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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만원을 투자하면 200만원, 300만원이 매달 들어오잖아요. 손님 올 때만 일주일에 두세 번씩 나오고 별로 고생하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년 1월에 결혼하고 명품 전당포를 내겠다는 김수진(30·가명)씨는 자신만만했다. “전당포를 100군데 다녀봤는데 쉽지 않아요. 최고이자율이 연 39%라고 젊은 친구들이 IT(정보기술) 전당포, 명품 전당포에 덤벼드는데요. 담보 가치가 높아서 이자율이 월 2부(연 24%)도 안 돼요.” IT 전당포는 스마트폰·태블릿PC·카메라·노트북 등 IT 기기를, 명품 전당포는 명품 백·시계 등을 전문적으로 취급한다.
“장물이 뭐예요? 경찰이 왜 가져가요?”서울시 공무원의 ‘잔소리’에도 김씨는 굴하지 않는다. “10만원씩, 20만원씩 더 빌려주면 단골이 생기잖아요. 이자 3개월을 미납하면 팔 수 있고요. 추심도 필요 없고 위험이야 있겠지만 그건 제 능력이죠.” “제일 위험한 건 장물이에요. 담보라도 장물은 경찰이 그냥 가져갑니다.” 김씨 눈이 갑자기 동그래졌다. “장물이 뭐예요? 경찰이 왜 가져가요?”
지난 10월25일과 29일 이 서울시-구청 합동조사반의 대부업 점검에 동행했다. 지난 4월부터 서울시는 등록 대부업체 4412곳을 전수조사하고 있다. 2002년 대부업법이 도입된 이후 처음이다. 2012년 말 현재 등록 대부업체 수는 1만895곳이다. 이용자는 250만 명, 대출 규모는 8조7천억원 정도다.
관리·감독은 자산 100억원을 기준으로 나뉜다. 100억원 이상 대형 대부업체는 금융감독원이 직권 감독한다. 100억원 미만 중·소형 대부업체와 개인 대부업자는 지방자치단체가 맡는다. 100억원 이상은 1%(89곳)로 일본계 대부업체가 중심이다. 그러나 시장점유율은 대출 잔액 기준으로 87.3%, 이용자 기준으로 91%를 차지한다. 부익부 빈익빈인 셈이다. 나머지 99%는 100억원 미만이다. 지자체가 관리·감독을 책임지지만 인력·전문성 부족이 문제였다. 올해 처음으로 서울시가 금감원, 은행 출신의 전문인력 2명을 뽑으며 상황이 달라졌다. 박기용 서울시 민생경제과장의 설명이다. “지난해 금감원 직원과 대부업체 현장을 가보니까 대부업체가 너무 영세했다. 악의적으로 법을 어기는 게 아니라 무지해서 대부분 그랬다. 가정에서, 구멍가게에서 영업하면서 이자 몇십만원을 받으려다 몇백만원씩 떼이는 형국이었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전수조사가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이날 합동점검에 나선 서울시 전문인력인 나도남(56)씨가 김수진씨에게 차근차근 설명했다. 나씨는 37년간 은행에서 일하다가 지난해 퇴직했다. “장물은 훔친 물건이에요. 도둑이 현금을 만들려고 속이고 전당포에 맡기는 거죠. 김씨는 세상 물정 모른다는 듯이 맞받아쳤다. “명품은 보증서가 있어요. 감정사도 외부에서 데려오고요.” “보증서도 위조하죠. 베테랑도 많이 당합니다.” 여전히 못 믿겠다는 김씨의 표정에 나씨가 화제를 돌렸다. “월세는 얼마인가요?” “160만원이오.”
그럴 만했다. 전당포의 인테리어는 깔끔했다. 영화 나 에서 본 낡은 건물에 음침한 복도, 쇠창살, 골방이 아니었다. 도심 한복판에 새로 지은 오피스텔은 책장으로 둘러싸여 있고 소파는 고급스러웠다. 머릿속으로 혼자 계산기를 두드려본다. 김씨는 3천만원을 투자한다고 했다. 그 돈을 365일 돌리고 최고이자율(39%)을 하나도 떼이지 않는다고 해도 1년치 이자(1170만원)로 1년치 월세(1920만원)를 못 낸다. 명품 전당포를 나오면서 나씨가 말한다. “전당포는 은퇴자가 1억원으로 월세 50만원 정도 내는 곳에서 시작하면 겨우 용돈이나 벌 수 있다. 젊은이들이 겁도 없이 뛰어들어 걱정이다.”
우리나라는 대부업자에 자격을 두지 않는다. 10만원을 내고 등록하면 그만이다. 신용불량자도, 자기 돈이 한 푼도 없는 사람도 아무나 대부업자로 등록할 수 있다. 직장인·자영업자·주부 등이 일종의 부업처럼 대부업 영업에 나서는 이유다. 이동문 민생대책팀장은 “대출이 필요한 사람이 대부업을 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최고이자율 39%라는 달콤한 유혹 때문이다.
빌려준 사람도 얽매는 고금리 대부업고금리는 빌린 사람만 옥죄는 게 아니라 빌려준 사람도 얽어맨다. 자본금은 없지만 돈을 빌려 다른 이에게 빌려주고 수익을 올리겠다는 ‘무모한 대출업’을 꿈꾸게 한다. 다시 나도남씨의 설명을 들어보자. “대부업체 10곳 중 9곳은 자본금이 1억원 미만이다. 그중 절반은 3천만원이 안 된다. 자녀 학원비라도 벌겠다고 나선 주부나 취업이 힘들어 창업한 20∼30대가 대부분이다. 경험도 지식도 없어서 원금까지 날리고 속병을 앓는다. 원금마저 대출한 것이라면 헤어나올 수조차 없다.” 2012년 10월 현재 실태분석이 가능한 서울시 대부업체는 58%에 그쳤다. 과도한 금리를 요구하고 가혹한 추심을 일삼는 불법 사채업자로 변신해도 단속을 피할 수 있다는 얘기다. 채무자의 고통은 덩달아 커질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10월29일 국무회의에서 최고이자율을 5년간 39%로 유지하는 대부업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지난 7월3일 국회 가계부채 청문회에서 밝힌 이유를 그대로 차용했다. 그는 이자율이 떨어지면 대부업체가 대출을 꺼려 채무자의 대출 이용 기회가 줄어든다며 최고이자율 인하에 반대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이다. 최고이자율은 2002년 이후 계속 하락했지만 대부업체가 공급한 대출금은 해마다 크게 늘어났다. 이자율이 다소 낮아지더라도 수익성은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의 ‘2013년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대부업체의 연평균 이자율(신용대출)은 38.1%다. 저축은행(29.9%), 캐피털회사(24.2%), 상호금융회사(7.4%), 은행(6.9%)을 크게 앞지른다. 일부 일본계 대부업체는 최고이자율(39%)까지 무시한다. 정호준 민주당 의원이 국정감사에 낸 자료를 보면, 업계 9위인 미즈사랑대부(일본계)의 이자율은 41.4%, 11위인 원캐싱대부(일본계)는 42%, 72위인 케이아이코아즈대부(일본계)는 44%의 이자를 받고 있다.
상환 능력 떨어지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고금리 상품을 누가 이용할까. ‘2002년 하반기 대부업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대부업 이용자의 85%가 신용등급 7~10등급이었다. 생활비(46.1%)나 다른 대출 상환(10.1%) 등 생계형 대출이 절반을 넘었다. 이들은 이자율이 높을수록 대출을 갚을 수 없는 처지다. 송태경 민생연대 사무처장(최재천 민주당 의원 보좌관)은 이렇게 비판한다. “1997년 이전에 한국도 법정 이자율이 25%였다. 그때는 시장 평균금리가 15%대였다. 지금은 시장 평균금리가 5~6%인데 법정 최고이자율은 39%다. 과거처럼 25%로 우선 낮추고 장기적으론 20% 이내로 들어가야 한다.” 한국 법정 이자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최고 수준이다. 통상 20% 안팎이고 미국은 18~20%, 일본은 15~20%다.
서울시-구청 합동조사반은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다. 어디에도 대부업체라는 표시가 없지만 이기수(가명)씨가 구청에 등록한 대부업 영업장이다. 이씨 가족이 거주하는 집이다. 2003년 공무원에서 퇴직한 그는 퇴직금 등 자본금 10억원으로 부동산 담보대출을 시작했다. 2년 전 자본금이 17억원까지 늘었는데 최근 사기를 당해 큰 손해를 봤다고 했다. 이날 아내는 관련 재판에 출석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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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잔액이 얼마입니까?” 합동조사단이 물었다. “집사람이 아는데요.” 대부 계약 현황, 채무자별 이자 내용, 소득증명서류 등을 요구했지만 이씨의 대답은 똑같았다. “대부업자가 이기수씨인데 아내에게 책임을 미루면 어떻게 합니까. 관련 서류가 없으니까 과태료를 부과하겠습니다.” 느긋하던 이씨가 다급해졌다. 낡은 공책을 하나 꺼내더니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글씨를 보여줬다. “이게 이자를 받은 겁니다. 통장 거래 내역도 있고요.” “대출이 300만원 이상이면 소득증명서류가 있어야 합니다. 부동산 담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가 돌아오면 계약서류를 찾아보겠다고, 꼼꼼한 아내가 챙겼을 것이라고 이씨가 거듭 말했다. 하지만 소득증명서류가 미흡해 끝내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지난 10년간 대부업을 하며 대출을 수십 건 운영했는데 어쩌면 저렇게 모를까. 진입장벽이 낮아 대부업에 너도나도 뛰어들지만 관련 교육은 등록 당시 8시간만 이수하면 되는 프로그램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600쪽짜리 책을 수박 겉 핥듯 읽어 내려간다. 3년마다 대부업 등록을 갱신하지만 더는 교육이 없다.
금융위원회가 내놓은 대부업 개선 방안2012년 대부업에 등록한 30대 박승훈(가명)씨는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다”고 항의했다. 추심업체에서 일하던 그는 12억원짜리 채권을 2600만원에 사들여 독립했다. 혼자 이리저리 뛰어다니지만 인건비도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박씨는 상호에 대부업체라는 명칭도 쓰지 않았고(과태료 200만원), 대부조건표도 게시하지 않았고(과태료 50만원), 실태보고서도 잘못 작성했다(과태료 200만원). “대부 업무는 하지 않아요. 추심만 합니다.” 박씨의 주장에 구청 직원이 그래도 대부조건표를 공시하도록 법이 규정한다니까 이렇게 투덜댔다. “채무자도 연락이 안 되거나 파산해서 적자만 봅니다. 과태료까지 내면 어떻게 삽니까.” “운전면허증을 땄으면 운전을 해야지 신호위반을 해놓고 몰랐다고 하면 됩니까. 불법 추심해서 민원이 발생하면 행정조처 바로 합니다.” 합동조사반은 그렇게 돌아섰다.
지난 9월 금융위원회가 대부업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이렇다. 첫째, 대부업에 자본금과 보증금 요건을 도입한다. 법인은 1억원, 개인은 5천만원이다. 매입채권추심업은 자본금 5억원 이상의 법인으로 제한한다. 보증금도 최소 3천만원을 둬야 한다. 둘째, 고정사업장 요건을 신설했다. 이제 살고 있는 집에서 대부업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1천만원의 보증금을 예치해야 한다. 한용택 안전행정부 지역경제과 사무관은 “부동산 중개업자도 일정한 자격요건을 갖추는데 대부업도 자격심사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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