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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신났다 “노는 게 권리였어!”

굿네이버스, 인도네시아 빈민가 돌며 아동권리 교육… 일하는 자녀 의존 끊게 부모 기술교육·일대일 후원도 주선
등록 2013-06-11 17:46 수정 2020-05-03 04:27

자카르타·보고르(인도네시아)=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게 있고, 없어도 되지만 우리가 원하는 게 있지. ‘노는 것’은 필요한 것일까, 원하는 것일까.”
지난 5월29일 자카르타의 빈민가인 라와바닥에 있는 ‘라와바닥 파기 07 공립초등학교’의 5학년 교실.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인 굿네이버스 인도네시아지부의 아동권리교육 강사인 붸르다의 질문에 40명의 아이들이 합창하듯 답했다. “원하는 것이오!” 붸르다가 고개를 가로저은 뒤 설명했다. “아니야. 노는 건 꼭 필요한 거야. 매일 놀지 않고 일이나 공부만 한다면 행복하겠니? 이렇게 모든 아동이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있고 누려야 하는 게 ‘아동권리’야.” 아이들은 갑자기 신이 났다. “노는 게 우리 권리였어!”

한 인도네시아 소녀가 지난 5월29일 굿네이버스가 진행하는 ‘아동권리 교육’을 밝은 표정으로 듣고 있다. 사진 굿네이버스 제공

한 인도네시아 소녀가 지난 5월29일 굿네이버스가 진행하는 ‘아동권리 교육’을 밝은 표정으로 듣고 있다. 사진 굿네이버스 제공

3년간 4천여 명에 아동권리 수업

아이들의 관심이 집중되자 붸르다가 좀더 진지하게 수업을 이어갔다. “아동권리에는 크게 4가지가 있어. 같이 그림을 볼까?” 아이들의 똘망똘망한 시선이 프로젝터 위로 꽂혔다.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고 아프면 병원에 갈 ‘생존 권리’, 안전한 곳에서 살고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 ‘보호받을 권리’, 선생님·축구선수 같은 꿈을 이루기 위해 충분히 교육받을 ‘발달 권리’, 어른들에게 당당하게 의견을 표출할 ‘참여의 권리’가 제각각 만화로 표현돼 있었다. “너희에게 이런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고, 부모님에게도 말씀드리렴. 자, 우리 모두 약속할까?” 아이들이 새끼손가락을 들어 붸르다의 말을 우렁차게 따라했다. “나는 약속한다. 나와 관련된 의견은 내가 결정하겠다. 그리고 어른들과 내 문제에 대해 토론할 거다.”

1시간가량의 짧은 수업에도 학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디니(12)는 “아이들에게도 이런 권리가 있는 줄 몰랐다. 지금까지 부모님이 시키는 일만 했다.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누가 하기 싫은 일을 시키면 내 생각을 말하겠다”고 했다.

아동노동을 줄여나가는 방편으로 굿네이버스 인도네시아지부는 전국의 빈민 지역을 돌아다니며 ‘아동권리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아동이 자신의 기본권을 충분히 인지한 뒤 위험·학대 상황에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수업 목표다. 지난 3년간 75개 학교에서 4천여 명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교사와 부모를 상대로 수업을 할 때도 있다. 아동노동이 근절되려면 빈곤, 양극화, 질 낮은 교육 인프라 같은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돼야 하지만, 일을 시키는 부모와 이를 묵묵히 따르는 아동의 의식 수준도 함께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박동철 굿네이버스 인도네시아지부장의 설명이다. “이곳의 아동은 대부분 노동 때문에 자신의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러면서 부모를 도와야 할 의무는 끔찍이 생각한다. 부모의 가치관도 비슷하다. 아동이 노동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도와줘야 한다.”

가난한 부모가 소득을 늘려 자녀의 노동에 의존하지 않게 하는 것도 아동을 보호하는 방법 중 하나다. 이 단체는 노동하는 자녀를 둔 부모가 기술을 배워 일자리를 구하거나 장사를 시작하도록 돕고 있다. 기술의 종류는 부모의 희망에 따라 논둑에 물고기를 키우는 양식기술, 유기농 농작물을 생산하는 농업기술, 생선을 장기 보관하는 가공기술 등 다양하다. 장사 밑천이 필요한 이들에겐 소액의 자금을 빌려주기도 한다. 박 지부장은 “부모에게 기술교육을 제공해도 상품의 판매망 부족 등으로 실제 의미 있는 소득을 올리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그래도 소득활동 개선에 의욕적인 부모들은 자녀를 점진적으로라도 노동과 단절시키려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작은 후원이 아이들 미래 바꾼다

정부나 부모가 아닌 제3자로부터 재정적인 도움을 받아 일터 대신 학교로 돌아갈 수 있게 된 아이들도 있다. 한국·미국 등지의 후원자와 ‘일대일 결연’을 맺은 아이들이다. 후원금은 빈곤 가정의 아동이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고 아픈 곳을 치료받는 것은 물론, 학교에서 배움을 이어가게 하는 데 고루 쓰인다. 현재 1만여 명의 인도네시아 아동들이 후원자의 도움을 받고 있다. 400만 명이 넘는 아동 노동자 중 극히 일부다.

후원 문의 굿네이버스 1599-0300 www.gni.kr
후원 계좌 463537-01-002778(국민은행/ 굿네이버스 인터내셔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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