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히 농사를 도왔던 벌이 사라지고 있다.
꽃이 열매를 맺으려면 수술에 있는 꽃가루를 암술머리에 옮겨 ‘짝짓기’하는 수정 과정을 거쳐야 한다. 꽃가루를 옮기는 주요 매파는 벌을 비롯한 곤충이다. 특히 식·약용으로 쓰이는 작물은 대부분 곤충에 의해 수정된다. 현대인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농산물의 35%는 곤충 덕을 보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세계 곳곳에서는 2006년부터 꿀벌 실종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일 나간 벌떼가 벌집만 남겨놓고 돌아오지 않고, 벌집에 남은 여왕벌과 애벌레가 죽는 ‘군집붕괴현상’(CCD·Colony Collapse Disorder)이다. 군은 여왕벌 한 마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꿀벌 집단의 단위다. 지난 5월23일치 미국 시사주간지 에 따르면, 60년 전 미국 내 꿀벌은 600만 군이었으나 현재 250만군으로 줄었다. 꿀벌 실종 사건의 정확한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으나, 1990년대에 도입돼 널리 사용되는 네오니코티노이드 계열 살충제가 꿀벌에게 악영향을 미쳤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휴대전화 전자파가 꿀벌의 방향감지 시스템을 교란시켰다거나, 농장 등 인공 생태계에 의존해 살면서 꿀벌이 생태계변화에 취약해졌다는 시각도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바이러스 감염 등이 원인일 것이라는 분석도 더해진다. 범인은 결국 사람에 의한 환경 변화일 가능성이 크다. 한국에서도 2010년 낭충봉아부패병 바이러스로 인해 토종 꿀벌이 대량 폐사한 적이 있었다.
꿀벌의 삶이 단순히 꿀벌만의 것이 아니듯, 세상 모든 생물은 또다른 생물의 삶과 유기적으로 얽혀 있다. 이렇게 얼기설기 짜인 망이, 사람들이 의존해 살아가는 생태계다. 그런데 지구에선 약 15분마다 하나의 생물종이 영원히 사라지고 있다. 산업화·환경파괴·기후변화·인구증가 등으로 인해 생물다양성이 감소하는 것이다. 곤충 역시 예외가 아니다. 생물다양성이 감소하면 안전망 역시 헐거워질 수밖에 없다. 2010년 유엔이 발표한 ‘3차 세계 생물다양성 전망’ 보고서를 보면, 1970년부터 2006년까지 지구상에서 생물종의 31%가 사라졌다.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생물종은 얼마나 될까. 정확한 수는 알기 힘들다. 지금까지 조사·확인된 한반도의 고유 생물은 약 4만 종이다. 일본에서 확인된 수의 절반 수준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생물이 사라졌는지도 알 수 없다. 고려대 생명공학과 배연재 교수는 “국가적인 대형 건설사업을 하면 그 지역 생물이 급감하는 걸 볼 수 있다”며 “하루살이도 종류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국토 면적 대비 자연환경보호지역 비율은 10.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6.4%)보다 훨씬 낮다. 농촌에서도 농약이나 비료 살포, 농작물 다양성 감소 등으로 인해 생물다양성이 줄었다는 분석이 있다. 1990년부터 2003년까지 한국의 평균 농약 사용량은 1ha당 12.8kg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많았다.
한국 농약 사용량, OECD 1위서울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새는 비둘기다. 강남 갔던 제비도, 짹짹거리는 참새도 보기 힘들다. 뻐꾸기 우는 소리도 멀어져간다. 단순해진 먹이사슬 사이로 재앙의 씨앗이 움트고 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