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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워라, 전지전능 검사님들

독재 시절 오류 인정에 인색한 검찰, MB 정부 이후 재심 사건 상소도 급증
등록 2013-05-20 14:29 수정 2020-05-03 04:27

임은정 검사가 재심 사건에서 잇따라 무죄를 구형한 일이 화제가 된 까닭은 그만큼 이례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일부 언론은 박형규 목사 사건에서의 검찰 구형이 재심 사상 첫 무죄 구형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2008년에도 재심 사건에서 무죄 구형이 있었다. 당시 전주지검 군산지청은 간첩으로 몰려 7년간 징역을 산 ‘납북 어부’ 서창덕씨 재심 공판에서 무죄를 구형했다. 서씨는 1967년 황해도 구월봉 앞바다에서 조기를 잡다 북한 경비정에 피랍된 뒤 124일 만에 돌아온다. 그런데 17년이 지난 1984년, 전주 보안대 소속 수사관들이 서씨를 연행한다. 33일간 고문이 이어졌다. 간첩 활동 자백을 강요한 것이다. 법원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인정해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누명을 벗을 기회는 2007년에 찾아왔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서씨의 간첩 사건이 조작됐다며 재심을 권고한다. 당시 무죄를 구형한 검사는 “너무 오래돼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과거사 재심 초기 단계였고 사안이 명확했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채동욱 검찰총장은 지난 4월 인사청문회에서 “잘못된 과거에 대한 반성은 당연히 필요하다”며 “ 취임 이후 어떤 방식으로 할지 신중히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청문회에서 선서 중인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 후보자.

채동욱 검찰총장은 지난 4월 인사청문회에서 “잘못된 과거에 대한 반성은 당연히 필요하다”며 “ 취임 이후 어떤 방식으로 할지 신중히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청문회에서 선서 중인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 후보자.

재심 무죄 구형 2008년에도 있었지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총무로 일했던 송소연 ‘진실의힘’ 이사는 서창덕씨 재심 사건에서 무죄 구형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종전에는 원심 구형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재심 과정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선고해달라’는 의견 제시나 구형이 나온 것도 그즈음 이라고 했다. 미흡하나마 물꼬를 튼 검찰의 과거사 청산은 안착하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가폭력과 관련된 재심 사건에 서 상소(하급 법원 판결에 불복해 상급 법원에 재심을 요구하는 일) 를 하지 않던 검찰이 항소·상고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희수 변호 사는 “노무현 정부 때는 법무부가 국가폭력이 인권을 유린한 사건 가운데 과오가 인정되는 건에 대해서는 무분별하게 상소하지 말도록 지시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흔하지 않은 검찰의 무죄 구형을 재정신청 사건 재판에서는 종종 볼 수 있다. 재정신청은 검찰만 형사사건에 대해 재판을 청구할 수 있 는 기소독점주의 폐해를 견제하기 위한 제도다. 검찰의 불기소 결정에 불복한 고소인이 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내면, 법원은 이를 선별해 공 소제기를 명할 수 있다. 검찰은 이런 재판에서도 백지구형을 하기도 하는데, ‘유죄’ 취지인 재심의 백지구형과 달리 ‘무죄’ 취지로 읽히는 경 우가 많다는 게 법조인들의 지적이다. 지난 2월 수원지법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경찰관 유아무개(47)씨에게 징역 6개월 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2009년 경기지방경찰청 기동단 807전투경찰대장이던 피고인이 쌍용자동차 점거농성 현장에 서 조합원을 체포하면서 체포 이유를 늦게 고지하고, 체포자 접견을 요청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소속 권영국 변호사를 공무 집행방해 혐의로 체포하는 등 적법절차를 어겼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민변은 “변호인의 접견교통권을 침해하면서 직권을 남용해 불법 체포 했다”며 경찰관 6명을 고소·고발했지만, 검찰은 해당 경찰관들에게 무혐의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민변이 서울고법에 낸 재정신청이 받아 들여지자 검찰은 유씨 등 2명을 불구속 기소한 뒤 ‘무죄’를 구형했다.

검찰이 기소·불기소 결정을 뒤집을 때는 신중해야 하는 것이 사 실이다. 그러나 공정하고 객관적인 잣대가 아닌 검찰의 견해가 무조 건 옳다는 태도로 기존 입장을 고수한다는 비판이 있다. 김희수 변 호사는 “재심 등을 포함해 대부분의 사건에서 공소 유지를 적극적 으로 하고 있지만, 법원이 기소하도록 결정한 사건에서는 공소 유지 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반성 필요하다” 채동욱의 약속은 지켜질까

경찰·국가정보원·군 등 국가권력기관은 미흡하나마 자체적으로 과거의 잘못을 정리하는 작업을 했지만 검찰은 예외였다. 2008년 검 찰 창설 60돌 기념식에서 당시 임채진 검찰총장이 검찰 수장으로서는 처음으로 과거사에 대한 공식 발언을 한다. “국법 질서의 확립이나 사 회정의 실현에 치우친 나머지 국민의 인권을 최대한 지켜내야 한다는 소임에 더 충실하지 못했던 안타까움이 없지 않았다.” 고문·가혹 행위 를 은폐하고 간첩 사건을 조작한 행위를 ‘법질서와 사회정의’ 실현 과 정에서 발생한 일로 바라본 것이다. 같은 해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은 사법부 60주년 기념사를 통해 “과거 헌법상 책무를 충실히 완수하지 못해 국민에게 실망과 고통을 드린 데 대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잘못된 과거에 대한 반성은 당연히 앞으로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 다. 총장 취임 이후 어떤 방식으로 할지 신중히 검토해보겠다.” 채동 욱 검찰총장은 지난 4월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인사청문회에서 ‘검찰이 국가기관 중 유일하게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자 이렇게 답변했다. 채 총장의 약속은 과연 지켜질 것인가.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검사동일체 원칙 삭제는 ‘쇼’였나
유명무실 이의제기권
일선 검사들이 자신의 신념과 도덕성보다 ‘조직’ 논리를 따를 수밖에 없 는 검찰 특유의 문화는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어렵게 만들어왔다. 검 찰은 한 몸이란 뜻의 ‘검사동일체 원칙’은 이런 조직 논리의 상징이었다. 2004년 검찰청법 개정으로 제7조 제목으로 사용된 ‘검사동일체 원칙’이 삭제됐다. 동시에 “검사는 구체적 사건과 관련된 지휘·감독의 적법성 또 는 정당성 여부에 대하여 이견이 있는 때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는 조항(제7조 2항)이 신설된다. 조직 논리를 따르지 않겠다는 일선 검사의 소신을 법적으로 보장하겠다는 의미였다. 이러한 조처에도 검사동일체 원칙은 여전히 검찰 내부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임은정 검사는 징계처분 취소 소장을 통해 ‘백지구형’ 지시가 부당하다며 서면으로 이의제기를 했지만, 이에 대해 상급자로부터 아무런 서면 답변 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의제기권이 명문화됐지만 실질적인 보장 절 차가 없다는 것이다. 2003년 법무부는 이의제기의 세부적 절차 등에 대 해 검찰 내부의 의견을 수렴해 법을 개정한 뒤 대검 예규나 법무부령 등 하위 법규에 규정할 예정이라고 밝혔으나, 지금까지 후속 조처가 이뤄지 지 않았던 것이다. 주요 검찰개혁 방안을 논의하려고 출범한 검찰개혁심 의위는 지난 5월6일 특수부의 높은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 적절한 수 준의 순환 인사를 하도록 검찰에 요구하면서, 상사의 부당한 지시를 따르 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검사의 이의제기 권을 보장할 방안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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