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ㅅ(40)씨는 자정을 훌쩍 넘은 시간 TV를 켜곤 한다. 지상파 채널에서는 벌써 애국가가 울려퍼졌을 시각,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케이블 채널밖에 없다. 대부분의 채널이 재방송을 반복하는 그때, 멍하게 아무 프로그램이나 보는 것 같았는데 어느 날 가만 보니 결코 팬이 아니라 생각했던 (올리브TV)를 들여다보고 있더란다. 그 순간 그는 “CJ 채널의 감수성 혹은 작당에 중독돼 있음을 절절히 느꼈다”. 리모컨을 들면 ㅅ씨의 첫 선택은 SBS ESPN, 그다음으로 자신이 가입한 위성방송에서 제공하는 채널에 따라, 254번 tvN, 줄줄이 건너뛰고 272번 온스타일, 274번 Mnet 등이다. 가족의 전화번호는 외우지 못해도 CJ 채널 번호는 줄줄 외우는 그는 “나날이 기억이 감퇴해 언젠가 내 전화번호도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시달리는 아저씨의 마지막 손가락 기억은 254가 되지 않을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기도 한다”.
‘음악적인 것’을 지향하는 인상방송을 필두로 대중문화 전반에서 시장을 이끌어가는 집단을 꼽으라면, 2013년 현재 CJ E&M을 빼놓을 수 없게 됐다. 흔들리는 6mm 카메라로 찍었던 요상한 직장 드라마 가 얼굴마담이었던 2007년 이후 CJ E&M 채널은 해를 거듭하면서 화제성 있는 프로그램을 양산했다. 어쩌면 그때부터였는지 모른다. 2010년 가 최종회 평균 시청률 18.1%(최고 시청률은 21.1%)를 기록했을 때. 이해를 기점으로 시청률 1%만 넘어도 성공이라는 케이블 프로그램의 시청률 기준이 두 자릿수를 훌쩍 넘어가기 시작했다(표 참조). 누구는 “요즘 를 보지 않으면 대화에 끼어들 수 없다”고 토로하고, 누구는 “올해의 드라마로 을 꼽는다”. 의 부침은 뉴스가 될 정도였고, 는 침체 일로를 걷던 오디션 프로그램 시장에 새 공기를 불어넣었다. 그러는 사이 과거 시청률 20%를 넘나들기도 했던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들이 최근에는 한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거나 종영했다. 그래서 TV 앞에 앉은 이들에게 물었다. “왜 tvN, Mnet, 올리브TV 보세요?”
음악평론가 김학선·차우진, TV평론가 김선영, 이동연 문화연대 소장이 각기 내놓은 답변은 이렇다. 김학선씨는 을 즐겨 보거나 봤던 프로그램으로 꼽았다. 주로 Mnet의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특히 는 “누구도 홍대 앞 밴드들에게 그 정도 규모의 무대를 제공하지 않았는데, 최소한 음악을 가지고 무언가를 만들어보려는 시도를 했다는 점을 높이 산다”고 평가했다. 그가 생각하는 Mnet과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의 가장 큰 차이는 무대에 서는 음악가들이다. 지상파에 나오는 아이돌은 Mnet에도 나오지만 Mnet에 나오는 록·힙합 음악가들은 지상파에 나오지 않는다. 차우진씨는 20~40대 남성을 타깃으로 한 XTM 채널을 주로 본다. 등 한국형 자동차 예능의 시작점을 열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한편 음악평론가로서 Mnet을 바라보는 시선은 김학선씨와 비슷하다. “사람들의 오해처럼 음악을 ‘부수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음악을 중심에 두고 늘 ‘음악적인 것’을 지향하는 인상”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미디어 그룹들 성장 과정 흡사김선영씨는 OCN에서 방영한 미국 드라마 <csi> 시리즈, 영국 드라마 , 자체 제작 드라마 (TEN) 등 수사물을 즐겨 본다. 요즘은 와 시트콤 을 좋아한다. 지상파에서는 보기 힘든 장르인데다, 톱스타 위주가 아닌 신선한 캐스팅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기존 드라마들과 차별점으로는, 수사 드라마라는 특화된 장르 안에서 판타지·의학과 결합하는 등 다른 소재들을 보여주는 방식을 꼽는다. tvN 방영 드라마의 경우 이나 시리즈처럼 예능과 드라마의 경계를 오가거나 다큐 드라마 처럼 아예 새로운 장르로 창조하는 등 실험성이 강한 점을 꼽았다. 이동연 소장은 <snl> 등을 즐겨 봤다. 요즘은 를 챙겨 보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1990년대 대중문화 연구에 관심이 많았고 당시 일상을 담백하게 디자인한 점을 즐겨 보는 이유로 꼽았다. 이렇게 각자 비슷하거나 다른 이유로 적어도 몇 개의 단골 프로그램을 내놓고 평가했다.
KDB대우증권 리서치센터에서 나온 기업분석 보고서는 CJ의 성장세에 대해 CNN·HBO 등의 채널을 보유한 타임워너나 MTV를 보유한 비아콤 등 미국 미디어 그룹들의 성장 과정을 따라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방송업계에서도 CJ E&M의 미래는 성장세로 점쳐진다.
지상파 시청률 ↓ CJ E&M 시청률 ↑
김완 기자는 “유료 방송 시장에서 경쟁자가 없다는 것은 위험하다”고 평가했다. 지상파와의 관계에서 점차 권력이 역전되는 모습도 보인다. 김완씨는 “다수의 케이블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와 CJ 채널들이 재방송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데, 재방송의 시청률이 높고 영향력이 커져 지상파도 CJ에 자기 프로그램을 틀어달라고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이전에 지상파가 갑이고 CJ가 을이었다면 이제는 거의 대등한 관계라고 본다”고 말했다. “지상파와의 관계에서 여전히 CJ가 약자라고 하지만 케이블에서는 절대 강자다. 비유하면 호랑이가 있는 정글의 늑대인데, 호랑이가 점점 멸종하고 있어서 과연 호랑이가 사라진 시대에 늑대는 어떨까 우려된다”고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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