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지갑을 열고 1천원짜리, 1만원짜리를 꺼내보자. 우리가 매일 쓰는 이 지폐가 우즈베키스탄 아이들의 눈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9월 목화 수확이 시작되면 우즈베키스탄에서는 학교 문을 닫는다. 많게는 200만 명의 아이들이 정부가 통제하는 목화 농장에 동원되기 때문이다. 수확 할당량(10~50kg)을 채우지 못한 아이들은 야단을 맞거나 체벌을 당하지만 퇴학을 당할까봐 목화밭을 떠나지 못한다.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한 채 강제노동에 나선 아이들은 만성적인 영양실조와 간염, 호흡기 질환 등 질병에 시달린다.
2011년 기준으로 세계 6위의 목화 생산국이자 5위의 목화 수출국인 우즈베키스탄은 목화의 생산과 거래를 정부가 철저히 관리한다. 농민들이 개별적으로 외국에 목화를 팔면 형사처벌을 받을 정도로 통제가 엄격하다. “아동노동은 세계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우즈베키스탄은 국가 주도하에 이뤄진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아동을 강제노동 현장에 동원해 얻는 모든 이익은 22년간 장기 집권한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과 그 일가에게 돌아가고 있다.”(공익법센터 ‘어필’ 정신영 변호사) 우즈베키스탄의 아동노동은 2008년부터 사회문제로 떠올라 유럽과 미국은 우즈베키스탄 면화로 만든 직물 거래를 중단했다. 핀란드 대표 섬유회사 마리메코, 미국 대형 유통업체인 월마트, 영국 테스코 등이 그랬다.
반대로 한국조폐공사는 2010년 9월 대우인터내셔널과 합작해 우즈베키스탄에 ‘글로벌콤스코대우’(GKD)라는 회사를 설립한다. 지폐·수표·상품권 등 은행권 보안용지의 주원료인 면펄프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서다. 합작회사의 지분은 조폐공사가 65% 보유하는데 공장 운영도 맡고 있다. GKD는 2012년 6월까지 1276t의 면펄프를 판매했는데, 그중 1076t을 조폐공사가 사들였다. 박원석 의원(진보정의당)은 “아동노동을 금지하는 국제노동기구 협약에 명백히 위반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국제노동기구(ILO)와 ‘유엔아동권리협약’에 가입했고 아동노동금지협정에도 찬성했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2011년 이렇게 지적했다. “당사국(한국)은 아동노동을 하고 아동권을 상당히 침해한 것으로 ILO의 조사를 받은 나라에서 상품을 수입하고 있다.” 특히 조폐공사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기로 약속한 국제협약 ‘유엔글로벌콤팩트’에 가입한 공기업이다. 협약의 10대 노동 원칙에는 ‘기업은 아동노동을 효과적으로 폐지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아동노동은 과거의 일이라고 주장한다. “2012년 3월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아동노동 착취 근절을 위한 시책을 발표했다. 총리는 목화 수확시 초·중·고교생 동원을 엄격히 금지하라고 명령했다.”(주 우즈베키스탄 한국대사관에서 조폐공사에 보낸 답변서) 정신영 변호사는 고개를 저었다. “우즈베크 정부는 아동노동 현황을 보고해오던 인권단체 회원을 2012년에 체포했고 ILO의 모니터도 거부하고 있다. 아동노동이 계속되고 있다는 증언은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6월12일 세계아동노동반대의 날을 앞두고 인권단체들이 “아동노동으로 수확한 우즈베키스탄 목화의 사용을 조폐공사가 중단하라”며 캠페인을 시작했다. 온라인 서명(www.avaaz.org)에 이어 지난 6월8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에서는 사진전이 열렸다. 우즈베키스탄 아이들의 눈물을 우리가 닦아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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