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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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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남흔녀 커피의 불편한 진실

등록 2012-08-16 00:26 수정 2020-05-02 19:26
대형 커피전문점이 주요 상권을 파고들면서 원두커피를 즐기는 인구가 늘고 있지만 가격 거품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한 커피전문점 매장 앞 모습. 한겨레21 박승화

대형 커피전문점이 주요 상권을 파고들면서 원두커피를 즐기는 인구가 늘고 있지만 가격 거품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한 커피전문점 매장 앞 모습. 한겨레21 박승화

“예쁜 여자와 담배 피우고 차 마실 때/ 메뉴판이 복잡해서 못 고를 때/ 사글세 내고 돈 없을 때 밥 대신에/ 짜장면 먹고 후식으로/ 아메리카노 좋아 좋아 좋아/ 아메리카노 깊어 깊어 깊어/ 어떻게 하노 설탕 설탕 설탕/ 빼고 주세요. 빼고 주세요.”(10cm의 )


국내로 가장 많이 들어오는 미국산 원두는 커피 한 잔 분량인 10g에 관세를 포함해 133원 정도다. 아메리카노 한 잔 가격의 10%도 안 된다. 역세권이나 주요 상권의 외국계 커피전문점들은 대개 매출의 15~20%를 월세로 낸다.
[%%IMAGE3%%][%%IMAGE4%%]외국계 브랜드는 서울이 좋아 좋아

이젠 ‘흔남’(흔한 남자)들도 이렇게 커피를 즐긴다. ‘된장녀’ 논란은 쏙 들어간 지 오래다. 누군가를 만나거나 혼자 있을 때, 일에 몰두하거나 잠깐의 여유가 아쉬울 때 커피를 찾는다. 밥 대신 커피를 마시고, 밥 먹고 나서도 커피를 마신다. 아무렇게나 타서 마시는 인스턴트 커피가 아니다. 값은 좀 나가도 풍미가 좋은 원두커피다. 지난해 20살 이상 한국인은 한 명에 100잔이 넘는 원두커피를 마셨다. 저절로 새로운 커피 세계에 빠져든 흔남·흔녀는 드물다. 대부분 대형 커피전문점을 통해 커피 세계를 알게 된다. 커피전문점은 우리가 늘 원하는 시간에, 딱 그곳에 있다. 근사한 모습으로 알싸한 커피향을 풍기며. 커피값 생각이 스치는 것도 잠시, 우리는 반사적으로 커피전문점의 문을 열어젖힌다.

대형 커피전문점들이 일상에 얼마나 깊숙이 파고들었는지 이 살펴봤다. 점포 수 기준으로 카페베네·엔제리너스·스타벅스·할리스·탐앤탐스·투썸플레이스·커피빈 등 상위 7개 커피전문점을 분석 대상으로 추렸다. 7개 커피전문점의 매장수가 전국적으로 3106개에 이른다. 전체 커피전문점 수가 1만 개 정도로 추정되고 있으니, 전체의 30%가 넘는다. 국내 브랜드가 수적으로는 우세다. 2008년 뒤늦게 커피업계에 뛰어든 카페베네가 809개로 가장 많았다. 엔제리너스(630개), 할리스(391개), 탐앤탐스(340개), 투썸플레이스(263개)도 전국 커피망을 갖췄다. 외국계인 스타벅스는 452개, 커피빈은 221개였다.

전국의 모든 흔남·흔녀에게 이들 커피를 마실 기회가 똑같이 주어진 건 아니었다. 대형 커피전문점의 매장 분포를 보면, 수도권 집중 현상이 뚜렷하다. 전체 점포 수 절반에 가까운 1236개가 서울에 몰렸다. 경기 지역이 526개나 된다. 외국계는 서울을 각별히 선호했다. 매장 10개 중 커피빈은 7개, 스타벅스는 5개가 서울에 자리잡고 있다. 반면 아직 강원도와 제주에는 커피빈 매장이 없다. 스타벅스도 올해 처음 제주에 매장을 입점시켰다.

서울이라고 다 같은 대우를 받는 것도 아니다. 강남 지역이 알짬이다. 강남구에는 무려 248개 커피전문점이 밀집해 있다. 서초구도 129개로 만만치 않다. 강북 지역에선 일터와 상가가 밀집한 중구(107개), 영등포구(64개), 마포구(57개) 정도가 커피전문점들의 선택을 받았다. 반면 도봉구엔 대형 커피전문점이 고작 7개뿐이다. 비수도권이나, 서울이라도 강북에선 스타벅스나 카페베네의 커피 한 잔을 마시려면 꽤 발품을 팔아야 하는 셈이다.


스타벅스는 지난해에만 149억원의 로열티를 본사에 냈다. 이 때문에 지난해 20~50%의 높은 매출 성장률을 기록했음에도, 영업이익률은 전년보다 더 떨어졌다. 줄어든 영업이익 폭은 제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진다.
작은 매장 마진율 10% vs 브랜드 매장 30%

모든 장사는 돈이 몰리는 상권을 찾게 마련이다. 임대료를 최대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유동인구가 많은 최적의 장소에 터를 잡는 게 장사의 기본이다. 커피 장사는 유동인구와 소비자의 경제 수준에 유독 민감하다. 기호식품인 커피를 마시려고 수시로 지갑을 열 만한 여유로운 소비층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커피 지도’에는 총생산이 많고 소득수준이 높은 지역일수록 커피전문점들이 빽빽하게 그려져 있다. 대형 커피전문점들에는 보편적 커피 복지를 실현할 의무가 없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들이 커피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는 꼴이다.

현재 각 브랜드가 판매하는 가장 작은 컵 크기의 아메리카노 가격은 2천~4천원이다. 커피빈이 4300원으로 가장 비싸고, 스타벅스(3900원), 투썸플레이스(3800원), 엔제리너스·탐앤탐스·할리스(3600원) 등도 4천원에 육박한다. 그나마 아메리카노는 가장 싼 원두커피다. 에스프레소에 물만 타면 그만이다. 여기에 우유나 생크림, 각종 시럽 등 각종 부재료가 더해지면 가격은 5천~6천원으로 뛴다. 한 끼 밥값이다.

지갑이 얇은 이들에게 커피전문점 원두커피는 그림의 떡이다. 대기업에서 가전제품을 수리하는 이동찬(43)씨는 하루 10잔 이상의 커피를 마신다. 잠을 깨려고 마시던 게 이젠 습관이 됐다. 커피전문점의 원두커피로 10잔을 마시면 몇만원이 든다. 그는 “자판기에서 300~350원짜리 커피를 뽑아 마시거나, 사무실에서 커피믹스를 주로 타 먹는다”고 말했다.

돈 되는 곳만 찾아다니는 커피전문점들의 입지 전략은 가격 거품을 키운다. 마시는 커피인데도 정작 가격에서 원재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관세청이 지난 6월 내놓은 자료를 보면, 국내로 가장 많이 들어오는 미국산 원두는 커피 한 잔 분량인 10g에 관세를 포함해 133원 정도다. 아메리카노 한 잔 가격의 10%도 안 된다. 각종 부자재가 들어간 커피도 재료 가격은 20~30% 정도다.

커피 가격에서 매장 임대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역세권이나 주요 상권에 경쟁적으로 들어선 외국계 커피전문점들은 대개 매출의 15~20%를 월세로 낸다. 강남구의 330m²(100평) 건물 1층에 커피전문점을 내려면 월세로 1300만원에 관리비 200만원을 내야 한다. 주요 상권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임대료가 크게 줄어들지만, 커피전문점들은 임대료보다 입지를 중시한다. 최고 상권에 걸맞은 고급 인테리어에도 꽤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그런데도 커피값이 비싸니 개별 매장 단계에선 돈이 꽤 남는다. 매장마다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마진율(매출에서 임대료·인건비·공과금 등 원가를 뺀 비율)은 30% 안팎이다. 창업정보 사이트에선 카페베네·탐앤탐스 등 국내 커피전문점 거래도 이뤄지는데 이때 가게 마진율이 20~40%로 소개된다. 실제로는 이보다 적을 수 있지만, 그래도 커피업계에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마진율이다. 4년 전부터 서울 서대문구에서 개인 커피숍을 운영하는 강미란(가명)씨는 “개인들이 작게 하는 커피숍은 마진율이 대략 10~15%다. 20%만 넘으면 대박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커피전문점이 사용하는 원두는 국제시장에서 전문가들끼리 부르는 최상급 커피와는 거리가 멀다. 최상급 커피가 프랑스 최고의 와인 ‘로마네 콩티’라면 이 정도는 가장 싼 ‘마주앙’이나 마찬가지다.”
-김용덕 테라로사 대표

“스타벅스나 커피빈 등 상당수 커피전문점은 해외에서 원두를 들여온다. 커피는 변질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볶은 원두는 거의 생선과 변하는 수준이 비슷하다.”
-안명규 커피명가 대표
커피 전문가들은 대형 커피전문점들이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커피의 맛과 향에 낮은 점수를 준다. 커피를 잔에 따르는 모습. 한겨레 박미향

커피 전문가들은 대형 커피전문점들이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커피의 맛과 향에 낮은 점수를 준다. 커피를 잔에 따르는 모습. 한겨레 박미향

카페베네, 영업이익에 맞먹는 광고비

더 큰 문제는 커피전문점 본사 단계에서 발생한다. 브랜드를 유지하는 데 다양한 명목의 지출이 생긴다. 브랜드 가치를 높일 마케팅 비용이 엄청나다. 후발주자인 카페베네는 지난해에만 153억원을 광고비로 썼다. 영업이익(160억원)에 맞먹는 액수다. 외국계 커피전문점은 브랜드 사용에 따른 로열티도 지급해야 한다. 스타벅스는 지난해에만 149억원의 로열티를 본사에 냈다. 이 때문에 7개 대형 커피전문점 브랜드는 지난해 20~50%의 높은 매출 성장률을 기록했는데도, 영업이익률이 전년보다 더 떨어졌다. 줄어든 영업이익 폭은 제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진다.

반면 중소 브랜드나 개인 커피전문점들 중엔 임대료와 마케팅비 등 각종 비용을 아껴 커피값을 1천~2천원으로 내린 곳이 많다. 지하철 역사에서 99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판매하는 마노핀의 관계자는 “상권이 이미 형성된 지역은 임대료가 너무 비싸서 지하철 역사를 생각했다”며 “임대료를 아끼고 본사 마진 폭을 줄여서 가격을 내릴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대형 커피전문점들은 가격 논란에 ‘최상급 커피’라는 주장으로 맞선다. 커피전문점에서는 최고의 원두로 최고의 바리스타가 만든 커피를 마실 수 있다고 홍보한다. 이들 매장에선 최고의 로스터가 커피를 볶고, 바리스타가 커피를 뽑아내고, 큐그레이더가 커피를 감별하는 영상이 쉴 새 없이 나온다. 물론 원두커피는 전문가의 영역이 맞다. 같은 생두를 쓴더라도 이를 로스팅하고 4~5개 원두를 배합하는 블랜딩의 방식에 따라 커피의 맛과 향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러나 대형 커피전문점의 주장과 달리 커피 전문가들의 평가는 혹독하다. 일단 커피의 질을 좌우하는 원두가 최상급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좋은 생두를 구하려고 지금도 전세계를 누비는 김용덕 테라로사 대표의 평가는 이렇다. “커피전문점이 사용하는 원두는 국제시장에서 전문가들끼리 부르는 최상급 커피와는 거리가 멀다. ‘스페셜티 커피’(상위 10% 고급 커피)는 생산량이 워낙 적고 가격이 매우 비싸다. 그래서 커피전문점들은 원가를 절감하면서 평균적인 커피 맛을 내는 ‘커머셜 커피’를 쓴다. 맛은 많이 부족하다. 최상급 커피가 프랑스 최고의 와인 ‘로마네 콩티’라면 이 정도는 가장 싼 ‘마주앙’이나 마찬가지다.”

원두의 신선도도 커피의 품질에 큰 영향을 끼친다. 커피 본연의 풍미를 느끼려면 생두를 갓 볶은 원두를 갈아야 최상의 맛을 낼 수 있지만, 스타벅스나 커피빈 등 상당수 커피전문점은 해외에서 볶은 원두를 들여온다. 볶은 원두를 오랜 기간 운송하다보면 커피의 본래 맛과 향이 손실될 수밖에 없다. 안명규 커피명가 대표(전 한국스페셜티커피 회장)는 이렇게 설명했다. “커피의 맛은 선도에 비례한다. 시간이 가면 품질이 떨어진다. (변질)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볶은 원두는 거의 생선과 변하는 수준이 비슷하다. 생두도 과일 정도의 선도를 보인다. 해외에서 원두가 배에 실려 30일 정도 걸려 국내로 들어온다고 하면 커피 본연의 맛과 향은 다 날아간다.”

카페맘, 코피스족, 카페브러리…

물론 일반 소비자들이 커피의 맛과 향을 늘 음미하며 마시는 건 아니다. 그러나 호기심이 많은 소비자라도 자신이 마시고 있는 커피에 대해 알기란 쉽지 않다. 커피전문점들이 커피에 대한 정보를 알리는 데 인색한 탓이다. 생두·원두의 산지 정보 정도만 알려줄뿐, 커피의 품종이나 블렌딩 비율 등은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노하우라며 철저히 숨긴다. 최고의 커피가 맞으니, 묻고 따지지도 말고 마시기만 하라는 것이다.

커피맛 논란이 끊이지 않는데도 소비자들이 커피전문점으로 달려가게 만드는 건 마케팅의 힘이다. 커피전문점 홍보의 초점은 커피가 아니라 매장에서 이를 소비하는 시간과 공간에 맞춰져 있다. 커피전문점에 들어서면 감성적 공간에서 차별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엄마들에겐 커피전문점이 친구와 수다를 떨며 아이에 대한 정보를 나누는 여유(카페맘·Caffe Mom)이고, 직장인들에겐 편리한 작업 공간(코피스족·Coffee+Office)이다. 학생들에겐 또 다른 도서관(카페브러리·Cafe+Library)이다. 예전엔 일부 계층이 가장 값싼 명품인 ‘브랜드 커피’를 과시하려고 커피를 마셨다면, 지금은 누구나 저마다의 목적으로 커피전문점에 간다. 김용수(46)씨도 그런 경우다. 그는 매주 토요일이면 초등학생 아들을 데리고 집 근처 스타벅스에서 반나절을 보낸다. “함께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나는 책을 읽고, 아들은 오락을 한다. 적당히 집중하고 적당히 수다 떨 수 있는 게 매력이다. 집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대형 브랜드들이 창출해낸 커피시장은 그들만의 리그다. 그들의 자본력과 마케팅 전략을 따라가지 못하는 골목 커피숍들은 처절한 생존 경쟁으로 내몰렸다. 서울 신촌에 1975년 문을 연 원두커피전문점 ‘미네르바’를 운영하는 현인석 사장은 달라진 커피업계의 분위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자본력이 있는 대형 커피전문점들이 2000년대 중반부터 하나둘 신촌의 좋은 자리에 들어오자 경쟁이 치열해졌다. 예전엔 근처에 개인이 하는 카페가 꽤 많았는데 다들 사라졌다. 우리는 그나마 단골들 덕분에 살아남았다. 그러나 1~2년 전부턴 부쩍 힘에 부친다. 제대로 가게를 맡아주실 분만 있으면 가게를 접는 일도 고민해볼 것 같다.”

대형 커피전문점의 성공 신화를 좇아 너도나도 커피전문점 창업에 나선 자영업자들도 괴롭다. 커피전문점 시장이 포화 상태가 돼 제로섬게임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박동수(33·가명)씨는 30살 되던 해에 직장을 그만두고 중형 브랜드의 가맹점으로 대구에서 작은 커피전문점을 열었다. 초기비용으로 8천만원을 투자했다. 아르바이트 1명과 주말도 없이 하루에 14시간 일했지만 손에 쥐는 돈은 월 200만원이 조금 넘었다. 그는 2년을 버티다가 지난해 가게를 정리했다. “남들이 볼 때는 근사하지만, 하는 일은 막노동이다. 대학가라 커피전문점이 하나둘 들어설 때마다 매출이 줄었다. 수입이 월급받을 때와 비슷하긴 했지만 손님에게서 받는 스트레스와 경영 부담을 생각하면 보상 금액이 너무 적었다.” 커피전문점 시장이 3조원 시장으로 커졌다고는 하지만, 브랜드 커피 본사를 빼고는 모두 괴로워진 것이다.

“남들이 볼 때는 근사한 막노동”

1세대 바리스타로 아직도 강원도 강릉에서 현역으로 활동하는 박이추 명인은 커피를 대하는 이들에게 한마디 당부한다. “산업적인 갈증으로 커피시장이 커졌다. 덕분에 커피가 많이 알려지긴 했다. 그런데 커피를 수단으로만 생각한다. 앞으로는 커피의 진심을 많이들 알아갔으면 좋겠다. (대형 전문점이 대량으로 만드는) 에스프레소 커피도 좋지만, (바리스타들이 취향대로 그때그때 만드는) 핸드드립 한 잔은 어떨까.” 이제는 산업으로서의 커피 시장보다 취향으로서의 커피와 커피 문화를 생각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이 일은 우리가 곧 마시게 될 커피 한 잔의 맛과 향을 찬찬히 느껴보는 데서 시작된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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