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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4860원. 기업·자영업자에게는 ‘최소한의 비용’이다. 그러나 저임금노동자에게는 ‘최고의 임금’ 이다. 그나마도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에겐 ‘꿈의 임금’이다. 최저임금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렇게 복잡하 다. 누군가에게는 줄여야 하는 비용이고, 누군가에게는 최대의 생계비이며, 누군가에는 빼앗긴 권리다. 이 시선들이 이제 한곳으로 쏠리고 있다. 곧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짓게 될 최저임금위원회다. 올해는 ‘합리적 인 최저임금’을 주장해온 박근혜 정부에서 첫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터라 주목도가 어느 때보다 높다. 박근 혜 정부가 경제민주화와 서민경제 회복을 통해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노라고 공헌해온 만큼 사용자 쪽은 바 짝 긴장하고 있고, 노동자 쪽은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최저임금의 ‘합리성’이 사용자의 경제적 비 용을 의미하는지, 노동자의 현실적 임금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_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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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종(21·가명)씨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2010년 자퇴를 하고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났다. 형편이 어려운 부모님을 대신해 스스로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낯선 땅에서 그는 닥치는 대로 일했다. 하루 9~10시간씩 농장에서 포도를 따고, 전기 케이블을 설치했으 며, 식용 캥거루를 도축하기도 했다. 험한 일이긴 해도 외국인 아르바이트생 신분이라 최저 임금으로 시간당 18오스트레일리아달러(약 2만1천원)를 받았다. 그래도 최저임금 수준은 꽤 높았다. 방값·식비·교통비 등으로 80만~100만원을 쓰고도 매달 500만원씩 남았다. 그렇 게 2년간 악착같이 일하니 4년간 대학 등록금을 내고도 남을 7천만원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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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을 비용으로만 생 각하는 기업은 무조건적으 로 최저임금을 낮추려고만 해왔다. 노동계 역시 외환위 기를 겪고 나서야 저임금노 동자의 최저임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결국 사회 전반적으로 임금 평등에 대 한 공감대가 적었던 게 최저 임금 수준을 낮추는 결과를 초래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 연구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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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매우 낮게 정해진 최저임금 그러나 1년 전 돌아온 한국은 오스트레일리아보다 더 낯설었다. 그는 한국에 귀국한 뒤 대 학 입시를 준비하며 커피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역시 시간당 4580원(2012년 기준)인 최저임금을 받았다. 주 40시간의 법정노동시간은 물론 야간·주말에까지 일해도 한 달 월급이 130만원을 넘지 않았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받은 일주일치 최저임금 정도였다. 창문 하나 없이 컴컴한 23만원짜리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악착을 떨어도 돈은 모이지 않았 다. 그는 늘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던 시절을 떠올렸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선 비정규직 노동 자든, 아르바이트생이든, 인턴이든 최저임금만 받더라도 어느 정도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 런데 한국에서 최저임금으로 지내보니 겨우 먹고 자고, 다시 일하러 가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 노동자가 되는 게 겁났다.” 그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대학을 다니기 위해 6월 중순 다시 떠났다.
한국의 최저임금은 얼마나 낮은 수준일까.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결과로 도입된 최저임 금은 1988년 462원5전(중공업 분야 제조업은 487원5전)에서 올해 4860원으로 24년 동안 10배가량 올랐다. 최저임금이 하나로 통일된 1989년 이후부터 계산하면 최저임금은 지난해 까지 연평균 10%씩 올랐다. 같은 기간 상용직 노동자(10명 이상 사업체에 종사하는 사업장 기준)의 명목임금 상승률(8.9%)을 조금 웃돈다. 그러나 최저임금 상승폭이 상대적으로 커 보이는 건 애초에 최저임금이 매우 낮게 정해졌기 때문이다. 실제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보면 형편없는 최저임금 수준이 쉽게 드러난다.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에 앞서 최저임금위원회 사무국이 최근 위원들에게 배포한 ‘주요 노동·경제 지표 분석’ 보고서를 보면, 상용직 임금노동자의 중위임금(임금순으로 늘어놓았을 때 가운데 있는 임금) 대비 최저임금의 비율(2011년 기준)은 41%에 불과하다. 최저임금이 임금노동자 임금의 ‘반의 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다. 2000년(25%)부터 서서히 늘어나긴 했지만, 최저임금을 도입한 22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여전히 18위다. 중위임금이 아니라 평균임금과 비교하면 최저임금 비율은 34%까지 떨어진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의 설명이다. “최저임금을 비용으로만 생각하는 기업은 무조건적으로 최저임금을 낮추려고만 해왔다. 역대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권들도 이를 눈감아줬다. 노동계 역시 외환위기를 겪고 나서야 저임금노동자의 최저임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결국 사회 전반적으로 임금 평등에 대한 공감대가 적었던 게 최저임금 수준을 낮추는 결과를 초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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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8월 기준으로 저임금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24%인 439만 명에 이른다. 현재 최저임금을 받고 있거나, 그보다 약간 높은 임금을 받고 있지만 언제든 임금이 더 줄어들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대부분이다. 실제 이 중 258만 명이 올해 최저임금 인상으로 월급이 소폭 오르는 등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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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영자총협회를 포함한 경영계는 “그동안 최저임금이 과도하게 올랐다”며 내년 최저임금의 동결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실질 생계비에도 크게 못 미치는 최저임금을 받는 저임금노동자들은 점점 더 가난해지고 있다. 지난 6월13일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경비원이 쓰레기를 분류하는 모습.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최저임금 직접적 영향받는 258만 명 문제는 쥐꼬리만 한 최저임금에 울고 웃는 ‘워킹푸어’(일하는 빈곤층)가 많다는 데 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8월 기준으로 저임금노동자(임금이 전체 노동자 중위임금의 3분의 2 미만인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24%인 439만 명에 이른다. 현재 최저임금을 받고 있거나, 그보다 약간 높은 임금을 받고 있지만 언제든 임금이 더 줄어들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대부분이다. 실제 이 중 258만 명이 올해 최저임금 인상으로 월급이 소폭 오르는 등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임금노동자의 14.7%나 된다. 이렇게 최저임금 인상의 직접적 혜택을 받는 비율인 ‘영향률’은 2001년 9월 2.8%에서 추세적으로 상승해왔다. 사용자 쪽은 이에 대해 “과도하게 최저임금이 오른 결과”라고 주장하지만, 최저임금을 받는 워킹푸어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들에겐 최저임금이 곧 최고임금인 셈이다. 특히 아르바이트 같은 저임금의 불안한 일자리에 노출된 청년층에겐 최저임금의 영향력이 더 막강하다. 청년세대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의 정준영 사무국장의 지적이다. “자신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불안정한 비정규직 저임금 상태에서 일하는 청년노동자들이야말로 최저임금의 당사자다. 최저임금은 곧 청년임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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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문가에 중립성마저 잃은 인사들도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들은 공익적일까?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슈퍼 갑’은 공익위원이다. 극단을 달리는 9명의 근로자 대표와 9명의 사용자 대표 중 9명의 공익위원이 어느 쪽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최저임금 수준이 결정되는 까닭이다. 그런데 공익위원에게 막강한 ‘캐 스팅보트’를 쥐어줘도 될 만큼 그들은 공익적일까. 최저임금제도가 시행된 1988년부터 2013년까지 최저임금이 총 26번 결정 되는 동안 근로자·사용자·공익위원이 합의에 이른 것은 7번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공익위원이 제시한 최저임금 인상안에 근로자·사용자가 표결하거 나, 공익위원이 근로자위원안 또는 사용자위원안 중 한쪽에 힘을 보태준 결 과로 결정됐다. 어떤 경우에도 공익위원의 판단이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다. 예를 들어 근로자위원안(26.2% 인상)과 사용자위원안(동결) 간 의견 이 끝내 좁혀지지 않은 지난해에는 공익위원이 제시한 안(6.1%)이 최종 표결 에 부쳐졌다. 결국 대다수 근로자·사용자 위원이 불참하거나 기권한 가운데 공익위원 9명과 근로자위원 1명의 찬성으로 최저임금이 결정됐다. 최만정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충남지역본부장은 위원회의 분위기를 이렇게 설명 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노사합의 기구이고 공익위원은 중재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최종 결정은 공익위원이 하는 구조다. 노사가 격렬하게 대립 하는 사이 공익위원들은 정부의 의중에 맞게 최종안을 만들고, 노동자나 사 용자가 퇴장하더라도 방망이를 두드린다.” 문제는 최저임금 결정에 강력한 권한을 가진 공익위원이 정부의 입맛대로 위촉되고 있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공익위원을 제청하면 대통령이 임명 하도록 법에 규정된 탓이다. 그러다보니 노사 한쪽에 치우치거나 아예 노동 문제를 모르는 위원들이 위촉되기도 한다. 현재 공익위원 9명 중 대부분은 노동경제나 노사관계 등을 전공한 경제학·경영학 교수 또는 연구원이다. 노 동법학·사회학·사회복지학 전공자는 없고, 생뚱맞은 소비자학 전공자는 2 명이나 있다. 그나마 전문성은 둘째 치더라도 최소한의 중립성마저 잃은 것처럼 보이는 위 원도 여럿이다. 공익위원으로 최저임금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준성 성신여대 교수(경영학)부터 사용자 쪽에 지나치게 기울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 교 수는 지난 6월12일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기구인 한국경제연구원을 통해 발표한 ‘통상임금의 범위와 임금의 유연성’ 보고서에서 “통상임금에 상여금 이 포함되면 기업의 부담이 증가하면서 고용률을 1%포인트 하락시키는 효과 가 발생할 것”이라며 노동자들이 요구해온 ‘통상임금의 범위 확대’를 정면으 로 반박하는 주장을 폈다. 그는 2011년에도 ‘최저임금 국제비교의 문제점’ 보 고서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하는 국가별 최저임금 비교 방식 에는 문제가 있고 제대로 하면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은 상위권이라고 주장 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또 다른 공익위원인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도 친기업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는 공익위원이 되기 전인 2011년 의 ‘최저임금 인상의 역설’이란 기고문을 통해 “최저임금 상승이 고 용을 감소시킴이 분명하다”며 사용자 쪽의 주장을 폈다. 비슷한 시기 기고문에선 정부가 내놓은 비정규직 대책에 대해 노동유연성을 보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시 공익위원인 이인재 한국노동연구원장은 2010년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시절 교육과학기술부 용역으로 수행한 연구에서 “전 교조 교사가 많으면 학생의 수능 성적이 떨어진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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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푸어 절규에 귀 닫은 재계그러나 빈약한 최저임금은 애초 취지대로 워킹푸어의 ‘빈곤의 굴레’를 끊어주거나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시켜주기는커녕 오히려 빈곤의 악순환을 부추기고 있다. 늘 실질 생계비보다 적게 책정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통계학회가 올해 최저생계비를 결정하기에 앞서 최저임금위원회에 보고한 단신노동자의 생계비(2011년 기준)는 141만원이었다. 혼자 사는 노동자의 가계부를 들여다본 결과, 실질 생계비로 한 달에 140만원은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결국 올해 최저임금은 월급으로 환산했을 때 101만원 수준으로 결정됐다. 2년간 소비자물가가 오른 점을 무시하더라도, 물려받은 재산이나 저축한 돈이 없다면 매달 40만원씩은 빚을 얻어야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게다가 올해는 통계학회가 추정한 단 신가구의 생계비(2012년 기준)가 151만원으로 전년보다 10만원(7%) 가량 올랐으니, 최저임금이 7% 이상 오르지 않는다면 가계의 적자 규모가 더 커질 수밖에 없게 됐다. 10년째 최저임금을 받고 있는 강 석훈(40·가명)씨의 생활을 들여다보자. KBS의 보도차·중계차 등 을 운전하는 그는 지난해까지 매년 시간당 최저임금을 월급으로 계 산해 받아왔다. 그나마 올해는 지난 4~5월 노조의 파업으로 월급 이 2만5천원가량 올랐다. 그래도 법정노동시간인 주 40시간만 근무 하면 식대와 기본 상여금 등이 붙더라도 140만원에 불과하다. 평일 야간 근무와 휴일 근무를 도맡아 해야 170만원 정도를 맞출 수 있다. “휴일수당을 받으려고 근무를 자원해도 경쟁이 치열해서 그마저 쉽 지 않다. 비정규직 텔레마케터인 아내와 월급을 합쳐도 300만원 정 도인데 대출금 이자로 매달 100만원이 나간다. 고등학생·중학생인 아이들을 학원에 안 보내고, 외식 한 번 안 하고, 휴일에 밖에 안 나 가도 계속 빚은 줄지 않는다.”
워킹푸어의 절규도 경영계에는 ‘소 귀에 경 읽기’다. 경영계는 올해 도 최저임금위원회에 ‘동결’ 의견을 제시했다. 2007년부터 7년 연속 동결이나 삭감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계가 최저임금을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의 50% 수준인 5910원(인상률 21.6%)으로 끌어올 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상당한 온도차가 있다. 경영계의 대표 격 인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 6월7일 최저임금위원회에 제출한 ‘최저 임금 사용자위원안’ 보고서를 보면, 동결을 주장하는 이유로 “2000 년 이후 최저임금이 연평균 8% 고율 인상돼 최저임금의 주된 적용 대상인 영세·중소기업들이 존폐 기로의 서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최근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이나 영세 자영업자들의 상황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가 가관이다. 최저임금도 못 받는 노동자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 논의는 무의미하다는 주장이다. 실제 지난해 기준으로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노동자는 170만 명에 이를 정도로 많다. 그러나 이는 사용자가 최저임금을 준수하도록 강제 수위를 높여 해결할 문제이지, 최저임금 수준을 낮춰 풀 문제가 아니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고용이 줄어들 수 있다는 오래된 ‘협박’도 빠지지 않는다. 이시균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이렇게 반박한다. “지금 한국은 저임금·저생산성의 구조로 인해 경제적 잠재력이 사그라지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고임금·고생산성으로 가려면 최저임금을 높여야 한다. 그러면 노동시장에 참여하려는 노동자가 늘어나고, 그들이 생산성을 높이려는 자극을 받으면 고용도 증가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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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불안정한 비정규직 저임금 상태에서 일하는 청년노동자들이야말로 최저임금의 당사자다. 최저임금은 곧 청년임금이다.” -정준영 청년유니온 사무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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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연대 등 시민단체로 구성된 ‘최저임금 1만원위원회’는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 수 있게 “최저임금을 (시간당) 1만원으로 인상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회원들이 지난 5월30일 서울 강남구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한겨레 김봉규
이렇게 노동자 쪽과 사용자 쪽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으니 올해도 최종 결정은 정부의 의지에 좌우될 전망이다. 지금까지의 최저임금 인상폭도 정권의 성향에 따라 큰 차이를 보여왔다. 친서민 정부를 표방한 김대중 정부에서 최저임금은 연평균 9%, 노무현 정부에서는 10.6%씩 올랐지만,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운 이명박 정부에선 5.2%에 그쳤다. 일단 박근혜 정부는 저임금노동자에 대한 사회안전망으로 최저임금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듯 보인다. 새누리당 대선 경선을 치를 때만 해도 최저임금이 “5천원도 안 됩니까”라고 놀랐던 박 대통령은 후보자가 된 뒤 최저임금 결정 기준으로 ‘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소득분배 조정분’을 제시했다. 정권을 잡은 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선 ‘합리적인 최저임금 인상률 가이드라인 마련’을 국정과제로 정했다. 당시 인수위 안팎에선 ‘연평균 8% 인상’이라는 구체적인 수치도 나돌았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의지도 엿보인다. 고용노동부가 내년도 최저임금 산정을 앞두고 지난 3월 최저임금위원회에 보낸 ‘최저임금 심의 요청’ 문서를 보면,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고려하고, 향후 5년간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소득분배 상황이 개선될 수 있는 방향으로 합리적 수준의 최저임금을 심의해달라”고 공식으로 요청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없던 문구다. 노동계 쪽에서 이번엔 이명박 정부와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는 이유다. 최만정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충남지역본부장은 “심의 요청서를 보고 정부에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의지가 일정 부분 있다고 생각했다. (중재자 역할을 맡고 있는) 공익위원들도 부담을 갖고 있는 듯 보인다. 일단 남은 회의에서 사용자 쪽에서 제시하는 수정안을 본 뒤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 오르면 내수와 경제에 도움긍정적 신호만 있는 건 아니다. 국민행복시대를 내건 박근혜 정부가 정년 연장이나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같은 노동·일자리 대책을 내놓긴 했지만, 노동자에게 불리한 입장을 보일 때도 자주 있는 탓이다. 고용률을 끌어올리는 방안으로 저임금의 시간제 일자리 확대를 제시하거나, 투자 유치 명목으로 노동자가 원하는 통상임금(노동자에게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월급·주급·일급·시간급 등의 총칭) 범위 확대에 제동을 건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사회학)의 조언이다. “최저임금은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생존권이다. 한국처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크고 실업에 대비한 고용보험의 역할은 낮은 상황에선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최저임금이 평균임금의 절반까지는 올라가야 한다. 그렇게 되면 취약한 내수시장이 활성화되면서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정부가 전향적인 사고를 해줘야 할 때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답은 6월27일 나온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