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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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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신경영 선언’ 누구 몫일까

“71살 ‘살아 있는 권력’ 이 회장이냐, 후계자 1순위 이재용이냐”
미래 20년 방향타 될 ‘제2의 선언’ 주도하기엔 아버지·아들 모두 부담
등록 2013-06-02 17:30 수정 2020-05-03 04:27

신경영 선언 20주년을 앞둔 삼성은 겉으로 보기엔 ‘아직까지는’ 조용하다. 올해 초 이건희 회장 취임 25주년과 삼성그룹 창립 75주년을 맞았을 때도 거창한 행사를 치르지 않았던 것에 미뤄볼 때, 신경영 20주년도 내부 행사만 치르고 조용히 넘어가려는 분위기가 읽힌다. 한 그룹 관계자는 “삼성 내부로야 큰일이지만 그렇다고 외부에 공개되는 행사를 할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내부 행사마저 상당히 소박하게 치를 태세다. 그룹 차원에서 추진하는 특별한 행사나 프로그램은 거의 없고, 있더라도 소규모다. 우선 삼성이 진행해오던 젊은이들을 위한 특강 프로그램인 ‘열정樂서’ 프로그램 중 신경영과 관련된 것이 2건 있다. 사내에서 진행되는 ‘신경영락서’는 이미 5월10일과 24일 경기도 기흥과 서울 서초사옥에서 각각 진행됐다. 5월10일 기흥에서는 신태균 인력개발원 부원장, 김정호 연세대 특임교수가 신경영과 관련해 강연을 펼쳤고, 5월24일에는 박근희 부회장(삼성생명)과 김정호 교수가 강연을 했다. 사외에서는 5월20일 이명우 한양대 특임교수, 신태균 부원장, 박근희 부회장이 연세대에서 ‘신경영’을 주제로 강연을 펼쳤고, 5월21일 영남대에서 원기찬 삼성전자 부사장, 김정호 교수,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 등이 신경영을 설명했다.

삼성그룹은 “크게 떠들어봤자 도움될 게 없다”는 내부 판단과 후계자 행보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신경영 20주년을 조용히 보내려 한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부인 홍라희씨, 이재용, 이부진이 지난 2010년 자랑스런 삼성인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서초동 삼성본관에 들어서고 있다. 한겨레 김진수 기자

삼성그룹은 “크게 떠들어봤자 도움될 게 없다”는 내부 판단과 후계자 행보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신경영 20주년을 조용히 보내려 한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부인 홍라희씨, 이재용, 이부진이 지난 2010년 자랑스런 삼성인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서초동 삼성본관에 들어서고 있다. 한겨레 김진수 기자

“요란 떨어봐야 득될 것 없다”는 사내 분위기

그 밖에 신경영 20주년을 맞아 삼성 사내방송인 SBC에서 특별방송을 하고 계열사별 자원봉사 대축제와 신경영 20주년 기념 삼성이노베이션포럼을 5월24일~7월5일에 연다. 모두 사내 행사에 불과하다. SBC 신경영 특별방송은 6월5일과 7일 두 번에 걸쳐 방송되며, 신경영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를 통해 신경영의 미래 과제 등을 다루게 된다. 삼성이노베이션포럼은 옛날 삼성 제품과 현재 만들어지는 선진 제품을 비교·전시하는 행사다.

삼성이 신경영 20주년을 조용히 보내려는 것은 ‘크게 떠들어봤자 도움될 게 없다’는 내부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삼성과 이건희 회장의 영향력은 더 이상 추가적인 홍보가 필요 없을 정도로 확고하므로, 이를 거창하게 알릴수록 반감만 부추긴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지난해 12월 결산 기준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전체 매출액(1776조1958억원)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11.3%, 영업이익(95조6584억원)에서는 30.4%에 이른다. 대한민국 기업 전체가 10원을 번다면 이 중 삼성전자 혼자서 3원을 벌어들인 셈이다. 이미 ‘삼성공화국’ 논란이 일 정도로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집단인 삼성그룹이 자기 얼굴에 금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신경영 선언 20주년 기념 행사를 요란하게 열어봤자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을 게 뻔하다는 것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창립 75주년과는 다르게 신경영 20주년은 철저하게 삼성 내부의 일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요란을 떤다는 소리가 나오는 걸 싫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는 “삼성이 여러모로 눈치를 보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새 정부 초기라는 점이 큰 부담이 되고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이 (박근혜 대통령보다 더) 전면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면 정부에서 불편해할 수 있고 삼성은 이를 걱정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은 신경영 선언 2년 뒤인 1995년 중국 베이징에서 “기업은 2류, 행정·관료 조직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직격탄을 날리며 정치권과 불편해졌던 적이 있다.

하지만 삼성의 뜻과는 달리, 신경영 20주년을 앞둔 움직임은 곳곳에서 나온다. 여러 매체도 이날에 맞춰 특별기획 기사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는 선수를 쳐 지난 4월에 ‘신경영 20주년’ 장기 시리즈를 내보내기도 했다. 한국경영학회도 6월20일 ‘신경영 국제학술대회’를 열어 삼성의 성공 비결을 학술적으로 재조명할 계획이다. 싫든 좋든 ‘신경영 선언 20년’은 6월 초까지는 큰 이슈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이건희인데…” 제2의 선언 예견 다수

삼성, 특히 이건희 회장이 정말 이날을 그냥 넘길지도 미지수다. 무엇보다 신경영 선언이 20년이 지난 만큼 이제 그룹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목소리가 꾸준하다. 이건희 회장이 방향을 제시하고 그룹 구성원 모두가 조직적으로 그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선장식 경영’이 계속 유효할지도 의문거리다. 창조경영이나 경제민주화 등 삼성이 선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이슈도 산적해 있다. 이건희 회장이 20주년 기념일 즈음해서 ‘제2의 신경영 선언’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지는 이유다. 물론 주요 임원을 모두 집합시켰던 예전 같은 방식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매주 수요일에 열리는 사장단 회의를 이례적으로 이건희 회장이 주재해서 그룹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동안 이건희 회장은 아버지 이병철 회장과 달리 사장단 회의를 자율에 맡기고 참석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왔다. 사장단 회의에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이를 그룹 내에서 공유한다면 ‘제2의 신경영 선언’이라고 부를 만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예측에는 큰 함정이 있다. 신경영 선언이 삼성의 지난 20년을 좌우했다면, 제2의 신경영 선언은 다음 20년 동안 그룹의 방향타가 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올해 71살인 이건희 회장이 앞으로 20년 더 삼성을 이끌 수 있을까? 그렇다면 ‘후계자’ 1순위인 이재용 부회장이 ‘살아 있는 권력’을 제치고 ‘제2의 신경영 선언’을 해야 하나? 만약 이건희 회장이 ‘제2의 신경영 선언’을 한다면 이재용 부회장이 ‘대권’을 이어받은 뒤 금방 ‘제3의 신경영 선언’을 할 것인가? 이런 숱한 의문이 그것이다. 후계자의 행보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이번에는 조용히 넘어갈 것이라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유다.

이형섭 기자 한겨레 경제부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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