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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님, 괴담 진원지가 궁금하시죠?

언제나 한 박자 늦는 한국 정부 방사능 대책… 시민단체들 “일본산 수산물 수입금지 조처부터”
등록 2013-09-05 15:01 수정 2020-05-03 04:27
시민방사능감시센터의 김혜정 운영위원장(왼쪽)과 육승렬 연구원이 지난 8월23일 서울 면목동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서 방사능 측정 작업에 쓸 일본산 수산물 샘플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시민방사능감시센터의 김혜정 운영위원장(왼쪽)과 육승렬 연구원이 지난 8월23일 서울 면목동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서 방사능 측정 작업에 쓸 일본산 수산물 샘플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font color="#C21A1A">#장면1.</font><font color="#008ABD">8월2일 저녁, 일본 도쿄 원자력규제위원회(NRA) 회의실</font>

“현재 상황을 확실하게 조사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 위원)

“(방사능 오염수가 새나갔을) 가능성이 있다는 건, 저희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습니다.”(도쿄전력 관계자)

회의실 안에는 심각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20~40조베크렐(Bq) 규모의 방사성물질 트리튬(삼중수소)이 단지 안 오염수에 포함돼 유출됐다는 사실을, 후쿠시마 핵발전소 운영사인 도쿄전력이 대지진 이후 2년 넘게 지나 털어놓은 뒤 열린 긴급회의였다. 이날 회의에서 도쿄전력 관계자는 “핵발전소 지하에 고인 방사능 오염수가 매일 400t씩 차단벽을 넘어 바다로 흘러들어갔을 수 있다”고 밝혔다. 원자력규제위원회는 사고 보고를 받은 뒤 사고 등급을 ‘중대한 이상’을 뜻하는 3단계로 격상했다. 결국 넘친 방사능 오염수는 태평양까지 흘러들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font color="#C21A1A"> #장면2.</font> <font color="#008ABD">같은 날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회의실</font>

“악의적으로 괴담을 조작·유포하는 행위를 추적해 처벌함으로써 (괴담이) 근절되도록 노력해주십시오.”

정홍원 국무총리가 국가정책조정회의에 참가한 각 부처 장관들과 눈을 맞추며 이렇게 말했다. 언론을 통해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유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터넷·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방사능에 노출된 동식물 사진이 떠돌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어류 가격을 낮추려고 방사선에 피폭된 일본산 물고기를 구입했다”는 말까지 떠돌았다. 정 총리는 이날 “모든 부처는 앞으로 국민 생활과 관련된 괴담이 발생할 경우 즉시 신속하게 대응하고 사실관계를 상세히 알려서 국민 불안을 조기에 해소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괴담 해명’에 대한 지시는 있었지만, 방사능 오염과 관련한 ‘종합대책’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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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해도 좋다”는 정부의 발표도 방사능 불안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인 듯했다. 경기도 성남 지역 재래시장 10곳에서는 아예 일본산 수산물을 취급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대형마트에는 수십만원짜리 휴대용 방사능 측정 장치까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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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size="4"> 종합대책은 없고 괴담 해명 지시만</font>

그러나 공안검사 출신 국무총리의 강력한 발언은 별 소용이 없는 듯했다. 그의 발언은 오히려 ‘방사능 공포’에 기름을 부었을 뿐이다. “정부가 이미 알려진 일본발 방사능의 위험까지 괴담으로 치부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결국 괴담 척결을 지시한 지 20일 만에 정 총리는 농림축산식품부·환경부·해양수산부 장관, 그리고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을 모아 ‘방사능 오염 식품 안전관리 대책회의’를 열었다. “수입 수산물은 물론 바닷물의 방사능 오염 검사 결과까지 주기적으로 발표해 국민 불안을 해소하도록 하십시오.” 그는 실체적 진실 대신 괴담 척결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방사능 관리 현황과 각종 검사 결과를 주기적(2주 단위)으로 발표해 이(괴담)를 차단해주십시오.”

방사능 괴담에만 민감하게 반응해온 정부는 사고 한 달이 다 되어서야 본격적인 방사능 관련 정보를 내놓기 시작했다. 8월27일 국립수산과학원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우리나라 연근해의 방사능 검사 결과를 공개했다. 2011년부터 우리나라 동·서·남해와 동중국해의 75개 정점에서 해수를 채집해 조사한 결과였다. 국립수산과학원은 “방사성 세슘(137Cs)이 평소와 비슷한 수준으로 검출됐지만 미비한 수준이었다. 우리나라 바다는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또 방사능 오염수가 해류를 타고 지구 전체를 순환해 우리나라로 오기까지는 5년 정도가 걸려 그동안 방사능이 희석돼 방사능 유출수의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font size="4"> 5년 뒤 오염수 한국 도달한다는데</font>

그러나 “안심해도 좋다”는 정부의 대응은 방사능의 불안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인 듯했다. 경기도 성남 지역 재래시장 10곳에서는 아예 일본산 수산물을 취급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대형마트에도 일본발 방사능을 걱정하는 고객을 위해 수십만원짜리 휴대용 방사능 측정 장치까지 등장했다. 앞서 정부는 후쿠시마현·지바현 등 방사능 오염으로 일본에서 이미 자체적으로 출하 금지를 하고 있는 일부 농수산물에 대해 국내 반입을 막는 조처를 내렸다. 지난해 4월1일부터는 모든 일본산 수입 식품의 방사능 허용치를 방사성 세슘(134Cs, 137Cs) 기준 1kg당 370베크렐에서 100베크렐로 강화했다. 일본산 수입 우유·유제품은 방사성 세슘이 1kg당 50베크렐, 음료수는 10베크렐이 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당시 일본 검역 당국이 방사능 기준을 강화하자 이를 따라 적용한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우리 정부가 일본으로부터 받고 있는 방사능 증명서류에 대한 신뢰도 의심받고 있다. 김용익 민주당 의원실이 지난 8월28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받은 2010년부터 현재까지 일본산 식품에 대한 방사능 검사 현황 자료를 보면, 일본에서 발급한 수산물 방사능 증명서류에는 방사성 세슘과 요오드(131I) 등이 검출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지만, 식약처의 검사 결과에서는 기준치 이하로 검출된 사례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불안감은 과연 정부가 검역을 위한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 면목동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안에는 시민방사능감시센터가 설치해둔 방사능 핵종 분석기와 분석장치가 있다(왼쪽). 강원도 강릉대 안에 있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강릉지방 방사능 측정소에서 측정요원들이 강수량과 공기부유진 채집 등을 하고 있다.탁기형, 한겨레 김경호

서울 면목동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안에는 시민방사능감시센터가 설치해둔 방사능 핵종 분석기와 분석장치가 있다(왼쪽). 강원도 강릉대 안에 있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강릉지방 방사능 측정소에서 측정요원들이 강수량과 공기부유진 채집 등을 하고 있다.탁기형, 한겨레 김경호

이 때문에 환경단체 등에서는 오랫동안 이어질 일본발 방사능 오염수 유출에 대비할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시민방사능감시센터 등은 “방사능 오염수 유출 사태가 통제 불능 상태인 것이 확인된 이상 우리 정부는 일본산 수산물의 수입을 우선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방사선 피폭에 취약한 유아와 어린이를 감안할 때, 허용치보다 낮은 양이지만 몸 안에 쌓이는 방사성물질 등으로 인한 내부 피폭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8월26일 “2011년 3월 이후 전국 705개 초·중·고등학교에 일본산 수산물 2231kg이 납품된 사실을 확인했다”며 “급식 식재료 등에 방사능 검사를 의무화하는 ‘방사능 안전급식 조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휴대용 측정기 등을 통해 급식용 식재료에 방사능 검사를 하는 지방자치단체는 서울·경남·광주·부산·인천 등 5곳이다.

<font size="4">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나서라”</font>

결국 시민들의 막연한 불안감을 걷어내려면, 방사능 관련 안전 관리를 맡고 있는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나서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원안위조차 방사능 사고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없는 상태다. “솔직히 정보라는 게 일본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공식적으로 얻을 수 있는 건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하고 우리하고 협력관계에서 정보를 얻습니다. 대부분 그쪽 정보만 오는데 그걸 못 믿겠다고 하니까 문제가 생기거든요. 그러면 우리가 직접 가서 뭘 해봐야 하는데 그것은 월권이죠.”(지난 8월12일 열린 원안위 회의에서 이은철 원안위 위원장의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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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막연한 불안감을 걷어내려면, 방사능 관련 안전 관리를 맡고 있는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나서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원안위조차 방사능 사고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없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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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안위는 사고가 일어난 지 한 달 만에 본격적인 사태 파악에 나섰다. 외교부를 통해 일본 정부에 직접 방사능 오염수 실태에 관한 정보도 요청했다. 이번 사고로 해양 오염이 얼마나 확대될지, 오염수 유출로 수산물이 얼마나 영향을 받는지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후쿠시마 오염수 사고 지역의 현장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소속 전문가를 일본 현지에 파견하기로 했다. 후쿠시마 사고 등을 처리하기 위해 원안위가 마련해놓았다는 ‘인접국가 방사능 누출사고 위기관리 표준 매뉴얼’이 무색한 대응이다. 어쩌면 한 박자 늦은 정부의 움직임이 방사능 괴담을 키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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