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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의 주거권은 인간의 기본권

국제인권규약 11조 1항에 명시된 주거의 권리… 당사국 지위 걸맞는 법률적 후속 조처 뒤따라야
등록 2013-08-27 15:19 수정 2020-05-03 04:27

우리나라에서 주거권 문제에 관한 논의는 여러 갈래로 진행돼왔다. 도심 개발 방식과 주택 철거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있을 때마다 등장한 게 주거권이다. 주택 임차인의 임차권 보호 문제에도 주거권 개념이 등장했고, 주거에 대한 각 계층의 다양한 요구에도 주거권 개념은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주거권은 아직 법률로 확립된 권리 개념은 아니다. 학계에서도 ‘헌법 제35조 제3항’에 근거해 주거권 개념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는 정도다.

국제사회는 국민이 적정한 주택에서 적정한 생활을 영위할 권리인 ‘주거권’을 국가가 보호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선 주거권에 관한 개념조차 법률로 확립되지 않은 상태다.한겨레 김정효

국제사회는 국민이 적정한 주택에서 적정한 생활을 영위할 권리인 ‘주거권’을 국가가 보호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선 주거권에 관한 개념조차 법률로 확립되지 않은 상태다.한겨레 김정효

법률로 확립되지 않은 주거의 권리

그런데 한국이 1990년 7월 가입한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A규약)의 제11조 제1항에서는 “이 규약의 당사국은 모든 사람이 적당한 식량, 의복 및 주택을 포함하여 자기 자신과 가정을 위한 적당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와 생활조건을 지속적으로 개선할 권리를 가지는 것을 인정한다. 당사국은 그러한 취지에서 자유로운 동의에 입각한 국제적 협력의 본질적인 중요성을 인정하고, 그 권리의 실현을 확보하기 위한 적당한 조치를 취한다”고 명시하며 주거에 대한 권리와 이를 위한 국가의 조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이 조약을 해석한 문건인 ‘일반논평 4’는 주거의 권리가 다음 7가지 사항을 포함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1) 점유의 법적 보장 (2) 서비스, 물자, 시설, 인프라에 대한 가용성 (3) 비용의 적정성 (4) 거주 가능성 (5) 접근성 (6) 위치 (7) 문화적 적절성 등이다.

이러한 주거의 권리가 우리 사회에서는 얼마나 잘 실현되고 있을까. 대표적인 권리를 현실에 적용해봤다. 우선 점유의 법적 보장과 관련해 문제가 되는 사례를 보자.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주택 임차인에게 ‘임대차 갱신청구권’이 없기 때문에 계약 기간 2년이 지났는데도 임대인과 보증금 규모나 월세를 합의하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이사를 가야 한다. 주택을 살 여력이 없는 서민들은 지역에 정착하지 못하고 평생 끊임없이 집을 찾아 방랑을 해야 하는 것이다. 지역사회에 임차인이 정착하기 어려운 이유다. 주거의 불안이 보통 문제가 아닌 것이다. 특히 자녀가 학교나 유치원에 다니는 가정에는 더 심각한 문제다. 우리나라의 임차인들은 이렇게 평생 자주 이사를 다니면서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그러나 일본만 해도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집주인이 임대차 갱신을 거절할 수 없다. 독일은 임차인이 갱신 청구를 하지 않아도 임대차계약이 자동으로 갱신된다. 갱신 횟수에도 제한이 없다. 임대인이 갱신을 거절하려면 정당한 갱신 거절(해지 사유)임을 입증해야 한다. 즉, 임차인이 원한다면 10년 이상 한곳에서 거주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도 이런 안정된 사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점유의 법적 보장과 관련해선 여전히 강제철거가 문제되고 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재개발·재건축의 중단 및 유예 등으로 최근 잠시 주춤할 뿐이다.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는 금전적 여력이 부족한 원소유자와 세입자를 개발지역에서 내보내는 도심 개발 방식이 낳은 문제다. 따라서 주민들의 재정착률을 높이는 도심 개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아울러 주거와 관련된 행정대집행이나 민사집행은 인권보장적 관점에서 절차를 더 정비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는 세입자에 최소 4년 거주 기간 보장

지난해 11월 서울 강남구에서 발생한 넝마공동체 강제철거 사건을 계기로 지난 7월 서울시에서는 ‘주거시설 등에 대한 행정대집행 인권 매뉴얼’을 제정했다. 주택, 기타 사람이 거주하는 주거시설 등에 관한 철거 대집행 전에 충분한 협상 기회를 갖고 사람의 퇴거가 완료된 이후에 철거를 진행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철거에 동원되는 용역에게 인권침해 예방 교육을 하도록 한 것도 상당히 개선된 내용이다. 앞으로 관련 법률 개정의 중요한 계기가 되길 바란다.

주거 비용의 적절성과 관련해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제도 중 하나는 전·월세 인상률 상한제다. 현재 우리나라는 2년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 증액되는 차임(전·월세금)에 대해서만 연 5%의 인상률 제한을 두고 있다. 따라서 계약 기간이 끝날 때는 임대인이 차임을 대폭 인상해도 임차인은 이의를 제기할 권리가 없다. 반면 다른 나라는 여러 방법으로 임대료 인상률을 제한하고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행정청이 정한 연간 건축비지수의 상승분으로, 미국의 뉴욕주에서는 차임결정위원회가 제시한 매년 최대 차임상승분으로 임대료의 증액을 제한한다. 이와 관련해 현재 국회에서는 최소한 임차인에게 1회의 갱신청구권을 보장하고 (4년의 계약 기간을 보장하고) 그 기간 내에는 인상률을 연 5%로 제한하자는 법안에 대해 여당과 야당이 논의를 하고 있다. 서민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올 하반기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통과되길 기대한다.

주거 비용의 적정성과 관련해 또 다른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공공임대주택이 매우 적게 공급된다는 점이다. 201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10년 이상 장기공공임대주택은 89만 가구로 전체 주택의 5% 수준밖에 안 된다. 공공임대주택의 수가 너무 적으면 전·월세 폭등에 대처하는 공공부문의 영향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대학생·청년·노인 등 주거 취약계층에는 저렴한 주택이 적절히 제공될 필요가 있다. 공공임대주택이 시급히 확충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를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관여하는 공공부문에서 장기적이고 일관된 계획에 따라 공공임대주택 공급에 집중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거주 가능성, 즉 집이 살 만한가와 관련해서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중요한 해결 과제를 안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3년에 주택법을 개정해 주거의 최저기준을 정하고 정부가 정기적으로 조사 결과를 발표해왔다. 주택법상 최저주거기준은 (1) 가구 구성별 최소 주거 면적 및 용도별 방의 개수 (2) 부엌, 화장실 및 목욕시설 등의 구비 (3) 건물의 구조와 성능, 환경 기준 등을 정한 것이다. 그런데 ‘서울시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의 시·공간적 특정과 변화’(최은영·김용창) 연구에 따르면, 대규모 아파트 공급으로 자연히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가 줄어들던 시기를 지나 이미 2010년에 우리나라의 주거빈곤가구 감소폭은 현저히 둔화됐다. 특히 서울은 2010년 기준으로 지하·옥상 거주 비율(9.6%)과 기타 거처 비율(1.3%)이 전국에서 가장 높아 주거환경이 가장 열악한 지역에 꼽혔다고 한다. 즉,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를 줄이기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좀더 적극적인 정책 개입이 필요한 상황이다.

주거권 실현은 국제사회와의 약속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은 주거권과 관련해 극히 일부 문제에 불과하다. 앞서 살펴본 국제규약의 제2조 제1항은 “이 규약의 각 당사국은 특히 입법조치의 채택을 포함한 모든 적절한 수단에 의해 이 규약에서 인정된 권리의 완전한 실현을 점진적으로 달성하기 위하여, 개별적으로 또한 특히 경제적, 기술적인 국제지원과 국제협력을 통하여, 자국의 가용 자원이 허용하는 최대 한도까지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약에 가입한 정부는 주거에 관한 권리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국제사회와 국민에게 한 약속을 지킬 의무가 있다. 더 늦지 않게 이제라도 논의를 시작하자.

이강훈 변호사·법무법인 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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