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법무부는 검사징계위원회를 열어 서울중앙지검 공판2부 임은정(38) 검사에게 중징계에 해당하는 ‘정직 4개월’ 처분을 내린다. 5·16 쿠데타 뒤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제정한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 위반 혐의로 6년간 옥살이를 한 고 윤길중 재심 공판에서 검찰 지휘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무죄를 구형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 수사를 맡은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선고해달라’는 속칭 ‘백지구형’을 주장했는데, 공판을 맡은 임 검사는 무죄 구형을 주장하며 반대했다. 하지만 임 검사의 상사인 공판2부장은 공안부의 의견을 받아들여 다른 검사에게 사건을 재배당했다. 이러한 직무이전 지시를 어기고 법정 안 검사 출입문까지 걸어잠그며 무죄 구형을 강행한 그는 ‘소신을 지킨 용감한 검사’와 ‘절차를 무시한 막무가내 검사’라는 정반대의 평가를 받으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난 5월6일, 임 검사는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정직 4개월의 징계를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소장을 통해 “과거사 재심 사건에서 관행적으로 하고 있는 백지구형은 적법하지 않으므로 이러한 구형 지시를 따라야 할 의무가 없다”고 항변했다. 검찰 구형 및 항소에 관한 업무지침 제8조에 따라 피고인이 유죄라고 판단한다면 ‘죄에 상응하는 형’을 구형해야 하는데, 실체적인 내용 없이 법원에 판단을 구하는 구형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또 직무의 독립성을 보장받기 위해 공판2부장에게 검찰청법 제7조에 명시된 이의제기권을 서면으로 제기했지만, 서면 답변 없이 일방적으로 직무이전 지시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러한 지시는 검찰총장·검사장 및 지청장 고유 권한이므로 공판2부장의 명령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임 검사는 “법무부가 법리적으로 고민이 필요한 백지구형 및 직무이전 명령의 적법성 등을 제대로 따지지 않은 채 △내부 게시판에 ‘징계청원’ 글을 올려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시키고 △국가공무원 복무·징계 관련 예규에 따라 오후 2시부터 오후 반일연가를 사용할 수 있음에도, 무단으로 무죄를 구형한 뒤 반일연가를 이유로 정오께 법원에서 바로 퇴근해 성실 의무를 위반했다는 등 사건 본질과는 무관한 이유까지 내세워 중징계를 내렸다”고 덧붙였다.
임 검사는 지난 2월 창원지검으로 인사 발령이 난 상태로, 정직 기간이 끝나면 다시 검찰로 돌아갈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이렇게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임 검사가 얻으려는 것은 무엇일까. 은 징계 처분 취소 소장과 일부 첨부자료 등을 단독 입수해, 논란이 된 무죄 구형을 하기 전후의 상황을 되짚어보았다. 당사자인 임 검사에게도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언론에 나서 의견을 피력하는 건 적절하지 못하다며 완곡한 거절 의사를 밝혔다.
2012년 12월28일 오전 10시. 임은정 검사는 담당 사건 재판이 끝났음에도 서울중앙지법 509호 법정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1시간 전, 마지못해 같은 부 소속 후배 이아무개 검사에게 윤길중 재심 사건 공판 카드(공소사실과 증거관계 등을 담은 서류)를 넘긴 참이었다. 검사석으로 향한 그는 ‘징계 청원글 게시판에 올려뒀으며, 무죄 구형할 것이다’라고 쓴 메모지를 검사 출입문에 붙였다. 그리고 법정 안에서 문을 잠근다.
검찰청법이 보장한 이의제기권 행사했지만오전 11시, 예정된 재판이 시작됐다. 고 윤길중은 1962년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 제6조 위반(반국가행위)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1968년 출소한다. 통일사회당 간부인 그의 공소사실은 장면 정부가 추진한 반공임시특별법 및 데모규제법 반대, 영세중립 통일을 주장하는 시위 주도 등 반국가단체 활동을 찬양·공무·동조했다는 것이었다. 공판 과정에서 “반공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야당 탄압 도구로 이용될 우려가 있는 2대 법안을 반대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를 비롯해 혁신계 정당 인사들은 쿠데타 세력에 의해 ‘불순세력’으로 지목돼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영장도 없이 체포돼 불법 구금된다. 윤길중 역시 쿠데타가 일어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1961년 5월22일 체포돼 12월11일 혁명재판소에 기소될 때까지 200일 넘게 갇혀 있었다. 이러한 불법행위엔 검찰도 결부돼 있었다.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윤길중은 항소했지만 기각된다. 당시 혁명재판소는 2심제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8부 김상환 재판장이 검사에게 구형을 요청했다.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검사가 구형을 시작했다.
“피고가 북한에 동조하였다는 당시 혁명재판소의 기소 이유는 이유 없으므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내려주십시오.”
변호인의 변론 차례였다. 뜻밖의 무죄 구형을 접한 이덕우 변호사(법무법인 창조)는 “20여 년간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교과서에서나 보던 무죄 구형을 처음 본다”는 소회를 털어놨다.
울먹이며 최후 진술을 한 재심 청구인은 고 윤길중의 손녀 윤은희(28·가명)씨였다. 그는 이날 2011년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아버지 고 윤석인씨를 추억했다. 윤길중의 둘째아들인 윤석인씨는 2010년 도산 안창호 선생 비서실장으로 항일 독립운동을 했던 구익균(2013년 작고·당시 102살) 선생 등 같은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통일사회당 인사·유가족들과 함께 재심을 청구한다. 유죄 선고 뒤 반세기 만인 2011년 1월25일, 이들에 대한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하는 첫 심리가 열렸다. 이날 감격에 겨워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윤씨는 다음날 새벽, 심장마비로 세상을 등진다. 재심 청구인이 사망하면서 윤길중의 재심 심리는 중단된다. 공동 피고인인 구익균 등 5명에 대해선 재심 개시가 이뤄져 1·2심 무죄 선고 뒤 지난해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법과 원칙대로 선고해달라’는 구형을 하려던 검사가 민원인 출입문을 통해 법정에 들어섰을 땐 이미 무죄 구형이 끝난 상황이었다. 비슷한 시간, 검찰 내부 게시판에는 임 검사가 미리 써둔 ‘징계청원’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지난 열흘간의 우여곡절이 담긴 내용이었다.
2012년 12월17일 임 검사는 재심 사건 기록 및 법리 검토를 한 뒤 무죄 구형을 주장했다. 그러나 수사를 맡은 공안1부 검사는 백지구형 의견을 제시해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다음날 무죄 구형 변경 결재를 시도했으나, 상급자인 공판2부장은 공안1부 의견이 타당하다며 백지구형을 지시했다. 이에 임 검사는 검찰청법에 명시된 이의제기권을 구두로 행사했고 12월20일 서면으로 작성해 결재를 올렸다. “이의제기권. 예전에 검찰청법 조항을 들여다보며 이걸 누가 행사하나 했는데, 나구나.”(2012년 12월18일 미니홈피 게시글)
그의 주장은 무죄 구형을 하거나 이같은 내용으로 구형을 변경하기 어렵다면, 공판검사가 아닌 수사 담당인 공안1부 검사가 직접 구형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재심 사건 구형 변경을 두고 공소심의위원회 개최 방안이 논의됐는데, 그는 ‘무죄 구형 또는 공안1부 검사 직접 관여’가 아닌 다른 결정이 내려진다면 이에 따를 수 없다는 의견을 고수했다. 공소심의위 개최가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공판2부장은 12월21일, 재심 사건을 같은 부 소속 검사에게 담당하도록 했다.
그리고 12월28일, 서울중앙지법은 고 윤길중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대 법안 반대 활동은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 범주에 포함되는 것으로 북한에 동조하는 활동으로 볼 수 없고, 영세중립화 통일론은 ‘미소 양국 세력권에서 벗어나 영세중립화 통일조국을 수립하는 것만이 통일을 가능하게 한다’는 내용으로 공산주의를 제창한 것도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특히 판결문을 통해 피고인의 행위에 소급 적용된 특별법 조항이 ‘위헌’임이 명백하다고 밝혔다. 며칠간 마음을 끓여온 재판은 10여 분 만에 마무리됐다.
“후환을 예상하고 오후 반가를 미리 결재받아놓은 것을 기화로 재판을 끝낸 후 계속 법원을 배회하다 점심 무렵 휴대폰을 끈 채 서울 시내의 인파 속으로 숨어들었다. 마음 단단히 먹고 있었지만, 그래도 겁이 나 뭘 먹어도 체하고, 잠이 잘 오지 않는다.”(2012년 12월29일 미니홈피 게시글)
‘법과 원칙 따라 선고해달라’는 비겁함얼핏 ‘법과 원칙에 따라 선고해달라’는 구형은 흠잡을 데 없어 보인다. 그런데 왜 임 검사는 백지구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지시 거부까지 한 것일까. 10년 넘게 검사 일을 한 그에게도 백지구형은 낯설었다. 지난해 9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대통령 긴급조치 1호와 4호를 위반한 혐의로 징역을 살았던 박형규(89) 목사의 재심 사건에 대해 구형 변경을 고민하면서 백지구형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으로 보인다.
“2012년 7월26일자로 담당 재판부가 바뀌었는데, 그 무렵 박형규 목사님 긴급조치 위반 사건 재심 개시 결정이 있었다. 징역 15년의 종전 구형을 유지할 수 없는 사안이라 구형 변경을 해야 했다. 비슷한 경우 어떻게 하는지 수소문해보니 종전 구형을 원용하거나 속칭 ‘백지구형’을 하고 있었다. 대학교·사법연수원·법무연수원에서 검사는 공익의 대변자로 무죄는 무죄라고 말해야 한다고 배웠는데 사법의 암흑기에 사형 등을 구형한 사건에 대해 어떻게 똑같은 형을 다시 구형할 수 있는지, 검사의 의견 진술 및 객관 의무는 법적 의무인데 어떻게 이를 방기할 수 있는지 황당하기까지 했다.”(임은정 진술서 )
박형규 목사 재심 사건에 대한 무죄 구형 과정에서도 공안부와 의견 충돌이 있었다. 임 검사는 공판2부장·차장·검사장을 찾아다니며 구형 변경 결재를 받은 뒤 지난해 9월6일 무죄 구형을 한다. 그리고 며칠 뒤, 검찰 내부 게시판에 ‘민청학련 관련 사건 공판 소회’라는 글을 남긴다.
“그 글로 인해 뒤늦게 무죄 구형 사실을 알게 된 속칭 공안통 선배님들의 전화에 상사가 시달리고 나도 여기저기 불려다녔는데, 꾸중을 듣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자네가 그 시절의 검사였다면 어떻게 할 수 있나, 달리 했겠나’란 질문을 듣고 가장 놀랐다.”(임은정 진술서)
시민 분노 포용 못하는 검찰의 ‘원칙’윤길중 재심 사건을 놓고 공안부는 무죄 선고가 확실하다고 예상하면서도 백지구형 의견을 굽히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기록 등이 없어 무죄를 확신할 수 없고 법정 자백 등 증거가 있다는 근거를 내세웠다. 임 검사는 법정 자백에 대해 한자로 적힌 2심 판결문 내용으로 보아, 공소사실에 기재된 정치활동을 한 것이라는 취지로 말한 것일 뿐 반국가단체 활동을 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고 반박한다. 2011년 검찰은 같은 이유를 들어 구익균 재심 사건 1심 무죄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했으나 서울고등법원은 임 검사와 비슷한 해석을 내려 기각한 바 있다. 검찰은 과거사 재심에 대해 지금의 기준으로 과거 법원의 판단을 재단하는 것이 옳은지 의견이 갈릴 수 있다는 우려를 하기도 한다. 법적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부장급 검사는 “새로운 증거가 드러나면 재심공판에서 무죄 구형을 하겠지만 과거사위처럼 다른 기관에서 조사해 재심을 권고할 때 ‘특별히 반대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백지구형을 하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검사는 담당자도 현직에 없고, 기록 확보가 안 될 경우 무죄를 확신할 수 없어 이러한 구형이 이뤄진다고 짐작했다.
검찰은 재심 사건에서 관련 법이 위헌 결정이 나지 않았거나, 증거가 있는 경우 종전 구형을 원용하거나 백지구형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의 경우, 처벌자에 대한 재심 개시와 무죄 선고가 잇따르고 있지만, 위헌 결정이 나지 않았다. 검찰이 ‘무죄’로 단정할 수 없다는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윤길중 재심 선고가 있기 3개월 전, 수원지법은 이 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구속돼 복역했던 김정태·김을수씨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 제6조는 지나치게 자의적이어서 위헌성을 따져봐야 하지만 고령인 피고인들의 신속한 명예회복을 위해 위헌 여부를 판단하지는 않겠다”며 “늦었지만 피고인들이 겪었던 일에 대해 사과한다”고 밝혔다. 이덕우 변호사 역시 같은 이유로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검찰이 재심 사건과 관련해 적극적으로 사실관계를 규명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증거를 발견해 무죄 구형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검사들의 ‘원칙’은 시민들의 ‘분노’를 포용하지 못해왔다. 검사 출신인 김희수 변호사는 구형의 의미에 대해 “사법부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의견일 뿐이지만 검찰이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을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시국 사건과 관련해 이루어지는 재심은 형사·사법의 치욕적인 과거를 되돌아보고 정의를 다시 세우는 작업인데, 백지구형은 이러한 부분에 대해 의견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명백히 비겁하고 정직하지 못한 행동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이다.” 고문 피해자들이 국가배상금의 일부를 내놓아 설립한 재단법인 ‘진실의힘’의 송소연 이사는 백지구형에 대해 검찰이 공익적 책무를 다하지 않는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역사의 피해자들에게 ‘법과 원칙을 어겼다’는 암시를 주기도 하는데, 백지구형 뒤 항소하는 경우도 있다.
2012년 12월28일 이후, 임 검사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도대체 왜, 무죄 구형에 직을 거느냐’는 질타와 질문이었다. 백지구형을 해도, 공안부의 예상처럼 무죄 선고는 뒤집히지 않았을 터다. 그가 얻으려던 것이 무엇인지 직접 물을 순 없었다. 다만 할아버지를 대신해 재심을 청구했던 손녀는 기자에게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검사님의 무죄 구형 덕분에 저와 제 가족은 오랜 기다림 속에서 생각보다 이르게 1심에서 최종 무죄 선고를 받을 수 있었고, 돌아가신 할아버지께도 한 줄기 빛과 작은 위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법에 무지한 일반인 입장에서는 법원의 크고 작은 결정 하나가 너무도 크고 무섭게 느껴질 뿐이지만, 검사님의 용기를 통해 저와 제 가족은 원리와 원칙만 고집하지 않고 ‘사람’을 우선으로 하는 법의 따뜻한 일면을 보았습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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