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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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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넘은 올드보이들

한화갑·한광옥·김경재 등 동교동 가신그룹의 드라마틱한 변신… ‘소외’와 인정 욕구 때문인가, 제자리 찾은 걸까
등록 2013-02-01 09:25 수정 2020-05-02 19:27

정치인에겐 정년이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권력에 대한 욕망에는 끝이 없다. 노욕·변절·배신이라는 꼬리표보다 자신의 권한·입지·존재가 망각될지 모른다는 공포가 더 크기 때문일까. 대의명분과 가치보다는 자리에 대한 욕심으로 옷을 바꿔입고, 진영을 넘나든다. 사회의 다른 분야보다 정치권에서 존경받을 만한 원로를 찾아보기 더욱 어려운 까닭이다.

한광옥·김경재·한화갑(왼쪽부터) 등 동교동의 가신들은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 당선인을 지원했다. ‘소멸’에 대한 두려움이 ‘배신자’라는 낙인보다 컸던 것일까. 한겨레 신소영 기자, 사진공동취재단

한광옥·김경재·한화갑(왼쪽부터) 등 동교동의 가신들은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 당선인을 지원했다. ‘소멸’에 대한 두려움이 ‘배신자’라는 낙인보다 컸던 것일까. 한겨레 신소영 기자, 사진공동취재단

통합은커녕 되레 분열 낳는 언사 남발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변신은 한화갑(74)·한광옥(71)·김경재(71) 등 동교동 가신그룹이 보여줬다. 평생의 주군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생전에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은 욕은커녕 슬그머니 담장을 넘어가 상대 진영 쪽에 줄을 섰다. 박근혜 당선인이 이들의 영입에 특별히 공을 들였다고 한다. 명분은 ‘국민 통합’과 ‘동서 화합’이었다. 하지만 대선을 경과하는 동안, 그리고 이후에도 이들은 오히려 분열을 부추기는 언사로 논란을 몰고 다녔다.

물론 최악은 단연 김경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민대통합수석부위원장의 몫이다. 그는 “광주 사람들이 문재인, 안철수를 뽑는 건 민주의 역적이고 정의에 대한 배반”이라는 등 각종 막말로 파문을 불렀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겨냥해 “노아무개는 싸가지 없는 발언이나 하고 호남 사람들을 한 맺히게 했다”는 말까지 했다.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48%도 중요하지만 우선 51%를 대변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등 통합과 거리가 먼 그의 독설은 대선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박근혜 당선인이 부산 유치를 공약한 해양수산부를 호남에 유치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을 두고 박 당선인의 박선규 대변인이 “그건 김씨의 사견일 뿐”이라고 공식 부인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한때 ‘리틀 DJ’라고까지 불렸던 한화갑 전 민주당 상임고문은 권노갑 상임고문과 함께 동교동의 ‘양갑’으로 통했지만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선 권 고문의 그늘에 가린 ‘을’의 처지였다. 한 전 고문이 2001년 11월20일 대선 출마 선언에서 “나는 민주당에서 정통성, 정체성, 연속성을 가진 유일한 사람”이라고 애써 강조한 건 다분히 권 고문을 의식한 발언이었다고 한다. 당시 동교동의 전반적인 기류는 한 전 고문의 출마를 만류하는 쪽이었다. 정권 재창출에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는 결국 출마했고, 제주도에서 열린 민주당의 첫 대선 후보 순회 경선에서 1위를 기록하지만 광주에선 3위에 그쳐 후보직을 사퇴했다. 한 전 고문은 이 과정에 자신의 동지였던 동교동 그룹, 정확히는 권노갑 고문이 반대 쪽으로 막후에서 움직였다고 믿는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제주도에서 1위를 한 것이 나에게는 마이너스였다”며 “동교동은 내가 아니라 이인제를 밀었고, 거꾸로 광주에선 우리 세력이 나를 조졌다”고 주장했다.

그들 역시 지나가버린 과거의 유물

어쩌면 이들의 ‘변절’을 설명할 수 있는 또 다른 열쇳말은 ‘소외’인지 모른다. 여야 정치권이 갖는 일종의 문화적 차이도 작용했을까. 새누리당에선 대선 전 이른바 ‘7인회’의 존재가 주목받은 적이 있다. 실질적인 영향력의 크기를 두고는 여권 내에서도 관측이 엇갈리지만 어쨌든 강창희 국회의장,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 김용갑 전 의원, 김용환 새누리당 상임고문, 안병훈 전 부사장, 최병렬 전 한나라당 부총재, 현경대 전 의원 등 보수 원로그룹은 박근혜 당선인에게 크고 작은 조언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강창희 의장을 제외하면 모두 정치의 현장에서 한발 물러나 있는 인물들이다.

반면 과거 동교동의 ‘올드보이’들은 주군과 함께 군사정권의 폭압을 견디며 김대중 정부의 탄생에 기여했지만, 영광은 한순간이었다. 그들 역시 지나가버린 과거의 유물로 간주된 탓이다. 노무현 정부와 불화했고, 열린우리당 창당과 함께 ‘구태정치 세력’으로 낙인찍혔다. 동교동 가신그룹이나 옛 민주계 인사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3김 시대의 종언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사실상 소멸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한화갑 전 고문은 평화민주당을, DJP 연합 탄생의 주역이던 한광옥 전 고문은 정통민주당을 각각 창당하는 등 이들은 이미 낡아버린 깃발을, 그것도 거꾸로 잡은 채 정치 무대에서 사라지는 걸 거부했다. 이번 대선에선 그마저도 던져버린 채 ‘박근혜 대통령’의 깃발 아래 섰다. 이런 이들을 바라보는 동교동의 옛 동지들은 참담한 심경을 숨기지 않는다. 한 전 고문의 오랜 친구인 김옥두 상임고문은 공개 편지를 통해 “나중에 우리가 저 세상에서 무슨 낯으로 대통령님을 뵙겠는가? 정녕 발길을 돌릴 수 없다면, 최소한 언제 어디서든 부디 더 이상 우리 대통령님을 거론하지는 말아주게”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권위에 대한 생래적 거부감 때문인지 원로그룹을 대하는 야권 의 정치문화는 여권의 그것과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 게 사실이 다. 그러나 결국 이들은 일신의 안위 때문에 진영을 옮겨간 것뿐 이고 이념적으로 봐도 진보적이라거나 개혁적이라기보다 보수 에 더 가깝다. 김대중이라는 강력한 리더십이 사라지자 자기 자 리를 찾아간 것이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이념적으로 진보개혁보다 보수

여전히 가능해 보이지는 않지만, 다시 한번 비중 있는 정치인으로서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결국 이들을 움직였다. 한 전 고문은 대선 이후 한 언론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문재인을 지지할 수는 없었다. 노무현 정부가 나를 팽시켜서 내 정치 생명을 빼앗았다”고 했다. 결국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찾아 입었다는 평가도 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권위에 대한 생래적 거부감 때문인지 원로그룹을 대하는 야권의 정치문화는 여권의 그것과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결국 이들은 일신의 안위 때문에 진영을 옮겨간 것뿐이고 이념적으로 봐도 진보적이라거나 개혁적이라기보다 보수에 더 가깝다. 김대중이라는 강력한 리더십이 사라지자 자기 자리를 찾아간 것”이라고 말했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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