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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미운 거죠, 그렇죠?”

국정원 정국 이끌어온 민주당 초선 김현·진선미 의원… “(대통령) 사과·(책임자) 처벌·(국정원) 개혁 없인 정국 수습 못한다”
등록 2013-07-17 11:34 수정 2020-05-03 04:27
민주당 진선미(왼쪽) 의원과 김현 의원 /김명진 기자

민주당 진선미(왼쪽) 의원과 김현 의원 /김명진 기자

‘국정원 저격수’의 방에는 ‘원세훈 게이트’란 제목의 두툼한 서류철 5개가 꽂혀 있다. 두께 10cm가 넘는 각 서류철마다 ‘원세훈 게이트’ 란 제목에 수백 장의 문서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서류철의 주 인인 김현(48·초선·비례대표) 민주당 의원의 국회 사무실에 들어오 며 진선미(46·초선·비례대표) 의원은 “우리가 밉지 않을까?”라고 말 했다. 박근혜 정권이 출범한 뒤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던 국정 원의 대선 개입 댓글 사건의 실체가 드러난 데는 두 의원의 집요함과 끈질김이 큰 몫을 했다. 새누리당이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등 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국조특위)에서 두 의원을 빼라고 주장하는 건 정말 이들이 미워서일지 모른다.

법리 밝은 진선미, 정무 판단 뛰어난 김현

진선미 의원은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 내부 문건을 공개하고, 야 당 후보 비방 댓글 삭제분을 공개하는 등 국정원의 선거 개입 증거 를 폭로해왔다. 민주당 ‘원세훈 게이트 진상조사위원회’ 간사인 김 의 원은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와 정보위원회에서 국정원의 선거 개입 의 혹을 줄기차게 제기했다. 변호사 출신인 진 의원이 증거와 법적 논리 를 제시했다면, 정치 입문 25년으로 잔뼈가 굵은 김 의원은 사건의 흐름과 정치적 의미를 짚어냈다. 미워할 만하다. 새누리당은 국정원 여직원 김요원(가명)씨를 ‘감금’했다는 이유로 이들을 포함한 민주당 의원 11명을 고발했고, 두 의원이 피고발인 이라는 이유로 7월12일 현재까지 이들의 사 퇴 없이는 국정조사를 하지 않겠다는 태도 를 보이고 있다. 인터뷰는 7월11일에 했다.

새누리당이 계속 국조특위에서 빠지라고 요구하 고 있다.

진선미(이하 진) 새누리당이 국정조사에 합의한 게 3월17일이다. 3월 18일 이후는 그 이전과 다르다. 3월18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원장 님 지시·강조 말씀’을 공개했다. 새누리당은 애초 정부조직법을 처리 하기 위해 국조 합의라는 ‘딜’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시·강조 말씀이 공개되면서 사건의 흐름이 바뀌었다. 새누리당은 그동안 댓 글 사건을 무마하고 국정원을 옹호해왔다. 지난해 12월11일로 가보 자. 국정원 여직원은 엄청난 범죄가 발각되는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서 범죄를 감추려고 스스로 문을 걸어잠그고 그 안에서 댓글을 삭제 했다. 검찰 공소장에 명명백백하게 나와 있다. 우리한테 인권유린 운 운하는 건 국정원이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만들어낸 궁박한 논리인 데, 새누리당이 그걸 날름 받아 공격해왔다. 어떻게 감히 우리한테 공정성을 운운하는지, 적반하장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김현(이하 김) 새누리당은 국정원 앵무새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와 정보위원회에서 새누리당은 ‘이번 사건은 인권침해다, 선거법·국정 원법 위반이 아니다, 경찰·검찰 수사는 못 믿겠다, 나중에 무혐의 처 분 될 거다’라는 태도를 보였다. 국조 특위 제척 요구는 국정조사를 하지 않으려는 정치적 꼼수에 불과하다.

“사건의 시작은 지난해 12월11일이 아니다. 2011년 11월 최재성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국정원이 대북심리정보국을 설치해 국내 정치에 개입하고 있다’고 문제제기했다. 국정원은 아니라고 했다. 민주당은 오랫동안 국정원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해왔다.”-김현

국정조사를 파행으로 몰고 가면서 민주당 책임이라고 덮어씌우 려는 거다.

“국조 무산될까, 심장이 벌렁벌렁한다” 국정조사 기한이 8월15일까지다. 제척 논란이 오래가면 국정조사의 실질적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은데.

심장이 벌렁벌렁한다. (웃음) 몇 달 동안 죽을 둥 살 둥 어렵게 퍼즐이 맞춰져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 때문에 국정조사가 무산될 수 있나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문제가 새누리당이 국정조사 를 대하는 모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어제(7월10일) 구속됐다. 개인 비리로 구 속됐지만, 선거법·국정원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된 상태다. 새누리 당이 국정조사를 파행시키는 것은 원 전 원장을 두둔하는 거다.

퍼즐을 맞추다보니 그림이 드러나는 상황인데.

사건의 시작은 지난해 12월11일이 아니다. 2011년 11월 최재성 민주당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국정원이 대북심리정보국을 설치해 국 내 정치에 개입하고 있다’고 문제제기했다. 국정원은 아니라고 했다. 지난해 10월 국감 때 유인태 의원이 대북심리정보국이 댓글 작업을 하고 있는 게 사실이냐고 질문했다. 국정원은 아니라고 했다. 민주당 은 오랫동안 국정원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했고, 대선 때인 2012년 12 월 국정원 여직원이 선거 개입 댓글을 달고 있는 현장을 파악한 거다.

나는 지난해 12월16일부터 시작한다. 문재인 후보의 수행대변 인으로 3차 TV 토론을 스튜디오에서 직접 봤다. 박근혜 후보가 “인 권변호사 출신인 문 후보가 선거에 이겨보려고 연약한 여성의 인권 을 유린하고 있다”고 매섭게 공격하더라. 그럼에도 내 입장에서 토론 의 승패는 명백했다. 그런데 토론 1시간 뒤인 밤 11시에 황당한 속보 가 떴다. 경찰 중간수사 발표, 댓글 없다! 순간 내 안에 숨어 있는 유 전자가 삐뽀삐뽀 하는 느낌이 왔다. 변호사의 감각인데, 어떤 사건에 서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정도로 부인하면 뭔가 있는 거다. 이 날 경찰의 한밤 중간수사 발표는 내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 다. 팔자인지 운명인지 경찰을 소관 기관으로 둔 국회 안행위 소속이 라 이때부터 파헤치기 시작했다.

가장 어려운 점은.

모든 게 국정원의 ‘비밀 업무’라는 거다. 국정원으로부터 마지막 들은 말이 “김요원씨 어느 부서로 옮겼느냐”는 질문에 “비밀이라 말씀 드릴 수 없다”는 거였다. 공식 석상에서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다. 제 보를 확인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정말 어렵게 여기까지 왔는데, 아직 도 인권유린 운운하는 건 정말 참을 수 없다. 나한테 왜 이래? (웃음)

새누리당을 역지사지해보면, ‘진선미, 우리한테 왜 이래?’겠지. (웃음)

“국정원이 여직원을 앞세워 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그런데 자신들이 거짓말한 것에 대한 책임은 어디 갔나? 검찰 공소장에(그들의 은폐 공작이) 다 드러났다. 공소장을 읽으며 사람이 화병으로 죽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진선미
“NLL 색깔론, 2008년부터 준비했다”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시작됐지만, 국정원이 북방한계선(NLL) 대화록을 공개 하고 새누리당이 대화록을 대선에 활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등 새로운 국 면이 됐다. 사건의 본질은 무엇인가.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해 10월8일 ‘땅따먹기’ 발언 등을 주장하며 비선으로부터 NLL 녹취록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며칠 뒤 같은 당 이철우 의원은 “2008년 10월 문제의 NLL 발언을 알게 됐 고, 당시 이 발언을 문제 삼으려 준비하고 있었는데,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는 바람에 이뤄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2008년 촛불 정국 이 후 NLL 문제를 색깔론으로 활용하려던 새누리당의 시도가 노 전 대 통령의 서거로 잠복했다가, 지난해 대선 때 안철수 후보 출마로 야권 단일후보 승리 가능성이 거론되자 다시 시도된 거다. 박근혜 캠프 권 영세 상황실장의 지난해 12월10일 ‘컨틴전시플랜’(비상계획) 발언을 보라. ‘집권하면 까면 되고’라고 했고, 국정원 댓글 국정조사를 하게 되자 이를 덮으려 깐 거다. 여권이 오랫동안 들고 활용하다 결국 깐 거다. 대화록을 공개한 남재준 국정원장은 새누리당 내곡동 지부장 이다. 앞으로 국정조사에서 명확히 밝혀야 할 대목이다.

헌법 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수십 년 동안 수많 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민주주의를 이뤘고, 그것이 국가 구성원의 삶에 가장 중요한 이념·가치라고 정리한 거다. 가장 중요한 기본권 은 선거권과 피선거권이다. 정치의 핵심이기도 하다. 이것이 보장되 지 않으면 민주주의 국가의 뿌리가 흔들린다. 이번 사건을 국기문란 이라고 하는 이유다. 여야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 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원세훈 전 원장은 4년 동안 대북관계를 뻥뻥 뚫리게 했다. 그러면서 이명박 정권에 대한 비판은 모조리 ‘종북’으로 몰았다. 최약이자 최악인 국정원을 만들었다. (진 의원은 이 대목에 서 목소리를 높이며 부르르 떨었다.) 지난해 12월11일 오피스텔 현장 발각 당시 국정원이 거짓말했던 보도자료를 지금 국면에서 다시 읽 어봐야 한다. 여직원을 앞세워 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는데, 자신 들이 거짓말한 것에 대한 책임은 어디 갔나? 검찰 공소장에 다 드러 났다. 공소장을 읽으며 사람이 화병으로 죽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 각까지 들었다.

(국정원은 지난해 12월11일 “민주당 쪽의 ‘국정원 직원이 역삼동 오 피스텔에서 정치 현안 댓글을 달고 있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무근이 며 이번 대선 관련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일체의 정치적 활동은 한 적 이 없다. 정보기관을 선거에 끌어들이는 것은 네거티브 흑색선전이라 고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법적 대응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다음날에는 “해당 직원은 특정 후보 비방 댓글을 인터넷에 남긴 적이 전혀 없다” “정치 중립을 분명히 지키고 있는 국정원을 민주당이 아무런 근거 없이 정 치적 목적으로 끌어들여 중상모략·마타도어 를 하고 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원세훈도 두려울 것… 검찰 하기에 달렸다” ‘촛불’은 동력이 모이지 않는 것 같은데.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변호사이고 국회의원인 내가 이 사건을 접할 때도 두려움이 있던데 일반 시민은 오죽하겠나. 여당과 정부, 보수 언론은 ‘나라가 흔들리면 안 된다’는 식으로 끊임없이 불안감을 조장하잖나. 촛불 들고 나오는 국민이 정말 대단하다.

2008년 촛불을 일으킨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먹을거리 문제라 비교하긴 어렵다. 1987년 민주화가 이뤄진 뒤 제도권 안에서 해결해 야 할 게 많아졌다. 거리 투쟁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제도권 안에서 국민에게 부여받은 임무를 해야 한다. 질기게 싸워야 할 문제다. 원 세훈 전 원장이 구속됐는데, 감옥에 처음 간 거라 두려울 것이다. 그 가 어떤 선택을 할지 검찰에 달려 있다. 검찰이 진실을 밝히려는 노 력을 제대로 한다면 감춰진 것들이 드러날 걸로 본다.

각계각층의 시국선언이 이어지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국정조사에서 주력할 지점은 어디인가. NLL 문제는 국정조사에서 빠져 있는데.

검찰 수사에서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원세훈 전 원장이 누구의 지시로 불법적 정치 개입을 했는지, 김용판 전 서울지 방경찰청장이 누구의 지시로, 어떤 경위와 목적으로 증거인멸과 수 사 축소·은폐, 중간수사 결과 발표를 했는지 등이다. 국정원 대북심 리정보국 소속 직원들의 불법행위 전반에 대한 수사도 이뤄지지 않 았다. NLL 문제는 여야가 더 협의해야 할 부분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조사는 국회가, 국정원 개혁은 국정원이 알아서 하라는 식인데.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했던 발언을 돌이켜보자. (국정원의 선 거 개입 댓글과 관련해) ‘사실이 아니면 민주당이 책임지라’고 했다. 그런데 사실임이 드러났다. 현 정부가 임명한 검찰 수사 결과가 그렇 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거나 나 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는 유체이탈 화법을 쓰고 있다. 기억을 잊 고 싶은 건지 정말 기억을 잊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느닷없이 국 정원 개혁을 스스로 하라고 한다. 사과하고 책임자를 처벌한 뒤 개혁 해야 하는 건데 사과와 처벌 없이 ‘남재준 당신이 알아서 하세요’라고 한다.

사과, 처벌, 개혁이라니까요!

글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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