적인 정서일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면 진작에 포기했을 사업이다. 한국이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팔 것이라곤 무형의 콘텐츠뿐임을 진작에 깨닫고 있는 조직이라 생각한다”고 말한다. 어쨌거나 타임워너만큼 거대 미디어 그룹이 될지는 아직 판명나지 않았지만 적어도 이 시장을 선점한 만큼, 아시아에서는 중요한 콘텐츠 제작 및 방송 플랫폼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1

1

한편 보고서에 쓰인 “대규모 투자가 가능한 대기업이 미디어 사업에 진출하면서 인수 및 합병 과정을 지나 그룹의 초기 형태를 형성하기 시작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문장을 뒤집어 말하면 군소 규모의 케이블 시장에서 확실한 ‘공룡 그룹’이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CJ는 2009년 오리온그룹의 온미디어를 인수하면서 중소 케이블 채널, 오리온그룹, CJ가 파이를 나눠 가졌던 케이블 시장에서 가장 막강하고 거대한 복수방송채널사용사업자(MPP)가 됐다.

지상파 시청률 ↓ CJ E&M 시청률 ↑

김완 기자는 “유료 방송 시장에서 경쟁자가 없다는 것은 위험하다”고 평가했다. 지상파와의 관계에서 점차 권력이 역전되는 모습도 보인다. 김완씨는 “다수의 케이블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와 CJ 채널들이 재방송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데, 재방송의 시청률이 높고 영향력이 커져 지상파도 CJ에 자기 프로그램을 틀어달라고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이전에 지상파가 갑이고 CJ가 을이었다면 이제는 거의 대등한 관계라고 본다”고 말했다. “지상파와의 관계에서 여전히 CJ가 약자라고 하지만 케이블에서는 절대 강자다. 비유하면 호랑이가 있는 정글의 늑대인데, 호랑이가 점점 멸종하고 있어서 과연 호랑이가 사라진 시대에 늑대는 어떨까 우려된다”고도 덧붙였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