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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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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배울까, 교실 안이 늘 궁금했어요”

공장·낚시점·학교 사환 전전하던 누르딘
등록 2013-06-11 17:48 수정 2020-05-03 04:27
공장·낚시점·학교 사환 전전하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누르딘. 사진 굿네이버스 제공

공장·낚시점·학교 사환 전전하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누르딘. 사진 굿네이버스 제공

“슬라맛 파기.”(안녕하세요.)

지난 5월28일 인도네시아 보고르 시내 삼익기술학교의 봉제반에서 만난 누르딘(17)은 ‘모범생’이라는 별명답게 수줍게 인사만 건넨 뒤 곧바로 고개를 숙이고는 옷을 만드는 연습에 열중했다. 소년은 진지한 표정으로 천에 자를 대고 셔츠 깃의 패턴을 그리고, 잘랐다. 봉제기술을 익힌 지 두 달도 안 됐지만 기숙사 생활을 하며 방과 후, 주말 할 것 없이 연습한 덕에 소년의 손놀림은 제법 능숙했다. “어렵지만 전 배우는 게 좋아요. 정말 오랜만이니까요.”

보고르의 할리문산 중턱에 있는 치파램팽 마을 출신인 누르딘은 지난 4월 이 기술학교에 입학했다. 중학교를 그만둔 지 3년 만이었다. 무료로 이뤄지는 6개월의 봉제 이론·실습 과정을 수료하면 오는 10월에는 의류공장에 봉제기술자로 취업하게 된다. 언젠가 디자이너로 성공한 뒤 고향으로 돌아가 마을 아이들에게 자신의 기술을 전수해주는 게 그의 꿈이다.

고된 노동에 시달리던 지난해까지만 해도 소년은 희망 따위를 품지 않았다. 오로지 머릿속엔 ‘생존’에 대한 고민만 가득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나온 14살 때부터 소년이 마주한 현실이 매우 고약했던 탓이다. 소년은 봉제공장·치과·낚시점·사립학교 등을 전전하며 아침 7시부터 저녁 6시까지 꼬박 11시간씩 일했다. 일터에서 끼니는 챙겨줬지만 배고픔을 채울 정도는 아니었다. 잠자리는 봉제공장 바닥이나 치과 소파에서 해결했다. 그렇게 처절하게 일해도 월급은 한 달 30만~50만루피(약 3만4200~5만7천원)를 받았다. 성인 월급의 20~30%였다. “잠이 부족해 늘 피곤했어요. ‘집을 왜 떠났을까’ 후회도 했죠. 그중에서도 사립학교에서 일할 때가 가장 슬펐어요. 내 또래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까’ 궁금해하며 교실을 엿보곤 했으니까요.”

그래도 속 깊은 누르딘은 집으로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산기슭에서 농사를 지으며 수확철에나 한 달 40만루피(약 4만5600원)를 버는 부모에게 돌아가더라도 자신을 다시 학교에 보내줄 형편이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5명의 누나들 역시 초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채 부모의 농사일을 돕다 일찍 결혼한 터였다.

그러던 2011년 시들어가던 누르딘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우연히 인연을 맺게 된 굿네이버스의 주선으로 누르딘과 부모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이다. 누르딘은 부모와 1년여간 고민한 끝에 일을 그만두고 기술학교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그 뒤 결연을 맺은 후원자는 누르딘이 노동을 하지 않고도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게 돕고 있다. 아버지도 대나무로 의자 등의 수공예품을 만드는 기술을 배우며 아들을 응원하고 있다. “저는 원래 내성적인 성격이었어요. 그런데 이곳에서 기술도 배우고 친구도 사귀며 자신감이 생겼어요. 처음으로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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