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가격공시제도의 ‘기술자’는 1352명의 감정평가사다. 이들의 손끝에서 사실상 전국 땅 3119만 필지, 주택 1516만 호의 적정가격이 매겨진다. 수많은 부동산 보유자가 이들의 판단에 웃고 울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감정평가사들이 가격공시 업무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는지, 그 원칙이 정답이긴 한지에 대해선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감정평가사들이 드러내기 꺼리는 네 가지 문제를 추렸다.
<font size="3">공정성 위해 ‘복수평가’ 한다지만</font>
전국 모든 땅·주택 공시가격의 기준이 되는 표준지와 표준주택의 가격은 2명 이상의 감정평가사가 산정한다. 이들이 감정한 가격의 평균치가 특정 부동산의 공시 가격이 된다. 결과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복수평가’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1명의 감정평가사가 단독으로 감정을 하는 ‘단수평가’가 종종 이뤄진다는 주장도 있다. 감정평가사 11년차인 고희철(가명)씨의 말이다. “2명이 400필지를 함께 맡았다고 치자. 그러나 복수평가 원칙에 따라 각각 400필지를 평가하지 않고, 관행적으로 200필지씩 나눠서 작업을 한다. 그러고도 수수료(필지당 3만7800원·2013년 기준)는 각자 400필지치를 받는다.” 감정평가사 5년차인 김성수(가명)씨도 일부 단수평가가 이뤄지고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복수평가 적용 방식은 감정평가사) 개인에 따라 다르다. 현장조사부터 둘이 같이 다니기도 하고, 일정이 안 맞아 각각 현장에 다녀온 뒤 가격을 협의해 산정하기도 한다. 물론 (처음부터) 절반씩 나눠서 하는 경우도 있다.”
부동산 시장에서 단독주택은 아파트와 달리 건물과 토지가 별개로 매매되기도 한다. 각각 등기하는 별도의 부동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독주택을 평가할 때는 아파트와 마찬가지로 건물과 토지가 함께 거래된다고 가정하고 한 덩어리로 ‘일체평가’를 한다. 실제 일체평가가 제대로 이뤄지는지에는 회의적인 목소리도 있다. 고씨는 “단독주택은 시장에서 토지와 주택이 각각 거래되고 있는 만큼 일체평가를 할 필요가 없다. 주택의 토지는 이미 공시된 개별토지가격으로, 건물은 안전행정부가 내는 시가표준액 등으로 평가한 뒤 그냥 더하면 된다. 지금도 감정평가사들이 쓰고 있는 방식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박병우 한국감정평가협회 정책이사의 반박은 이렇다. “표준주택가격을 낼 때 일단 일체평가로 적정 가격을 낸 뒤 토지와 건물의 가격을 분리해서 배분한다. 나중에 (지방자치단체가) 개별주택가격을 산정할 때 (판단할 수 있게) 토지와 건물의 가격 요인을 각각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공시가격은 해마다 발표된다. 국내 부동산 가격은 워낙 변동성이 큰 터라, 공평한 과세를 하려면 매년 정밀하게 부동산을 평가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매년 1300억원이 넘는 세금을 투입하면서까지 이 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7년차인 박동수(가명)씨의 설명이다. “미국·프랑스·독일·덴마크 등 선진국에서는 전문가에 의한 전면적인 재평가가 3~5년 주기로 이뤄진다. (매년 과세를 위해) 재평가가 없는 해에는 전산 시스템으로 (부동산) 시장변동성을 계산한 뒤 각 부동산에 어느 정도의 세금을 매길지 비율을 정한다. 매년 감정평가사에게 수백억원의 혈세를 수수료로 지급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제대로 과세할 수 있다.”
<font size="3">비주거용 건물가도 공시한다는데…</font>
정부는 오피스텔·상업건물·공장 등 비주거용 건물에 대해서도 가격을 공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토지·주택과 과세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서다. 현재 관련 법안이 의원입법으로 발의된 상태다. 반응은 회의적이다. 민간 감정평가법인 소속 7년차 황정남(가명)씨는 “상가는 같은 건물 안이라도 위치와 업종에 따라 가격이 크게 달라져 적정가격을 계산하려면 머리에 쥐가 날 것이다. 수수료 수입 대비 비용이 너무 커서 대부분 감정평가사가 바라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공기업인 한국감정원 소속의 한 감정평가사는 “비주거용 건물에 대한 감정평가 작업을 한국감정원이 맡게 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사실상 경쟁관계에 있는 민간 법인 소속 감정평가사들은 이를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다”고 판단했다. 가격공시제도를 확대하는 중요한 문제가 감정평가 업계 내부의 밥그릇 싸움으로 비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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