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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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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의약품 리베이트 근절 소송 나서나

의료비 상승 주범인 의약품 리베이트… 적발돼도 유야무야되는 현실에 환자들 환급 소송 나서자 서울시도 소송 참여 검토
등록 2013-03-03 14:36 수정 2020-05-03 04:27

지난 1월 제약사를 상대로 의약품 리베이트에 대한 환급 민사소송을 의료소비자(환자)가 최초로 제기한 데 이어 서울시가 소송 참여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가 공익소송에 나서는 것은 처음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과의 전화 통화에서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급여를 서울시가 매년 수천억원씩 지원하는데 의약품 리베이트 탓에 그 비용이 늘어난다.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제약사와 의료기관이 취한 부당이득을 되찾는 방안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약품 리베이트란 제약사나 의약품 도매상이 의약품의 처방을 유도하거나 판매를 늘리려고 병·의원이나 의·약사에게 허용되는 마케팅 범위를 넘어 금품이나 물품, 향응 등 이익을 지급하는 걸 말한다. 문제는 리베이트가 약값을 올리는 원인이자 결과라는 사실이다. 건강보험과 관련해 지출되는 우리나라 의료비는 2002년 19조원에서 2011년 46조2천억원으로 2.4배 증가했다. 그중 약제비는 4조8천억원에서 13조4천억원으로 3배 가까이 늘어나 연간 약제비 평균 증가율(12.1%)이 진료비 증가율(10.6%)을 웃돈다. 특히 전체 의료비 중 약제비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5% 높은 편이다.

2011년 같은 성분으로 등재된 의약품 청구액은 10조108억원인 데, 그중 고가 약 처방 비중이 38.6%(4조9393억원)였다. 그 결 과 우리나라의 의료비에서 약제비 비중이 OECD 국가 평균의 1.3배나 된다.

950호

950호

지난 10년 새 약제비 3배 가까이 늘어

우리나라의 약값이 비싼 이유로 실거래가 상환제가 첫손가락에 꼽힌다. 1999년 11월 도입된 실거래가 상환제는 이전에 시행하던 고시가 상환제와 달리 병·의원의 마진을 인정하지 않는다. 고시가 상환제는 정부가 고시한 약제비 상한금을 병·의원에 환급해주는 제도였다. 병·의원 처지에서는 약을 제약사에서 싸게 사면 차액만큼 이윤이 남았다. 하지만 실거래가 상환제에서는 실제 병·의원이 구입한 가격을 그대로 돌려준다. 제약사는 약값을 최대한 부풀려 수익을 키우고 굳이 흥정할 이유가 없는 병·의원은 높은 약값을 용인하는 대신 관행적으로 리베이트를 받게 된다. 2011년 10월부터 의약품을 싸게 구입한 병·의원에 인센티브를 일부 인정하는 시장형 실거래가 상환제로 개편됐지만 그 비율이 워낙 낮아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몇 가지 통계가 이를 보여준다. 첫째, 우리나라의 제네릭(복제약) 가격은 오리지널 대비 86% 수준으로 다른 나라(미국은 16%)보다 현저하게 높다. 둘째, 병·의원의 의약품 구입 가격은 정부가 책정한 의약품별 보험급여(약값) 상한액에 맞춰진다. 구입 가격이 상한액보다 낮은 비율은 1%에도 못 미친다. 제약사가 최대 수익을 얻도록 병·의원이 협조한다는 뜻이다. 셋째, 국내 제약사의 수익률은 80%를 웃돈다. 100원짜리 제네릭의 원가가 20원도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국내 제약사가 신약 개발에 나서지 않고 제네릭만 생산하는 이유다. 넷째, 최종 소비자는 환자지만 의약품의 특성상 환자는 정보도 선택권도 없다. 처방전을 따를 뿐이다. 결국 국내 제약사의 매출을 의·약사가 좌지우지하는 구조다.

그래서 고가 약을 선호하는 수요의 왜곡이 발생한다. 합리적인 소비자라면 효과가 동일한 제품 중에서 굳이 비싼 것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의사가 제약사 매출의 10%를 리베이트로 받는다면 동일한 효과를 내더라도 고가 약을 처방하게 된다. 100원짜리보다 1천원짜리 약을 환자에게 처방해야 더 많은 리베이트를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약값은 국민건강보험공단과 환자가 부담하니까 의사는 손해 볼 일이 없다. 2011년 같은 성분으로 등재된 의약품 청구액은 10조108억원인데, 그중 고가 약 처방 비중이 38.6%(4조9393억원)였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의료비에서 약제비 비중이 OECD 국가 평균의 1.3배나 된다.

리베이트 받은 의·약사 80% 처벌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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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게 정리하면 이렇다. 제약사와 병·의원은 약값을 떠받친다. 그 배경에는 리베이트가 있다. 양쪽이 의약품 실거래가를 높게 책정해 신고하는 대신 리베이트를 주고받는 관행이다. 법무법인 지향의 이은우 변호사는 “약값 떠받치기와 리베이트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말했다. “리베이트가 있기에 약값 떠받치기가 가능하고, 약값 떠받치기로 인한 부당한 부담을 건강보험공단과 환자에게서 받아내기 때문에 그 돈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할 수 있다. 의약품 리베이트는 제약사가 자신의 이윤을 보장받으려고 건강보험공단과 환자의 호주머니를 털어 의·약사에게 제공하는 불법 이익이다.”

의약품 리베이트로 매년 수조원이 오간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07년 11월 제약사의 불법 리베이트를 조사해 발표하며 제약사 매출액의 20%를 리베이트로 추정했다. 국내 제약회사의 판매관리비 비율(35.2%)이 일반 제조업(12.2%)보다 3배나 많은 현실이 추정 근거의 하나다. 반면 국내 제약사의 연구·개발 투자 비율은 9.1%로 다국적 제약사의 절반(16.8%) 수준이다. 이 경우 소비자 피해액은 2조800억∼3조1천억원으로 공정위는 추산했다.

정부도 수시로 적발한다. 감사원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감사보고서를 보면, 2007~2011년 보건복지부·검찰·경찰·공정위·국세청·식품의약품안전청이 341개 업체(130개 제약사, 211개 의약품 도매상)가 병·의원이나 의·약사 등에게 1조141억원 상당의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사실을 적발했다고 돼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주요 의사에게 처방에 대한 대가로 품목에 따라 처방(예정)액의 3~12%를 현금이나 물품으로 지원한다. 사례비다. 부서 회식비, 골프 행사비, 학회 참가비도 제약사가 부담한다.

적발 결과만 대대적으로 발표할 뿐 후속 조처는 흐지부지된다. “많은 사례를 적발했지만 단속 결과를 행정처분 등에 통보하지 않거나 알려도 대상이 많다는 이유로 행정제재 대상을 축소한다. 그렇게 리베이트를 받은 자와 준 자가 누락돼 리베이트 근절 대책이 실효성 있게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감사원의 ‘건강보험 약제 관리 실태’ 보고서)

실제로 리베이트를 받은 의·약사 등 2만3092명 가운데 79.9%(1만8454명)가 면허자격정지 등을 피했다. 적발 기관이 보건복지부로 신상정보를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약사도 마찬가지다. 적발된 341개 업체 중에서 29%(99곳)만 행정처분을 받거나 조처가 진행 중이다. 형사처벌도 다수가 비껴간다. 공정위는 2007년부터 32개 제약사가 8785억원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사실을 적발해 507억원 상당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공정거래법상 불공정거래 금지 위반으로 수사를 받은 제약사는 5곳에 불과하다. 나머지 27곳의 리베이트 조사 결과는 공정위가 수사기관에 아예 넘기지 않았다.

약값에서 리베이트를 빼내는 작업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을 보면, 의약품의 유통 질서를 해치다 적발된 제약사는 해당 의약품 가격을 내리도록 복지부가 조처할 수 있다. 감사원이 리베이트 제공 기간이 2009년 8월 이후인 제약사 50곳의 약값 인하 실태를 확인해보니, 9곳만 130개 품목에 대해 평균 9% 내렸다.

서울시 원고로 참여하면 파급력 커질 듯

마침내 소비자가 나섰다. 소비자시민모임과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지난해 12월 ‘의약품 리베이트 감시운동본부’를 세웠다. 의약품 리베이트를 뿌리 뽑기 위한 대국민 운동을 펼치기 위해서다. 1월28일 동아제약과 GSK, 중외제약, 대웅제약, 한국MSD 등 5개 제약사의 8개 의약품에 대한 1차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의약품 리베이트로 인한 약값 인상분만큼 환자가 부담한 금액의 반환을 청구한 것이다. 운동본부는 “불법 리베이트는 요구해서도 안 되고 제공해서도 안 된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운동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소송단을 추가로 모집해 한미약품, 유한양행, 한올바이오파마, 태평양제약, 한국얀센, 한국노바티스, 사노피아벤티스 등에도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현재 참여를 검토 중인 서울시가 최종적으로 원고로 합류하면 그 파급력은 훨씬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의료기관이 의약품 리베이트를 요구해도 제약사가 의료소비자의 감시 때문에 거절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목표다.”(의약품 리베이트 감시운동본부)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강력한 처벌의 미국, 업계 자정 노력의 일본
다른 나라의 리베이트 규제들
대부분의 국가는 오랫동안 의약품 리베이트와 전쟁을 벌여왔다. 다만 전략과 전술은 제각각이다. 가장 화끈하게 싸워온 곳은 미국이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해 12월 말 발간한 ‘의료법 및 약사법상 리베이트 제재 강화 조항의 입법 영향 분석’ 보고서를 보면 미국이 리베이트 근절에 동원한 방법은 전방위적이다. 일단 입법 조처로 ‘연방 리베이트금지법’이 있다. 이 법은 연방기금으로 지급되는 품목과 서비스에 대한 추천·구매·처방을 조건으로 제약회사와 병·의원이 현금이나 금품류를 주고받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 법 자체가 다른 국가에 비해 깐깐한 편은 아니다. 그런데도 미국제약협회는 영업사원이 의사와 약사를 상대할 때 지켜야 할 선을 담은 ‘신 마케팅 강령’(2002)을 만들어 과도한 마케팅을 규제하고 있다. 예컨대 제약회사가 환자 진료에 도움이 되는 물품을 의사에게 지원할 수는 있어도 의사 개인이 사용하는 현금, 상품권, 공연 티켓, 음악 CD 등을 제공해선 안 된다는 식이다. 미국의사협회도 ‘의사에 대한 제약회사들로부터의 선물’이라는 지침을 제정해 의사들이 불법적인 리베이트를 받지 않도록 교육하고 있다. 이는 리베이트금지법이 느슨해 보여도 정부의 집행 의지가 워낙 단호한 탓에 일단 걸리면 천문학적인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2009년 식품의약국이 자사의 일부 제품을 사용하도록 의사들에게 향응을 제공한 혐의로 화이자에 부과한 벌금은 23억달러(약 2조8천억원)에 달한다. 법무부가 화이자의 혐의를 입증하려고 공들인 기간만 5년이 넘는다.
일본의 적극적인 대응도 빼놓을 수 없다. 일본의 ‘독점금지법’은 제약업체가 의약품 거래를 부당하게 유인하는 수단으로 정상적 관행에 비춰 적당하다고 인정되는 범위를 초과해 경품류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미국처럼 일본의 제약업체들도 이를 토대로 일찌감치 자율적 마케팅 지침인 ‘공정경쟁규약’(1984)을 만들었다. 일본에선 제약업계의 자정 노력이 두드러진다. 의약품 도매업체들은 자발적으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뒤 업체 간 협력을 강화하고 경쟁이 과열되는 것을 막아왔다. 일반 제약업체들도 병·의원에 리베이트를 주는 회사는 보험에서 탈락시키고 회사를 공표하는 등의 방식으로 리베이트 관행을 없애는 데 앞장서왔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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