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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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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별 전성시대

정전 60년, 정치의 최전선에 뜬 ‘박근혜의 별들’…
무신의 난인가, 지는 별의 창광인가
등록 2013-07-24 10:56 수정 2020-05-03 04:27
육사 선후배 사이로 ‘NLL 대화록 작전’을 합작하고 있는 남재준 국가정보원장.

육사 선후배 사이로 ‘NLL 대화록 작전’을 합작하고 있는 남재준 국가정보원장.

그렇다. ‘무신의 난’이다.

한국 정치의 최전선에 무신들이 섰다. 정전협정 60주년(7월27일)에 군홧발이 난무한다. ‘북방한계선(NLL)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국가정보 원 대선 개입과 현 정권의 연계 의혹을 한 방에 반전시켰다. 민주당의 지리멸렬까지 더해지며 정부·여당이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하는 결정 적 다리를 놨다. 육군사관학교 출신 선후배 4성 장군들의 합작품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이란 ‘실체 없는 논란’을 창조하며 휴전선의 긴장을 대국민·대야당 정치의 한가운데로 끌어들였다. ‘정보 기관의 민주주의 유린과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 규명’이란 선명한 쟁점 에 뿌연 먼지를 뿌렸다. 박 대통령이 안보라인 핵심에 세 사람을 배치할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아버지가 기초를 놓은 ‘무신의 나라’가 변방으 로 밀려나는가 싶더니 ‘딸의 시대’를 만나 권토중래하는 모양새다. 무신 들이 주도하는 ‘냉전’의 구태가 환갑을 맞은 ‘정전’을 휘감고 있다.

그렇다. ‘무신의 난’이다.

남재준·김장수·김관진이 일으킨 풍파

남재준 국가정보원장,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김관진 국방부 장관. 국민을 상대로 난을 일으킨 장수들이다. 차례로 육사 25기, 27 기, 28기다. 남재준은 12년 만(김대중 정부 후반 임동원 원장 이후)의 군인 출신 국정원장이다.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부를 거쳐온 ‘문민 국정 원장’ 전통을 박근혜 정부는 간단하게 되돌렸다. 김장수는 남재준(36 대)의 뒤를 이어 37대 육군참모총장을 지냈다. 김관진(2004~2005년) 은 김장수(2003~2004년)를 뒤따라 합동참모본부(합참) 작전본부장 을 역임했다. 남재준도 2000년 같은 자리를 맡았고, 김관진은 합참 의 장(2006~2008년)에 올랐다. 남재준과 김장수는 한미연합사령부 부 사령관으로도 일했다. 선배가 밟은 길을 후배가 걸으며 선후배는 ‘박근 혜의 장수’로 만날 날을 준비했다. 박흥렬 청와대 경호실장(육사 28기) 까지 합하면 현 정부 요직에 육군참모총장 출신만 3명이다. ‘육사 전성 시대’도 박 대통령이 ‘아버지의 시대’로부터 복원한 전통이다.

그렇다. ‘무신의 난’이다.

비슷한 배경과 경험을 공유한 이들이 ‘NLL 작전’에서 한 몸으로 움 직인 것은 당연했다. 남재준이 선봉을 맡았다. 대통령기록물법을 위 반하며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6월24일)하더니, 여야의 대화 록 열람 직전(7월10일)엔 자체 유권해석(노 전 대통령이 NLL 포기)으 로 ‘왜곡의 쐐기’를 박았다. 논란을 촉발한 국정원이 논란을 수습하기 위한 국회의 노력까지 깨끗이 무시해버린 셈이다. ‘대화록 독서법’까지 제시하며 정국에 영향을 미치려는 노골적인 정치 행위였다. 국정원에 쏟아지는 개혁 요구도 ‘알아서 하겠다’며 선을 그었다. 다음날(7월11일) 엔 김관진의 국방부가 가세했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에 언 급된 공동어로구역 설정은 NLL 포기로 해석될 수 있다’며 국정원을 엄호했다. 2007년 참여정부 국방장관으로 노 전 대통령의 NLL 수호 의지를 확인했던 김장수는 시종 침묵함으로써 박근혜 정부 ‘무신들의 정치’에 가담하고 있다.

그렇다. ‘무신의 난’이다.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왼쪽), 김관진 국방부 장관(오른쪽).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왼쪽), 김관진 국방부 장관(오른쪽).

실제 남재준이 ‘정중부의 난’을 언급했는지를 놓고 논란이 인 바 있 다. 2004년 육참총장 시절 노 전 대통령의 군 사법체제 개혁에 반발하 며 나온 이야기다. “(무신의 난은) 무인을 무시하고 문인을 우대한 결 과”라며 군 문민화 시도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는 보도가 있었다. 남 재준을 두고 “보수 군심의 아이콘”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 중 하나다. 남재준과 국방부는 발언 사실을 부인했다. 남재준은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자신을 ‘전사’라고 규정했다. 역대 가장 짧았다는 국정원장 취임 사에서 그는 “전사가 될 각오가 돼 있다”며 “여러분도 전사로서의 각오 를 다져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2005년 4월 육참총장에서 물러나며 “본인의 가치관과 소속 조직의 명예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자세” 를 전사의 조건으로 제시했다. “죽어야 할 때 죽을 수 있는 군인”이라 고도 했다. 남재준은 NLL 대화록 공개 이유도 “국정원의 명예 때문”(6 월25일 국회 정보위원회)이라고 설명했다. 국정원이란 조직을 위해서 라면 그는 목숨을 바쳐서라도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냉전을 에너지원 삼아 움직이는 세력들

그렇다. ‘무신의 난’이다.

한국의 국정원과 군대에 냉전은 ‘생존의 에너지원’이다. 정권 비판 세력을 ‘종북’으로 몰고 끊임없이 ‘척결 대상화’하며 조직 보존을 꾀해 왔다. 고려 말기나 박근혜 정부 초기나 무신의 난의 핵심은 ‘무신들의 생존권 투쟁’이다. 한국 현대사는 정중부의 난이 일어났을 때와는 정 반대의 시대를 헤쳐왔다. 문신에 의한 무신 차별이 고려 말기 난의 원 인이었다면, 한국 현대사는 무소불위 권력을 가진 무신들과의 투쟁의 역사였다. 수많은 희생을 통해 무신의 영향력을 축소시켜온 역사를 거스르며 무신들을 정치 전면에 다시 불러낸 사람이 ‘무신의 딸’ 박 대 통령이다. 그들의 살과 뼈는 그렇게 잇닿아 있다.

정전 60주년을 맞아 은 낙인찍기 및 특정 정치권력 추종 을 강요하며 조직 보전 동력을 확보해온 군의 교육 시스템을 들여다본 다. ‘돌아온 군홧발들’이 냉전의 발자국으로 정치 최전선을 어지럽히는 현실이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 필요성을 절실하게 방증한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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